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의 생각실험실 : 해시계와 물시계 생각실험실 시리즈 2
송은영 지음, 오승만 그림 / 해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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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과 장영실의 멋진 합작품으로 해시계, 물시계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고, 어떤 고민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거에요. 위대한 과학자, 발명가들의 발견이나 발명은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많은 생각과 고민, 생각실험과 반복적인 실험에 의한 시행착오를 통해 이루어졌어요. 이 책을 통해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대왕의 관찰과 고민을 통해 시작된 아이디어로부터 장영실의 생각실험을 통해 이루어진 해시계, 물시계의 완성 과정을 아이와 함께 들여다보고 실험에 들어가기에 앞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먼저 상상해보는 생각실험의 과정을 배우고 익혀보도록 해요.
 

 

너무나 단순한 시계인 지평일구를 바라보며 세종대왕은 생각합니다. 햇살이 지평일구의 가운데에 꽂혀 있는 막대기에 닿자 해가 뜬 방향과 반대의 그림자가 생기고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지만 그림자는 반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살펴보고 그림자 끝에 시각을 적으면 시간을 알 수 있다는 해시계의 기본 원리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데 중요한 절기는 알 수 없으므로 시각과 절기가 함께 들어간 해시계를 만들어보라고 장영실에게 명을 내립니다.

 

해시계의 원리를 궁리하며 장영실은 일단 해와 그림자 사이의 관계부터 확인해봅니다. 해가 떠오르는 묘시 때의 상황, 즉 해가 뜬 위치와 그림자의 방향과 길이을 종이에 그려 보며 지평일구의 그림자를 따라가 봅니다. 해가 높이 떠오를수록 그림자의 길이는 줄어듭니다. 묘시부터 해가 가장 높이 오르는 오시까지 해의 위치와 그림자의 방향과 길이에 대해 살펴본 후 오시 이후인 미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의 오후를 살펴봅니다. 장영실이 생각한대로 오시를 기준으로 사시와 미시, 진시와 신시, 묘시와 해가 지는 유시는 엇비슷한 길이로 서로 반대쪽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대칭에 가깝다는 것을 확인하지요. 유시 이후의 시각인 술시와 해시, 자시와 축시와 인시는 해가 사라진 시간이므로 해시계가 무용지물이라 해시계에 표시하지 않았어요.

 

시각을 해결하였지만 세종이 지시한 절기를 함께 알 수 있는 해시계를 만들어야하니 다시 한번 생각실험을 해 봅니다. 장영실은 24절기 중에서 낮이 가장 긴 절기인 하지를 먼저 떠올립니다. 해가 가장 높이 뜨니 그림자가 가장 짧다는 것은 이미 시각을 알 수 있는 해시계에서 알고 있어요. 장영실은 일출 시간인 묘시와 일몰 시간인 유시를 종이에 표시하고 막대기의 그림자가 하지때 그 시간 동안에 움직인 자취를 그려봅니다. 또 24절기 중에서 낮이 가장 짧은 절기인 동지는 해가 가장 낮게 뜨니 그림자가 가장 길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니 마찬가지로 묘시에서 유시까지 막대기의 그림자가 움직인 자취를 종이에 표시해요. 절기엔 하지와 동지 외에 22개의 절기가 더 있으니 22개 절기 때의 그림자도 알아봐요. 하지에서 동지로 갈수록 그림자가 점점 길어진다는 생각을 직접 확인해보니 예측이 틀리지 않아요. 이제는 동지에서 하지까지를 해시계에 담아보아요. 해가 저문 술시에서 해가 뜨지 않은 인시까지는 해시계에 표시하지 않았지만 절기는 상황이 다르지요. 절기의 개수도 같고 떨어진 간격도 비슷하므로 대칭을 이용해봅니다. 유시쪽에 소한에서 망종까지를 적어 넣고 좌우대칭인 해시계 속의 절기가 실제와 어울리는지 각각의 절기에 확인해 보니 역시 예측이 틀리지 않았어요. 묘시에서 유시까지 막대기의 그림자가 지나간 길, 즉 그림자의 자취는 24절기를 나타내는 절기 선이 되었어요. 드디어 장영실은 해시계에 24절기를 담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마지막으로 해시계의 모양을 고민합니다. 시각뿐만 아니라 절기까지 표시하려면 지평일구와는 다른 모양이 필요할듯해요. 평평한 해시계에 그려 넣은 절기 선 가운데에 하지의 절기 선이 가장 짧은데 실제로는 그림자가 지난간 길인 절기 선이 가장 길게 그려야 하는 하지를 표시하는게 맞지 않아요. 이 문제는 해시계를 반구형으로 제작하여 해결하게 됩니다.

 

장영실이 만든 해시계 앙부일구는 시반, 영침, 받침대로 이루어져 있어요., 시반에는 절기 선인 가로줄과 시각 선인 세로 줄이 있지요. 절기 선은 13개, 시각 선은 7개입니다. 시각 선은 4등분되어 있어 1시간을 4등분한 셈이니 각 눈금은 15분의 간격을 나타냅니다. 세종대왕 시대 때 만든 앙부일구엔 글자를 모르는 백성을 위해 시간에 해당하는 동물이 그려져 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후 사라져서 어떤 모습일지 알 수가 없어서 아쉽기만 합니다. 
 

 

왕궁 뜰을 거닐던 세종대왕은 해시계의 단점인 해가 보이지 않으면 시각을 알 수 없다는 생각에 물로 시간을 재는 방법을 생각합니다. 항아리에 눈금을 그어서 시각을 표시하고 항아리에 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고 물이 차오른 높이로 시간을 안다는 물시계의 원리를 생각하지요. 하지만 서운관의 관리가 밤낮으로 쉬지 않고 물시계를 지키며 때가 되면 시각을 알려 주는 일이 서운관의 실수가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있지요. 세종대왕은 장영실을 불러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 주는 물시계를 만들어보라고 명합니다.

 

장영실은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 주는 물시계를 만들기 위해 먼저 물이 끊기지 않고 계속 떨어질수 있도록 3단 선반에 큰파수호, 작은파수호, 수수호를 만들어 올려놓습니다. 큰파수호에서 작은 파수호로, 작은 파수호에서 수수호로 물이 떨어지게 하는 물시계의 주요 장치를 갖추었어요. ​물이 누르는 힘에 따라 작은파수호에서 수수호로 물이 떨어지는 속도가 달라질 수가 있어요. 시간은 늘 일정해야 하므로 수수호로 들어가는 물의 빠르기는 작은파수호에 담긴 물의 양과 관계가 있으므로 물의 빠르기가 변하지 않도록 작은파수호에 담긴 물의 높이를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게 하자고 결정하지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작은파수호의 물 높이를 중간보다 높게 유지했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어요. 물의 빠르기가 느린 것보다는 빠른 것이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데 이롭기 때문이죠. 서운관 관리가 큰파수호에 물을 붓고 큰파수호에 물이 적당히 차면 작은수수호와 연결된 구멍을 열어 물이 작은파수호로 툭 툭 툭 떨어지게 합니다. 큰파수호와 작은파수호를 이어주는 관의 길이는 짧게 하는 것이 좋을지 길게 하는 것이 좋을지, 관의 두께는 두껍게 하는 것이 좋을지 얇게 하는 것이 좋을지, 관은 비스듬하게 뉘여서 연결하는 것이 좋을지 수직으로 곧추 세워서 연결하는 것이 좋을지 등 수없이 많은 실험을 했을거에요. 그리고 큰파수호와 작은파수호를 무엇으로 제작하는 것이 좋을지도 고민했을 거구요. 하지만 큰파수호는 청동을 사용해서 만들었고, 작은파수호는 도자기처럼 흙으로 빚고 구워서 만들었다는 것 외에는 어떤 실험 내용도 전해지지 않고 있어요. 물이 작은파수호의 적정 높이까지 차오르자 서운관 관리가 수수호와 연결된 구멍을 열어 수수호 바닥으로 물이 툭 툭 툭 떨어지고 물이 수수호에 차츰차츰 차오르고 십이지 시각의 첫째 시각인 자시에 이르고 물 높이가 점점 높아져 축시, 인시, 마지막 눈금인 해시까지 올라갑니다.  수수호의 물이 자시에서부터 해시까지의 시간을 정확히 가리키는데 성공입니다.

 

이제 다음 날의 시간을 재는 고민을 해봐요. 해시까지 차오른 상태에서 자시부터 시간을 재려면, 수수호에 담긴 물을 전부 빼내야 합니다. 물을 빼내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수수호에 담긴 물을 빼내는 동안에 시간을 어떻게 재야 하는지 문제가 있네요. 답은 의외로 간단하군요. 큰파수호와 작은파수호와 수수호와 모양과 크기가 똑같은 새로운 큰파수호와 작은파수호와 수수호를 만드는거에요. 새로운 수수호에 가득 찬 물을 빼내는 동안에는 먼저 만든 큰파수호와 작은파수호와 수수호로 시간을 재면 되는거에요.

 

1년 365일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시간을 알려 줄 수 있는 물시계가 완성되었어요. 이제 자동 물시계를 고민해봐야겠어요. 장영실은 시간을 알려줄 방법으로 나무 인형을 이용합니다. 자동 시보 장치 안에 설치한 나무 인형이 툭 튀어나와서 종과 징과 북을 치도록 하는거지요. 나무 인형이 종과 징과 북을 치려면 동력이 필요한데 구슬이 떨어지고 구르는 힘을 이용합니다.

이제 구슬을 설치할 방법을 고민합니다. 자시에서 해시까지 십이지 시각을 표시한 나무 기둥을 만들어 나무 기둥에 구슬을 올려 놓아요. 이런 나무 기둥을 방목이라 하는데 방목의 십이지 시각을 표시한 자리마다 구슬을 올려 놓을 수 있는 받침대를 만들어 스치듯 살짝만 건드려도 구슬이 쉬이 굴러 떨어지게 하는거지요. 장영실은 구슬 받침대를 청동으로 제작해서 그 위에 구슬을 올려 놓았어요. 구슬의 재질은 구리였고 크기는 총알만 했어요.

이제 방목을 어디에 놓을지 고민해봅니다. 방목을 수수호 안에 집어넣는 방법이 어려우니 수수호 옆이나 위에 올리는 방법이 있어요. 옆에 놓으면 방목과 수수호가 따로따로가 되어버리니 수수호 위에 올리는 것뿐입니다. 방목과 수수호를 지지대로 연결까지 했으니 이제 구리 구슬을 떨어뜨리는 문제를 해결해야해요.

장영실은 수수호에 부전을 넣었어요. 부전의 바닥이 수수호의 바닥에 닿았고 부전의 가로쇠는 방목의 바닥에 닿았어요. 수수호에 물이 차기 시작하자, 부전이 떠오르고 수수호의 물이 자시에 이르자 부전의 바닥이 그 높이에 닿고 부전의 가로쇠는 방목의 자시에 닿아요. 가로쇠가 청동 받침대를 밀어 올리면 기울면서 구리 구슬이 떨어져 경사면을 구르며 나무 인형에게 다가갑니다. 구슬의 힘이 나무 인형에 전달되지요. 굴러 내려온 구리 구슬이 자그마한 숟가락 모양의 지레를 누르고 지레가 눌리자 지레에 줄로 연결된 나무 인형의 팔이 움직이며 종과 징을 치고 북을 울리지요. 하지만 소리가 너무 적어요. 약한 힘 때문입니다. 장영실은 계란 크기의 큰 구슬을 하나 새롭게 추가합니다. 방목에 놓인 구리 구슬과 새로 추가한 구슬이 충돌 후 총알만 한 구리 구슬은 멈추고, 계란만 한 구리 구슬은 움직여 지레에 떨어지면 강해진 힘이 지레를 내리누르고 강해진 나무 인형의 팔의 힘이 종과 징을 치고 북을 두드리며 북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지요. 자동 물시계도 성공입니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자격루이건만 전해지지 않아서 안타깝지만 남문현 선생님과 연구팀이 이를 복원하는데 성공했어요. 덕수궁 자격루에는 장영실의 물시계와 달리 큰 파수호가 1개뿐입니다. 이는 덕수궁의 물시계가 장영실이 만든 게 아니라 조선의 제 11대 왕인 중종 임금 때에 제작한 물시계이기 때문이며, 과거 1만 원권 앞면에 있던 물시계 인쇄가 새로이 찍은 1만 원권에는 사라진 것 역시 장영실이 발명한 물시계가 아니라, 덕수궁의 물시계를 그려 넣었기 때문이에요. ​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합작품으로만 알고 있던 해시계, 물시계의 발명 과정을 살펴보며 그 원리를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장영실의 생각실험 과정을 함께 공유해볼 수 있었어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그 과정과 결론을 생각실험으로 예측해보고 실제 실험으로 확인하는 과정은 논리적 사고를 키우고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때 주저하지 않고 맞서는데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그의 천재적인 아이디어와 생각실험을 함께 하는 멋진 시간을 통해 머리로 많은 것을 생각해보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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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special 이승엽 (친필 사인 수록 특별판) who? special
최재훈 지음, 스튜디오 해닮 그림, 안광필 감수 / 다산어린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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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야에서건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결과를 만들고 지켜보는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우리 아이들의 멘토로 손색이 없을거에요. 프로 스포츠의 인기에 프로 스포츠 스타들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눈높이도 많이 높아지고 그들에게 바라는 가치관과 기준도 높아진듯 합니다. 창단 36년이 된 프로야구의 수많은 스타들중 우리에게 이런 기대에 만족하는 스타중 한명을 꼽는다면 당연 이승엽 선수일거에요. 투수는 선동렬,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라는 말처럼,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스타이며 우리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고 스타가 지녀야 할 인성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는 그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너무 기뻤어요. 올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열린 대구 라이온즈 파크를 찾았던 우리 가족의 바램은 마지막 올스타전을 마무리하는 이승엽 선수를 만나 사인도 받고 추억을 남기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어요. 대신 이렇게 이승엽 선수의 이야기와 함께 그의 꿈을 응원하는 사인을 접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네요.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면서 왜 그가 우리에게 사랑을 받는 인물인지 확인할 수 있었고 야구에 대한 상식도 짚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엄청난 개구장이었던 이승엽은 일곱 살이 되던 해 시작된 프로 야구를 접하며 야구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갑니다. 초등학교 4학년 대구시 멀리 던지기 대회에서 63미터를 기록해 고학년 선배를 제치고 3등을 차지하자 중앙 초등학교 야구부장의 야구부 입단을 권유받게 되지만 운동보다 공부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반대로 긴 단식 투쟁에 들어가지요. 단식을 하면서도 학교가 끝나면 매일 중앙 초등학교에 가서 홀로 야구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본 선생님은 다시 한번 이승엽의 아버지를 만나 이승엽의 진심을 전하고 드디어 아버지의 허락과 함께 야구부에 들아가기 위해 중앙 초등학교로 전학을 시킵니다. 착실한 훈련을 이어 온 이승엽은 5학년에 야구부의 중심 선수가 되었고, 6학년 때는 전국 대회에 출전하게 되지요.

 

통합지식 플러스 1에서는 야구를 운명으로 생각하고 끊임없는 노력과 겸손한 자세로 야구에 임해 수많은 기록을 세운 그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대구에서 야구를 가장 잘한다고 알려진 경상 중학교에 들어간 이승엽은 노히트 노런을 작성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여러 고등학교 야구팀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안을 받지만 개의치 않고 야구 명문 경북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변화구를 익혀 투수로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이승엽은 고등학교 2학년 청룡기 대회에서 군산상고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고 우수 투수상을 받게 되지요.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청소년 국가 대표가 되어 캐나다 브랜든에서 열리는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 투수로 참가할 계획이었지만 팔꿈치 부상으로 타자로 출전하게 되고 13년만의 우승과 함께 홈런상과 타점상을 거머쥐는 기쁨을 맛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 팀에 가려는 이승엽의 생각과 달리 아버지는 대학 야구를 권합니다. 고민 끝에 부모님의 뜻에 따라 체육 특기생으로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입학 전 미리 대학 야구부 합숙 훈련에 들어가지만 자신의 생각과 다른 대학의 합숙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대학을 안가기 위해 일부러 수능 성적을 낮게 받아 대학에 못 가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통합지식 플러스2에서는 프로 야구가 생기기 전 국민들에게 순수한 열정과 협동심, 끈기를 통해 희망을 전해주며 온 국민을 열광에 빠지게 했던 한국의 고교 야구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고등학교 졸업후 삼성 라이온즈에 투수로 입단한 이승엽에게 구단 측에서도 좌투수 유망주로서 최고의 대우를 해 줍니다. 하지만 부푼 꿈을 안고 훈련에 전념하던 어느 날, 팔꿈치 통증을 느끼고 고등학교 때 당했던 부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지요. 1995년 2월 스프링 캠프가 시작되자 부상 때문에 투수로서 제대로 훈련을 하지도 못하고 낙담하고 있는 이승엽에게 박승호 타격 코치는 타자로 전향을 권유합니다. 투수에서 타자로 포지션을 전향하기로 한 이승엽의 도전은 타격 자세를 익히는 것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혼신의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기억하며 투수가 아닌 타자로 프로 무대에 올라온 그는 실패를 반복하지만 1995년 5월 2일 프로 데뷔 첫 홈런과 함께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 주기 시작합니다. 단숨에 주목 받기 시작했지만 이승엽은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고 장거리 타자로서 자질을 보여주기 시작하지요.

 

통합지식 플러스 3에서는 1982년 여섯 구단으로 시작된 한국의 프로 야구가10개 구단으로 발전하여 어떻게 우승 팀을 선정하고, 긴 리그를 위해 리그가 시작되기 전 전지훈련은 어떻게 진행하는지 등을 알려줍니다.

 

1996년 전설적인 4할 타자 백인천이 삼성 라이온즈를 이끄는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하고 타격왕보다는 홈런왕이 되고 싶다는 그에게 일본 프로 야구 시절 몸소 터득한 외다리 타법을 가르쳐 줍니다. 외다리 타법을 익힌 이승엽은 새로운 마음으로 1997년 시즌을 맞이합니다. 시즌 중 32개의 홈런을 날리며 IMF로 힘들어하는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주며 프로 팀 입단 3년 만에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어 냅니다. 1998년 도입된 외국인 선수 영입으로 1998년 이승엽 선수는 타이론 우즈와 홈런 경쟁을 하게 되지만 시즌 중반까지의 페이스와 달리 치고 올라오는 우즈와 신기록에 대한 부담감으로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 결국 타이론 우즈에게 홈런왕 자리를 내주게 되지요. 자신과의 싸움에서 졌다고 생각한 이승엽은 독기를 품게 되고 1999년 다시 시작된 우즈와의 홈런 경쟁에서 54개의 홈런으로 홈런왕 타이틀을 되찾고, 자신의 기록도 깨며 팬들부터 '국민타자'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게 되지요. 패션쇼에서 만난 이송정과 2001년 결혼식을 올린 그에게 어머니의 뇌종양 판정이라는 시련이 찾아옵니다. 병마와 싸우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더욱 열심히 그라운드를 누비는 이승엽은 창단 이후 처음으로 한국 시리즈에 진출한 2002년 절실한 순간 경기에 집중하며 동점 홈런을 만들어 내고 마해영 선수의 역전 홈런으로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하게 되지요.

 

통합지식 플러스4에서는 야구를 모르는 독자에게 야구를 즐길 수 있도록 야구 장비와 야구 기본기를 익히게 도와줍니다.

 

2003년 아시아 신기록 홈런 56호 홈런을 멋지게 쏘아 올린 이승엽은 더 큰 무대에서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에 메이저 리그 진출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지만 좋지 않은 조건에 앞으로 후배 선수들의 진출에 영향을 줄 거라는 걱정으로 미국 진출을 접고, 자신의 실력을 인정해주는 일본 프로 야구팀 지바 롯데 마린스로 향합니다. 일본 진출 첫 해, 세계적인 분석력을 가진 일본 야구에 흔들리기 시작하고 2군으로 강등되지만 삼성 라이온즈에서부터 인연이 있었던 김성근 감독을 만나 혹독한 겨울을 보내며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2005년 시즌이 시작되자 맹활약을 펼치며 31년만에 지바 롯데 마린스에 우승을 선물합니다.

 

통합플러스 5에서는 우리나라의 야구장과 우리나라 야구장만의 독특한 응원 문화를 소개합니다.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계약이 만료되자 2006년 1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하게 된 이승엽은 하라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며 2006년 시즌 일본 진출 이후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지요. 또한 2006년 WBC 예선전에서도 역전 홈런을 쏘아 올리며 한국 대표 팀이 일본을 꺾고 결선으로 진출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2007년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심각한 손가락 통증을 참아 내며 훈련에 임하고 부상에도 불구하고 30개의 홈런과 일본 시리즈 진출에 이끕니다. 2007년 시즌이 끝난 직후 왼손 엄지손가락 인대 재건 수술을 하고 2008년 시즌을 맞이하지만 최악의 타율과 함께 2군 강등의 아픔을 겪습니다. 2군과 1군을 오가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그에게 김경문 감독은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부탁하지요. 부진에도 김경문 감독은 끝까지 이승엽을 믿어주고 일본과의 준결승에 4번타자로 나온 이승엽은 부진을 이겨내고 역전 홈런을 날리고 한국의 승리를 가져옵니다.

 

통합플러스 6에서는 꿈의 구속 160km/h, 입술의 움직임을 읽히지 않기 위해 글러브로 입을 가리고 같은 편 선수들끼리 이야기하는 모습, 기록 달성 선수의 모임인 성구회, FA  제도 등 야구 상식을 알려줍니다.

 

200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일본 시리즈에 진출하였고, 이승엽에게도 이번 경기는 명예 회복의 기회였지만 홈런 없이 삼진을 무려 12번이나 당하며 세이부에게 우승을 양보하게 되지요. 슬럼프는 깊어지고 경기에 출전하는 횟수도 줄며 이승엽은 점차 타격감을 잃어 갑니다. 2010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방출된 이승엽은 오릭스 버팔로스로 팀을 옮겨 재기를 꿈꾸지만 꾸준히 출장할 기회를 얻지 못한 이승엽은 2011년 시즌에서도 전성기와 같은 활약을 펼치지 못하지요. 마음 편하게 야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절실했던 이승엽은 일본에서 최선을 다했던 8년의 시간을 정리하기로 결심하고 가족과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한국에 돌아온 이승엽은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고,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었어요. 수비가 타격감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지만, 자신보다 팀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지명 타자를 수락하고, 2012년 한국 시리즈 MVP에 선정되며 보란 듯이 부활을 합니다. 성공적인 복귀 시즌을 마친 다음해인 2013년 아쉬운 기록으로 시즌을 맞춘 이승엽은 스스로를 비디오 분석하며 다음 시즌에 대비하고 타격 자세를 바꾸는 노력과 함께 한 타석, 한 타석에 최선을 다하며 한국 프로 야구 최초 400 홈런, 한국 프로 야구 최다 타점 1390, 프로 야구 통산 2000 안타 기록, 한일 통산 600 홈런 등 꿈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결과를 만들어 내지요.

최고의 자리에서도 노력을 멈추지 않고 마흔이 넘는 지금의 나이에도 야구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며 2017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이승엽은 선수 생활 동안 보였던 그의 열정, 노력, 성실함, 겸손한 이미지로 수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을 받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뒷편의 어린이 생각 마당에서는 이승엽 선수에 대한 8개의 문제를 풀어보고, 내기 이승엽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그의 인생의 중요한 순간 선택에 함께 동참해보고, 좋은 투수, 타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생각해 적어보고,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꿈인 내가 프로 야구 구단주가 되어 야구단을 만들어 보는 독후활동을 해 봅니다.

아직도 진행중인 이승엽의 꿈과 희망의 결과인 대기록들을 지켜보며 아직도 그의 은퇴가 믿어지지 않네요. 최고의 위치에서 내려오는 그의 결단력과 아름답고 멋지게 마무리하고 있는 그의 마지막 여정을 보며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불멸의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뛰어난 실력과 기록에도 자만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며 자신의 실패에도 냉정하게 자신의 것만을 고집하지 않고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라운드 안에서 뿐만아니라 그의 일상생활에서도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그의 성실함에 박수를 쳐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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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법 교실 - 정의로운 법이란 어떤 것일까? 수상한 인문학 교실
이향안 지음, 최미란 그림 / 시공주니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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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만나볼 수상한 인문학 교실은 간디 이야기입니다. 변호사의 신분으로 영국의 인도에 대한 불공정한 법 시행에 비폭력 저항으로 맞섰던 간디와 함께정의로운 법이란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해요.

 

이 책에 등장하는 교실지기는 여신입니다. 무거운 저울과 칼을 양손에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정의의 여신상의 주인공이군요. 독단적인 성향으로 '동아리 회원 집단 탈퇴'라는 위기를 겪게 된 이강준이 마하트마 간디를 만나 정의로운 법이란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인문학 교실에 함께 동참해보도록 해요.

 

영화를 좋아하는 학교 친구들이 모여 만든 교내 동아리인 야야 시네마의 회장은 동아리를 만드는 데 가장 큰 노력을 한 강준입니다. 자부심과 포부가 남다른 강준이는 자신이 만든 동아리고 자신이 회장이라며 동아리 회칙을 혼자 만들어 회원들에게 발표합니다. 하지만 회의를 통하지 않고 혼자 결정한 회칙에 회원들은 모두 탈퇴 소동을 벌이지요. 휭하니 나가버리는 친구들을 뒤쫓던 강준이는 낯선 여자와 부딪칩니다. 정의를 가늠하는 저울의 균형이 무너졌다고 투덜대던 여자는 가지고 있던 저울 속의 소금이 쏟아져 저울의 균형이 무너졌다며 강준이에게 수상한 인문학 교실에 들어가서 간디 선생에게 수업을 받고 소금 한 줌을 만들어 오라고 다그치지요. 소금 한 줌을 받아 와야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간디 선생의 인상착의가 적힌 종이를 줍니다.

수상한 인문학 교실의 문이 열리며 소금처럼 하얀 빛이 쏟아져 나오더니 강준이는 빛 속으로 쑤욱 빨려 들어갑니다. 시끌벅적 요란한 소리에 눈을 뜬 강준이는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들끓는 봄베이 역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요. 간디 선생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미국 기자인 리처드 기자를 만나게 됩니다.

간디 선생의 연설을 들으며 악법 롤럿법에 대하여 알게 되고 동아리 친구들이 회칙을 반대한 이유에 얼굴이 빨개지지요. 사티아그라하 운동으로 롤럿법에 저항하는 간디 선생과 사람들의 평화 시위를 영국군은 칼과 몽둥이로 사람들을 내리치며 막습니다.

​리처드 기자의 도움으로 몸을 피한 강준이는 덮치려는 군인들과 간디를 보호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간디의 팔을 세차게 잡아끌며 사람들이 만들어 준 탈출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지요.

 

 

간디 선생님을 도와주었다는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강준은 소금을 얻기 위해 간디와 함께 간디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영국 정부에 대한 저항의 물결 이야기를 들은 강준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들이 이해가 됩니다. 잠이 들었던 강준은 간디의 소금을 찾기 위해 일어나 소금을 찾기 위해 간디의 방을 차근차근 뒤지기 시작합니다. 깨어난 간디와 제자 무하마는 영국군이 보낸 스파이로 오해하고 강준은 옷이 엉망이 되어 새 옷을 찾고 있었다는 핑계로 위기를 모면하지요. 대체 소금은 어디 있는 걸까요. 영국의 소금법 때문에 소금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직접 소금을 채취할 단디라는 마을로 소금 행진을 한다는 말을 들은 강준은 소금의 정체를 알게 되고 간디가 만들어 온 소금을 얻기 위해 함께 소금 행진을 떠납니다. 400킬로미터나 떨어진 바닷가까지 매일같이 걸어가는 고된 길, 하늘에선 뙤약볕이 지글지글 내리쬐고, 걸어가야 할 길은 바싹 말라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먼지투성입니다. 행진중 영국군의 폭력은 시작되고 군인들의 몽둥이에도 멈추지 않는 행진에 지친 영국군은 다음에는 그냥 두지 않겠다며 돌아갑니다.

날이 저물어 '이슬라리'라는 작은 마을에 쉬어 가게 된 강준은 모든 시간을 자기 나라 국민들을 위한 일에 애쓰는 간디의 모습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고, 인도를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을 이용하는 영국 정부에 대한 간디의 말을 듣고 영국 정부와 다를게 없는 자신의 모습에 얼굴이 빨개지지요. 돌아가면 다 같이 좋은 회칙을 만들자고 결심한 강준은 "가장 좋은 세상은 법이 없는 세상일지도 모르겠구나. 법이 없어도 될 만큼 모든 게 순리대로 잘 돌아가는 세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라는 간디의 이야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져요. 간디의 모습을 보는 강준의 마음은 뭉클해지고 나라의 운명을 두고 저렇게 열심인 간디와 사람들을 통해 소금을 찾겠다는 생각만 한 자신의 욕심에 반성합니다. 행진중 영국군의 방해를 걱정한 강준은 무하마에게 리처드 기자의 명함을 꺼내 보여주고 리처드 아저씨가 오면 카메라로 행진 장면을 촬영하고 그 내용은 기사가 되어 다른 나라로 전해져 영국군을 비난할거라고 알려줍니다.

 

다음 날, 행진은 시작됩니다. 행진을 함께 하기 위해 나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수가 배로 늘었어요. 날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행진에 참가하는 인원은 수천 명이 되었고 함께 움직이는 행진은 결코 쉽지 않아요. 걱정은 현실이 되었어요. 한낮 태양이 이글거릴 무렵, 무시무시한 고함 소리가 들립니다. 군인들의 수도 두 배로 늘어 몽둥이와 칼로 위협합니다. 이때 리처드 기자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요. 수많은 외신 기자들을 끌고 온 리처드 기자 아저씨는 인도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 세계로 알리기 위해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요. 영국군들은 속수무책으로 자신들 앞을 지나가는 행지의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어요. 드디어 단디의 바닷가 소금밭에 도착했어요. 간디가 천천히 허리를 굽혀 조심스럽게 소금 한 줌을 집어 올립니다. 강준이에게도 소금을 내밉니다. "이건 바로 희망이고 빛이다." 간디의 소금은 인도인들의 희망이자 빛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강준은 소금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하얀빛과 함께 사라집니다.

교실지기 여신에게 돌아온 강준은 간디의 소금을 전하고 여신의 저울은 정확히 수평을 이루어요. 교실지기 여신이 정의의 여신임을 알아차린 강준은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지요. 여신이 사라지자 인문학 교실 건물도 사라지고 사라진 자리에 친구들의 모습이 다시 나타나지요. 친구들에게 사과하는 강준은 이제 같이 평등하고 올바른 회칙을 정하자고 약속을 해요.

 

 

책 뒷편 교실지기의 특별수업에서는 법의 세계사, 책 속 인물, 책 속 사건, 생각이 자라는 인문학이 들어있어요.

법의 세계사에서는 법의 필요성, 함무라비 법전, 우리나라 최초의 법인 8조법, 로마법, 근대 헌법의 토대가 된 마그나 카르타, 미국 연방 헌법, 근대 시민법의 기초가 된 나폴레옹 법전, 성문법과 불문법의 차이, 법을 만드는 입법부 등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책 속 인물, 책 속 사건에서는 간디와 소금 행진 이야기를 통해 불평등한 법에 무너지는 인도인들의 삶과 이를 이겨내기 위한 소금 행진, 인도의 분열과 간디의 최후에 대하여 알아봐요. ​

생각이 자라는 인문학에서는 이 책을 읽고 주어진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답해보고, 간디의 비폭력 운동과 법 없는 세상, 정의로운 법은 무엇인지 자신의 의견을 적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합니다.

간디와 소금 행진을 하는 여행을 통해 법의 정의와 정의로운 법이란 무엇인지 아이와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강준이의 모습을 통해 우리 아이도 잘못 생각하고 있는 ​법에 대한 개념을 되짚어보는 시간이 되었구요. 어려운 인문학 이야기를 아이가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통해 어려운 글로 이해하지 않고 스스로 느끼고 깨닫게 하는 유익한 시간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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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당)Why(와이) 인문고전학습만화 25~28권 묶음(전4권):데카르트/이중환/박지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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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이자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이 사행단을 따라 청나라에 다녀온 일화를 담은 기행문을 통해 정체되어 있는 조선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청나라의 문물을 소개하며 개혁의 중요성을 주장한 열하일기를 Why? 인문고전 학습만화로 만나게 되어 너무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학창시절 북학파 실학자, 열하일기, 양반전, 호질, 허생전으로만 알고 있는 연암 박지원 선생에 대하여 그가 다녀온 여행길을 함께 따라가며 그가 받은 문화적 충격에 따른 현실적 정치의 모순점이 무엇이었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보고, 극복하지 못하고 괴로워했을 그의 마음을 공유해볼 수 있었네요. 청나라의 우수함만을 바라보고 조선의 미천함만을 탓하는 한계점도 있었겠지만 의리와 명분에 사로잡힌 당시 조선의 지배층에게 따끔한 충고의 한마디를 전해주는 계기가 되었다는데 박수를 치고 싶네요. 문체반정의 대상이기도 했던 열하일기에 대하여 사과문을 읽은 정조가 사과문까지 칭찬했다고 하니 그의 문학적으로 훌륭한 문체를 직접 접할수 있는 열하일기 원본을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최태훈 박사가 만든 열하일기 게임속으로 들어간 엄지와 꼼지는 게임속 악당인 김 대감의 방해를 이겨내며 박지원 선생과 함께 연경으로의 여행길에 오릅니다. 그와 함께 경험하는 열하일기 속 이야기를 들여다보기로 해요.

 

가난한 명문가에 태어난 박지원은 청렴했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예의 바르고 똑똑한 청년으로 성장합니다. 글짓기에 재능이 뛰어나 18세 무렵에 책을 쓰기 시작해 1767년까지 9편의 단편 소설을 지었으며 과거를 탐탁하지 않게 여겨 과거에 응시하지 않거나 응시하더라도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는 등 서른다섯 살 되던 해 과거를 완전히 포기하게 됩니다. 1780년 사행단의 책임자인 팔촌 형, 정사 박명원의 개인 수행원 자격으로 사행단에 참여하여 청나라로 향하게 된 그는 중국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한 <<열하일기>> 저술에 전념하여 완성하고, 1786년 과거를 보지 않고 집안의 공으로 관직을 얻는 제도인 음사로 관리가 되었으며 백탑 부근으로 이사하여 많은 인재들을 만나고, 많은 젊은 청년들을 가르치며 새로운 학풍인 북학파 실학을 이룩했어요.

 

게임 속에서 박지원과 청나라 사행단에 합류하게된 엄지와 꼼지는 지식 점수, 경영 점수, 도덕성 점수 등을 획득하며 얻은 아이템과 레벨업으로 긴 여행의 역경을 이겨나가게 되지요.

 

박지원이 속한 북학파는 청나라 문물을 받아들여 국가의 경제와 제도를 발전시키고 백성들을 잘살게 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로 박제가의 <<북학의>>에서 시작되었지만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비롯 홍대용, 이덕무 등이 남긴 방대한 저술들로 더욱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됩니다.

 

게임속 악당 조선의 최고 갑부이자 권력자 영의정 김 대감은 사행단을 이용하여 거사를 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어요. 압록강을 건너려는 엄지와 꼼지는 원나라 세조때 들여온 말을 무려 4-5백 년 동안 거의 개량하지 않아 조선의 말이 작고 걸음이 느린 말로 퇴화한 것은 목축을 천하게 여긴 조선의 선비들 탓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또한 상공업을 천히 여겨 유통을 전제로 한 공업활동이 성장할 수 없었고, 중국에서 수입되던 물건들이 워낙 훌륭해 양반, 귀족과 왕실은 굳이 질이 떨어지는 국산품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 목축뿐 아니라 상공업 역시 발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꼼지가 얻은 말의 속도 증가와 수영 기술 아이템으로 뺏길 뻔한 방물을 되찾은 박지원 일행은 봉금 지대를 거쳐 청나라 변방의 첫 번째 도시인 책문에 도착합니다. 그들은 거리가 곧아 길 양쪽 사이가 줄을 쳐 놓은 것 처럼 질서 정연하고, 담은 모두 벽돌로 쌓여있고, 길에는 사람이 타는 수레와 짐을 싣는 수레가 다니는 광경을 보며 충격에 빠집니다. 책문을 지나 청나라 안으로 들어온 일행은 먼지가 잘 들어가지도 않고 사람이 빠질 위험도 없도록 만들어진 청나라 우물, 물통 테두리를 쇠로 만들어 튼튼하게 하고, 벽돌로 담을 쌓아 튼튼하게 짓고 불에 안전하게 하고 도둑이 쉽게 들어올 수 없게 하고, 기와와 기와 사이에 석회를 발라 고정하여 틈새를 단단하게 하는 지혜를 보며 생활에 필요한 도구들을 사용해 백성들의 생활을 나아지게 하는 이용후생을 배우게 되지요.  

 

지식 TALK TALK에서는 조선 시대 사행단의 역사의 종류, 모습들을 공부할 수 있어요.

 

스피드 업 아이템을 이용해 황금 개구리 범인이 될 뻔한 위기에서 벗어난 박지원 일행은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운반하기도 가볍고 쌓아 올리기도 편하며 튼튼한 벽돌을 이용하여 성을 쌓는 편리함도 경험하게 되지요. 드디어 심양에 도착한 일행은 '기상새설'을 통해 같은 한자라도 중국에서는 다르게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하찮은 똥도 체계적으로 처리하여 농부들에게 황금 비료로 쓰게 하는 효율성도 경험하게 됩니다. 똥과 함께 청나라 최고의 물건인 기와 조각을 통해 쉽게 버리는 하찮은 물건도 담장 등을 꾸밀 때 쓰이거나, 마당에 깔아 비가 왔을 때 진흙탕이 되는 것을 막아 주는 실용성도 엿보게 되지요. 양쪽 바퀴의 폭을 통일해 모든 수레의 양쪽 바퀴 폭을 똑같이 만들어 수레들이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규격화된 수레길이 만들어진 것을 보며 지형탓을 하며 상공업을 하찮게 여긴 선비들의 진정하지 않은 공부를 지적합니다.

 

산해관을 통과한 박지원은 오래된 가게에서 벽에 걸린 글을 베껴 정리해 <호질>이라는 소설을 <<열하일기>>에 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후대의 역사 학자들은 박지원이 조선의 모순과 위선적인 유학자를 비판하기 위해 직접 쓴 것으로 보고 있어요. 북경에 도착한 사행단에게 황제를 만나기 위해 열하로 오라는 명령을 전합니다. 최악의 상황속에서 만리장성을 넘어 열하로 가는 관문에 도착하지요. 북방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중국의 춘추 시대부터 짓기 시작해, 명나라 때 거의 완성된 만리장성은 북방 경영에 열심이었던 당나라 때나 전 세계를 무대로 전쟁을 벌였던 몽골 제국, 뒤이은 원나라, 만리장성 너머까지 다스렸던 청나라 때는 그 중요성이 크게 떨어져 개보수 작업도 거의 진행되지 않았어요. 만리장성은 군사적 역할 이외에, 문화적으로 유목 문화와 농경 문화, 중원과 변방을 가르는 경계선의 역할도 했어요. 만리장성 앞에서 아이템으로 얻은 전투 갑옷의 팔로 김 대감의 사주를 받은 흑룡강파 두목을 물리친 일행은 한밤중에 아홉 번의 강을 건너며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마지막 공식 행사인 황제의 생일 잔치를 무사히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일행은 박지원 캐릭터로 최태훈 박사가 로그인한 것을 알게 되고 게임 속 조선이 소강국의 반열에 오르며 <<열하일기>>의 여정을 끝냅니다.

하지만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군요. 압록강 국경 부근으로  군인들이 청나라를 배신한 박지원, 꼼지, 엄지를 잡으러 왔어요. 또한 청나라 열하에 조선 사행단 중 첩자가 있었다고 김 대감은 허위 보고를 합니다. 감옥에 갇힌 일행은 마지막 아이템인 전투 갑옷을 착용하고 김 대감을 붙잡아 청나라 황제 앞에서 모든 것을 자백하게 하며 게임은 로그아웃 되요.

 

조선이 추구했던 성리학은 도덕적 인격과 학문을 중시하고 의리와 명분을 강조하는 이상적인 학문으로 학문과 현실 사이의 벽은 점차 높아졌고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 조선 후기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해 박지원은 백성들의 삶이 편리하고 풍요로워야 덕을 바르게 세울 수 있다고 생각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해학과 풍자를 통해 조선후기의 사회상을 드러내고 반성하고자 했던 박지원의 작품, 허생전, 양반전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책 뒷편에 반주원 쌤의 논술코칭을 통해 책 내용을 복습해보고, 독서 기록장 작성과 편지쓰기, 열하일기 신문을 통해 각자의 생각을 창의적이고 논리적으로 기술하는 서술형 시험 대비를 해볼 수 있어요.

어렵고 딱딱한 인문고전을 만화로 재미있게 읽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통해 그가 성리학의 한계점과 시대의 모순점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었고. 책상에서 책을 통해서 배우는게 아닌,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고민​을 통한 경험 안에서 진정한 삶의 해답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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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는 왜 다른 나라에 갔을까 배우자 역사 2
서해경 지음, 이선주 그림 / 풀빛미디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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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고 아름다운 예술품을 많은 사람들이 감상하고 감동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참 좋을거에요. 그게 그 민족의 혼과 희로애락이 깃들여진 문화재라면 더 그럴거에요. 하지만 그 문화재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닌 다른 나라 박물관에 존재한다면 문화재의 예술적 가치에 감동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문화재에 숨겨진 혼과 정신은 느낄수 없을 것이고 그 문화재의 진정한 감동은 없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최근 들어 더 활발해진 우리나라 문화재 환수 소식을 접하면서 외세의 침략이 많았던 우리 역사속 슬픔의 유산이기도 한 문화재 약탈이 우리나라의 문제로만 여겼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세계 여러 나라, 특히 대항해시대의 식민지,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나라의 아픈 상처이기도 한 문화재 약탈에 대하여 이 책을 통해 알게되면서 왜 그 문화재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지 무거운 숙제의 짐을 느끼게 되는군요. 아이와 함께 유명한 박물관의 멋진 작품을 감상하면서 예술적 아름다움에 감동만 했던 무지함에 반성하게 되면서 그속에 묻혀있는 침략과 약탈의 과거와 원래의 자리에 존재했을 때에만 느낄수 있는 진정한 문화재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문화재가 어떤 아픔의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해요.

 

현존하는 유일한 고대 7대 불가사의중 하나인 가자 피라미드와 함께 있는 스핑크스에는 투트모세 4세가 파라오게 된 사연이 숨겨져 있어요. 이집트인에겐 태양신이라 믿은 파라오의 얼굴을 본뜬 스핑크스에 파라오의 수염이 있는 모습은 당연하지만 이들의 신앙과 문화를 알지 못하거나 무시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스핑크스의 코와 수염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봅니다. 이집트를 침입한 터키 군대가 스핑크스의 얼굴을 향해 대포를 쏘는 연습을 해서 부서졌다고도 하고,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스핑크스를 우상이라고 생각해서 코를 없앴다고도 하며, 나폴레옹이 턱수염을 단 스핑크스의 모습이 건방져 보인다고 생각하여 대포를 쏘아 스핑크스의 수염을 떨어뜨렸다고도 합니다. 어처구니 없이 사라진 수염은 이집트도 프랑스도 아닌 영국에 있어요. 이집트를 지배했던 영국의 고고학 팀이 스핑크스 주변에서 프랑스군이 떨어뜨린 스핑크스의 수염 조각을 발견하고 이집트을 보호하는 수호신인 스핑크스의 수염을 가져감으로써, 이집트인들의 애국심과 자존심을 꺾기 위해 대영박물관에 전시한거에요.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스핑크스의 수염 조각은, 소개 글을 읽기 전에는 무엇인지 모를 만큼, 스핑크스의 수염으로 보이지 않는데 스핑크스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집트에 돌려주지 않고 있어요. 스핑크스의 수염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그리스 여배우 멜리나 메르쿠리는 1962년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영화를 찍는 도중 조국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강제로 떼어 내져서 남의 나라 박물관에 전시된 조각품들을 보고 충격에 빠집니다. 파르테논 신전을 장식했던 조각품들은 파르테논 신전과 함께 있어야 완벽한 의미가 있지만 돌려주지 않고 있어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 1호 파르테논 신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건축물을 지으려는 아테네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 기술과 높은 예술성이 합쳐진 건축물이며, 그곳의 조각품들은 그리스뿐 아니라 서양 문화의 최고봉이라 칭송받고 있어요. 하지만 터키 주재 영국 대사인 엘긴은 자신의 집을 그리스식으로 꾸미고 싶어 12년 동안 253점이나 되는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품을 파내어 훔쳐가고 파산후 영국 정부에 팔게 되어 대영박물관에 보관되게 되었어요. 그리스 신화를 조각으로 표현해 그리스의 민족의식을 상징한 소중한 문화재인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품을 되찾기 위해 그리스는 현재도 노력하고 있지만 영국은 반응이 없습니다. '엘긴의 조각품들'이라는 이름 대신 '파르테논 조각품들'이란 이름을 찾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어요.

 

샹폴리옹은 로제타석과 필레 오벨리스크를 연구하여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게 되었어요. 왜 이집트학이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을까요. 프랑스 나폴레옹은 이집트를 차지하여 영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로 가는 길을 막고, 프랑스가 영국보다 더 쉽게 동방무역을 차지하는 이유 외에도 고대 문명이 태어나고 발달했던 이집트의 수많은 문화재를 연구하고 싶어했어요. 1799년 7월 15일 이집트 로제타라는 곳에서 프랑스군이 땅속에 묻힌 로제타석을 발견하고 이 비석이 대단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라는 것을 알았어요. 프랑스군의 예상대로 샹폴리옹이 이 비석을 통해 고대 이집트 문자를 알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지요. 하지만 프랑스를 이집트에서 몰아내기 위해 이집트를 지배했던 터키와 영국, 오스트리아가 손을 잡고 프랑스군을 공격하고 영국군이 승리하며 이집트에서 찾은 고대 유물과 문화재를 요구하며 로제타석도 대영박물관에 보관됩니다. '로제타석을 통해 고대 이집트의 모든 역사와 문화재, 유물이 되살아날 수 있었다. 로제타석은 영국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상징이다.'라고 말하며 이집트인들은 로제타석을 돌려주길 원하고 있어요. 로제타석은 이것을 발견한 프랑스의 것도, 지금 이것을 가지고 있는 영국의 것도 아닙니다.

 

그동안 약탈당한 문화재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중국은 1996년 사법통일국제협회의 '도난 혹은 불법 수출 문물에 관한 공약'에 서명하면서 적극적으로 유출된 문화재를 찾고 있어요. 유출된 문화재를 돈을 주고 사서 되찾기 위해 '중화기금회'도 설립했지요. 중국 황제들이 여름과 가을에 더위를 피하기 위해 살았던 궁전이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기도 한 원명원에 십이지신 머리 청동상들이 있었어요. 원명원은 오랫동안 아시아는 물론 유럽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대륙을 지배하며 높은 문화를 이룩한 중국의 모든 솜씨가 집약된 곳이며 중국의 전통양식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곳이죠. 1857년 12월 제2차 아편전쟁을 일으킨 영국과 프랑스는 귀한 문화재와 값비싼 보물이 가득한 원명원과 자금성을 약탈했어요. 원명원을 불태우기 전 모든 것을 약탈하는 것을 허락받은 병사들은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나머지는 부수고 불을 질렀어요. 원명원에 불을 지른 병사조차 '인류는 이런 건물을 다시는 짓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할 만큼 원명원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사흘 동안 불에 타 잿더미로 변했어요. 원명원의 십이지신 분수상 중 용, 뱀, 양, 닭, 개 머리 청동상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어요. 치욕스런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불에 타 폐허가 된 원명원을 그대로 두고 있는 중국인들이 역사를 기억하는 한, 중국의 유출 문화재는 하나둘 중국으로 되돌아 갈거라 생각됩니다.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에 있었던 '가나의 혼인 잔치'는 베로네세에 의해 기존의 엄숙하고 성스러운 분위기의 그림이 아닌 베네치아에서 벌어지는 결혼 잔치인 듯 활기차게 표현되었고, '가나의 혼인 잔치'를 보고 성당을 찾을 정도로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자랑거리가 되었어요. 이를 욕심낸 나폴레옹은 1797년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을 들이닥쳐 워낙 크고 무거워 운반하기 힘든 '가나의 혼인 잔치'를 반으로 잘라 프랑스로 가져갔고 프랑스인들은 다른 나라에서 약탈한 문화재임에도 자랑스러워했어요. 1815년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군에 지자, 그동안 나폴레옹에게 침략당하고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당했던 여러 나라는 루브르 박물관으로 달려가 자신들의 문화재를 되찾아갔지만 베네치아는 돌려받지 못했어요. 지금은 초정밀 컴퓨터로 복제한 복제품이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에 있고 진짜 '가나의 혼인 잔치'는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니 참 아이러니하네요.

 

영국 영사 필립스의 욕심에 의해 멸망하게 된 베닌 왕국의 역사가 담긴 모든 문화재는 하루아침에 영국으로 실려 갔어요. 피부가 짙은 아프리카 사람을 자신보다 미개하고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한 그들은 아프리카 베닌의 문화재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어요. 베닌의 역사가 담긴 모든 문화재가 한낱 괴상한 물건 취급을 받으며 팔려나갔어요. 특히 청동조각품들은 바로 '베닌 브론즈'라 불리는 아프리카 최고의 문화재이자 예술품이죠. 문자가 없던 베닌은 나라에서 있었던 중요한 사건을 청동으로 새겨 베닌 브론즈로 역사를 기록했어요. 수백 년 동안 제작된 수천 점의 베닌 브론즈는 수백 년 동안의 베닌의 역사이며 그 시간 동안 베닌의 예술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재이기도 합니다. 단지 훌륭한 예술품이 아니라 나라의 역사 기록이고, 성스러운 존재로 추앙받던 오바를 위한 종교 성물인거죠. 이런 문화재가 한 개인의 욕심과 거짓말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뻔 했다는 이야기에 만감이 교차하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이제는 가장 비싼 조각품이 되어버린 베닌 브론즈를 환수하려는 운동이 나이지리아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엄청난 돈을 주고 사는 방법밖에 없다니 답답할뿐입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1세가 왕비를 위해 호박방을 만들었으나 완성되기전 죽음을 맞이하여 아들 빌헬름 1세가 러시아의 표토르 황제에게 선물한 호박방은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인 에르미타쥬궁에 꾸며졌어요. 1941년 독일이 러시아를 침략했을때 독일군 특수부대는 호박방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었고 로데 관장의 지휘로 호박방의 타일은 분해되어 독일로 실려나갑니다. 그후 러시아는 호박방을 추적하는 특별팀을 만들어 조사했지만 러시아군이 쾨니히스베르크를 점령하고 성을 불태웠을 때, 호박방도 함께 불에 타 없어졌다는 결론을 내리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 예카테리나 궁전에 복원했어요. 하지만 지금도 보물 사냥꾼들은 호박방을 찾아 세계를 뒤지고 있다는군요. 어딘가에 호박방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요.

 

세계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은 문서로 기록된 최초의 법이며 282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다른 중요한 문화재들처럼, 함무라비 법전도 다른 나라에서 탐냈어요. 바빌로니아를 침범한 엘람 왕국이 약탈했고, 땅속에 묻힌후 이란의 유물을 마음대로 발굴할 수 있는 권리를 산 프랑스가 발굴하여 루브르박물관에 보냈어요. 고대 바빌로니아의 역사와 민족정신이 담긴 소중한 문화재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라인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복제품이 이란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현실이 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둔황의 막고굴을 관리하던 왕원록이 우연히 16호 굴 속에 숨겨져 있던 17호 굴, 불교 도서관인 장경굴을 발견했지만 4세기에서 11세기까지의 세계를 놀라게 할 엄청난 문화재가 있음에도 1900년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러시아, 일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8개 나라와 전쟁을 해야 했던 중국은 장경굴과 둔황문서의 발견에 기뻐할 수가 없었어요. 오히려 그 발견으로 중국을 욕심냈던 다른 나라들에게 수백 년간 안전하게 숨어있던 장경굴의 문화재들까지 빼앗기게 되었지요. 둔황 막고굴은 오랜 역사와 수준 높은 문화, 거대한 땅을 가진 중국에서 첫 번째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선정될 만큼 문화적인 가치가 높은 곳이며 문화재 역시 양도 엄청나고 가치도 매우 높지만, 그 문화재는  10여 개의 나라에 흩어져 있어서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연구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여러 나라가 힘을 모아 '국제 둔황프로젝트'를 만들었다고 하니 지금이라도 각 나라에 있는 둔황의 문화재가 잘 연구 보존되었으면 좋겠어요.

고대 그리스의 이야기에만 존재했던 신화 속 나라 트로이는 독일인 하인리히 슐리만이란 고고학자에 의해 실제로 존재한 나라로 알려지게 되었어요. 하지만 3300년 동안의 유적지가 9층이나 묻혀 있었음에도 트로이 유적지에만 관심이 있었기에, 그가 발견한 다른 시대의 유적지는 보호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슐리만이 트로이전쟁 당시의 유적지라고 생각한 유적지는 트로이전쟁때의 트로이가 아니었던 거에요. 개인의 욕심때문에 다른 유적지와 트로이 전쟁 당시의 진짜 트로이 유적지는 훼손되었어요. 더구나 터키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터키 정부 몰래 독일로 가져간 슐리만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안 터키에 고소당하지만 유물 일부만 돌려주고 정말 귀중한 유물은 돌려주지 않았어요. 독일이 박물관에 기증한 트로이의 유물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사라지고 1996년 모스크바 푸시킨주립미술관에서 '트로이의 보물-하인리히 슐리만의 발굴품'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가 열리며 트로이의 유물을 러시아가 가져갔다는 소문이 사실로 들어나지요. 전쟁 중에 러시아가 독일에서 문화재를 약탈한 것이니 돌려달라는 독일, 독일이 약탈하고 파괴한 러시아 문화재에 대한 보상으로, 러시아가 독일의 문화재를 가지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러시아, 트로이의 유적지가 있었던 터키와 히사를리크 언덕의 주인이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트로이가 만들고 남긴 문화재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게 정답일지...

문화재 환수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즈음 문화재 환수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게 되었어요. 왜 문화재는 원래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반환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는 약탈국의 이기심에도 화가 나는건 당연한 인지상정일 거에요.​ 이 책을 읽으며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깨닫게 되었고 우리 문화재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어요. 잃어버리고 빼앗겨버린 문화재 환수도 중요하지만 우리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후손에게 훼손되지 않게 잘 물려주는 것도 중요함을 알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또한 우리 문화재가 중요하듯 다른 나라의 문화재의 중요성도 간과하면 안된다는 역지사지의 마음도 가져봅니다. 전 세계 제자리에 있지 않은 문화재가 제자리에 돌아가 진정한 문화재의 가치와 의미를 갖기를 다시 한번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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