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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는 왜 다른 나라에 갔을까 ㅣ 배우자 역사 2
서해경 지음, 이선주 그림 / 풀빛미디어 / 2017년 8월
평점 :
멋지고 아름다운 예술품을 많은 사람들이 감상하고 감동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참 좋을거에요. 그게 그 민족의 혼과 희로애락이 깃들여진 문화재라면 더 그럴거에요. 하지만 그 문화재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닌 다른 나라 박물관에 존재한다면 문화재의 예술적 가치에 감동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문화재에 숨겨진 혼과 정신은 느낄수 없을 것이고 그 문화재의 진정한 감동은 없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최근 들어 더 활발해진 우리나라 문화재 환수 소식을 접하면서 외세의 침략이 많았던 우리 역사속 슬픔의 유산이기도 한 문화재 약탈이 우리나라의 문제로만 여겼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세계 여러 나라, 특히 대항해시대의 식민지,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나라의 아픈 상처이기도 한 문화재 약탈에 대하여 이 책을 통해 알게되면서 왜 그 문화재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지 무거운 숙제의 짐을 느끼게 되는군요. 아이와 함께 유명한 박물관의 멋진 작품을 감상하면서 예술적 아름다움에 감동만 했던 무지함에 반성하게 되면서 그속에 묻혀있는 침략과 약탈의 과거와 원래의 자리에 존재했을 때에만 느낄수 있는 진정한 문화재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문화재가 어떤 아픔의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해요.
현존하는 유일한 고대 7대 불가사의중 하나인 가자 피라미드와 함께 있는 스핑크스에는 투트모세 4세가 파라오게 된 사연이 숨겨져 있어요. 이집트인에겐 태양신이라 믿은 파라오의 얼굴을 본뜬 스핑크스에 파라오의 수염이 있는 모습은 당연하지만 이들의 신앙과 문화를 알지 못하거나 무시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스핑크스의 코와 수염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봅니다. 이집트를 침입한 터키 군대가 스핑크스의 얼굴을 향해 대포를 쏘는 연습을 해서 부서졌다고도 하고,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스핑크스를 우상이라고 생각해서 코를 없앴다고도 하며, 나폴레옹이 턱수염을 단 스핑크스의 모습이 건방져 보인다고 생각하여 대포를 쏘아 스핑크스의 수염을 떨어뜨렸다고도 합니다. 어처구니 없이 사라진 수염은 이집트도 프랑스도 아닌 영국에 있어요. 이집트를 지배했던 영국의 고고학 팀이 스핑크스 주변에서 프랑스군이 떨어뜨린 스핑크스의 수염 조각을 발견하고 이집트을 보호하는 수호신인 스핑크스의 수염을 가져감으로써, 이집트인들의 애국심과 자존심을 꺾기 위해 대영박물관에 전시한거에요.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스핑크스의 수염 조각은, 소개 글을 읽기 전에는 무엇인지 모를 만큼, 스핑크스의 수염으로 보이지 않는데 스핑크스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집트에 돌려주지 않고 있어요. 스핑크스의 수염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그리스 여배우 멜리나 메르쿠리는 1962년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영화를 찍는 도중 조국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강제로 떼어 내져서 남의 나라 박물관에 전시된 조각품들을 보고 충격에 빠집니다. 파르테논 신전을 장식했던 조각품들은 파르테논 신전과 함께 있어야 완벽한 의미가 있지만 돌려주지 않고 있어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 1호 파르테논 신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건축물을 지으려는 아테네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 기술과 높은 예술성이 합쳐진 건축물이며, 그곳의 조각품들은 그리스뿐 아니라 서양 문화의 최고봉이라 칭송받고 있어요. 하지만 터키 주재 영국 대사인 엘긴은 자신의 집을 그리스식으로 꾸미고 싶어 12년 동안 253점이나 되는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품을 파내어 훔쳐가고 파산후 영국 정부에 팔게 되어 대영박물관에 보관되게 되었어요. 그리스 신화를 조각으로 표현해 그리스의 민족의식을 상징한 소중한 문화재인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품을 되찾기 위해 그리스는 현재도 노력하고 있지만 영국은 반응이 없습니다. '엘긴의 조각품들'이라는 이름 대신 '파르테논 조각품들'이란 이름을 찾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어요.
샹폴리옹은 로제타석과 필레 오벨리스크를 연구하여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게 되었어요. 왜 이집트학이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을까요. 프랑스 나폴레옹은 이집트를 차지하여 영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로 가는 길을 막고, 프랑스가 영국보다 더 쉽게 동방무역을 차지하는 이유 외에도 고대 문명이 태어나고 발달했던 이집트의 수많은 문화재를 연구하고 싶어했어요. 1799년 7월 15일 이집트 로제타라는 곳에서 프랑스군이 땅속에 묻힌 로제타석을 발견하고 이 비석이 대단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라는 것을 알았어요. 프랑스군의 예상대로 샹폴리옹이 이 비석을 통해 고대 이집트 문자를 알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지요. 하지만 프랑스를 이집트에서 몰아내기 위해 이집트를 지배했던 터키와 영국, 오스트리아가 손을 잡고 프랑스군을 공격하고 영국군이 승리하며 이집트에서 찾은 고대 유물과 문화재를 요구하며 로제타석도 대영박물관에 보관됩니다. '로제타석을 통해 고대 이집트의 모든 역사와 문화재, 유물이 되살아날 수 있었다. 로제타석은 영국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상징이다.'라고 말하며 이집트인들은 로제타석을 돌려주길 원하고 있어요. 로제타석은 이것을 발견한 프랑스의 것도, 지금 이것을 가지고 있는 영국의 것도 아닙니다.
그동안 약탈당한 문화재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중국은 1996년 사법통일국제협회의 '도난 혹은 불법 수출 문물에 관한 공약'에 서명하면서 적극적으로 유출된 문화재를 찾고 있어요. 유출된 문화재를 돈을 주고 사서 되찾기 위해 '중화기금회'도 설립했지요. 중국 황제들이 여름과 가을에 더위를 피하기 위해 살았던 궁전이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기도 한 원명원에 십이지신 머리 청동상들이 있었어요. 원명원은 오랫동안 아시아는 물론 유럽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대륙을 지배하며 높은 문화를 이룩한 중국의 모든 솜씨가 집약된 곳이며 중국의 전통양식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곳이죠. 1857년 12월 제2차 아편전쟁을 일으킨 영국과 프랑스는 귀한 문화재와 값비싼 보물이 가득한 원명원과 자금성을 약탈했어요. 원명원을 불태우기 전 모든 것을 약탈하는 것을 허락받은 병사들은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나머지는 부수고 불을 질렀어요. 원명원에 불을 지른 병사조차 '인류는 이런 건물을 다시는 짓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할 만큼 원명원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사흘 동안 불에 타 잿더미로 변했어요. 원명원의 십이지신 분수상 중 용, 뱀, 양, 닭, 개 머리 청동상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어요. 치욕스런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불에 타 폐허가 된 원명원을 그대로 두고 있는 중국인들이 역사를 기억하는 한, 중국의 유출 문화재는 하나둘 중국으로 되돌아 갈거라 생각됩니다.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에 있었던 '가나의 혼인 잔치'는 베로네세에 의해 기존의 엄숙하고 성스러운 분위기의 그림이 아닌 베네치아에서 벌어지는 결혼 잔치인 듯 활기차게 표현되었고, '가나의 혼인 잔치'를 보고 성당을 찾을 정도로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자랑거리가 되었어요. 이를 욕심낸 나폴레옹은 1797년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을 들이닥쳐 워낙 크고 무거워 운반하기 힘든 '가나의 혼인 잔치'를 반으로 잘라 프랑스로 가져갔고 프랑스인들은 다른 나라에서 약탈한 문화재임에도 자랑스러워했어요. 1815년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군에 지자, 그동안 나폴레옹에게 침략당하고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당했던 여러 나라는 루브르 박물관으로 달려가 자신들의 문화재를 되찾아갔지만 베네치아는 돌려받지 못했어요. 지금은 초정밀 컴퓨터로 복제한 복제품이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에 있고 진짜 '가나의 혼인 잔치'는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니 참 아이러니하네요.
영국 영사 필립스의 욕심에 의해 멸망하게 된 베닌 왕국의 역사가 담긴 모든 문화재는 하루아침에 영국으로 실려 갔어요. 피부가 짙은 아프리카 사람을 자신보다 미개하고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한 그들은 아프리카 베닌의 문화재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어요. 베닌의 역사가 담긴 모든 문화재가 한낱 괴상한 물건 취급을 받으며 팔려나갔어요. 특히 청동조각품들은 바로 '베닌 브론즈'라 불리는 아프리카 최고의 문화재이자 예술품이죠. 문자가 없던 베닌은 나라에서 있었던 중요한 사건을 청동으로 새겨 베닌 브론즈로 역사를 기록했어요. 수백 년 동안 제작된 수천 점의 베닌 브론즈는 수백 년 동안의 베닌의 역사이며 그 시간 동안 베닌의 예술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재이기도 합니다. 단지 훌륭한 예술품이 아니라 나라의 역사 기록이고, 성스러운 존재로 추앙받던 오바를 위한 종교 성물인거죠. 이런 문화재가 한 개인의 욕심과 거짓말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뻔 했다는 이야기에 만감이 교차하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이제는 가장 비싼 조각품이 되어버린 베닌 브론즈를 환수하려는 운동이 나이지리아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엄청난 돈을 주고 사는 방법밖에 없다니 답답할뿐입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1세가 왕비를 위해 호박방을 만들었으나 완성되기전 죽음을 맞이하여 아들 빌헬름 1세가 러시아의 표토르 황제에게 선물한 호박방은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인 에르미타쥬궁에 꾸며졌어요. 1941년 독일이 러시아를 침략했을때 독일군 특수부대는 호박방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었고 로데 관장의 지휘로 호박방의 타일은 분해되어 독일로 실려나갑니다. 그후 러시아는 호박방을 추적하는 특별팀을 만들어 조사했지만 러시아군이 쾨니히스베르크를 점령하고 성을 불태웠을 때, 호박방도 함께 불에 타 없어졌다는 결론을 내리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 예카테리나 궁전에 복원했어요. 하지만 지금도 보물 사냥꾼들은 호박방을 찾아 세계를 뒤지고 있다는군요. 어딘가에 호박방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요.
세계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은 문서로 기록된 최초의 법이며 282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다른 중요한 문화재들처럼, 함무라비 법전도 다른 나라에서 탐냈어요. 바빌로니아를 침범한 엘람 왕국이 약탈했고, 땅속에 묻힌후 이란의 유물을 마음대로 발굴할 수 있는 권리를 산 프랑스가 발굴하여 루브르박물관에 보냈어요. 고대 바빌로니아의 역사와 민족정신이 담긴 소중한 문화재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라인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복제품이 이란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현실이 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둔황의 막고굴을 관리하던 왕원록이 우연히 16호 굴 속에 숨겨져 있던 17호 굴, 불교 도서관인 장경굴을 발견했지만 4세기에서 11세기까지의 세계를 놀라게 할 엄청난 문화재가 있음에도 1900년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러시아, 일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8개 나라와 전쟁을 해야 했던 중국은 장경굴과 둔황문서의 발견에 기뻐할 수가 없었어요. 오히려 그 발견으로 중국을 욕심냈던 다른 나라들에게 수백 년간 안전하게 숨어있던 장경굴의 문화재들까지 빼앗기게 되었지요. 둔황 막고굴은 오랜 역사와 수준 높은 문화, 거대한 땅을 가진 중국에서 첫 번째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선정될 만큼 문화적인 가치가 높은 곳이며 문화재 역시 양도 엄청나고 가치도 매우 높지만, 그 문화재는 10여 개의 나라에 흩어져 있어서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연구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여러 나라가 힘을 모아 '국제 둔황프로젝트'를 만들었다고 하니 지금이라도 각 나라에 있는 둔황의 문화재가 잘 연구 보존되었으면 좋겠어요.
고대 그리스의 이야기에만 존재했던 신화 속 나라 트로이는 독일인 하인리히 슐리만이란 고고학자에 의해 실제로 존재한 나라로 알려지게 되었어요. 하지만 3300년 동안의 유적지가 9층이나 묻혀 있었음에도 트로이 유적지에만 관심이 있었기에, 그가 발견한 다른 시대의 유적지는 보호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슐리만이 트로이전쟁 당시의 유적지라고 생각한 유적지는 트로이전쟁때의 트로이가 아니었던 거에요. 개인의 욕심때문에 다른 유적지와 트로이 전쟁 당시의 진짜 트로이 유적지는 훼손되었어요. 더구나 터키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터키 정부 몰래 독일로 가져간 슐리만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안 터키에 고소당하지만 유물 일부만 돌려주고 정말 귀중한 유물은 돌려주지 않았어요. 독일이 박물관에 기증한 트로이의 유물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사라지고 1996년 모스크바 푸시킨주립미술관에서 '트로이의 보물-하인리히 슐리만의 발굴품'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가 열리며 트로이의 유물을 러시아가 가져갔다는 소문이 사실로 들어나지요. 전쟁 중에 러시아가 독일에서 문화재를 약탈한 것이니 돌려달라는 독일, 독일이 약탈하고 파괴한 러시아 문화재에 대한 보상으로, 러시아가 독일의 문화재를 가지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러시아, 트로이의 유적지가 있었던 터키와 히사를리크 언덕의 주인이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트로이가 만들고 남긴 문화재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게 정답일지...
문화재 환수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즈음 문화재 환수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게 되었어요. 왜 문화재는 원래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반환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는 약탈국의 이기심에도 화가 나는건 당연한 인지상정일 거에요. 이 책을 읽으며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깨닫게 되었고 우리 문화재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어요. 잃어버리고 빼앗겨버린 문화재 환수도 중요하지만 우리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후손에게 훼손되지 않게 잘 물려주는 것도 중요함을 알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또한 우리 문화재가 중요하듯 다른 나라의 문화재의 중요성도 간과하면 안된다는 역지사지의 마음도 가져봅니다. 전 세계 제자리에 있지 않은 문화재가 제자리에 돌아가 진정한 문화재의 가치와 의미를 갖기를 다시 한번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