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길을 걷고 있으면 아무 생각도 할 필요가 없다. 느끼기만하면 된다. 요샌 한창 땅기운이 왕성할 때다. 걷잡을 수 없는 힘으로 산천초목을 통해 지상으로 분출하고 있다. 흙길을 걷고 있으면 나무만큼은 아니라도 풀만큼도 못하더라도 그 생명력의 미소한 부분이나마 나에게도 미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 힘이 비록 나에게 이르러 잎이나 꽃이 되어 피어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이 풍진 세상을 참고 견딜 수 있는 힘이 된다면 어찌 미소하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땅기운과의 이런 편안한 친화감에 힘입어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게 된다. 이렇게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기쁨을 누리는 동안만 살게 하소서, 라고. - P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지혜에는 ‘넓이가 있고, ‘깊이‘가 있고, ‘힘‘이 있다. ‘지혜의 힘‘이란 결단력을 말한다.
우리가 인생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은 퀴즈나 테스트처럼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문제는 상당한 시간을 들이지않으면 진정한 해결이 불가능할 뿐더러 문제 그 자체의 진의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긴 시간을 들여서 모든 것을 알아내기 전에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겠다는 태도로는 이 세상을살아갈 수 없다.
현대 의학의 수준으로는 몇 퍼센트밖에 해명되어 있지 않은 어떤 난치병일지라도 의사는 눈앞에서 고통받는 환자에게 무엇인가 처방을 내려야만 하는 것처럼,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어느 순간에는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한 단계 뛰어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비약을 해야 한다.
불연속적인 것을 연속적인 것으로 유도하는 두뇌의 관용성은 비약하는 것을 비약이 아닌 것같이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사람은 비약할 수 있다. 이것은 컴퓨터나 로봇에는 없는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다.
결단할 수 있는 힘, 어느 순간에 ‘얏!‘ 하고 비약할 수 있는힘, 이러한 지혜의 힘은 인생과는 직접 관계가 없어 보이는 공부하는 가운데서 키워지는 것이다.
지혜에는 내가 말한 것 이외에도 몇 가지 측면이 더 있을 것이다. 어쨌든 "왜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나는 "지혜를 닦기 위해서이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 P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1809년은 인류 역사상 참으로 대단한 해였다. 흔히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이든 Franz Joseph Haydn이 사망하고 멘델스존 Felix Mendelssohn Bartholdy이 탄생했다. 『우게쓰 이야기」로 잘 알려진 일본의 설화 작가 우에다 아키나리가 우리 곁을 떠나고 「검은고양이 The black cat」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 Edgar Allan Poe와 내가 은밀하게 좋아하는 러시아의 소설가 니콜라이 고골Nikolai Vasilievich Gogol이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1809년은 여느 해 못지않게 훌륭한 해이기는 하나 ‘참으로 대단한 해이어야 할 까닭이 무엇일까 의아해 할 분들도 계실 것이다.l99o9op99 I o
내가 1809년을 특별히 대단한 해로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인류 역사의 방향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은 대표적인 두 인물,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 찰스 다윈이 태어난 해이기 때문이다. 음악과 문학이 인간의 삶에서 과학과 정치보다 덜 중요하다는 뜻은결코 아니지만, 링컨과 다윈은 분야를 초월하여 인류사에 가장 거대한 족적을 남긴 위인들이라는 점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1809년 2월 12일 같은 날에 태어났다.
- P17

다윈이 아니었더라면 우리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모든 생물들이 태초 생명의 늪에서 우연히 발생한 지극히 단순한 하나의 생명체로부터 분화되어 나온 진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인간이라는 동물도 결국 이 세상 모든 다른 생물들과 근본적으로 한 가족이라는 사실처럼 우리를 철저하게 겸허하게 만드는 개념이 또 있을까? 다윈은 우리에게 생명권의 평등을 일깨워 준 사상가이다.  - P18

훌륭한 학술 이론이 갖춰야 할 속성으로 흔히 단순성 simplicity과 응용성robustness, 그리고 직관적 아름다움 intuitive beauty을 든다. 이론 자체가 너무 복잡하면 우선 활용도가 떨어지고 의미 전달에도 어려움이 많다. 수식으로 표현되는 수학적 이론들이 지니기 쉬운 결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다윈의 해‘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진화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교수가 편집하고 서문을 쓴 책이 2006년 노턴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윌슨 교수는 그 책의 제목을 그처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From So Simple a Beginning』라고 붙였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한 다음과 같은 말에서 따온 것이다. "그처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가장 아름답고 가장 화려한 수많은 모습의 생명들이 진화했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니." 사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처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이렇게 엄청난 생명의 다양성이 진화한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이 어쩌면 이렇게도 단순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장의 제목을 ‘진화론, 그 간결미 So Simple aBeginning, So Simple a Theory‘라고 붙였다. 다윈의 진화론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은 우선 간결함이다.
게다가 이처럼 간결한 이론이 설명하지 못할 현상이 거의 없다는것은 더욱 큰 놀라움이다.  - P21

이러한 변이들 중 유전하는 것만이 자연선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둘째 조건이다. 다세포 생물은 기능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 종류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몸의 구조를 이루는 체세포somatic cell이고 다른 하나는 번식을 담당하는 생식 세포reproductive cell이다. 한 생명체가 생애를 통해 아무리 많은 변화를 겪는다 해도 그것이 생식 세포 내의 변화가 아니면 다음 세대로 전해질 수 없다. 체세포의 변화는 당대에만 나타날 뿐 자손에는 전달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 Jean Baptiste Lamark의 ‘획득 형질의 유전‘ 개념의 맹점이다. 당신이 만일 금발의 딸을 원한다면 ‘금발 유전자‘를 지닌 북구의 여인과 결혼해야지 미용실에서 금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한국 여성과 결혼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 P27

진화학에도 대진화macro-evolution 와 소진화micro-evolution가 있다. 하나의 종이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변화를 거쳐 새로운 종으로 분화하는 것이 대진화라면 시간에 따른 개체군의 유전자 빈도의변화, 즉 세대를 거듭하며 개체들의 형태, 생리, 행동 등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소진화라고 한다. 세대가 아주 짧은 미생물의 경우에는우리가 실제로 종의 분화를 목격할 수 있지만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다세포 생물의 대진화를 관찰하기에는 우리 자신의 수명이 턱없이 짧다.
사람들은 흔히 대진화를 진화의 전부로 착각한다. 그래서 진화가 멈췄다는 궤변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지만 소진화는 결코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그리고 여러분이 글을 읽고 있는 동안에도 지구상 어딘가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고있다. 그 아기가 갖고 태어나는 유전체genome 때문에 우리 인류 전체의 유전자군gene pool의 구성은 미세하지만 분명히 변화했다. 이것이 진화의 현장이다. 진화의 필요충분조건 네 가지가 모두 일어나야하지만 그중 어느 하나라도 일어나지 않을 확률은 거의 없다. 진화는 결코 멈출 수 있는 게 아니다. - P30

 1858년 앨프리드러셀 윌리스 Alfred Russel Wallace와 함께 영국 린네 학회Linnean Society 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다윈은 진화가 일어나기 위한 조건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 한 종에 속하는 개체들은 각자 다른 형태, 생리, 행동 등을 보인다. 즉 자연계의 생물 개체들 간에 변이variation가 존재한다.
둘째, 일반적으로 자손은 부모를 닮는다. 즉 어떤 변이는 유전heredity한다.
셋째, 환경이 뒷받침할 수 있는 이상으로 많은 개체들이 태어나기 때문에 먹이 등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competition할 수밖에 없다.
넷째,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형질을 지닌 개체들이보다 많이 살아남아 더 많은 자손을 남긴다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 - P26

 돌연변이는 DNA가 복제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로인해 유전자 자체가 변형되는 유전자 돌연변이 gene mutation 와 DNA의 실타래인 염색체 일부가 소실deletion 되거나 중복 복제 duplication 되거나 뒤집힘inversion 또는 서로 자리바꿈 translocation을 하는 바람에 벌어지는 비교적 큰 규모의 염색체 돌연변이 chromosome mutation 의 형태로 나타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공정 중 품질 관리 면에서 단연 최고 점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생물의 세포 분열 메커니즘이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 수많은 생명체에서 쉬지 않고 일어났음에도 불량품을 만들어 낸 확률은 극히 낮다. 우리 몸에서 세포들이 분열할 때 품질 관리가 잘되지 않아 번번이 조금이라도 다른 모양을 한 세포들이 만들어진다면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마주하기가 겁날 것이다. 돌연변이는 그리 자주 일어나지도 않으며 일어나서 그리 좋을게 없는 현상이다. 아주 드물게나마 요행히 생존이나 번식에 유리한 돌연변이가 나타나 개체군 내에 어렵사리 자리를 잡는 것이다. 진화가 만일 바람직한 변이의 출현을 기다리며 돌연변이에만 목을 맸다면 지금과 같이 현란한 생물다양성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 P38

생물 진화의 현장은 대체로 국지적인 개체군population이다. 그래서돌연변이보다는 오히려 다른 개체군으로부터 새로운 유전자 변이가유입되어 변화를 일으키는 빈도와 규모가 훨씬 클 것이다. - P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다행히 집 앞으로 시냇물이 흐르고있다. 요새 같은 장마철엔 제법 콸콸 소리를 내고 흐르지만 보통 때는 귀 기울여야 그 졸졸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물소리는 마치 다 지나간다, 모든 건 다 지나가게 돼있다, 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린다. 그 무심한 듯 명랑한 속삭임은 어떤 종교의 경전이나 성직자의 설교보다도 더 깊은 위안과 평화를준다. - P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

마당에서 철따라 피고 지던 일년초 중 맨 나중까지 붉게 피던 백일홍마저 올겨울 첫추위에 얼어 죽고 나니 마당이 너무도 허전하여, 내년엔 일년초 따위 부질없는 것들 심지도 말아야지 하다가 문득 목련나무를 쳐다보았다. 목련나무는 마당에 꽃이 없긴 왜 없냐고 시위라도 하듯이 가장귀마다 솜털 보송보송한, 내년에 필 꽃망울을 촘촘히 매달고 있었다. 내가 너한테 또 졌다고, 소리내어 말하고 나서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 목련나무하고 나하고는 말이 잘 통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사연이 좀 있다.
- P11

자연의 질서를 긍정하고, 거기 순응하는 행복감에는 그런 불안감이 없다. 아무리 4월에 눈보라가 쳐도 봄이 안 올 거라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변덕도 자연 질서의 일부일 뿐 원칙을 깨는 법은 없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배우는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사물과 인간의 일을 자연 질서대로 지킬 수 있는방법에 대해서가 아닐까.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이 혹은 누군가가 거두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 - P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