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시작부터 사물화되어 버린 오류 •왜곡 •악습 • 의존성의 심층부에 훈육이 가해진다. 그 결과 인간 존재가 여전히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젊음의상태나 유년기의 어떤 단계로 되돌아가는 것이 관건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결함 있는 교육 및 신앙 체계에 사로잡힌 인생 속에서 결코 나타날 기회가 없었던 ‘속성‘을 참조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자기 실천의 목표는 자기 자신 내에서 결코 나타날 기회가 없었던 속성과 자기 자신을 일치시키면서 자기를 해방하는 행위이다.

-푸코(Michel Foucault) <주체와 타자의 통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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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김수영 덕택으로 최소한 우리 시인들이 더 이상 외국에 나가서 시를 배우는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글로 시를 쓰려고 노력하고 마침내 그것을 멋지게 관철시킨 그는 못 배운 사람이 삶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시적인 언어로, 다시 말해 주인의 언어로 승격시켜야만 한다는 소명 의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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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으로 인간은 너무변덕스럽고 너무 복잡하고 엄청나게 모순적이어서 우리가 숙고해야 할 뿐만 아니라 거듭 숙고해야 하는 존재다. 인간은 우리가 가한한 많은 상황에서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겪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에 관한 견해를 보류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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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모두가 어떤 말을 해줄 때, 그게 사실이기 때문에 그러는 경우가 많단다."
‘모두가 어떤 말을 해줄 땐 그들이 모두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니나가 똑 부러지게 말했다. "그렇지만 왜 모두의 얘기를 들어야 해요? 모두가 「오디세이」를 썼나요? 모두가 「아이네이스」를 썼나요? 니나는 고개를 저으며 명확히 결론지었다. ‘모두와 극소수의 차이는 숫자의 차이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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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 시인 김수영이 꿈꾼 중용의 사회는 단독성이 실현되는 동시에 보편성도 확보되는 사회, 다시 말해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제스처로 살아가지만 때로는 서로 아름답게 때로는 아프게 공명할 수 있는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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