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

마당에서 철따라 피고 지던 일년초 중 맨 나중까지 붉게 피던 백일홍마저 올겨울 첫추위에 얼어 죽고 나니 마당이 너무도 허전하여, 내년엔 일년초 따위 부질없는 것들 심지도 말아야지 하다가 문득 목련나무를 쳐다보았다. 목련나무는 마당에 꽃이 없긴 왜 없냐고 시위라도 하듯이 가장귀마다 솜털 보송보송한, 내년에 필 꽃망울을 촘촘히 매달고 있었다. 내가 너한테 또 졌다고, 소리내어 말하고 나서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 목련나무하고 나하고는 말이 잘 통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사연이 좀 있다.
- P11

자연의 질서를 긍정하고, 거기 순응하는 행복감에는 그런 불안감이 없다. 아무리 4월에 눈보라가 쳐도 봄이 안 올 거라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변덕도 자연 질서의 일부일 뿐 원칙을 깨는 법은 없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배우는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사물과 인간의 일을 자연 질서대로 지킬 수 있는방법에 대해서가 아닐까.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이 혹은 누군가가 거두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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