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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아래 봄에 죽기를 ㅣ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4가지 종류의 다른 도수의 맥주를 파는 작은 가게가 있다. 테이블이 2개 정도 있는,
동네 사람이라도 주의를 기울리지 않으면 쉽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그런 곳이다.
하지만 그 가게에 미스터리 요소들을 다분히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건 추리에
자질이 있는 이 가게의 마스터 덕이 아니었을까? 맛깔나게 음식을 차여내는 솜씨도
일품이지만, 그에게는 사람이 꽁꽁 닫아건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기묘한 능력이 있다.
하지 않으려 했던 이야기도 주절주절 떠들게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라면 이 정도까지 하지
않을 말들을 이 정도까지 하게 만든다. 그래서 숨기고 있던 정보도 때때로 털어놓게 된다.
그리고 그 정보는 곧 사건 해결의 소스가 되곤 한다. 마스터의 능력이 여기까지냐고? 아니다.
거기다 덧붙여서 추리력까지 갖추었다. 가게에만 있는 마스터임에도 직접 사건과 부딪히고
답사까지 다녀온 사람보다 훨씬 큰 통찰력을 보이며 사건 해결의 팁을 반드시 알려준다.
이런 걸 보면 셜록 홈즈가 생각날 정도다. 셜록 홈즈도 가끔씩 바쁘다는 이유로 왓슨을
대타로 보낸 적이 있지 않던가. 다만 다르다는 점이 있다면 마스터는 셜록 홈즈보다
친절하고 또 친절하다는 것. 관찰에 모든 힘을 실어주지 않고, 배려에도 무척 열심이다.
저런 가게가 우리 동네에도 있었다면 매일 갔을거다. 도수가 다른 네 가지 맥주가 있는
테이블 두 개가 전부여서 바에 앉아서 마스터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가게
멋지지 않는가? 게다가 그 가게에는 미스터리도 넘친다. 어쨌든 저 정도의 추리실력이라면
밤에 맥주가게를 하고, 낮에는 탐정사무실을 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가게에 하루가 멀다하고 불쑥불쑥 나타나는 손님들은 미스터리도 끌고온다. 그리고
마스터 구도씨에게 그 미스터리를 의뢰한다. 한 잔의 맥주를 시원하게 마시며.
이 책에서 등장하는 사건은 시와 초를 다투는 그런 사건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냥 지나치면
개운치 않은, 인생에서 한 걸음 더 걸어나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사건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어김없이 마스터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 사건들을 데려온 손님들과 마스터의 추리실력도, 그들의 독특한 캐릭터도 이 책의
매우 중요한 매력포인트였지만 이 가게만이 갖고 있는 분위기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건들을
좀 더 진지하고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무겁지는 않지만 가볍지도 않게 말이다.
무척 재미있게 읽어서 작가의 다른 책도 찾아보았는데, 번역본이 이것 밖에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 책을 다 읽고나서야 작가분이 세상을 떠나신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된 게
하나 더 있다면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이 시리즈라는 것이다. 3권이 더 있다고 한다.
가나리야 바 시리즈, 이 바의 이름이 왜 가나리야인지 마지막 권에서 밝혀진다는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