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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미래보다 새롭다 - 유하 산문집, 개정증보판
유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의 개정증보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17년 전의 책이라고 해야할까.
그 당시에 그 책의 작가는 시인으로 많은 이들이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동안 시간이 꽤 많이 흘렀고 지금은 작가를 시인보다는 감독으로 떠올리게 된다.
나 역시 ‘유하 감독의 책이구나’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고, 유하 감독의 영화는
봤지만 그의 시는 낯설기만 했다. ‘하울링’은 봤지만, 그의 시집은 보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그리고 그의 옛 산문집을 지금에서야 읽게 된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추억이라는 단어를
연상할 수는 없었다. 이소룡 세대가 아니었고, 오렌지족이라는 단어를 이 책에서 참 오랜만에
다시 들어서 신기했으니까.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영화들은 무척 오래 전의 영화로 다가왔고
이 책 속의 현재였던 그때는 왠일인지 나의 것이 아닌 것처럼 낯설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추억이라는 것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처음에는 멋있게
보였던 책 제목이 가면 갈수록 나와는 상관없는 문장 같아 보였다. 물론 이 책에 쓰여진
내용에 한한 이야기이지만. 이 책 속에는 내가 찾을만한 추억이 없었달까.
내 나이 또래인 이들은 거의 그렇지 않을까. 이 책에서 추억을 발견하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추억이 미래보다 새롭다는 사실에 공감하려면 이소룡 세대여야 하지 않을까. 이소룡 영화가
개봉했던 그 당시에 학창시절을 보냈고, 90년대에 30대 즈음을 살고 있었던 분들이라면,
감독 유하보다는 시인 유하가 훨씬 더 강렬하게 기억되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서 남다른
감상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막연히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꼭 그 당시를 추억할 수 없더라도 이 책을 읽어도 괜찮지 않을까. 영화의 길로 들어선
유하 감독을 만날 수 있고, 그의 영화가 만들어 지기까지의 토대가 됨직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그게 반드시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무척 오래 전 이야기 같이 느껴져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즐거운 일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게
아닐까 싶다. 조금 최근의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이건 이것대로 괜찮다 싶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하 감독이 유하 시인으로 보이기 시작했었다. 감독이기 이전에 시인인
사실을 그동안 참 쉽게도 잊어버렸었던 것 같다. 감독의 이력에 잠깐 소개되는 그런 정도의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나서 그의 시를 찾아보려고 한다. 이제 시인으로
그를 만나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