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시간을
소비하는 이가 있고
똑같은 시간을
생산하는 이가 있다.

인풋없는 아웃풋
아웃풋없는 인풋은
있을 수 없다.

적자생존.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

강해서 살아남는게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사회가 나를 제 맘대로
소유할 뻔했던 적도 있었다.
스스로가 생각하지 않으면 사회가
그 일을 하고 만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내 생각의 자리를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만다.
결국은 대다수의 시선에
의존적인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든 사회 속에서의 삶이
수동적일수록 능동적인 부분을
늘릴 필요가 있다

사회가 힘이 셀수록
이 사회와는 조금 다른 시간
고정관념, 효율성, 이해관계와
무관한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가 힘이 셀수록
개인이 자기 자신으로 사는
사적 자유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사회가 힘이 셀수록
그저 흘러가는 대로
되는 대로 가만히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살 필요가 있다.

메모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자신에게 선물하는 셈이고
결과적으로 메모는 자신감 혹은
자기존중 과도 관련이 있다.

스스로 멈추기 때문이다.

스스로 뭔가를 붙잡아서
곁에 두기 때문이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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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상 어디즈음
살아가고 있는가.
내 계절 어디즈음
걸어가고 있는가.
이 여행길이
목적지였음을
언제즈음 알아차릴 것인가.

찰나 생
찰나 멸

모든 것을 잃고
서리와 얼음으로 덮인 나무일때
헐벗은 가지에 
바람 소리만 가득할 때
그것으로 자신의 전 생애를 
판단해선 안 된다.
연약한 움을 틔운 시기에는 
그 연약함이 오므려쥔 기대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계절을 다 품고
한 계절씩 여행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어떤 계절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음을 
나무는 잘 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떤 겨울도 견딜 만하다는 것을.. 힌디어에
‘킬레가 또 데켕게‘라는 격언이 있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
라는 뜻이다.

지금은 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설명할 길이 없어도 언젠가 
내가 꽃을 피우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자신이 통과하는 계절에 대해 
굳이 타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증명하면 된다.
시간이 흘러 결실을 맺으면 사람들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므로
바깥의 계절과 상관없이

지금 나는 
어느 계절을 살아가고있는가?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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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행복하기 위해선
시작보다 도착하기
행하기 보다 삼가하기
나아가기보다 멈추기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기의 총합이
늘어나면 됩니다.
여행은
거기가 아닌 여기서
행복할줄 아는 능력입니다.

내게 있어 여행이란 끝없이 집을
떠나는 일이 아니라
끝없이 집으로 되돌아오는 일이다.
내게 떠나는 것보다 중요한건
언제나 되돌아오는 일이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길이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집에 보고 싶은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라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일
앤에게 마릴라와 매튜가 
있었던 것처럼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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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고
내리고

가다보면
오다보면

여행은

여기서
행복하기
였음에

감사할 날들도
있겠지

산은 다른 산을 기대하게 했다.
모퉁이를 돌면, 정상에 서면, 다른 산이 보였다

저 산은 어디일까? 저 산의 이름은 뭘까? 저 산에 가고 싶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산들을 보면 가슴이 벅찼다. 그건 지금 이 순간 목표에 도달했다는 기쁨과는 또 다른 기쁨이었다

다음이 있다는 기쁨, 다른 산이 있다는 기쁨, 산이 있는 한 언제든 오를 수 있다는 기쁨, 문득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작은 점처럼 느껴졌다. 이 점을 계속해서 연결하고 싶었다. 더 많은 산에 오르고 싶었다. 더 높은 곳에 서고 싶었다. 30.p

내 의지를 따라 내가 원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자신감, 어쩌면 산을 핑계로 일상으로부터 도망쳤다는 자괴감, 이 두 가지 극을 달리는 감정을 오고 가며 괴로울 때마다 나를 일으켜준 건 자기 자신과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나처럼 무언가를 포가하고 왔을지도 모를 사람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느리고 더뎌도 정확하고 분명한 보폭으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동안 무너졌던 나의 자존도, 새로운 삶을 향한 의욕도 다시 차오르는 듯 했다. 37.p

애쓰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삶의 어느 부분과, 일상의 어느 시간과, 인생의 어느 구간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 산에서는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이 끌리는 일들은 그런 일들이었다

그건 세상 속에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그들의 정제되지 않은 거친 호흡과 날 것의 언어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오직 산을 향해 열려 있는 그들의 열정과 애정이 계속해서 이 세상에 전해지기를 바랐다. 내가 그 열정과 애정을 전하고 싶었다. 51.p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계획 이상의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 모든 일이 예측한 대로 이뤄지지만은 않지만 내 예측보다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 성취와 성공보다 더 멋지고 감동적인 좌절과 실패가 있을 수 있는 것 또한 산에서 배웠다. 무엇보다 산은 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줬다. 59

그래서 산에서 답을 찾느냐고 묻는다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산에서 얻은 어떤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반면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어서 그대로 덮어둔 경우도 많다

뭉쳐 있던 생각을 꺼내고 펼치는 것만으로 시원하고 후련한 감정이 든다면 그날의 산행은 성공이라 여긴다. 내 안의 나를 만난다는 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테니까. 112

산이 있어서 내가 가진 걸 잠시 내려놓고 쉴 수 있었다. 그리고 산이 있어서 삶의 어느 시기보다 열심히 살 수 있었다. 앞만 보고 달려온 걸음을 멈출 수 있었던 곳도 산이었다

생의 그 어느 순간보다 빠르게 달렸던 곳도 산이었다. 생의 그 어느 순간보다 빠르게 달렸던 곳도 산이었다. 산이기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산이기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산으로 도망치고 싶었던 날들에 이어 산에서 도망치고 싶은 날들을 통과했다.
산에서 나는 기뻐했고 슬퍼했다. 사랑했고 미워했다. 그리고 그 모든 마음은 부정할 수 없는 내 것이었다. 고요하게 겸허하게 오르는 산이 좋다. 들뜬 나를 차갑게 하는 그 산이 좋다

하지만 치열하게 먕렬하게 오르는 산도 좋다. 처진 나를 뜨겁게 하는 그 산도 좋다. 처진 나를 뜨겁게 하는 그 산도 좋다. 내면을 향하는 산도 좋고 바깥과 소통하는 산도 좋다. 내면을 향하는 산도 좋고 바깥과 소통하는 산도 좋다. 두 개의 산을 오고 가며 나는 이제 서서히 나에게 편안한 페이스를 찾아가는 것 같다. 135

그러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저 지금 내가 오를 수 있는 작고 낮은 산을 꾸준히 오르고 오르는 것이 바로 산 사람으로 사는 것 아닐까 하고 말이다.
작고 낮은 산부터 매일매일 오르고 오르다 보면 시간이 흘러 산이 나를 또다시 다른 산으로 연결해 주겠지,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주겠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날까지 묵묵히 내 앞의 산을, 내 몫의 삶을 오르고 또 올라야겠다. 그러다 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내리막도 만나겠지.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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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가져다준 가장 큰 변화는

인류라는 종족 전체를
퇴화시켜버렸다는 점이다.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쉽고 편리한만큼 초강력한 중독의 굴레를
24시간 씌워준 덕분이 아닐까 싶다.

아편, 마약중독, 납중독보다
스마트폰, SNS 중독이 더 무서운 점은

모든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소중한 두 가지.

공평하게 주어졌지만 줄어들 뿐인 시간.

서로의 얼굴 바라보고
이야기하거나 생각하는 기회.

지속적으로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인터넷, 컴퓨터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IT의 발전, 창조가

그것들이 없던 시절보다
지금의 시절에 더 행복한가에 기여했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분명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기술문명의 발전과 편의가
인류의 평화와 행복에 필요한 조건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건 오히려 거의 모든 불행의 역사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아이패드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또 하나의 히트작이 애플로부터 나왔다는 점이 아니고, 현재 우리의 생활습관을 바꾸는 단초 역할을 했다는 점에 있다.

아이패드는 PC에서 랩톱으로 이어진 로컬 스토리지와 서치형 소프트웨어 패러다임을 개인화/모바일 장비와 인터넷 서비스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도화선이 되었다.

아이패드의 첫 번재 제품이 가졌던 9.7인치 형태는 개인이 가지고 다닐 수 있으면서도 멀티미디어 가독성을 갖춘 크기였다.

기본적으로 두께가 많이 두껍지 않기 때문에 다이어리나 서류 가방에 끼워서 들고 다니는 개인용 저작도구 및 멀티미디어 소비도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아이패드는 다양한 문서뿐만 아니라 멀티터치를 포함한 뛰어난 UI를 바탕으로 쉽게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고, 종이 다이어리나 노트의 역할도 대신할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마음껏 소비하고(가족들과 같이 볼 필요가 없는 영상 등), 공부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즉석에서 소규모 그룹의 협업 또는 게임도 가능하다.

아이패드의 등정은 이후 다양한 다른 태블릿 제품들의 대응과 생태계를 같이 촉발시켰으며, 전자책과 다양한 콘텐츠 소비와 관련된 서비스 시장과 맞물려 여러 산업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오면서 새로운 개인 스크린의 시대를 열었다. -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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