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ESC에 일년 반동안 연재한 글 31편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그리고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라는 멋진 제목이 붙었다.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씨칠리아 모디까의 식당 '파또리아 델레 또리'에서 일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일상분투기는 고되고 피곤한 것 같지만 분명 활기넘치고 즐거워 보였다. 아무래도 요리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익숙하다고 생각했었던 이딸리아 음식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들이 잔뜩 있었다. 마늘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적게,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점을 비롯해서 피자를 주문할 수 있는 시간대와 비슷하지만 다르고 다르면서 비슷한 한국와 이딸리아의 요리비교까지. 게다가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공간인 주방도 살그머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드라마에서 보이는 그 깔끔하고 정갈하기 짝이 없는 비현실적 공간과는 많이 달라보인다. 정신없이 분주하고 복잡하다는 느낌이 강하달까. 그리고 소소한 주방의 뒷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재미있다. 쿡쿡 웃음을 자아낸다. 물론 질투의 화신이 어깨에 잠깐 내려앉아 일어난 사건 이야기는 무시무시하기도 했지만... 쿠스쿠스를 뒤집어쓰고, 소세지밥을 만들어 고추장에 비벼먹기도 하지만 그의 쉐프 도전기를 읽고 있노라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들어있던 아니면 이젠 조금 늦은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꿈'이란 이름을 붙였던 많은 것들이 떠올라서 조금 설레기도 하고 두근거리기도 했다. 꿈은 가지고만 있어도 실현된다고도 하는데...그건 아마 이런 뜻이 아니었나 싶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꿈을 떠올리게 만들고, 그 꿈을 향해 움직이도록 마음을 뒤흔드는 무언가를 분명히 만나게 될 것이라는 확신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을까.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평온하고 잔잔하지만 천편일률적이었던 일상에 던져진 돌맹이같다. 그 조약돌이 만들어낸 동그란 무늬로 내가 얼마큼 바뀔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전보다 조금은 상쾌하고 가벼워진 느낌으로 꿈상자를 뒤져볼 수 있지 않을까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도전의 이면을 살펴봤던 것 같다. '무언가 해야한다, 할 것이다'와 같이 다짐으로 끝내버리는 게 아니라 '한다'라는 동사에 어울리는 장면을 세밀하고 과정되지않게 그리고도 미화시키지 않고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지만, 거기에서는 그 공간만의 세계가 또다시 펼쳐질 것이라는 것을... 거기에서도 도망치지 않으려면 각오가 필요할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아무튼 지금은 생각중...무조건 저지르기보다는 이성적으로 객관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우선인 것 같다. 부록이 참 좋았다. 10가지 이딸리아 요리법이 담겨 있는데, 간단한 인터뷰와 요리방법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그다지 크게 어려워보이지 않아서 한번 만들어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전문가의 솜씨이기에 그렇게 간단해보이는 것이지 내가 직접 요리를 만든다면 어쩌면 주방을 쓰레기소굴로 만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겨나니까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다. 이딸리아 요리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었고 '요리'라는 세계의 매력과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게 만들었다는데서 참 재미있으면서 의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검색을 해보다가 이 책의 저자분의 요리와 와인책도 발견했다. 두번 생각안하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제부터 이딸리아 요리도 내 손으로 뚝딱뚝딱 만들 수 있는걸까..? 그럴리가... ^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