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노이즈겠지. 노이즈가 아니라면 아기들의 울음을 해석했을 때 기껏해야 ‘배고파‘, ‘불편해‘ 정도, 그것도 제대로 된 언어보다는 어떤 감정이나 불쾌한 감각 정도로만 나타나는 게 정상일 거야."
수빈이 말했다. 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죠. 그런데 데이터 오염이라고만 하기에는 미심쩍은 점이 있어요. 여길 보면 약간 성장해서 말을 할 줄아는 아기들도 말하는 내용과 분석된 사고 패턴이 전혀 맞질 않아요. 여기 이 데이터는 ‘엄마, 저거 줘‘라고 말하는 아기가 실제로는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고싶다‘라고 생각하고 있대요. 말이 안 되죠."
- P115

하지만 만약 공생의 대상이 지구상의 생물이 아니라면 어떨까? 지구에서도 유래하지 않은 것, 수만 년 전,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전에 지구 밖의 어느 행성에서 온 것이라면, 그것이 우리의 뇌에 자리 잡았고, 우리의 유년기를 지배했고, 우리를 윤리적 주체로 가르쳐 왔다면, 인간을 비인간동물과 구분하는 명백한 특질들이 사실은 인간 밖에서 온 것들이라면.
"우리가 인간성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실은 외계성이었군요."
- P129

"저자들은 유년기 기억 상실에 다른 외부 요인이 있을것이라고 막연하게 주장했는데 아주 혼란스러워 보였어요. 굉장히 논쟁적이었어요. 반박하는 논문이 곧장 쏟아져 나왔고요. 하지만 만약 정말로 신경 발달의 문제가 아니라면, 유년기의 기억이 외부 요인에 의해서 상실되는 것이라면 그건 대체 뭘까, 무엇이 아이들의 기억을 데려가는 걸까. 계속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이유가.….…."
"그들."
수민이 말했다. 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들이 기억과 함께 우리를 떠나는거야."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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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이 편지가 네게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내가 떠났다는 소문이 퍼진 이후이겠지. 어른들이 많이 화가 났을까. 그동안 나처럼 성년이 되기 전에 마을을 뛰쳐나온 사람은 없었으니까. 괜찮다면 대신 이야기를 전해줄래? 여전히 그분들을 많이 사랑한다고, 하지만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말야.
- P9

릴리가 하필 인간배아 디자인에 손을 대게 된 계기는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이유를 짐작할 수는 있다. 릴리는 태어나는 아이에게 아름다움을, 아무런 병도 갖지 않고 오직 뛰어난 특성들로만 구성된 삶을 선물하는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종의 선행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릴리의 배아 디자인 연구는 세상을 배제의 층계로 나누었을 뿐이나, 릴리는 어느 시점까지는 자신의 일에 관해 어떤 의심도 품지 않았다. 릴리는 자신이 하는일이 옳은 세상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다.
- P45

아름답고 뛰어난 지성을 가진 신인류가 아니라, 서로를 밟고 그 위에 서지 않는 신인류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로만 구성된 세계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 P49

지구에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충격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수없이 많겠지. 이제 나는 상상할 수 있어. 지구로 내려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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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감정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렌즈를 통해서 더 크게 자라난다. 감정은 우리의 가슴에, 육감에, 손끝에 있다고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생각에 있으며 대개는 타인의 생각에 대한 나의 추측과 추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 P42

가축화가 동물을 우둔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 생각이었기 때문에 사람 이외 동물에게서 인지적 유연성을 찾고자 하는 연구자들은 문제해결 능력이 있어야만 생존이 가능한 야생에 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평생 자기 머리로 생각해야 하는 상황을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동물이라면, 그러니까 양식과 보금자리와 번식을 누군가가 다 알아서 해결해준다면, 어떻게 인지적으로 유연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오레오에 관해서라면 내가 잘 알았다.
"그건 아니죠. 하지만 오레오가 몸짓 테스트는 통과할 거라고 봅니다."
"좋네." 토마셀로가 달래는 말투로 말했다. "샘플 실험을 해보면 어떤가?"
- P46

반면 오레오와는 컵 2개를 들고 나가 땅바닥에 몇 미터 간격으로 뒤집어서 놓으면 끝이었다.
"앉아"
나는 컵 한쪽에 먹이를 한 조각 숨겼다. 그러고는 먹이 숨긴 컵을 손으로 가리켰다. 첫 시도에 오레오는 먹이를 찾아냈다. 이어 진행한 18차의 실험에서도 모두 다 먹이를 찾아냈다.
"오레오." 오레오가 온몸의 무게를 내 다리에 실어 나를 껴안았다. 나는 오레오의 귀를 긁어주며 말했다. "넌 천재야."
침팬지를 데리고 손짓 발짓해가며 아무것도 얻지 못하던 그 몇 달 내내 오레오는 뒷마당에 앉아 내게 능력을 보여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 P50

침팬지는 달랐다. 침팬지의 경우, 개나 사람 아기와는 달리,
의사소통에 사용하는 여러 가지 몸짓이 사회성과 여하한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개나 사람 아기와는 달리, 침팬지들이 사용하는 몸짓은 사회성과는 무관한 과세와 상관관계를 보였다. 침팬지한테서는 소통에 특화된 인지능력의 단서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개와 사람은 협력적 의사소통에 능하도록 설계되었으나 침팬지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인지능력은 생식의 성공을 촉진하도록 진화했다. 따라서 동물은 종의 생존에 핵심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형의 사고에서 가장 높은 인지적 유연성을 발휘하게끔 발달해왔다. 침팬지와 달리 개는 사람과의 의사소통에 생존이 달려 있다. 하지만 개가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얼마나 정교하게 이해하는지는 나조차도 놀랄 정도였다.  - P55

연구자들은 동물의 가축화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일련의 조건을 제시했다. 다이아몬드는 사람이 주는 먹이를 쉽게 먹을 수있고, 성장이 빠르고, 번식이 쉽고, 사육 상태에서 출산 빈도가높고, 사람과 친해지기 쉽고, 지배 서열에 순응적이고, 울타리안에서나 천적과 맞닥뜨렸을 때 침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다이아몬드는 가축화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이 모든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연구자들은 가축화에 적합한 동물이 되기 위해서는 암컷이 여러 수컷과 짝짓기하는 종이어야하고 좁은 행동반경 안에서도 행동을 제어하기 수월해야 하며 암컷과 수컷이 섞인 큰 무리 안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추가했다. - P63

펄럭이는 귀, 짧은 주둥이, 동그랗게 말린 꼬리, 얼룩무늬 털, 작은 이빨은 번식을 위한 선택 기준이 아니었지만, 세대를 거듭할 때마다 이 특징은 점점 더 보편적인 형질로 바뀌어갔다. 류드밀라의 연구팀은 친화력만을 기준으로 삼고, 그에 따라 매 세대에 발생하는 생리적 변화와 외형상 변화를 관찰했다.
과학자들은 다양한 종으로 벨랴예프와 류드밀라의 모델을 반복 실험할 수 있었는데, 개와 생물학적으로 관계가 먼 닭도 포함되었다. 연구자들은 친화적인, 말하자면 사람의 접근이나 손길을 허용하는 적색야계(아시아의 야생종으로 모든 재배종 닭의 조상)개체군을 번식시켜서, 한 대조군과 비교하는 실험을 수행했다.
친화력 선택의 실험 결과는 벨랴예프가 예측했던 대로였다. 실험군 적색야계는 단 여덟 세대 만에 낯선 사물을 덜 두려워하게 되었고 세로토닌 분비 수치가 증가했으며 털에서는 탈색이일어났고 몸집은 커지고 뇌는 작아졌으며 번식력은 높아졌다.
자연이 일반적으로 수천 세대에 걸쳐 성취하는 것을 벨랴예프와 류드밀라는 인간의 한 생애 안에 이루어냈으며 그 결과로하나의 공식을 수립했다. 즉, 사람에게 친화적인 동물이 더 높은 번식 성공률을 보일 때 가축화가 발생한다는 공식 말이다.
- P70

가축화가 사람에게 쓸모 있는 희귀종에게서만 발생했음을 시사했던 다른 실험 모델들과 달리, 벨랴예프의 연구는 개체의 밀도가 높아지면 개체들 사이에서 자연선택을 통해 대규모의 자기가축화라는 사건이 일어나리라고 보았다. 이 사건은 선택압의 강도, 개체 규모, 그리고 야생 개체군과 가축화 개체군의 유전자격리 에 따라서 아주 빠르게 일어날 수도 있다. 두려움을 매력으로 대체함으로써 생존하는 데 사람을 활용할 수 있다면 어떤 동물이라도 살아남을 뿐 아니라 번성하게 될 것이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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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 연대기를 보면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기로 이름이 난 한 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지혜롭고 사려가 깊어 백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으며, 용맹스럽고 잘 훈련된 병사들을 거느리고 있어서 이웃 나라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왕위 계승자인 큰아들 샤리야르는 왕처럼 아주 덕망이 높았고, 작은 아들 샤스난 역시 그에 못지않은 덕성을 지니고 있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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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최재천

생물학자들의 죄가 크다. 우리는 오랫동안 자연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며 피도 눈물도 없는 삭막한 곳으로 묘사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 죄를 죄다 찰스 다윈 Charles Darwin 의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 에 뒤집어씌웠다. ‘적자생존‘은 원래 다윈이 고안한 표현도 아니다. 다윈의 전도사를 자처한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의 작품인데 앨프리드 월리스 Alfred Wallace 의 종용으로 다윈은<<종의 기원>> 제5판을 출간하며 당신 이론의 토대인 자연선택 natural selection 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다윈의 죄는 거기까지다. 《종의 기원은 물론,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과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그는 생존투쟁struggle for existence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오로지 주변 모두를 제압하고 최적자 the fittest가 돼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양한 예를 들어 풍성하게 설명했다. 그의 후예들이 오히려 그를 좁고 단순한 틀 안에 가둔 것이다. - P4

다윈은 자연에서 친절과 협력을 끓임없이 관찰하며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자상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번성하여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고 썼다. 다윈을 위시하여 그의 뒤를 이은 많은 생물학자도 진화라는 게임에서 승리하는 이상적 방법은 협력을 꽃피울 수 있게 친화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대중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적자생존‘ 개념은 최악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한 연구는 가장 덩치 크고 가장 힘세고 가장 비열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스트레스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스트레스는 우리 몸에 비축된 에너지를 고갈시켜 면역체계를 약화하고 결국 우리는 더 적은 수의 후손을 남기게 된다. 마찬가지로 공격성이 높을수록 비용이 많이 드는데,
싸워서 다치거나 잘못되면 죽을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적자‘는 우두머리 지위를 차지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가 ‘더럽고 잔인하고 짧은 인생으로 끝날 수도 있다. 다정함은 일련의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 협력, 또는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행동으로 대략 정의할 수 있는데, 다정함이 자연에 그렇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그 속성이 너무나 강력하기때문이다. 인간 사회에서 다정함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누군가와 가까이 지내는 단순한 행동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어떤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협력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등의 복합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 P20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위험을 무릅쓰고 아프리카를 떠나 빠른 속도로 유라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몇천 년 안에 멀게는 오스트레일리아까지도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 위험천만한 횡단을 위해 우리 사람 종은 무기한 여행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음식을 꾸리고 예기치 못한 고장에 대비하며 낯선 사냥감을 포획할 때 사용할 도구를 성겨야 했고, 바다에서 마실 물을 채워 넣는 것처럼 예상 가능한 문제도 해결해야 했을 것이다. 뱃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사항까지 놓치지 않고 주고받을 정도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했으므로 일부 인류학자는 이 무렵 우리의 언어가 이미 완성 단계였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들 뱃사람이 수평선 너머에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추론을 했다는 점이다. 어쩌면 철새의 이동 패턴을 관찰했거나 멀리서 산불 연기가 나는 것을 보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평선 너머에 어딘가가 있다는 생각은 상상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 P27

친화력은 자기가축화 self-domestication 를 통해서 진화했다.
수 세대에 걸친 가축화는, 기존의 통념과는 달리, 지능을 쇠퇴시키지 않으면서 친화력을 향상시킨다. 어떤 동물이 가축화될 때는 서로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많은 요소가 변화를 겪는다. 가축화징후 라고 불리는 현상의 변화 패턴은 얼굴형, 치아크기, 신체 부위별로 각기 다른 피부색에서 나타난다. 호르몬과 번식주기, 신경계에서도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가 연구에서 발견한 것은 조건이 일정하다면 자기가축화가 타인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도 향상시킨다는 점이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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