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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의 생각실험실 : 해시계와 물시계 ㅣ 생각실험실 시리즈 2
송은영 지음, 오승만 그림 / 해나무 / 2017년 9월
평점 :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멋진 합작품으로 해시계, 물시계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고, 어떤 고민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거에요. 위대한 과학자, 발명가들의 발견이나 발명은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많은 생각과 고민, 생각실험과 반복적인 실험에 의한 시행착오를 통해 이루어졌어요. 이 책을 통해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대왕의 관찰과 고민을 통해 시작된 아이디어로부터 장영실의 생각실험을 통해 이루어진 해시계, 물시계의 완성 과정을 아이와 함께 들여다보고 실험에 들어가기에 앞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먼저 상상해보는 생각실험의 과정을 배우고 익혀보도록 해요.

너무나 단순한 시계인 지평일구를 바라보며 세종대왕은 생각합니다. 햇살이 지평일구의 가운데에 꽂혀 있는 막대기에 닿자 해가 뜬 방향과 반대의 그림자가 생기고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지만 그림자는 반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살펴보고 그림자 끝에 시각을 적으면 시간을 알 수 있다는 해시계의 기본 원리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데 중요한 절기는 알 수 없으므로 시각과 절기가 함께 들어간 해시계를 만들어보라고 장영실에게 명을 내립니다.
해시계의 원리를 궁리하며 장영실은 일단 해와 그림자 사이의 관계부터 확인해봅니다. 해가 떠오르는 묘시 때의 상황, 즉 해가 뜬 위치와 그림자의 방향과 길이을 종이에 그려 보며 지평일구의 그림자를 따라가 봅니다. 해가 높이 떠오를수록 그림자의 길이는 줄어듭니다. 묘시부터 해가 가장 높이 오르는 오시까지 해의 위치와 그림자의 방향과 길이에 대해 살펴본 후 오시 이후인 미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의 오후를 살펴봅니다. 장영실이 생각한대로 오시를 기준으로 사시와 미시, 진시와 신시, 묘시와 해가 지는 유시는 엇비슷한 길이로 서로 반대쪽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대칭에 가깝다는 것을 확인하지요. 유시 이후의 시각인 술시와 해시, 자시와 축시와 인시는 해가 사라진 시간이므로 해시계가 무용지물이라 해시계에 표시하지 않았어요.
시각을 해결하였지만 세종이 지시한 절기를 함께 알 수 있는 해시계를 만들어야하니 다시 한번 생각실험을 해 봅니다. 장영실은 24절기 중에서 낮이 가장 긴 절기인 하지를 먼저 떠올립니다. 해가 가장 높이 뜨니 그림자가 가장 짧다는 것은 이미 시각을 알 수 있는 해시계에서 알고 있어요. 장영실은 일출 시간인 묘시와 일몰 시간인 유시를 종이에 표시하고 막대기의 그림자가 하지때 그 시간 동안에 움직인 자취를 그려봅니다. 또 24절기 중에서 낮이 가장 짧은 절기인 동지는 해가 가장 낮게 뜨니 그림자가 가장 길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니 마찬가지로 묘시에서 유시까지 막대기의 그림자가 움직인 자취를 종이에 표시해요. 절기엔 하지와 동지 외에 22개의 절기가 더 있으니 22개 절기 때의 그림자도 알아봐요. 하지에서 동지로 갈수록 그림자가 점점 길어진다는 생각을 직접 확인해보니 예측이 틀리지 않아요. 이제는 동지에서 하지까지를 해시계에 담아보아요. 해가 저문 술시에서 해가 뜨지 않은 인시까지는 해시계에 표시하지 않았지만 절기는 상황이 다르지요. 절기의 개수도 같고 떨어진 간격도 비슷하므로 대칭을 이용해봅니다. 유시쪽에 소한에서 망종까지를 적어 넣고 좌우대칭인 해시계 속의 절기가 실제와 어울리는지 각각의 절기에 확인해 보니 역시 예측이 틀리지 않았어요. 묘시에서 유시까지 막대기의 그림자가 지나간 길, 즉 그림자의 자취는 24절기를 나타내는 절기 선이 되었어요. 드디어 장영실은 해시계에 24절기를 담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마지막으로 해시계의 모양을 고민합니다. 시각뿐만 아니라 절기까지 표시하려면 지평일구와는 다른 모양이 필요할듯해요. 평평한 해시계에 그려 넣은 절기 선 가운데에 하지의 절기 선이 가장 짧은데 실제로는 그림자가 지난간 길인 절기 선이 가장 길게 그려야 하는 하지를 표시하는게 맞지 않아요. 이 문제는 해시계를 반구형으로 제작하여 해결하게 됩니다.
장영실이 만든 해시계 앙부일구는 시반, 영침, 받침대로 이루어져 있어요., 시반에는 절기 선인 가로줄과 시각 선인 세로 줄이 있지요. 절기 선은 13개, 시각 선은 7개입니다. 시각 선은 4등분되어 있어 1시간을 4등분한 셈이니 각 눈금은 15분의 간격을 나타냅니다. 세종대왕 시대 때 만든 앙부일구엔 글자를 모르는 백성을 위해 시간에 해당하는 동물이 그려져 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후 사라져서 어떤 모습일지 알 수가 없어서 아쉽기만 합니다.

왕궁 뜰을 거닐던 세종대왕은 해시계의 단점인 해가 보이지 않으면 시각을 알 수 없다는 생각에 물로 시간을 재는 방법을 생각합니다. 항아리에 눈금을 그어서 시각을 표시하고 항아리에 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고 물이 차오른 높이로 시간을 안다는 물시계의 원리를 생각하지요. 하지만 서운관의 관리가 밤낮으로 쉬지 않고 물시계를 지키며 때가 되면 시각을 알려 주는 일이 서운관의 실수가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있지요. 세종대왕은 장영실을 불러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 주는 물시계를 만들어보라고 명합니다.
장영실은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 주는 물시계를 만들기 위해 먼저 물이 끊기지 않고 계속 떨어질수 있도록 3단 선반에 큰파수호, 작은파수호, 수수호를 만들어 올려놓습니다. 큰파수호에서 작은 파수호로, 작은 파수호에서 수수호로 물이 떨어지게 하는 물시계의 주요 장치를 갖추었어요. 물이 누르는 힘에 따라 작은파수호에서 수수호로 물이 떨어지는 속도가 달라질 수가 있어요. 시간은 늘 일정해야 하므로 수수호로 들어가는 물의 빠르기는 작은파수호에 담긴 물의 양과 관계가 있으므로 물의 빠르기가 변하지 않도록 작은파수호에 담긴 물의 높이를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게 하자고 결정하지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작은파수호의 물 높이를 중간보다 높게 유지했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어요. 물의 빠르기가 느린 것보다는 빠른 것이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데 이롭기 때문이죠. 서운관 관리가 큰파수호에 물을 붓고 큰파수호에 물이 적당히 차면 작은수수호와 연결된 구멍을 열어 물이 작은파수호로 툭 툭 툭 떨어지게 합니다. 큰파수호와 작은파수호를 이어주는 관의 길이는 짧게 하는 것이 좋을지 길게 하는 것이 좋을지, 관의 두께는 두껍게 하는 것이 좋을지 얇게 하는 것이 좋을지, 관은 비스듬하게 뉘여서 연결하는 것이 좋을지 수직으로 곧추 세워서 연결하는 것이 좋을지 등 수없이 많은 실험을 했을거에요. 그리고 큰파수호와 작은파수호를 무엇으로 제작하는 것이 좋을지도 고민했을 거구요. 하지만 큰파수호는 청동을 사용해서 만들었고, 작은파수호는 도자기처럼 흙으로 빚고 구워서 만들었다는 것 외에는 어떤 실험 내용도 전해지지 않고 있어요. 물이 작은파수호의 적정 높이까지 차오르자 서운관 관리가 수수호와 연결된 구멍을 열어 수수호 바닥으로 물이 툭 툭 툭 떨어지고 물이 수수호에 차츰차츰 차오르고 십이지 시각의 첫째 시각인 자시에 이르고 물 높이가 점점 높아져 축시, 인시, 마지막 눈금인 해시까지 올라갑니다. 수수호의 물이 자시에서부터 해시까지의 시간을 정확히 가리키는데 성공입니다.
이제 다음 날의 시간을 재는 고민을 해봐요. 해시까지 차오른 상태에서 자시부터 시간을 재려면, 수수호에 담긴 물을 전부 빼내야 합니다. 물을 빼내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수수호에 담긴 물을 빼내는 동안에 시간을 어떻게 재야 하는지 문제가 있네요. 답은 의외로 간단하군요. 큰파수호와 작은파수호와 수수호와 모양과 크기가 똑같은 새로운 큰파수호와 작은파수호와 수수호를 만드는거에요. 새로운 수수호에 가득 찬 물을 빼내는 동안에는 먼저 만든 큰파수호와 작은파수호와 수수호로 시간을 재면 되는거에요.
1년 365일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시간을 알려 줄 수 있는 물시계가 완성되었어요. 이제 자동 물시계를 고민해봐야겠어요. 장영실은 시간을 알려줄 방법으로 나무 인형을 이용합니다. 자동 시보 장치 안에 설치한 나무 인형이 툭 튀어나와서 종과 징과 북을 치도록 하는거지요. 나무 인형이 종과 징과 북을 치려면 동력이 필요한데 구슬이 떨어지고 구르는 힘을 이용합니다.
이제 구슬을 설치할 방법을 고민합니다. 자시에서 해시까지 십이지 시각을 표시한 나무 기둥을 만들어 나무 기둥에 구슬을 올려 놓아요. 이런 나무 기둥을 방목이라 하는데 방목의 십이지 시각을 표시한 자리마다 구슬을 올려 놓을 수 있는 받침대를 만들어 스치듯 살짝만 건드려도 구슬이 쉬이 굴러 떨어지게 하는거지요. 장영실은 구슬 받침대를 청동으로 제작해서 그 위에 구슬을 올려 놓았어요. 구슬의 재질은 구리였고 크기는 총알만 했어요.
이제 방목을 어디에 놓을지 고민해봅니다. 방목을 수수호 안에 집어넣는 방법이 어려우니 수수호 옆이나 위에 올리는 방법이 있어요. 옆에 놓으면 방목과 수수호가 따로따로가 되어버리니 수수호 위에 올리는 것뿐입니다. 방목과 수수호를 지지대로 연결까지 했으니 이제 구리 구슬을 떨어뜨리는 문제를 해결해야해요.
장영실은 수수호에 부전을 넣었어요. 부전의 바닥이 수수호의 바닥에 닿았고 부전의 가로쇠는 방목의 바닥에 닿았어요. 수수호에 물이 차기 시작하자, 부전이 떠오르고 수수호의 물이 자시에 이르자 부전의 바닥이 그 높이에 닿고 부전의 가로쇠는 방목의 자시에 닿아요. 가로쇠가 청동 받침대를 밀어 올리면 기울면서 구리 구슬이 떨어져 경사면을 구르며 나무 인형에게 다가갑니다. 구슬의 힘이 나무 인형에 전달되지요. 굴러 내려온 구리 구슬이 자그마한 숟가락 모양의 지레를 누르고 지레가 눌리자 지레에 줄로 연결된 나무 인형의 팔이 움직이며 종과 징을 치고 북을 울리지요. 하지만 소리가 너무 적어요. 약한 힘 때문입니다. 장영실은 계란 크기의 큰 구슬을 하나 새롭게 추가합니다. 방목에 놓인 구리 구슬과 새로 추가한 구슬이 충돌 후 총알만 한 구리 구슬은 멈추고, 계란만 한 구리 구슬은 움직여 지레에 떨어지면 강해진 힘이 지레를 내리누르고 강해진 나무 인형의 팔의 힘이 종과 징을 치고 북을 두드리며 북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지요. 자동 물시계도 성공입니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자격루이건만 전해지지 않아서 안타깝지만 남문현 선생님과 연구팀이 이를 복원하는데 성공했어요. 덕수궁 자격루에는 장영실의 물시계와 달리 큰 파수호가 1개뿐입니다. 이는 덕수궁의 물시계가 장영실이 만든 게 아니라 조선의 제 11대 왕인 중종 임금 때에 제작한 물시계이기 때문이며, 과거 1만 원권 앞면에 있던 물시계 인쇄가 새로이 찍은 1만 원권에는 사라진 것 역시 장영실이 발명한 물시계가 아니라, 덕수궁의 물시계를 그려 넣었기 때문이에요.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합작품으로만 알고 있던 해시계, 물시계의 발명 과정을 살펴보며 그 원리를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장영실의 생각실험 과정을 함께 공유해볼 수 있었어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그 과정과 결론을 생각실험으로 예측해보고 실제 실험으로 확인하는 과정은 논리적 사고를 키우고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때 주저하지 않고 맞서는데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그의 천재적인 아이디어와 생각실험을 함께 하는 멋진 시간을 통해 머리로 많은 것을 생각해보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