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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리지 않는 법 - 수학적 사고의 힘
조던 앨런버그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4월
평점 :
초등학생 때 본 드라마 <공부의 신>에 나오는 수학 선생 ‘차기봉’은 이렇게 말했다. “수학은 반복 학습이다.”, “주입식 교육이야 말로 진정한 교육이다.” 당시 뭣도 모르고 봤지만, 지금은 그게 모두 허언증이고,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작은 근거라도 갖다 붙여 만든 말이란 걸 이제 안다.
소금물의 농도가 어떤지, 달력의 찢어진 부분을 맞춰한다든지, 이런 문제들은 거의 생활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나더라도 문제처럼 공식을 세우고, 굳이 시간을 할애해 푸는 사람은 수학에 미친 광신도거나 그렇게라도 짬을 내서 공부하는 수험생들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난 전형적인 ‘수포자’가 되었다. 계산기가 있으니 따로 사칙연산을 할 필요도 없었으며, 불연속적인 실생활에 적분이나 근의 공식을 대입할 일은 천문학적인 확률로 일어나는 일이란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때 내가 착각했던 건, 문제집에 나오는 문제만이 ‘수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거다.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넌 수학에 중점을 둔 직업을 목표로 하지 않겠지. 그건 괜찮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니까. 하지만 그래도 넌 수학을 할 수 있어. 아마 지금도 수학을 하고 있을 거야. 그걸 수학이라고 부르진 않지만 말이야.”
작가 스스로 이런 말을 하는 만큼 제시한 예를 살펴보자. 2차 세계대전 때 전투기의 추락을 막기 위해 어느 부위에 철갑판을 장착해야하는지 문제가 나왔다. 생환한 전투기들을 비교분석한 결과 총알을 가장 적게 맞은 순으로 엔진, 바퀴, 날개 등이 있었다. 보통 함수적인 발상으로 생각하면 날개에 철갑판을 두르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 문제를 맡은 ‘아브라함 발드’는 이렇게 생각했다. “엔진에 맞으니까 생환하지 못한 겁니다.” “추락한 전투기들은 거의 엔진에 총알을 맞아 추락했을 겁니다.” 그의 예상은 맞았고 덕분에 추락율을 전보다 훨씬 줄일 수 있었다. 작가는 이런 사고를 두고 ‘수학적 사고’라고 명명한다.
방안을 내놓기 이전에 문제가 무엇인지가 더 중요하고, 그 문제를 정의하는데에 필요한 것이 수학적 사고다. 작가가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그가 제시한 사례를 보건데,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위 사례 말고도, 복권을 사지 말아야할 이유나 통계에서 비율이중요한 이유 같은 갖가지 형형색색의 사례들로 하여금 읽는 이가 지루하지 않게끔 집필했다.
다만 무척이나 읽기 어려운 점을 빼고는. 남들보다 책을 좀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기에 작가가 허언증으로 미사여구로 감싼 채 글을 적진 않았다는 건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고등학생 수학 개념 이상을 알아야 되고, 중간중간 나오는 수학자 위인의 철학이나 관련 역사를 알지 않고선 이 책 600p를 다 읽었다고 해도 “나 이 책 다 읽었어!”라는 말을 내뱉기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대중서라기보다는 수학자들에게 더 어울리는 책이다. 안타깝지만 나 같은 대중들은 아직까지 누군가 수학을 떠먹여주는 형식으로 밖에 접할 수 밖에 없나 보다. 아니면 오늘부터 중고로 <수학의 정석>을 사서 독학하면 좀 나아질 수 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