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것도 엄청난 일인데 나라를 위해 자신의 생명조차 지키려 들지 않는, 생의 본능마저 무릎 꿇게 만든 그들의 뜻과 의지에 새삼 감동을 받게 된다. 이 나라의 독립과 자존을 위해 소리치고 투쟁한 분들을 존경한다. 그리고 일년 364일 동안 일상의 번잡함을 핑계로 별다른 생각없이 지내다가 3월 1일이 되어서야 그들을 떠올린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최재형이라는 이름은 생소했다. 텔레비전에서 하는 3.1절 기념 특집 다큐멘터리를 놓쳤더라면 아마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농노의 아들로 태어나 국경을 건너고, 러시아인 선장을 만나 그의 양자가 되어 교육받으며 러시아인으로 성장한다. 큰 부를 이루면서 러시아 정치에도 참여하고 짜르로부터 훈자을 수여받는다.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를 재정적으로 지원한 사람도 최재형, 그였다. 일본의 강세로 결국 러시아마저 등을 돌린 상황에서 재판도 없이 일본군의 총탄에 의해 대륙의 바람이 된 사람이 최재형이다. 다큐멘터리를 보고나서 소설로 그를 만났다. 대략의 줄거리와 굵직한 행적은 거의 유사했다. 세부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어서 자료를 찾아보고 싶었는데 책 뒤쪽에 참조문헌이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팩션이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하는 문화예술 장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사실과 상상력의 경계가 존재하는 것만큼 책을 읽는 사람에게 그 경계를 확인할 기회는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최근에 읽은 소설중에서 참고문헌이 제시되어 있는 책을 드물어서 아쉬워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만약 참고문헌이나 좀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는 방법을 책에서 친절하게 제시하고 있다면, 재미있는 책 한권 읽었구나하며 끝나는 게 아니라 책을 다 읽고나서 비로소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관심있는 자료를 찾아보고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 작가의 본래 의도와 부합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두꺼워서 다 읽어낼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기우였던 것 같다. 어떤 내용이 이어질 지 궁금해서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빨라진다. 책을 읽는 동안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렸다. 그가 살아가는 동안 발생한 굵직한 사건들 속에 그가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후반으로 가면서 지금부터 흥미진진할 거 같은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점프하듯이 흘러서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 책으로 인해 이전까지 모르고 있었던 인물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어 의미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무엇인가 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 필요한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국사를 공부한 이후에 쉽게 나온 역사에 관련된 책을 몇권인가 읽었을 뿐이다. 역사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궁금한게 있으면 인터넷을 조금 뒤져본 게 전부였다. 이제 도서관에 들렸을 때 역사관련 책도 조금 빌려 읽고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