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
살아야 할 이유
계속 생기듯

쓰면
쓰고 싶은 이야기
계속 생긴다.

글과 삶은
그렇게
닮아있다.

언젠가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기억 더듬어
써야겠다.

아니
쓰고 싶다.

어느 여름날
나는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버리러
해변가에 갔다.

이 일은
언젠가

글로 쓸 수 밖에..

오랜 시간
생각해왔다.

이렇게 개인적인 문장이
일반 독자의 관심을 얼마나
끌 수 있을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손을 움직여 실제로
문장을 쓰는 것을 통해서만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태생이 추상적, 관념적으로
사색하는 것에 서툴다)
이렇게 기억을 더듬고, 과거를 조망하고,
그걸 눈에 보이는 언어로, 소리 내어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환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쓰면 쓸수록
그리고 그걸 되읽으면 되읽을수록
나 자신이 투명해지는 듯한
신비로운 감각에 휩싸이게 된다.

손을 허공으로 내밀면,
그 너머가 아른하게 비쳐 보일 듯한
기분마저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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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또는 말은 경험을 연장시키거나 되살려서 찰나의 느낌마저도 잊지 않고 적어 놓으려는 세심한 여행자라면 절대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런 걷기는 조만간 그 내용이
적힌 페이지로만 남게 된다.

망각은 시간이 가면 어렴풋해지는
이미지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날려 보낸다.

오래 전에 느꼈던 즐거움은
글이나 말 또는 사진을 통해 되살아난다.

걷기에 대해 글을 쓰거나 이야기를 하는 일은
그날 느꼈던 감정, 간직된 기억과 수집된 이미지들을 되살리는 일이다.

말하자면, 장소의 정령에게
받은 것의 일부를 되돌려주는 일이다.

글이나 말이 아무리 힘든 순간에 대해서라도 감사의 표현인 것은 이미 극복되어
추억으로 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여행에 관한 모든 말은
당시에 느꼈던 감정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을 다시 탄생시키려는 의지이자 축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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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힘든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가끔 나에게 이렇게 묻는 이들이 있다. 덮쳐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고 선 이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힘들어도 버티고 나면 또 보이는 게 있으니까. 하지만 어떤 때는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 설득력 없다는 걸 안다.

살면서 힘든 날이 없기를 바랄 수는 없다. 어떻게 쉽기만 할까? 인생길 다 구불구불하고, 파도가 밀려오고 집채보다 큰 해일이 덮치고, 그 후 거짓말 같은 햇살과 고요가 찾아오고 그러는 거 아니겠나. 도망간다고 도망가질까.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해도 시간의 힘으로 버티는 거다.

세상엔 내 힘으로 도저히 해결 못 하는 일도 있지 않은가. 그럴 땐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 하늘을 볼 일이다. 도리가 없다. 희망도 없고, 나아질 기미가 통 보이질 않아도 버티고 살아남아야 한다.

스스로 딛고 일어나기 힘들다면 자신을 붙잡아줄 누군가의 손을 꼭 잡길 바란다. 내 편을 들어줄 한 사람만 있어도 살 힘이 생긴다. 곁에서 고개 끄덕이며 얘기를 들어줄 사람,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길 가다 모르는 할머니가 건네는 웃음, 사탕 하나에도 ‘살아 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인생이리라. 넘어졌을 때 챙겨주는 작은 손길에도 어두운 감정들은 금세 사라진다.

미련한 성격 탓에 맞서오는 파도를 피할 줄도 모르고 온몸으로 맞고 선 때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래도 그래도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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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잃고
서리와 얼음으로
덮인 나무일때

헐벗은 가지에
바람 소리만 가득할 때

그것으로
자신의 전 생애를
판단해선 안 된다.

연약한 움을 틔운 시기에는
그 연약함이 오므려쥔 기대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계절을 다 품고
한 계절씩 여행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어떤 계절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음을
나무는 잘 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떤 겨울도
견딜 만하다는 것을..

힌디어에
‘킬레가 또 데켕게‘라는
격언이 있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
라는 뜻이다.

지금은 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설명할 길이 없어도

언젠가 내가 꽃을 피우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자신이 통과하는 계절에 대해
굳이 타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증명하면 된다.

시간이 흘러
결실을 맺으면 사람들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므로

바깥의 계절과 상관없이
지금 나는 어느 계절을
살아가고있는가?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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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만든 멸종 속에서 과연 인류는 어떤 일을 겪을까? 한 가지 -생물다양성관에 함축되어 있는-가능성은 인류도 마찬가지로 ‘생태계의 변화‘에 의해 마침내 멸종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인류는 진화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지만 지구의 생물학과 지리 화학 체계에 의존한 채 살아간다. 열대 우림을 무너뜨리고 대기구성을 변화시키며 바다를 산성화하는 등 체계를 무너뜨리면서 인류는 생존권을 위험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대멸종이 일어나면 약한 생물도 절멸하지만 강한 생물도 같은 수순을 밟는다. V형태의 필석은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지만 멸종이 일어난 후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암모나이트는 수억만 년을 헤엄쳐 다녔지만 사라지고 말았다. 인류학자인 리처드 리키는 호모 사피엔스가 여섯 번째 대멸종을 일으킬 것이며 동시에 멸종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생물다양성관에 걸려 있는 간판에는 스텐포드 대학교의 경제학자인 폴 에를리히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다른 종들을 멸종으로 몰고가면서도 인류는 자신이 앉아 있는 횃대를 자르느라고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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