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그는 서랍 속에 접힌 채로 있다.
지금은 펼치지 않고도 떠올릴 수 있는 그 세계지도에서 세상의 모든 바다는 분명 이어져 있다. 이제 나는 그 사실이 다소 무섭다. 바다를 등지고 아무리 멀리 가도, 반드시 세상 어떤 바다와 다시 마주치게 될 테니까. 그 불편한 예감에 시달릴때마다 이상하게도 오래전 지하 소극장에서 본 오타쿠들이 떠오른다. 그 기모이한 오타쿠들의 열렬한 구호. 가치코이코죠. 진짜 사랑 고백. 좋아 좋아 정말 좋아 역시 좋아…… 그것도사랑이라면, 나는 어쩐지 그 근시의 사랑이 조금 그립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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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왜 그들이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후반의 여성이어야 하는지, 열한 명 중에 아프리칸은 한 명뿐인데 아시안은 일곱 명이나 되는지를 문제삼았다. 하지만 르몽드에서 ‘세계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여성-아시안으로 이동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듯, 오히려 그 점이 높이 평가되기도 했다. 실제로 멤버들은 인종과 무관하게 모든 대륙에서 고르게 사랑받았고, 여성 팬들의 지지가 더 뜨거웠다. 진정성을 의심하던 사람들도 그들이 가사를 어떻게 쓰는지, 소셜미디어에서 어떻게 소통하는지, 수익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며 하나둘 설득됐다. 그들은 아름다웠고, 유능했고, 심지어 옳았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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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바다

당신은 ‘세상 모든 바다‘의 팬입니까.
아무에게나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 해도 될까. 질문하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부터 밝히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나는 ‘하쿠‘라고 합니다. 그런 소개부터 한다면 어떨까. 내가 일본인인 것을 알면 사람들은 더 너그러워질 수도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나는 그날 잠실에 모인 십삼만 명 중 한 명이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내가 하쿠라는 것이 부분적으로는 거짓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다섯 달 전 여름에 잠실에 갔던 일은, 그곳에서 백영록과 만난 일은 어떻게 보아도 사실이다. 그러니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게 좋겠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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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이지 공포시대의 공식적인 희생자 수가 부족원만 따져서 적어도 스물네 명까지 늘어났다. 다른 희생자들 중에는 보건 외에 수사를 도우려 했던 사람 두 명이 더 포함되어 있었다. 오세이지에서 농장을 경영하던 저명인사는 약에 취한 채 계단 아래로 내던져져 목숨을 잃었고, 또 한 사람은 이 사건에 대해 주정부 관리들에게 브리핑을 하러 가던 길에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총에 맞아 쓰러졌다. 전국적인 간행물인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오세이지족의 ‘검은저주"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 부족 사람들이 "인적 드문 풀밭에서 총에 맞거나, 자동차 안에 앉아 있다가 쇠기둥에 찔리거나, 독에 중독되어 서서히 죽어가거나, 집에서 자다가 다이너마이트에 날아갔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계속 이어졌다. "저주는 계속된다. 저주가 어디에서 끝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1인당 소득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살해당하고 있었다. 나중에 언론은 이 살인사건들에 대해 "금세기의 어느 살인사건 못지않게 어둡고 야비하다"면서 "미국 범죄 역사 중 가장 유혈이 낭자한 페이지"라고 표현했다.
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모든 노력은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 P136

1925년 여름 어느 날, 수사국의 휴스턴 현장 사무소 책임자인 톰화이트 특수요원에게 워싱턴 본부에서 긴급 명령이 내려왔다. 신임수사국장인 J. 에드거 후버가 당장 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화이트는 재빨리 짐을 꾸렸다. 후버는 직원들에게 검은 양복, 수수한 넥타이, 반짝반짝 광을 낸 검은 신발을착용하라고 요구했다. 요원들이 법률가나 전문 직업인의 분위기를풍기는 백인 미국인의 전형적인 모습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매일 요원들에게 ‘이러이러한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식의 지령을 새로이 내려 보내는 것 같았다. 화이트는 이런 분위기에 반항하려고 일부러 커다란 카우보이모자를 썼다. - P145

하딩의 후임인 캘빈 쿨리지는 1924년 여름 무렵 번스를 해임하고 할런 피스크 스톤을 신임 법무장관으로 임명했다. 미국이 점점 성장하면서 수많은 연방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스톤은 전국적인경찰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의 뜻에 맞는 기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수사국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탈바꿈시켜야 했다.
스톤은 신임 수사국장을 물색하는 동안 스물아홉 살의 수사국 부국장이던 J. 에드거 후버를 국장대리로 선택함으로써 법무부를 비판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후버는 비록 티포트 돔과 관련해서 얼룩이 묻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멋대로 날뛴 수사국정보부, 즉 단순히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정탐한 부서의 책임자였다. 후버는 또한 수사 경험이 전혀 없었다. 총격전을 직접 경험한 적도 없고, 범인을 체포해본 적도 없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그의 조부와 아버지는 생전에 연방정부 공무원이었고, 아직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후버는 관료제의 피조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관료들 사이의 가십, 그들 사이에서 통하는 언어, 은연중에 이루어지는 거래, 피는 흐르지 않지만 지독한 영역싸움 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자기만의 관료적인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수사국장의 자리를 탐낸 후버는 자신이 국내 인사들의 감시활동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스톤에게 숨긴 채 정보부를 해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스톤이 요구하는 개혁조치들을 열심히 실행했다. 그것은 수사국을 현대적인 세력으로 재편하려는 그 자신의 욕망을 더욱 진전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후버는 스톤에게 보낸 메모에서, 자신이 인사자료들을 샅샅이 훑으며 해고해야 마땅한 무능력자와 부정한 요원들을 가려내기 시작했다고 알렸다. 후버는 또한 신입 요원들의 채용요건을 높여서 법률이나 회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요구하기로 했다고 스톤에게 말했다. "수사국의 직원들이 수사국의 사기를 높이고 장관님의 정책을 문자 그대로 엄밀히 시행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1924년 12월 스톤은 후버가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자리를 그에게 주었다. 후버는 수사국을 통일된 세력으로 급속히 재편했다. 거의 50년 동안 국장으로 재직하면서, 그는 이 세력을 휘둘러 범죄와 싸우는 한편, 기가 막힐 정도로 엄청난 권력남용도 저질렀다. - P150

후버는 그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당신이 필요한 만큼 인력을 배정해주겠습니다. 후버는 대학 출신 풋내기 요원들의 한계를 알고있었으므로, 화이트의 동생인 박사를 포함한 소수의 카우보이들을 계속 요원 명부에 남겨두었다. 이 요원들은 아직 과학적인 수사방법을 배우는 중이고, 타자기로 보고서를 완성하는 방식에 적응 중이었다.‘ 하지만 화이트는 그들만이 이런 수사를 감당할 수 있다고보았다. 거친 시골마을에 침투해서 무법자들을 상대하고, 용의자들을 미행하고, 필요하면 며칠 동안 잠 한숨 자지 않고 버티고, 압박속에서도 정체를 들키지 않고, 여차하면 치명적인 무기도 다뤄야했기 때문이다. 화이트는 카우보이들로 팀을 짜기 시작했지만, 박사는 거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화이트 형제는 기마경관 시절 이후로 같은 사건을 맡는 것을 피했다. 가족들을 위해 혹시라도 두 명이 동시에 목숨을 잃는 일만은 막고 싶어서였다. - P163

모리슨이 슬그머니 도망칠 우려가 있기는 했다. 그래서 버거 요원은 그를 풀어주기 전에 베르티용 측정법이라고 불리는 엄격한 절차를 그에게 적용했다. 1879년에 프랑스의 범죄학자 알퐁스 베르티용이 고안한 이 측정법은 상습적인 범죄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과학적인 방법이었다. 버거 요원은 캘리퍼스(내부 지름이나 두께 등을 재는 기구옮긴이)를 비롯한 여러 특수 도구들로 모리슨의 신체에서 열한 가지 치수를 쟀다. 댈러스 경찰도 이 작업에 협조해주었다. 그가 측정한 치수 중에는 모리슨의 왼발 길이 머리의 폭과 길이, 오른쪽 귀의 지름 등이 포함되었다.
버거 요원은 모리슨에게 이렇게 신체를 측정하는 목적을 알려준 뒤, 머그샷 촬영도 의뢰했다. 머그샷 역시 베르티용이 고안한 것이었다. 1894년에 추문 전문기자인 이다 타르벨은 베르티용의 측정법을 거친 죄수는 모두 언제나 "쉽게 잡힐 것"이라고 썼다. "문신을 지우고 가슴을 압박하고, 머리를 염색하고, 이를 뽑고, 몸에 흉터를 만들고, 키를 숨겨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베르티용 측정법은 이미 더 효율적인 신원확인 방법에 밀려나고 있었다. 과학수사의 세계에 혁명을 일으킨 이 새로운 방법은 바로 지문 감식이었다. 몇몇 사건에서 이제는 목격자가 없는 경우에도 용의자가 범행현장에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 후버는 수사국장 대리가 된 뒤, 신원확인과를 신설했다. 그리고 전국에서 체포된 범죄자들의 지문을 이곳에 보관했다. 후버는 이런 과학적인 방법이 "공통의 위험 앞에서 문명의 수호자들"을 도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 P173

톰은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에 대해 자주 생각해보았다. 수감자들 중 일부는 철저하게 사악해서 마치 악마의 화신처럼보였다. 머리에 병이 들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죄수들은 절박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폭력적이고 비열한 짓을 저지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중에죄를 뉘우치면서 구원을 얻고자 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런 죄수들을 생각할 때 가장 무서웠다. 누구라도 악에 사로잡힐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기 때문이다. 톰은 가족들과 함께 인근의 침례교회에 다녔는데, 목사는 모두가 죄인이라고 말했다. 법과 정의를 지키는 에밋조차 죄인이었다. 톰은 평생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풀지 못한 듯하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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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자 미국인들과 달리 오세이지족은 연방정부가 강요한 재정후견인 제도 때문에 마음껏 돈을 쓸 수 없는 처지였다(한 후견인은 오세이지족 성인이 "여섯 살이나 여덟 살짜리 아이와 같다. 새로운 장난감을 보면 사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주장했다). 법에 따라, 내무부가 ‘무능력하다‘고 판정한 미국 인디언들에게는 모두 후견인이있어야 했다. 미국 인디언을 사실상 반쪽짜리 시민으로 만들어버린이 후견인 제도에서 판정의 기준이 되는 것은 재산을 소유한 인디언의 몸속에 인디언의 피가 얼마나 섞여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한지방법원은 이것을 "종족적 취약점"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순혈 인디언에게는 예외 없이 후견인이 할당된 반면, 혼혈 인디언에게 후견인이 할당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수족의 피가 섞인 고아로 오세이지족 가정에 입양되었으며, 석유에 대한 이 부족의 권리를 지키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존 파머는 의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백인의 피나 인디언의 피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여러분이 이 부족의 사람들에게서 가져가는 양이 결정되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인디언의 피가 얼마나 되는가 하는 점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다루는 것은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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