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위에 사는 풀벌레는 풀색을 띠고, 바다 밑 모래 바닥에 사는 가자미는 모래와 같은 색을 띠어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게 위장할 수 있다. 그러나 고등어를 비롯한 참치, 삼치, 정어리 등과 같이 평생을 물에 떠서 사는 표영어류(떠살이 물고기)는 위아래, 전후좌우 모두가 투명한 3차원 공간에 노출되어 있어 숨을 곳이 없다.
그래서 이들 떠살이 물고기는 대체로 등 쪽이 푸르고 배 쪽은 은백색이다. 등 색깔이 푸른 것은 먹잇감을 찾아 배회하는 바닷새가 하늘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바다색과 구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특히고등어 등에 있는 녹청색의 물결무늬는 물결이 어른거리는 자국과 같은 모양이다. 그리고 물 밑에서 수면을 보면 햇빛이 투과되어 은백색으로 보이는데, 고등어 또한 배가 은백색이어서 물 밑에 있는 포식자가 위를 쳐다보았을 때 분간하기 힘들다. 이와 같이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변 환경에 적응하여 자신을 숨기는 고등어의 보호색은 훌륭한 위장술이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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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문제‘의 해법을 발견한 것 같다. 많은 과학적 대발견이그러했듯이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해답은 명백했다. 그러나 스케줄에 없던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해법을 발견할 수없었을 것이다. - P7

그 다음에는 책상 위에 올라가 공중에 주먹질하며 입을 모아 "아스파이가 통치하라!"를 외쳤다. 내가 읽은 바에 따르면,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아이들은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감이 없는 경우가 많다.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이번 경험이 그것을 일시적으로 치유해 주는 것 같았지만, 부모들은 또다시 긍정적인 피드백을주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소리치고, 어떤 경우에는 아이들을 책상에서 끌어 내리려고 시도했다.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보이는 진전보다 사회적 관습에 더 집착하는 것 같았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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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이 이모네 집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나는 시현이네 집에서 살아보았지만 시현이는 이모네에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모른다. 허름함의 첫 충격을 극복하기만 하면 시현은 스마트폰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곳을 좋아할 것이다. 하루 종일 유튜브를 들여다보며 춤동작을 연구할지도 모른다. 곽은태 선생님부부가 꿈꾸는 시현의 미래와는 전혀 다른 길로 가게될지도 모르고, 나는 그런 시현의 미래에 대해 아무 책임도 질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달콤한 무심함을 시현에게 한 숟갈 떠먹여주고 싶었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 최고의 가정에서 자란 시현이 단 하나 가지지 못한 바로 그것. 허술하고 허점투성이인 부모 밑에서 누리는 내마음대로의 씩씩한 삶 말이다. - P244

이모의 나직한 목소리가 내 귓전을 떠돌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을 모두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는 들고, 어느 정도는 흘려보냈다. 나를 휘감고 있는 단단한 팔뚝, 내 볼을 쓰다듬는 손바닥, 언제나 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 딱 알맞은 압력, 그것에대해서만 생각했다. 그것이 없는 삶이라니. 내생에서 음식물 쓰레기통이 사라지면 이모 김은숙 씨도 함께 사라진다니. 그 둘이 하나였다니, 세상에 이럴 수가나는 나도 모르게 의미 없는 덧셈과 뺄셈을 무한히 반복하곤 했다. 나에게 부모가 있었다면 나에게 곽은태 선생님처럼 훌륭한 부모가 있었다면, 나에게 기부금이 없었다면 나에게 그 음식물 쓰레기통이 없었다면 가능하지도 않은 덧셈뺄셈에 병자처럼 집착해, 날마다 셈이 달랐다. 어떤 날은 어차피 부모도 없는데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가 어떤 날은 부모가 없으니 다른 건 하나도 밑질수 없다고 발악했다. 셈이 남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떤 날은 크게 밑지고 어떤 날은 적게 밑졌다.
그 모든 덧셈과 뺄셈에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숫자가 바로 이모였다. 한 번도 변한 적 없이 내 곁에 있어서 의미를 고민할 필요가없었던, 그 존재조차 의심해본 적 없는 한 사람이었다.
그 이모가 내 곁에 있을 수 있었던 건 바로 내가 음식물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나왔기 때문이다. - P260

시현은 재수 없고 싸가지 없고 인정사정없었다. 그런데 그의 부모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이런 순간의 시현이 가장 시현답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재수 없고 싸가지 없는데도 미워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알 수 없이 홀딱 반하게 되는 것이 시현의 힘이다.
이모라면 시현의 그 힘을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성깔 부릴 때 쪽찢어지는 저 눈이야말로 시현의 제일 예쁜 점이라고, 저 화살 같은 눈으로 자기 갈 길을 정확하게 찾아간다고 얼토당토않게 갖다 붙이고 흐뭇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모가 소망한 대로 시현은 화살이되어 자기 길을 날아갔을 것이다. - P264

내 귓가엔 음악이 흐르고 있다.
나는 어디에도 설 수 있다.
나는 춤추고 있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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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누구든 입을 연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바로 너 때문이야. 곽은태 선생님은 아내에게 성난 눈길을 던지고, 시현 엄마는 아들을 야단치고, 시현은 나를 노려보고 있다. 그러니까 최종적으로는 나 때문인 것이다. 지금은 침묵 속의 비난을 조용히 견디고, 숨은 이유는 차차 찾기로 한다. 일단은 마음속으로 힘겹게 중얼거렸다. 나 때문이 아닐 거야.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화를 내지만 그 진짜 이유는 얼토당토않은 곳에 따로 있다. 이모가 나에게 가르쳐준 그 놀라운 비밀은,
지금 내가 이 고통스러운 죄책감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되어주었다. - P172

곽은태 선생님은 아들의 그 멋진 공연을 보러 오지 않았고 시현이 엄마는 그런 공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울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바닷가재 레스토랑에서 시현이 바닷가재가 맛없다고 삐죽거렸던 것이 생각났다. 그들은 각각 최고의 것을 눈앞에 놓고도 그건 하나도 좋은 게 아니라고 손발을 내저었다. 가족이란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세상이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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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억 년 전에 생명체가 원시 대양에서 나온 이후 다른 분자를사용하여 자신을 복제하는 분자의 수는 증가했다. 그러다 그 몇몇분자들은 협동과 분화의 이점을 알게 되었고, 염색체라는 그룹을 만들었으며 세포라는 기계를 작동하여 효과적으로 염색체를 복제할수 있었다. 마치 작은 농부 집단이 목수와 대장장이를 만나 촌락이라는 작은 협동 조직을 형성하듯이. 그리고 촌락 부족을 이룬 것처럼.
염색체는 몇몇 세포를 합쳐서 초세포Super cell를 만들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세포는 이렇게 여러 종류의 박테리아가 모여서 형성되었다. 부족에서 국가로, 그리고 제국이 되어가듯이, 세포들은 뭉쳐서 유전자 집합체의 거대한 집합체인 동식물과 균류를 만들었다.
인간 사회에서 이러한 과정은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에 앞서사회적 이익을 강요하는 법이 시행되지 않고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전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후세들이 유전자를 평가하는데는 한 가지 기준만이 있다. 바로 다른 유전자들의 조상이 되는가이다. 대체로 다른 유전자의 희생을 통해서만 이것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부를 축적할 때 합법적이건 불법적이건 타인을 설득해 그의 부를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전자가 독립하면 그때는다른 모든 유전자는 적이 되어 모두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게 된다.
만약 유전자가 연합체의 일부라면 경쟁 연합을 패배시키는 데 똑같은 관심을 보일 것이다. 마치 보잉사의 직원들이 에어버스사의 희생속에서 성공하는 데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 P150

바도개개의 유전자 차원에서 보면 유전자는 성을 통해 수직적으로뿐아니라 수평적으로도 퍼져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유전자가 자신이 거주하는 전달체에 성을 갖도록 했다면, 설령 개체에게불이익이 가더라도 유전자의 이익을 위해 뭔가를 하도록 만들 수도있었을 것이다(가능하다면 후손을 남길 수 있는 쪽으로). 광견병 바이러스가 다른 개로 퍼지기 위해 개를 조종하여 무엇이든 물게 하듯이, 유전자는 다른 가계를 이룰 수 있도록 자신의 숙주가 성교하도록 만든다.
히키와 로즈는 특히 한 염색체에서 자신을 분리시켜 다른 염색체로 옮겨가는 전이인자 transposon 혹은 도약 유전자라는 유전자에 흥미를 느꼈다. 1980년 같은 시기에 두 그룹의 과학자들은 전이인자가 다른 유전자의 희생을 통해서 자신의 복제만을 퍼뜨리는 ‘이기적인 기생 DNA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과거의 과학자들처럼전이인자가 개체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이유를 찾기보다는 전이인자가 개체에게는 나쁘지만 전이인자 자신에게는 이익이 된다는 점을 간파했다. 강도와 무법자는 사회에 이익을 주기보다는 손해를 끼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리처드 도킨스에 따르면 아마도 전이인자는 ‘무법자 유전자‘ 이리라. 또한 히키는 전이인자가 근친교배나 무성교배하는 생물보다는 이계교배하는 유성생식 생물에서 더 흔하게 발견되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는수학적 모델을 이용하여 기생적인 유전자가 숙주에 악영향을 주더라도 잘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였다. 그리고 히키는 유성생식 종에서는 빠르게 퍼지지만 무성생식 종에서는 느리게 퍼지는 효모의 기생성 유전자를 찾았다. 그러한 유전자는 ‘플라스미드plasmid‘ 혹은독립된 작은 DNA 고리에 위치하며, 박테리아에서는 이런 플라스미드가 유전자들이 퍼지는 수단인 접합을 유도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들은 개들이 서로를 물어뜯게 하는 광견병 바이러스와 같다. 나쁜유전자와 전염성 바이러스의 경계선은 모호하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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