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채굴 현장 위로 철망을 밟은 채 인간 삶의 이 기록을 응시한다. 놀랍게도 내가 경험하는 것은 구석기 시대나 그 밖의 고대에 대한글을 읽을 때 으레 느껴지는 감정인 경외감이나 시간 감각 상실이 아니라 차분함이다. 인류의 오랜 선사를 이렇게 맛보면서 깊숙이 묻힌불안감의 매듭이 풀린다.
내 삶은 거의 전적으로 현대성의 템포에 속박되어 있다. 분 단위로살고, 몇 시간과 (때로는) 몇 년에 집중하고, 21세기 안에 무너질 주택에서 살고, 10년을 채 넘기지 못할 전자 제품을 이용한다. 우리 문화는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스스로와 지구의 대부분을 개조할 기세다. 우리의 감각, 상상력, 열망을 몇 년 이상 끌어당기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수천 년의 척도에 대해 생각하더라도, 지금과 그 먼 미래 사이에인류 이야기의 연속성을 상상하기 힘들다. 과거도 낯설긴 마찬가지여서, 감각이 미치지 못하며 몸으로 이해할 수도 없다. 인류 역사가 수만년간 존재했다는 물리적 흔적은 내 몸에 말한다. 또 다른, 더 긴 서사가 있다고. - P323

이렇게 오래 끄는 잔향은 성당, 텅 빈 공장, 거대한 물탱크처럼 넓고 벽이 단단한 공간의 음향 특성이다. 벽은 소리를 반사하며 밀폐된공간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소리가 되튀는 동안 잔향을 지속한다.
물론 돌처럼 효율적인 음향반사판도 음파의 일부 에너지를 고갈시킬수밖에 없다. 하지만 넓은 공간에서는 소리가 공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서, 벽과의 충돌로 잃어버리는 에너지가 거의 없이 흐를 수 있다. 이렇듯 넓은 용적은 소리를 오래 지속시킨다. 음파가 멀리 떨어진벽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공기 중에 오래, 때로는 몇 초간 머물기때문이다. 두꺼운 커튼처럼 소리를 흡수하는 재료가 없으면 잔향은더욱 오래간다. 홀레 펠스 동굴의 용적은 6000세제곱미터로, 큰 교회와 맞먹는다.
이 동굴의 잔향은 가이센클뢰스테를레보다 훨씬 오래 지속된다.이 때문에 매우 빠르고 섬세한 소리는 쉽게 뭉개진다. 다른 관람객과몇 미터만 떨어져도 그들의 말소리가 우단(羽緞)처럼 먹먹해진다. 이곳에서 강연하면 끔찍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복잡한 바이올린 곡도 형편없이 들릴 것이다. 빠르게 변하는 음이 서로 뒤섞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단순한 가락은 근사하게 들린다. 내 휘파람 소리가 이렇게 훌륭하게 들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동굴 밖 초원에서 나의 손뼉과 휘파람소리가 얇고 바싹 마른 빵 같다면 안에서는 달콤한 케이크 조각처럼 기름지고 두툼하다. 피리 음악 또한 이곳에서 근사하게 들릴 것이다. - P326

알려진 최초의 악기는 악기 소리와 어울리는 장소에서 제작되었다.적어도 현대인의 귀에는 그렇게 들린다. 오늘날 많은 플루트 실황 연주와 녹음은 전자 장비를 이용하여 잔향을 더함으로써 소리가 동굴이나 방에서 들리는 것처럼 한다. 그렇다면 동굴의 잔향 특성이 최초의 피리가 발명되는 데 촉매 역할을 했을까?  - P327

이 밀접한 관계는 공간이 음악사에서의 혁신과 벌이는 상호작용의일부를 보여준다. 구석기 후기 동굴에서 발견된 악기-피리, 긁개, 불로러(bull-roarer)"는 수십 명이 모인 자리에 잘 어울렸다. 소리가 더큰 악기는 인간 사회가 성장하여 소리가 더 멀리 전파되어야 했을 때등장했다. 북과 뿔은 사람들을 전쟁, 사냥, 종교 회합에 불러 모았다.
최초로 기록된 북은 기원전 4000년경 중국 동부 다원커우의 기장, 쌀재배 문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려진 최초의 나팔은 기원전 1500년경 이집트의 강성한 제18왕조에서 발견되었다. - P339

우리는 스마트폰이나 집의 CD 플레이어에서 ‘재생‘을 누를 때마다 음향공간을 창조하는 셈이다. 우리는 음악을 얼마든지 고를 수 있다. 앨범과 트랙들이 우리의 눈길을 끌려고 다툰다. 가장 시끄러운 음악이 대체로 승리한다. 심지어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리 자신이 시끄러운 소리를 선호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말이다. 우리의 뇌는 요란한 음악을 더 ‘좋은‘ 것으로 한결같이 판단한다. 게다가 조용한 악구의 음량이 커져 곡 전체의 음량 균형이 흐트러지더라도 그쪽을 선호한다.
이 심리적 기현상은 ‘음량 전쟁‘을 촉발했다. 이 경쟁은 1990년대에CD 분야에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제작자들은 음악의 모든 주파수에서 진폭을 증가시켜 곡의 가변적 음량을 이른바 ‘벽돌벽(brick wall)‘으로 바꾼다.‘ 이 최종 결과물에서는 트랙의 모든 부분이 최대 음량으로 높아져 있다.
이렇게 만든 음성 파일을 컴퓨터 화면에 띄우면, 대다수 생음악의음량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에 반해 높고 일정한 벽이 표시된다.
이렇게 하면 더 시끄럽고 생동감 있는 음악이라는 전반적 인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스네어 드럼 같은 타악 효과의탁 소리가 사라져 마치 악기를 어딘가에 욱여넣은 듯한 느낌이 들며 극단적인ㅍ경우에는 음악이 백색잡음으로 뿌예진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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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문화는 개체군의 진화적 분리를 촉진하거나 지연시키는 역할이외에도 위험에 처한 종을 멸종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개체군 밀도가 너무 낮아지면 동물이 서로를 찾기가 힘들어지며 어린 새들이 종의 노래를 온전히 배우지 못한다. 이를테면 오스트레일리아블루산맥에서는 몸이 검은색과 황금색이고 꽃꿀을 먹는 조류인 으뜸꿀빨기새의 개체수가 수백 마리까지 줄었다. 그런데 최근 상당수가다른 종의 노래를 비롯하여 특이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난 몇십 년간 녹음한 것과 비교하면 지금의 새들은 노래가 더 단순해졌다.적절한 선생이 없어서 어린 새들은 다른 종의 소리를 훔치거나 제멋대로 지어낸다. 이렇게 기형이고 종종 엉성한 노래를 하는 수컷들은암컷에게 매력이 떨어진다. - P240

인간과 명금의 성숙한 뇌는 형태가 매우 다르지만, 발성학습에 필요한 신경망의 일부는 같은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다. 학습의 패턴과 과정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새들의 떨리는 미숙한 노래를 듣고 미소를 짓는 것은 단순히 감정에 이끌려서는 아니다.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기쁨은 차이를 넘어선 동류의식을 떠올리게한다.
동류의식뿐 아니라 독특함도 있다. 우리는 별난 종이다. 우리와 가까운 친척인 영장류 중에서 우리만큼 발성 학습에 능한 종은 없다. 나머지 영장류의 복잡한 행동과 문화는 발성 학습이 아니라 시각적·촉각적 관찰을 바탕으로 한다. 인간 아닌 영장류는 뇌 기능도 다른 듯하다. 인간의 발성 학습에 필수적인 뇌 부위는 다른 영장류 종의 발성에서는 사소한 역할에 머무른다. 자연 질서에서 인간의 특별한 위치를마련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고유함에 주목한다. 하지만 조류와 고래 같은 발성 학습자에게서 소리의 문화적 진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발성 학습은 고유하다기보다는 유사한 듯하다. 동물계에서발성 학습과 문화로 이어지는 길은 여러 가닥이다. - P247

수백만 년에 걸쳐 분기들은 지역 전체에 저마다의 소리 특성을 부여할 정도로 규모가 커진다. 이 과정은 물, 암석, 바람의 소리를 빚어내는 과정과 대조적이다. 일정한 크기의 빗방울은 아메리카의 암석에떨어지든 이스라엘의 암석에 떨어지든 오스트레일리아의 암석에 떨어지든 똑같은 소리를 낸다. 반면에 이 장소들에 서식하는 동물의 노래는 설령 크기와 생태가 매우 비슷하더라도 물리 법칙으로 도출할 수없다. 동물 소통의 역사와 변칙 또한 생명의 음성에 우연과 변덕의 흥미로운 층을 더한다.
지구상의 어느 장소에서든 토착 동물과 이주 동물의 음성을 둘 다들을 수 있다. 이러한 조합 중에는 최근에 형성된 것도 있지만-이를테면 북아메리카 전역에서 미국까마귀와 나란히 노래하는 유럽찌르레기처럼-동물의 생물지리 이야기들은 대부분 더 깊은 뿌리가 있다. 수천만 년 전, 수억 년 전을 돌아보면 모든 동물군의 현재 분포는일부 종이 보금자리를 지키고 다른 종이 새 땅을 찾아 나선 결과임을알 수 있다. 그런 다음 각 유형 중 일부가 새 종으로 갈라져 지리와 분류의 풍성한 착종)을 만들어낸다. - P272

숨으로 이루어지고 찰나에 사라져버리는 소리가 바위보다 오래될 수 있다.
주변 동물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공기 진동으로 이루어졌으되 대륙 이동과 고대 동물의 대륙 이주로 다양해진 소리의 지질학이남긴 유산을 듣는 것이다. 암석과 달리, 소리의 여러 형태를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간직하는 영속적인 물리적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동물 소리의 형태는 연약한 DNA 가닥 속에서 전달되었으며, 노래를 배우는 종의 경우) 새끼와 연장자의 끊임없는 연결 사슬을 통해 세대마다 새로 만들어졌다. - P281

뼈, 상아, 숨
4만 년 전 지금의 독일 남부에 있는 빙기(氷期) 동굴에서 새로운 종류의 소리가 탄생했다. 이 소리는 휘파람 한 소절에 불과할 만큼 단순했으며 동굴 밖에서 노래한 새와 곤충의 복잡성과 범위에 비하면 보잘것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소리는 혁명이었다. 그 소리가 창조된 순간 지구의 생성력은 문화적 진화를 발판삼아 솟구쳐 뻗어갔다.
들어보라. 영장류의 입술이 알맞은 모양의 새 뼈와 매머드 엄니에숨을 불어넣는 소리를. 이로써 키메라가 생겨난다. 사냥꾼의 숨이 먹잇감의 뼈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제껏 지구 어디에도 없던 원천에서공기가 진동하여 가락과 음색을 만들어낸다. 악기가 탄생한 것이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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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원과 들판에서 듣는 새들은 여섯 달도 더 전인 지난여름에처음으로 들은 소리를 실험하고 있다. 갓난새끼일 때와 갓 날개가 돋았을 때 그들은 부모와 이웃의 노래에 귀 기울였다. 그들은 무아지경의 속삭임으로만 노래했지만, 깩깩 보채는 소리와 다양한 형태의 짹짹 음과 트릴을 구사하기도 했다. 그들이 지난여름 들은 성체의 노래에 대한 기억은 이제 자신의 시도를 평가할 잣대가 된다. 새들은 몇주에 걸쳐 여러 조합을 시험하여 최종판을 추린 뒤 그 노래를 자신의것으로 쓸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소리를 배우는 방식과 딴판인 기억술의 위업이다. 우리는 순간순간 듣고 발화하는 주고받기의 방식으로소리를 가다듬는다(단, 유아는 소리를 따라할 수 있기 전에도 많은 소리를 알아듣는다).
인간 부모와 걸음마쟁이에게 귀 기울여보라. 아이가 어린애 말투로시도한다. 부모는 미소 지으며 어른 말투로 고쳐준다. 아이가 고집한다. 어른이 다시 한번 되풀이한다. 몇 달, 몇 년에 걸친 이중주는 유아의 말소리를 어른의 형태로 다듬는다. 이에 반해 참새의 듣기와 발성은 시간과 공간 면에서 훌쩍 떨어져 있다. 6월에 퀘벡 북부에서 들은노래는 새끼 참새의 뇌에서 겨울을 난 뒤에 그해 후반 테네시에서 두살배기의 머뭇거리는 발성 시도로 되살아난다. 몇 달간의 기억이야말로 참새의 노래를 숙성시키는 선생이다. - P228

이렇듯 연안의 문화 단위가 작은 규모인 것은 노래 방식들의 조각보를 만들어내는 소규모의 교란 때문이다. 화재 같은 재난이 일어나지 않는 시기에는 순응주의자 흰정수리북미멧새 사회 안에서 발성학습을 통해 각 동네 안의 노래 차이가 유지된다.
산지나 북방림 가장자리 출신의 흰정수리북미멧새들은 겨울마다남쪽으로 이주하기에, 안정된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지 않는다. 그들의 노래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그 규모는 수십 미터가 아니라 수백 킬로미터다. 이것은 분포 범위가 넓은 이동성 조류 특유의 패턴이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각 조류 종의 지역적 변이형을 듣는 것이다. 친숙한 길의 바깥으로 발을 디디면 친숙하게 듣던 노래에 새로운변화가 더해지거나 특이한 요소가 덧붙는다. 이러한 소리의 지리는종마다 규모와 짜임이 다르며, 각 종의 창조성과 순응성이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가에 따라 정해진다. 가장 조밀하고 지방색 짙은 지리적분포를 나타내는 것은 대부분 거의 이동하지 않고 새끼들이 근처에자리 잡는 집돌이들이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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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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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6월 21일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이 내무 인민위원회 소속 긴급 위원회에 출두함

주재: V. A. 이그나토프, M. S. 자콥스키, A. N. 코사레프
검사: A. Y. 비신스키

비신스키 검사 - 이름을 말하시오.
로스토프 -성 안드레이 훈장 수훈자, 경마 클럽 회원, 사냥의 명인인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입니다. - P13

이그나토프 알렉산드르 - 일리치 로스토프, 당신의 증언을 모두 고려해보면 우린 그 시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를 썼던명민한 영혼이 자기 계급의 부패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굴복했으며, 지금은 한때 자신이 지지했던 바로 그 이상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소. 이를 근거로 한다면 우리로서는 당신을 이 방에서 내보내 총살하는 게 온당할 것이오. 하지만 당의 고위직 중에는 혁명이전 단계 영웅의 범주에 당신을 넣는 사람들이 있소. 그래서 위원회의 의견은, 당신은 당신이 그리도 좋아하는그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오. 하지만 절대 착각하지 마시오. 만약 당신이 한 걸음이라도 메트로폴 호텔 바깥으로 나간다면 당신은 총살될 테니까. 다음 사건.

서명.
V. A. 이그나토프
M.S. 자콥스키
A. N. 코사레프 - P17

 어린 백작이 비참한 마음으로 이불을 움켜쥐고 있을 때할머니가 방으로 찾아왔다. 침대 발치에 앉은 할머니는 얼마간 동정심을 나타냈다. "지는 것은 정말 속상하고 억울한 일이지." 할머니가 말했다. "게다가 그 오볼렌스키 가문 아이는 말썽꾸러기니까. 그런데 사샤, 왜 그 아이가 기분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하려는 거니?" 백작과 할머니는 페테르고프의 부두에서 바로 이런 정신으로 눈물을보이지 않고 헤어졌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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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림의 동물 음성들에서 볼 수 있는 힘과 다양성은 소리의 소통 능력을 보여준다. 이곳의 종은 저마다 존재감을 과시하여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며, 들킬 위험 없이 먼 곳의 상대에게 의사를 전달한다. 밤에는 어둠이 몸을 숨겨주고 낮에는 우림의 빽빽한 잎들이 망토 못지않게 효과를 발휘한다. 이곳은 지구상에서 시야가 가장 많이 차단되는 장소 중 하나로, 젊은 북방림의 빈틈없이 치밀한 수풀과 강어귀의탁한 바닷물을 제외하면 무엇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소리가 만개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동물들은 시각으로 사냥하는포식자들에게 들키지 않은 채 무성한 잎들을 뚫고 소통할 수 있다.
매 헥타르마다 수백 가지 식물이 이끼와 조류(藻類)에 짓눌린 채 시각적으로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서식처를 조성한다. 여기에 많은 곤충과 동물의 위장색 패턴이 어우러지면 우림에서 동물을 보는 것은 경험 많은 전문 자연 애호가에게도 여간 힘들지 않다. 하지만 소리는 들을 수 있다. - P151

노래의 첫 번째 대가는 고대 동물을 침묵시켰을 바로 그 대가다. 소리를 내면 자신의 존재와 위치를 포식자에게 들킬 위험이 있다. 귀뚜라미가 몇 시간이고 귀뚤귀뚤 울거나 명금이 거듭거듭 가락을 뽑을때처럼 소리가 지속되면 위험이 더욱 커진다. 페르모스트리둘루스의시대에 이 문제를 해결한 방법은 재빨리 달아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움직이지 못하거나 느린 동물은 소리를내는 일이 드물다. 새, 개구리, 원숭이, 귀뚜라미, 여치, 매미충, 매미등 우림에서 소리를 내는 동물은 대부분 날개, 펄쩍 뛰어오를 수 있는다리, 또는 둘 다가 있다. 하지만 포식자와 기생충은 이에 맞서 고생대이래로 사냥 솜씨를 갈고닦았다. 펄쩍 뛰어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일 때가 있다.
이를테면 열대 지방의 노래곤충은 기생파리에 감염된다. 이 사냥꾼들은 머리 바로 뒤 아랫면에 한 쌍의 귀청이 있는데, 이 덕분에 어 - P152

미 기생파리는 숙주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기생파리의 귀는 자신이좋아하는 노래곤충 숙주의 독특한 주파수와 빠르기에 맞춰져 있다.
이 귀의 안내를 받아 목표물에 착지하여 배에서 작은 애벌레들을 뿜어낸다. 꿈틀거리는 애벌레들은 숙주 위에서 바글거리며 겉뼈대에 구멍을 뚫는다. 애벌레가 안에 들어앉아 두어 주 자란 뒤 빠져나오면 숙주는 목숨을 잃는다.
기생파리는 종마다 좋아하는 소리가 다른데, 어떤 것은 짧게 짹짹거리는 소리를 좋아하고 어떤 것은 빠르게 지저귀는 소리를 좋아한다. 또한 종마다 특정 주파수 범위에 민감하다. 그러니 숙주 입장에서보자면 딴 종들과 다른 소리를 내는 게 유리하다. 따라서 자연선택은소리 다양성을 선호한다. 무리와 다른 소리를 냄으로써 소리꾼은 기생 구더기 군단의 공격을 피하는데, 이것은 강력한 진화적 유인이다. - P153

이런 전방위 포식자도 먹잇감의 소리에 영향을 미친다. 노래하는청개구리나 여치에게 몰래 다가가본 적이 있다면, 그림자가 지나가거나 초목이 바스락거릴 때 갑작스러운 정적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나먹잇감은 위험이 닥칠 때 침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종종 경고음을 내는데, 이것은 겉보기에는 역설적 대응 같다. 하지만 먹잇감의 소리는자신이 포식자를 발견했다는 신호다. 은밀하고 예기치 못한 공격이 불가능해졌음을 알게 된 포식자는 경계심이 덜한 먹잇감을 찾아 딴 곳으로 가는 게 상책이다. 경고음은 동물 사회를 묶어주는 협력적 그물망의 일부이기도 하다. 동물은 서로에게 경고해줌으로써 자식과 친척을 보호하고 이웃에 대해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고 자신의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번성하도록 돕는다. - P154

경고음을 내는 행동은 속임수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위험이 전혀없는데도 경고음을 내면 경쟁자나 포식자를 혼란시켜 엉뚱한 곳으로유도할 수 있다. 수컷 제비는 짝이 이웃과 밀회한다는 의심이 들면 짹짹 지저귀어 산통을 깬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수컷 금조)는 이따금 다른 새들의 경고음을 흉내 낸다. 이렇게 하면 암컷들이 영역을 살펴보려고 멈추기 때문에 수컷들이 잠재적 짝의 시선을 좀 더 오래붙잡아둘 수 있다. - P157

아마존에서 노래하는 새 한 마리 한 마리는 노래가 겹치지 않도록이따금 타이밍을 초 단위로 조절하지만, 더 큰 규모에서 보자면 경쟁으로 인해 종들의 소리 구조가 분화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오히려노래의 형태들은 서로 뭉쳐 무리 짓는 것처럼 보인다. 이 소리 무리 짓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하는 듯하다.
첫째, 밀접하게 연관된 종들은 서식처 선호도와 노래 구조가 대체로 같다. 작은 솔딱새는 날벌레가 많은 숲 지대에 이끌린다. 몸집이 큰앵무는 열매가 풍성한 숲에 모이며 개미굴뚝새는 곤충이 풍부한 곳에서 먹이를 찾는다. 밀접하게 연관된 벌새들은 같은 나무의 꽃에서꿀을 빨아 먹는다. 계통을 공유하면 입맛과 서식처를 공유하게 되어밀접하게 연관된 종의 소리들이 한 장소에 모인다.
둘째, 종이 다르더라도 소통의 그물망으로 연결될 수 있다. 경쟁하는 종들이 서로의 소리를 공유하고 이해하면 빠르고 정확하게 소통 - P164

할 수 있다. 그러면 먹이와 공간을 차지하려는 다툼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며 외부인의 침입을 재빨리 경고할 수 있다. 이렇듯 노래의 특징을 공유하면 역설적으로 경쟁자들끼리 협력적 연결망으로 묶일수 있다.
아마존에서는 조류의 종들 간에 영역 경쟁이 더 치열할수록 음향신호의 구조와 타이밍이 더 비슷한 듯하다. 경쟁자들 사이에 서로 공유하는 소통 채널이 필요한 것은 새들만이 아니다. 모스크바와 워싱턴은 핫라인으로 연결되어 있고, 민간 경쟁사들은 브랜딩과 소매 매장형태에 대한 미적 규약에 대해 합의하며, 직군 내의 경쟁은 공통의어휘 사용을 통해 매개된다.
아마존의 새들이 아닌 다른 동물 종의 발성 경쟁을 연구했을 때는상반된 결과들이 나왔다. 파나마의 한 숲에 가장 풍부하게 서식하는귀뚜라미 18종은 정말로 소리가 겹치지 않도록 주파수를 나눈 것처럼 보인다. 개구리 11종의 합창을 연구했더니 세 종에서는 경쟁이 주파수 분화로 이어진 듯한 반면에 나머지에서는 그런 증거를 찾아볼수 없었다. 온대림의 새들은 노래 주파수가 상당히 겹치지만 타이밍과 간격을 통해 노래를 분리한다. 그렇다면 음향 경쟁은 우리가 자연적 환경에서 듣는 소리 주파수 다양성의 우발적 요인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지구상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음향적으로 가장 북적거리는 장소인 아마존 우림에서 함께 새벽 합창을 노래하는 새들의 소리는 갈라지지 않고 뭉쳤다」 - P165

여기서 진화는 두 가지 위업을 달성했다. 첫째, 각 개체에게 음향적특징을 부여했으며 둘째, 마스킹 효과를 일으키고 정신을 산란시키는소음의 폭풍 속에서 소리를 듣는 동물로 하여금 미묘한 패턴을 추출할 수 있게 했다. 음성이 개체마다 다르고 이것이 청각적으로 구별되는 것은 사회적 조류와 포유류에게 흔하며, 물론 여기에는 인간이 포함된다. 유아는 군중 속에서 부모의 목소리를 가려내며 성인은 어수선한 칵테일파티에서도 대화에 집중할 수 있다. 인간의 뇌를 스캔했더니 주변이 소란할 때 목소리를 듣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시끄러운 곳에서 목소리를 들을 때는 여러 통제·주의 중추가 활성화되는데, 이 뇌 그물망은 조용한 환경에서 목소리를 들을 때는 사소한 역할에 머무른다. - P167

어둠 속을 걸어가면서 마치 뒤엉킨 낙엽을 통과하는 생쥐 크기로쪼그라든 기분을 느낀다. 밤의 숲은 소리와 냄새의 인파로 나를 에워싼다. 환희와 불안이 똑같이 피어오른다. 난데없는 생물들이 나의 청야와 시야에 뛰어들 때마다 시끌벅적한 감각적 다양성에 대한 기쁨이느껴지지만 간간이 작은 두려움의 화살이 날아와 박힌다.
이것이 우림의 경외감이다.
초연한 개념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감각적 경험으로서의 존경과 두려움. 숲이 내 몸을 흔들어 깨운다. 나는 생명의 다양성의 현현뿐 아니라 생명의 지속적 창조력의 경험에 몰입한다. 이곳에서 소리를 비롯한 감각들이 자아내는 압도적 무게는 진화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다. - P170

「넓은 지역에서 짝을 찾는 것은 짝짓기용 소리의 원래 기능일 것이다. 숲의 작은 동물들에게 소리는 짝을 찾는 기간을 몇 분으로 줄여준다. 숲을 헤매며 눈으로 상대를 찾아야 했다면 몇 주가 걸렸을 것이다. 종에 따라서는 코가 예민한 구혼자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남기는냄새 흔적이 한몫하기도 하지만, 소리는 훨씬 범위가 넓고 추적하기쉽다. 또한 종 특유의 소리는 짝 찾기의 정확도를 높이고 잡아먹힐험을 낮춘다. 짝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려다가는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소리는 멀리서 종 정체성을 드러내어 짝찾기의 위험을 줄인다. 반면에 짝 찾기 신호를 악용하는 동물은 오인의위험성을 더욱 키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포식성 여치는 암컷 매미의짝 찾기 소리를 흉내 내어 몸이 단 수컷들을 죽음으로 유혹한다.
미국봄청개구리가 숲바닥 길을 따라 습지에 도달하면 소리의 역할이 달라진다. 이제 그녀는 개별적 음성에 담긴 정보에 귀 기울인다. 수컷들이 10~100센티미터 간격으로 늘어서 있으므로 그녀는 우렁찬소리와 부푼 목 주머니들 앞을 어슬렁거리고 헤엄친다. 대부분의 울음소리는 개굴이지만 너무 가까워진 수컷들은 거친 래굴로 목청을 겨루며 소리로 영역 다툼을 벌인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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