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기질과 마음이론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선택된 감정반응이 협력적 의사소통능력과 더불어 포용력도 향상시켰을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자연선택이 사람들이 서로에게 반응하는 다양한 방식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문화적 인지능력 형성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곧 사람에게도 자기가축화가 일어났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 P112

자제력은 사고와 행동 사이의 공간이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 전 한눈에 들어오는 전경이다.  - P114

나를 포함해 대다수 사람들은 큰 무리를 이루어 사는 동물일수록 더 복잡한 사회관계를 형성하기에 자제력이 강해서 성공할 길을 더 잘 찾을 거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마시멜로 테스트를 통과한 동물들은 그저 연산능력이 더 좋은 큰 용량의 뇌를 지녔을 뿐이다. 우리가 테스트한 바에 따르면 뇌가 작은 동물들은 자제하는 것을 힘들어했고 뇌가 큰 동물들은 거의 즉각적으로 자제력을 발휘했다. - P116

사회연결망은 많은 이유로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기술 발전에 필수 요소다. 더 큰 사회연결망과의 관계가 끊어진 인구 집단은 그저 기술의 진보가 멈추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집단이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 영장류 학자 토마셀로는 무인도에 혼자남겨진 어린이는 침팬지와 아주 흡사한 문화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태즈메이니아 원주민들은 약 1만 2000년 전 본토 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 고립되었다. 화석 기록을 보면 이 시기 전까지 그들이 사용한 도구는 더 큰 규모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집단과 대동소이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만 년 뒤, 본토 원주민들의 도구 세트는 눈에 띄게 늘어났지만 태즈메이니아 원주민들의 도구 세트는 겨우 몇십 종으로 줄어들었다. - P121

하얀 공막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협력을 증진하는 데 두루 이바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하얀 공막을 친화력 선택의 결과로 보며, 이 진화가 이루어진 시기는 8만 년 전이었을 것으로 본다. 눈맞춤 빈도가 증가하면서 유대와 협력적 의사소통이 촉진되어 옥시토신이 훨씬 활발히 발현되었을 것이다. 또 하안 공막은 속임수나 사기를 막는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눈은 분명하고 유일할 뿐만 아니라 보편적이기도 하다. 사람은 피부, 머리, 심지어는 손톱까지 다양한 색을 띤다. 홍채도 초록색, 회색, 파란색, 갈색에 검은색까지 다채로운 색이있다. 하지만 공막은 모두 똑같이 하얀색이다. 하나의 형질이 이렇게 절대적인 단일성을 보이는 건 아주 이례적이다.
- P135

우리의 가설이 맞다면,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하얀 공막의 눈을 가졌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을 포함한 다른 사람 종들은 다른 영장류 동물들처럼 색소로 눈을 덮어 시선을 숨겼을것이다. 다른 사람 종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그들의 어두운 공막을 보고 강하게 느꼈을 것이다. 저들은 우리와 같지 않다고,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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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들을 분리시키자 친구나 가족들조차 서로에게 손대는 일이 없어졌다.
공격성이 어떤 대가를 치를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집단 내에서 심각한 부상이나 사망까지 발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집단 내 협력자의 수가 크게 제한되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었다. 공격성과 연관해 위험을 무릅쓸 때 기대할수 있는 보상은 더 우수하거나 더 많은 후손을 얻는 것뿐이다.
이 공격성에 관한 비용 대비 이익 비중을 조금만 비틀어 생각해보아도 친화력이 호전성보다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바로 알수 있다.
- P92

암컷 보노보는 배란기를 불분명하게 만들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냈다. 그들은 엉덩이가 분홍빛으로 부풀어 있는 기간이 길어서 수컷으로서는 정확히 언제 배란을 하는지 알기 어렵다. 또 암컷들은 침팬지 같은 행동을 보이는 수컷에게는 적대적으로 군다. 암컷에게 강제로 짝짓기하려 드는 수컷은 반드시 맹렬한 저항에 부딪힌다. 성난 암컷들이 연대해서 공격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어떤 수컷이라도 아기 보노보를 좋지 않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가는 곧바로 암컷들의 맹렬한 반격을 당하게될 것이다. 암컷들은 함께 움직인다. 따라서 덩치는 수컷 개체들이 클지 몰라도 수컷들은 언제나 단결한 암컷들에게 수로 제압당한다. 암컷 침팬지는 친척 암컷에게만 도움을 주지만 암컷 보노보는 모든 암컷을 돕는다. 새로운 암컷이 무리에 들어오면 흥분하거나 호의를 보이며 반기는데, 서로 앞다투어 달려들어 인사하고 털을 다듬어주고 성기를 문질러주곤 한다. 이 원주민 암컷들이 그동안 알고 지낸 수컷들에 맞서서 새내기 암컷을 지켜줄 것이며, 자기네 아들들로부터도 지켜줄 것이다.  - P96

랭엄은 보노보 집단이 친화력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한 이유를 이들이 서식하는 콩고강 남부가 자원이 풍부하여 식량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생태계에 관한 여러 연구는 보노보 서식지의 열매와 초본이 풍부함을 시사한다. 보노보는 이러한 자원을 놓고 고릴라와 경쟁할 필요도 없다. 고릴라가 침팬지 서식지에 사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콩고강 남부 보노보 서식지 부근에는 살지 않는다.
보노보 암컷은 서열과 상관없이 모두 일일 필요 열량을 충족할 수 있지만, 침팬지는 서열이 높은 암컷들에게만 매일 충분한 먹이가 보장된다. 보노보 암컷은 암컷 친구를 챙길 여력이 있지만 침팬지 암컷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다. 친화력 좋은 보노보 암컷들은 서로 돕고 살 수 있어 수컷의 공격성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또한 공격성이 가장 낮은 수컷과 짝짓기하는 것을 선호한다. 수컷 보노보에게도 친화력은 승리의 전략이었다.
- P97

암컷의 승리가 어느 정도로 완전하냐면, 수컷이 암컷을 만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어머니를 통하는 것일 정도다. 보노보 수컷은 침팬지 수컷처럼 암컷을 꺾어 누르기 위해서 뭉치는대신 엄마에게 의지해서 암컷 친구를 소개받는다. 침팬지 수컷은 자기네 엄마마저 복종시키는 반면 보노보 수컷은 마마보이의 결정판이다. 암컷과 친하게 지내는 이 방식은 성공적 번식 전략이어서, 번식에 가장 성공한 수컷 보노보는 번식에 가장 성공한 침팬지의 수컷 우두머리보다도 더 많은 후손을 얻는다. 이는 암컷의 다정한 수컷 선호가 다정한 사회의 진화를 야기하는 선택압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사례다.
- P98

사람에게 다가왔던 늑대들이 그러지 않았던 늑대들보다 친화력이 강력한 선택압으로 작용할 정도의 큰 이익을 누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 압력은 행동과 외모만이 아니라 심지어 인지능력까지 진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어떤 종 안에서 관용과 친화력을 지닌 개체군이 살아남는 자연선택이 일어났는데, 그 형질 변화가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집단 내부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 또한 자기가축화를 이끌어내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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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 P181

보현을 무슨 말로 위로해야 했을까? 나는 순간 보현을 위로할 수 있는 어떤 언어도 나에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가슴속에서 빠져나가버린 듯 싸늘했고, 나는 그게 생각이나 관념이 아닌 실재하는 감각임을 알았다.
그제야 어설프게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머물렀다 사라져버린 향수의 냄새. 무겁게 가라앉는 공기.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흐느끼는 소리. 오래된 벽지의 얼룩. 탁자의 뒤틀린 나뭇결. 현관문의 차가운 질감.바닥을 구르다 멈춰버린 푸른색의 자갈. 그리고 다시, 정적.
물성은 어떻게 사람을 사로잡는가.
나는 닫힌 문을 가만히 바라보다 시선을 떨구었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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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노이즈겠지. 노이즈가 아니라면 아기들의 울음을 해석했을 때 기껏해야 ‘배고파‘, ‘불편해‘ 정도, 그것도 제대로 된 언어보다는 어떤 감정이나 불쾌한 감각 정도로만 나타나는 게 정상일 거야."
수빈이 말했다. 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죠. 그런데 데이터 오염이라고만 하기에는 미심쩍은 점이 있어요. 여길 보면 약간 성장해서 말을 할 줄아는 아기들도 말하는 내용과 분석된 사고 패턴이 전혀 맞질 않아요. 여기 이 데이터는 ‘엄마, 저거 줘‘라고 말하는 아기가 실제로는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고싶다‘라고 생각하고 있대요. 말이 안 되죠."
- P115

하지만 만약 공생의 대상이 지구상의 생물이 아니라면 어떨까? 지구에서도 유래하지 않은 것, 수만 년 전,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전에 지구 밖의 어느 행성에서 온 것이라면, 그것이 우리의 뇌에 자리 잡았고, 우리의 유년기를 지배했고, 우리를 윤리적 주체로 가르쳐 왔다면, 인간을 비인간동물과 구분하는 명백한 특질들이 사실은 인간 밖에서 온 것들이라면.
"우리가 인간성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실은 외계성이었군요."
- P129

"저자들은 유년기 기억 상실에 다른 외부 요인이 있을것이라고 막연하게 주장했는데 아주 혼란스러워 보였어요. 굉장히 논쟁적이었어요. 반박하는 논문이 곧장 쏟아져 나왔고요. 하지만 만약 정말로 신경 발달의 문제가 아니라면, 유년기의 기억이 외부 요인에 의해서 상실되는 것이라면 그건 대체 뭘까, 무엇이 아이들의 기억을 데려가는 걸까. 계속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이유가.….…."
"그들."
수민이 말했다. 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들이 기억과 함께 우리를 떠나는거야."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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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이 편지가 네게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내가 떠났다는 소문이 퍼진 이후이겠지. 어른들이 많이 화가 났을까. 그동안 나처럼 성년이 되기 전에 마을을 뛰쳐나온 사람은 없었으니까. 괜찮다면 대신 이야기를 전해줄래? 여전히 그분들을 많이 사랑한다고, 하지만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말야.
- P9

릴리가 하필 인간배아 디자인에 손을 대게 된 계기는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이유를 짐작할 수는 있다. 릴리는 태어나는 아이에게 아름다움을, 아무런 병도 갖지 않고 오직 뛰어난 특성들로만 구성된 삶을 선물하는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종의 선행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릴리의 배아 디자인 연구는 세상을 배제의 층계로 나누었을 뿐이나, 릴리는 어느 시점까지는 자신의 일에 관해 어떤 의심도 품지 않았다. 릴리는 자신이 하는일이 옳은 세상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다.
- P45

아름답고 뛰어난 지성을 가진 신인류가 아니라, 서로를 밟고 그 위에 서지 않는 신인류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로만 구성된 세계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 P49

지구에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충격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수없이 많겠지. 이제 나는 상상할 수 있어. 지구로 내려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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