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 내리는 비
막아줄 우산 건네기 보단

때로는 그 비
함께 말없이 맞아주는 것도

살아가는 어느 모서리
문득 생각나 힘이 되어줄
추억이 될 거라 믿어봅니다.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보리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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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은 기억한다. 잊고 싶어 구석에 숨겨놓은 나를, 꼭 기억하려고 잘 보이는 곳에 뒀지만 결국 잊어버린 나를, 가장 반짝이던 순간의 나를 가장 찌질한 순간의 나를, 조금 화려하고 싶어 용기를 냈지만 결국 구석에서 말없이 앉아 있어야만 했던 순간의 나를, 초라한 기분을 없애기 위해 영양가 없는 쇼핑을 헤대던 나까지, 잠시나마 잘나가던 나를 빛바랜 채로 기억하는 목걸이도 있고, 결국 선을 넘지 못한 나를 기억하는 등 파인 원피스도 있는 것처럼, 그리하여 차마 버리지 못해 집 안 구석구석 쌓여 있는 물건들의 기억을 읽다 보면 집 전체가 기억의 박물관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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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근을 바로 나아가는 덕분에
오늘의 시 하나 건져두고 가는 아침
잘 모르는 오늘이더라도
시같은 하루 되길

엔트로피 길들이기

내가 밤늦게 귀가하면 그것은
매번 다른 귀퉁이에 웅크려 곤히 잠들어 있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내 방엔 참 오묘한 꼭짓점들이 많이 있구나

그것은 잠에서 일어나자마자 나에게
아니오 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방 밖으로 나가 아내에게
아니오 라고 말한다
아내가 뭔 소리냐 물으면
어젯밤 이상한 책을 읽었다고 답한다

그것은 책이 아니다
어느 날 아침 창문으로 들어왔기에

그것은 빛이 아니다
오후에 창문을 들락거리며
방이 지정한 부피의 할당량을 채우지 않기에

그것은 소망이 아니다
새벽에 방바닥에 엎드려 울부짖지 않기에

그것은 열정이 아니다
휴일에 내가 음악을 듣다
갑자기 일어서서
반드시 소설을 쓸 거야 외치면
내게 경멸 조의 시선을 던지기에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처음에는 알았던 것 같다
내 방에 우연히 날아든
작은 새였던 같다
나는 새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넌 참 오묘하게 생겼구나

그것은 새가 아니다
그 새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했기에

나는 그것에게 따지듯 묻는다
도대체 내 방에서
무엇을 원하는 거냐고

그러면 그것은 아이처럼 훌쩍거리며
방 전체로 번져간다
한 방울의 잉크가 물속에
골고루 퍼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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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텅 빈 바다 위로 크고 무서운 것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각 사각 사각, 수평선 너머에서 무수한 적선들의 노 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환청은 점점 커지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환청을 떨쳐냈다. 식은땀이 흘렀고 오한에 몸이 떨렸다. 저녁 무렵까지 나는 혼자 앉아 있었다.
(...)
나는 장계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붓을 들어 맨 마지막에 한 줄을 더 써넣었다. 나는 그 한 문장이 임금을 향한, 그리고 이세상 전체를 겨누는 칼이기를 바랐다. 그 한 문장에 세상이 베어지기를 바랐다.

......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신 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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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자주 위협적이고 도전적이어서 우리의 통제 능력을 벗어난 상황들이 펼쳐진다. 그때 우리는 구석에 몰린 소처럼 두렵고 무력해진다. 그럴 때마다 자신만의 영역으로 물러나 호흡을 고르고, 마음을 추스리고, 살아갈 힘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숨을 고르는 일은 곧 마음을 고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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