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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 아이들 ㅣ 창비청소년문학 45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평점 :
1.
이 소설을 보자니 스탠리 밀그램의 무기력 실험이 떠올랐다. 참가자들은 문제를 풀고, 틀리면 건너칸 사람이 전기충격을 받는다. 참가자가 문제를 틀릴수록 충격의 강도는 더 세졌는데, 건너칸 사람은 사실 실험인으로서 비명 연기만 할 뿐 실제론 전기충격을 받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참가자들이 실험인이 흰색 가운을 입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비윤리적인 태도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내면은 겉으로 비춰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그 사람이 정말 그 직위에 올랐으며, 내게 명령할 권한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냥 신사복이나 경찰복 하나만있으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옷을 다 벗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 소설의 작중에 나오는 학교의 아이들은 외부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된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주5일을 빈틈없이 생활하며, 토요일에는 틀에 박힌 자기계발서나 읽고, 뉴스 또한 필터링이 되어 보여진다. 학교선생과 교장이 조각가 피그말리온이라면 아이들은 그들의 조각품, 갈라테이아인셈이다. 조각품은 말이 없다. 오직 조각가의 손짓이 가는대로만 조각품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정말 안타까운 것은 어른들의 속 편한 사정들의 틈을 파고드는 행동을 하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이대로 편하다는, 무기력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아직 앞날이 창창한 학생들을 통장의 돈줄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중의 자기계발서의 몇 줄만 있으면 된다. 좋은게 좋은 거니까.
3.
피그말리온의 바람대로 진짜 여자가 된 갈라테이아는 이전에 자기가 조각품인것을 알았을까? 제발 몰랐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 서평이 내 뜻대로 끝나니까. 무슨말인고 하면, 아이들 중에서는 자신이 조각품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다는 아이들도 나누어져 있다. 그렇다고 인지를 하고도 틈을 비꼬지 않는 아이들을 비난할 수 없는 게, 자신만의 논리로 똘똘 뭉쳐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화법도 대단하다. 아마 매주 토요일 자기계발서를 몇 시간씩 읽은 덕분이라. 현실 속의 어른도 두 가지 타입으로 나눌 수 있다. 피그말리온의 조각을 방관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근데 네가지 타입 다 공통점이 뭔지 아나? 자신이 틀렸다고 가능성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선악이냐 인권이냐 구분지을 게 아니라, 어쨋든 논쟁에서 이길려면 많은 연구와 많은 철학을 지녀야 한다. 그런데 더 억울한 건 그렇게 이겨도 끝이 없다는 것이다. 인권 문제는 다 그렇다. 많은 경우가 있고, 그 경우들을 다 고려해야 한다. 작중의 아이들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도, 현실에는 매초마다 비슷한 문제들이 보도되고 있다. 신경쓸 에너지도, 시간도 아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증명해야 한다. 허구적 실체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