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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가나코는 초등학교 6학년이고 수학 여행 중이다. 소근소근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며 수학여행의 한껏 만끽하고 있을 때 즈음에
담임 선생이 가나코를 호출한다. 짐을 싸서 당장 도쿄로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가족들이 다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통사고라고 생각하고
있던 가나코는 택시 안에서 담임 선생의 태도를 관찰한 결과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다. 그리고 휴게소 화장실의 거울을 보며
자신의 웃는 모습을 기억하려고 한다. 도쿄에 도착해서 가족들과 마주하고 난 뒤에는 절대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웃을 수도, 살아갈
수도 없을거라는 것을 알고 있을만큼 가나코는 영리한 소녀이니까. 그리고 그녀의 예상은 맞아떨어진다.
가나코를 제외한 가족은 모두 살해당했다.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기에 그녀는 가족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하지 못한다.
다만 과거의 행복했던 한 순간을 떠올리며 그들의 발가락을 만질 뿐이었다. 수학여행으로 집을 떠나 있었기에 목숨을 건졌지만
치유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성장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서 스무 살이 된 가나코는 여전히 그 때의 그 상처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나코는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가해자에게 자신과 같은 나이의 딸 미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가나코는 미호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복수의 칼날을 미호에게 겨누게 된다.
하지만 미호 역시 살인범의 딸이라는 이유로 고통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거부당하고, 자신을 학대하며 지내고
있었던 것. 한 걸음씩 거리를 좁히면 좁힐수록 가나코는 미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2장까지 치밀하고 숨 막히는 구성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만약에 이 호흡이 그대로 결말까지 계속되었다면 엄청난 강도의 충격을
주는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일가족 살인사건에서 홀로 살아남은 가나코가 도쿄까지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의 심리 변화와
가해자가 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가 기술된 이 부분은 갈등을 최대한 고조시키며 이후에 어떤 전개가 이어질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 이후에 가나코와 미호가 만나면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은 그 이전의 페이지에 비해서는 잔잔하게 진행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2장까지와 같은 분위기로 진행되었다면 소녀들이 성장할 여력도 주지 않은채 극닥적인 최후로 치달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노자와 히사시가 선택한 이런 스토리 전개가 마음에 든다.
미온적이라는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소녀인 채로 영원히 멈춰있을 것만 같았던 그녀들이 성장이란 걸 하게 되니까.
그래서 안도가 된다. 피해자인 그녀들에게 더 이상 가혹한 미래를 선사하지 않는 작가의 스타일에 마음이 놓였다.
노자와 히사시는 드라마로도 방영된 적이 있는 '연애 소설'의 작가이다. 그리고 '심홍'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작품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몇 권의 책과 몇 편의 드라마 그리고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남아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