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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 표류기 - 유럽에 조선을 알린 최초의 기록 ㅣ 파란클래식 24
헨드릭 하멜 지음, 오동 그림, 김경화 옮김 / 파란자전거 / 2017년 9월
평점 :

학창시절 역사 수업시간 스쳐지나가듯 들어만 보았던 하멜의 이야기를 직접 읽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에 너무 기뻤어요. 역사적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고 한다면 처음 하멜의 일기가 유럽에서 출판되었을때 과장과 허구가 섞여 들어갔던 내용처럼 하멜이 바라본 조선은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 대인국처럼 두렵기도 하고 낯설고 힘든 나라였을것이고, 하멜은 그들을 바라보며 언제든 탈출하고 싶어했던 걸리버의 마음이 투영되어 멋진 모험 소설이 되었을거에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하멜을 통해 유럽에 알려진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모습, 그 당시 조선 및 조선을 둘러싼 주변 정황을 살펴보면서 하멜 표류기가 가진 역사적 가치와 그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반성해야 할 우리의 과거 모습을 배울 수 있었어요. 이 책과 함께 이방인의 눈을 통해 바라본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생각을 함께 공유하면서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보도록 해요.

하멜 표류기의 내용만 살펴본다면 그 당시 하멜이 조선에서 겪었던 힘든 여정을 이해하기 힘들수도 있고 이방인을 대하는 조선의 폐쇄적 사고가 비난받기에 충분할거에요. 하지만 제 1 부 <<하멜 표류기>>를 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다섯 가지 내용을 살펴보면서 객관적 관점으로 그의 여행기를 들여다 볼 수 있었어요.

17세기 조선은 임진왜란의 상처가 가시기도 전에 정묘호란, 병자호란 같은 큰 전쟁을 치루며 황폐해져 있었어요. 임진왜란 때 선조를 대신해 나라를 이끌었던 광해군은 왕위에 오른 뒤 중립적인 외교 전술을 펼쳤고 힘이 약해진 명나라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후금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명나라를 섬기는 세력은 이에 반대하고 인조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었어요. 광해군의 중립 외교를 버리고 후금을 배척한 인조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시련을 맞이하게 되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청나라에 볼모로 보내지지요. 소현세자는 조선도 청나라처럼 다른 나라의 발달된 문물을 받아들여야 강해질 수 있다고 믿었고 서구에서 온 선교사나 학자도 자주 만나 생각을 나누었지만 청나라의 신뢰를 얻은 소현세자를 못마땅하게 여긴 인조에 의해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봉림대군이 17대 왕 효종으로 등극합니다. 북벌을 꿈꾸었던 효종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북벌 계획을 반기지 않았고 북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효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왕위에 오른 현종은 외세의 침략은 없었지만 잇단 자연재해와 정권을 잡으려는 세력들의 대립으로 힘을 잃어 북벌은 커녕 나라 밖 세상에 눈을 돌릴 여유도 없었어요. 효종때 제주로 표류해 온 하멜 일행은 13년 뒤 현종 때 조선이 이렇게 불안한 와중에 탈출해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조선 조정은 일본의 항의를 받기 전까지 이들의 탈출을 몰랐어요. 하멜 일행이 조선에 표류해 왔을 때도, 조선을 탈출했을 때도 조선 조정은 이들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거에요.

조선이 전쟁으로 고통받을 무렵 스페인,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의 강대국은 더 큰 시장을 찾아 아시아를 누볐어요. 처음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가장 앞서 나갔지만 17세기 네덜란드는 경쟁국을 물리치고 아시아 무역을 독차지해 막대한 이득을 취했지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세계 최대의 무역 회사이자 선박 회사로 아시아 시장을 누비며 향신료, 차, 도자기, 면직물과 실크 등을 사들여 유럽에 수출하고 유럽의 진귀한 물건을 아시아에 가져와 팔았으며 물건뿐만 아니라 문화, 기술, 학문 등도 전했어요. 서구와 꾸준히 교류한 중국, 나가사키 데지마 인공 섬을 통해 서구와 무역을 한 일본과 달리 나라의 문을 굳게 닫고 있었던 조선은 서구의 앞선 학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빠르게 근대화 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어요. <<하멜 표류기>>가 소개되기 전 조선에 대하여 알지 못했던 유럽인들은 조선이 섬나라이고 금과 은이 가득하다고 믿었지요. 일본과 교역을 하면서 조선에 관심을 갖게 된 네덜란드는 조선이 일본하고만 교역을 하고 있으며 이 교역으로 엄청난 이득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일본을 거치지 않고 조선과 직거래를 한다면 일본의 이득을 고스란히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조선에 원정대를 보내기도 했지만 날씨 탓에 항해가 힘들고 뜻하지 않게 조선군의 공격을 받기도 하며 조선 땅에 닿지 못했어요. 네덜란드 상선인 켈파르트호가 항해 중에 제주도를 발견하고 동인도 회사에 보고하여 제주도를 켈파르트라 불렀고 하멜 일행은 자신들의 표착지가 켈파르트, 즉 제주도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1630년 네덜란드 호르큼에서 태어난 하멜은 1653년 스페르베르호에 탔을 때 항해 일지를 쓰고 장부를 정리하고, 배에서 쓰이는 돈을 관리하는 직위를 맡고 있었어요. 1653년 6월 18일 바타비아를 떠나 대만을 거쳐 7월 30일 일본 나가사키를 향해 출발하였지만 보름 뒤 폭풍을 만나 난파되었고 64명의 선원 중 36명만 간신히 살아남았어요. 그들이 닿은 곳은 바로 제주도였고 뜻하지 않게 13여 년이라는 긴 세월을 조선에서 보내게 됩니다. 조선에서 어떤 지방관을 만나는가에 따라 그들의 생활은 달라졌고 1627년 항해 도중 폭풍을 만나 물을 찾기 위해 조선 땅에 내렸다가 동료 두 명과 함께 사로잡혀 여생을 조선인으로 보낸 파란 눈의 조선인 벨테브레, 박연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기록을 더 이상 남기지 않고 일본에서 조사를 받을 때도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이미 조선인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는 벨테브레와 고향 네덜란드에 남아 있는 그의 가족에 대한 배려가 아닐지요. 아쉬운것은 바깥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조선 사람들은 하멜 일행을 그저 눈요깃거리로만 대하고 그들의 전문 지식과 앞선 기술은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는 거에요. 조선 조정이 나서서 그들에 대해 좀 더 철저히 알아보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게 됩니다.
일본으로 가기를 원한 하멜 일행을 효종은 왜 돌려보내지 않았을까요? 그건 바로 하멜 일행이 조선에 표류해 왔던 때는 효종이 북벌 계획을 추진하던 시기로 자신의 계획이 탄로 날까 봐 이들의 존재를 철저히 숨겼기 때문이고, 그들을 일본으로 보내면 그들이 처형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자신이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던 때를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신하들의 반대에도 일행의 목숨을 살려 주고 식량과 옷감 등을 기꺼이 내주었던 효종의 마음에 아쉽지만 이해가 되기도 하네요.

청나라 사신이 오가는 길에 몰래 숨어 있다가 청나라에 도움을 청해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시도가 실패하며 전라도로 쫓겨난 하멜 일행은 노동과 구걸로 힘든 생활을 하게 됩니다. 외국인이라 더 살기가 힘든 것이 아니라 당시 조선은 극심한 기근으로 많은 백성이 굶주려 목숨을 잃었고 전에 없던 추위로 고통을 받았어요. 구걸을 하기도 하고 배를 타고 다니며 장사를 하면서 섬을 돌며 목화를 판다는 구실로 작은 배를 한 척 구입하고는 조선의 해안 지형을 익히며 탈출을 준비합니다. 1666년 하멜을 비롯한 여덟 명이 조선을 탈출하는데 성공하고 스페르베르호가 사라진 지 13여 년 만에 모습을 나타낸 선원들을 보고 네덜란드 상관 관리들은 깜짝 놀라게 되지요. 나가사키 관리의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일본이 하멜 일행으로부터 짧은 시간 안에 조선의 군사, 교통, 지리, 산업, 문화 전반에 걸쳐 상세한 정보를 얻어 낸 사실로부터 하멜 일행을 대하던 조선과 달리 일본 정부가 조선에 대해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얼마나 적절한 질문을 했는지 알 수 있어 무척 아쉬울 따름입니다.
나가사키로 간 하멜 일행이 인도네시아 바타비아로 가기까지 1년이나 더 걸립니다. 1667년 하멜 일행은 마침내 일본의 허락을 받아 나가사키를 떠나고 약 한 달 뒤에 바타비아에 도착하지요. 그동안 밀린 월급을 지급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나가사키에 도착한 날부터 월급을 계산해 겨우 1년 치 정도만 받게 되자 몹시 억울해합니다. 그러자 하멜은 스페르베르호의 난파 경위와 조선에서의 생활과 탈출, 그리고 13년간 머물렀던 조선에 관해 보고서를 쓰기 시작하지요. 밀린 월급을 받기 위해 동인도회사에 제출하려는 목적으로 작성한 이 보고서가 바로 <<하멜 표류기>>입니다. 1670년 네덜란드로 함께 돌아간 하멜 일행은 이 보고서 덕분에 15년 동안 밀린 월급을 모두 받게 되지요.

유럽에 소개된 최초의 조선 보고서인 하멜의 보고서는 항해와 모험 이야기가 큰 인기를 얻고 있던 당시 서구 사회에 지금까지 나온 어떤 탐험 이야기보다 흥미로웠어요. 하멜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인 1668년에 출간된 <<하멜 표류기>>는 1668년과 1669년 사이에 다양한 수정판, 개정판 등으로 출간되었어요. 출판업자들은 원래 하멜의 보고서를 그대로 살리지 않고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부분만 돋보이게 하거나 순서를 바꾸기도 하고, 터무니없는 내용을 덧붙이고 과장된 삽화를 넣기도 했어요. 1920년 네덜란드 학자인 후틴크는 <<하멜 표류기>>의 정본을 찾아 세상에 알렸어요. 네덜란드 식민지 관련 문서를 조사하던 중 <하멜 일지>와 <조선에 관한 기술> 필사본을 발견하고 그동안 출판되었던 여러 종류의 <<하멜 표류기>>와 비교해 본 결과 정본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런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헤이그에서 <하멜 일지>와 <조선에 관한 기술> 정본을 출간했고 덕분에 하멜의 생생한 기록이 그대로 전해지게 되었어요.
<<하멜 표류기>>가 인기를 끌면서 네덜란드에서는 조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일본을 통하지 않고 조선과 직접 교류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지만 네덜란드 본토의 열기와 달리 바타비아 총독부와 일본 나가사키 상관 측은 조선이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에 조선과의 교역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또 조선인은 다른 나라 사람을 반기지 않기 때문에 네덜란드 사람이 제 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리라 여기고, 일본이 네덜란드와 조선의 교역을 허락하지 않으리라 예상하였어요. 조선 시장을 얻으려다 일본 시장을 잃게 될까 걱정한 네덜란드는 결국 조선과의 교역을 포기하고 코레아호는 조선에 영영 닿지 못하게 되었어요.
<<하멜 표류기>>는 서양인이 조선에 살면서 경험한 일을 정리한 최초의 기록입니다. 처음으로 유럽에 조선을 알렸고 유럽인은 하멜 일행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 조선이라는 나라를 알게 되었어요. 하멜이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도 있고, 출판이나 번역 과정에서 틀리거나 과장된 내용이 들어가기도 했지만 금과 은이 가득한 섬나라로 여겼던 조선의 실정을 서구에 낱낱이 알려 준 첫번째 책이었어요. 당시 유행했던 모험 소설이 아니라 공문서였기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일부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록했고 외국인이었기에 때론 날카롭게 조선을 비판하기도 했어요. <<하멜 표류기>>는 조선에 관한 전문서적이라 17세기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조선을 여행하려고 하거나 교역이나 교류를 원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했고, 이 책을 통해 당시 조선 사회를 알 수 있고, 오래전 조선의 말과 지명, 풍습에 대해서도 알 수 있으며, 서구인이 우리 민족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 살펴볼 수 있고, 당시 아쉬웠던 부분을 되짚어 보며 현재 우리의 모습도 생각해 볼 수 있으므로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는 역사적 자료라는 의의가 있어요.

<<하멜 표류기>>를 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다섯 가지를 살펴보았으니 이제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선은 어떻게 그려졌는지 <<하멜 표류기>> 정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해요. <하멜 일지>와 <조선에 대한 기술>로 나누어져 있군요.

<하멜 일지>는 1653년 난파하여 제주도에 닿았을 때부터 탈출시도와 서울 생활을 그린 1654년부터 1655년까지 이야기, 전라도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낸 1656년부터 1664년까지 이야기, 탈출하여 나가사키에 도착한 1665년부터 1666년까지 이야기가 일기로 잘 기록되어 있어요. 항해 일지를 쓰던 하멜의 직위때문인지 일기속에 난파 경위, 조선에서의 생활과 실상, 조선인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잘 기록되어 있네요. 뒷 부분에 기록된 나가사키 총독의 질문과 하멜 일행의 대답을 읽으면서 하멜 일행을 단지 광대로만 여기고 그들을 이용하지 못했던 조선 조정의 무능함과 폐쇄적인 사고에 다시 한번 아쉬움이 느껴지는군요.

<조선에 대한 기술>에서는 하멜의 눈에 비친 조선이 때로는 사실과 다르게, 때로는 읽는 동안 얼굴이 빨개질 정도의 비판의 글도 기록이 되어있네요. 하멜이 옆에 있다면 반론하고 싶은 내용도 있고 올바르게 알려주고 싶은 내용도 들어있어요. 밀린 13년간의 월급을 받아내기 위한 목적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관찰력이 뛰어났기 때문인지, 아니면 하멜의 눈에 비친 조선의 새로움과 신기함에 대한 강한 인상 때문인지 정말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어 놀라게 됩니다. 지리적 위치, 제주도, 군주제, 정부, 국왕의 행차. 청나라 사신의 방문, 재정, 군사 제도, 수군, 형벌, 교육, 언어와 산수, 세계에 대한 지식, 농업, 광업, 임업, 어업, 동물, 교역, 도량형, 종교, 결혼, 장례, 집과 세간, 여행, 국민성 등 하나하나 자세히 적혀있어 당시 유럽인이 조선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것 같아요.
학창시절 역사시간 이름만 들어본 <<하멜 표류기>>, 최근 역사관련 TV 프로그램을 통해 막연하게나마 좀 더 알게된 <<하멜 표류기>>에 대하여 이 책을 통해 시대적 배경과 함께 읽어보면서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하멜 표류기>>는 유럽에 처음 출판되었던 당시 정본과 다르게 왜곡되고, 독자들의 흥미 위주로 편집되었던 잘못된 <<하멜 표류기>>처럼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내용이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집니다. 비록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조선에 대한 이야기라 다르게 비춰진, 잘못 이해된 부분도 있겠지만 객관적인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조선의 실상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당시 아쉬웠던 부분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뜻깊은 시간이었네요. 반복되는 역사를 통해 오늘날 타산지석으로 삼을수 있듯, 비록 이방인에 비춰진 우리의 역사적 자료일지라도 내일의 발전과 희망을 위해 겸허히 받아들여야하지 않을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