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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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 탁자에서는 나이프를 포크와 평행이 되도록 가지런하게 놓았다. 5번 탁자에서는 물잔을 12시 방향에서 1시 방향으로 옮겼다.
6번 탁자에서는 립스틱 자국이 남아 있는 와인 잔을 급히 수거했고,7번 탁자에서는 비누 얼룩이 남아 있는 은제 스푼을 거꾸로 비치는식당의 상이 은 표면에 깨끗이 보일 때까지 열심히 닦았다.
이런 행동은 나폴레옹이 동트기 전 병사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탄약 저장량에서부터 보병의 복장 상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점검하면서 보여주었던 바로 그 모습이라고 얘기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것이다. 나폴레옹의 행동은 전투 현장에서의 승리는 바로 군화의광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경험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치르 마에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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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

2010년 8월 18일 월요일
워싱턴주 

린우드마리는 경찰 조사실을 나와 형사, 경사와 함께 경찰서 계단을 내려왔다.
마리는 이제 울먹이지 않았다. 경찰은 그녀를 계단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사람에게 인도했다. 마리는 일정한 나이가 되어 위탁가정에서 나온10대들을 지원하는 기관에서 도움을 받고 있었고 두 사람은 기관의 간사들이었다.
한 명이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너 강간당한게 맞니?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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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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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상에서 인간이 존재한 곳에서는 언제나 추방당한 사람들이 있었다. 원시 부족에서 가장 앞선 사회에 이르기까지, 같은 구성원들로부터 짐을 꾸려 변경을 넘어가서 다시는 자신이 살던 땅에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일 터였다. 추방은 인간 희극의 제1장에서 하느님이 아담에게 내린 형벌이었다. 그리고 몇 페이지 뒤에서 하느님은 카인에게도 그 벌을 내렸다. 그렇다, 추방은 인류의 탄생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그런데 러시아인들은 국외가 아니라 자국 땅으로추방하는 개념을 터득한 최초의 민족이었다. - P266

일찍이 18세기에 차르는 적들을 나라 밖으로 내쫓는 것을 그만두고 대신 시베리아로 보내는 형벌을 택했다. 왜? 왜냐하면 그들은하느님이 아담을 에덴동산 밖으로 추방한 것처럼 어떤 사람을 러시아 밖으로 추방하는 것은 형벌로서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로 보내면 추방당한 자가 죽기 살기로 열심히 일해서집을 짓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즉 추방당한 자가 자신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타국 대신 자기 나라로 추방하면 삶을 새롭게 시작한다는게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자국 추방은 시베리아로 보내든 ‘6대도시 금지‘형에 처하든 간에 자기 나라에 대한 사랑이 시간의 흐름에 부식되어 흐릿해지거나 시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인간은 우리의 손이 미치는 곳 바로 너머의 것에 최대한의 관심을 기울이는 종으로 진화해왔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모스크바의훌륭하고 장려한 것들을 자유로이 즐길 수 있는 그 어떤 모스크바사람보다도 더 애틋하게 그러한 훌륭한 것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 P267

"자, "노인이 재촉했다. "드셔보세요."
백작은 순순히 스푼을 입에 넣었다. 곧장 신선한 꿀의 익숙한 달콤함이 입안에 고였다. 햇빛, 황금색, 즐거움을 나타내는 꿀의 향이입안 가득 퍼졌다. 백작은 계절이 이맘때인 것을 감안하면 이 첫느낌에 이어 알렉산드롭스키 정원의 라일락이나 사도보예 환상도로의 벚꽃을 암시하는 향이 뒤따를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영험한묘약 같은 벌꿀이 그의 혀에서 녹자 백작은 전혀 다른 어떤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 꿀은 모스크바 중심부의 꽃나무가 아니라 풀이 무성한 강둑과…… 여름날 산들바람의 흔적과…… 퍼걸러의 아늑함.... 등을 떠올리게 했다. 무엇보다도 그 꿀에는 꽃이 만발한수많은 사과나무를 암시하는 또렷한 향이 있었다.
아브람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니즈니노브고로드." 아브람이 말했다.
과연 그랬다.
명백히 그러했다.
"얘들은 수년 동안 줄곧 우리가 나누는 얘기를 들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아브람이 나직이 덧붙였다.
백작과 잡역부 노인 둘 다 지붕의 가장자리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150킬로미터 이상을 여행하면서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한벌들이 이제 먼 여행의 한 점 목적지였던 자신들의 벌통 위를 별 모양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 P270

백작은 거의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아브람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내 대부의 책상 다리 안에 쌓인 금붙이 더미에 다시 집어넣었다(그 동전은그 후 28년 동안 거기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6시 보야르스키가 문을 열었을 때, 식당 문을 열고 맨 처음 들어간사람은 백작이었다.
"안드레이." 그가 보야르스키 지배인에게 말했다. "잠시 내게 시간을 좀 내줄 수 있겠소......?" - P271

8시 30분,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은 처마를 때리는 빗소리에 몸을 뒤척였다. 그는 반쯤 눈이 잠긴 상태로 시트를 젖히고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어 가운을 걸치고 슬리퍼를 신은 다음다리가 세 개인 농에서 커피 원두가 든 양철통을 꺼내, 커피 그라인더에 원두를 한 스푼 넣고서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가 조그마한 손잡이를 계속 돌리는 동안에도 방은 여전히 미약하나마 수면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아직은 기세가 살아 있는 졸음이 시각과 감각, 형상과 형식, 얘기된 것들과 해야 할 것들에 계속그림자를 드리우며, 그 각각의 요소에 제 나름의 비현실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백작이 그라인더의 작은 목제 서랍을 열자, 세상과 세상 속 만물이 연금술사들이 선망했던 바-갓 간 원두의 향-대로 바뀌었다. - P275

타인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삶을 살던 사람이 엄청난 좌절을 경험할 때, 그 사람에게는 여러 대안이 주어진다. 수치감에 사로잡힌사람이라면 자신의 처지에 닥친 모든 변화의 증거들을 감추려 할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모은 돈을 도박으로 몽땅 날려버린 상인이라면 고급스러운 양복을 닳아 해질 때까지 입으면서 이미 오래전에회원권이 말소된 전용 클럽에서의 무용담을 줄줄이 늘어놓을 것이다. 만약 자기 연민에 빠진 자라면 자신이 축복을 누리며 살았던 세상으로부터 물러날 것이다. 아내 때문에 사회적 수모를 당하고 오랜 세월 고통을 겪은 남편이라면 집을 떠나 도시 반대편의 작고 음침한 아파트로 이사할 것이다. 아니면 백작과 안나처럼 그저 간단히 ‘초라한 자연맹‘에 가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프리메이슨과 마찬가지로 ‘초라한 자 연맹‘은 긴밀한 형제애를지닌 조직으로서, 회원들은 겉으로 표시 내지 않고 돌아다니지만한눈에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 초라한 자연맹 회원들은 우아한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몰락했기 때문에 어떤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아름다움, 영향력, 명성, 그리고 남한테 받기보다는베푸는 특권에 대해 알고 있으므로 쉽사리 감동하지 않는다. 성마르게 누구를 시기하거나 공격하지도 않는다. 혹시라도 자기 이름이언급되었는지 확인하려고 신문을 샅샅이 훑는 법도 없다. 그들은 여전히 동료들 사이에서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들이 나누는 인사에는 경계심이 깃든 찬사, 연민이 담긴 야심, 그리고 속으로 웃는 겸양이 배어 있다.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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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바로 얼마 전에 호텔 로비에서 잠깐 동안 만난 사람에 관한 첫인상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겠는가? 아니, 그 누구든간에 그 사람에 관한 첫인상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겠는가? 첫인상이라는 것은 단지 하나의 화음이 우리에게 베토벤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것, 또는 하나의 붓 터치가 우리에게 보티첼리에관해 말해줄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너무변덕스럽고 너무 복잡하고 엄청나게 모순적이어서 우리가 숙고해야 할 뿐만 아니라 거듭 숙고해야 하는 존재다. 인간은 우리가 가능한 한 많은 상황에서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겪어보기전에는 그 사람에 관한 견해를 보류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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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층과의 싸움에서 프롤레타리아를 대신한 볼셰비키의 승리가아무리 확고하다 해도 그들도 머잖아 연회를 열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로마노프 왕조 시절만큼 많지는 않겠지만 가을 무도회나 즉위 60주년 기념제는 없을 것이다-그들도 뭔가를 기념하지 않을 수없을 것이다. 『자본론』 출간 100주년 기념이든 레닌의 수염 25주년기념이든 간에 아무튼 기념 연회를 열게 될 것이다. 초대 손님 명단을 작성하고, 그걸 줄여나갈 것이다. 초대장을 인쇄하고 배달할 것이다. 거대한 원형으로 배치한 테이블 주위에 사람들이 모였을 때 새 정치인들은 우뚝 서서 장광설을 늘어놓는 연사를 방해하지 않고) 웨이터에게 아스파라거스를 조금 더 가져와야 할 것 같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끄덕 고갯짓을 할 것이다.
화려함은 끈질긴 힘이니까 말이다. 영악함도 끈질긴 힘이다.
황제가 계단 아래로 끌려 내려와 거리에 던져질 때 화려함은 얼마나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는가. 그러고 나서 화려함은 조용히 알맞은 때를 기다리며 새로 임명된 지도자의 복장에 관해 조언해준다. 그 지도자의 외모를 칭찬하면서 한두 개의 훈장을 착용하는 게좋겠다고 제안한다. 또는 공식 만찬 자리에서 그 지도자를 접대하면서, 화려함은 이 같은 막중한 책임을 맡은 분께는 더 높은 의자가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일부러 들리도록 중얼거린다.
일반 병사들은 구체제의 깃발을 승리의 장작더미에 던져버리겠지만, 그러나 곧 트럼펫이 울려 퍼지고 화려함이 옥좌 옆에서 다시 역사와 왕들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 P98

그러나 시대와 어울리지 못하던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자신이 딱알맞은 때에 딱 알맞은 장소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태가 전개될 수도 있다. 그 사람에게는 너무 생경해보이던 양식과 태도가 갑자기 깡그리 무시되고, 그 사람의 내면 깊은 곳의 정서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양식과 태도로 대체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랜 세월을 낯선 바다에 표류하던 고독한 뱃사람이어느 날 밤 잠에서 깨어 하늘을 보니 그곳에 익숙한 별자리가 있는것을 발견한 것과도 같은 상황이 된다.
이런 일-이처럼 별들이 특별히 재배치되는 일이 일어날 때자신의 시대와 너무 오랫동안 어울리지 못했던 그 사람은 상황이지극히 명료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갑자기 지나간 모든 것들이 이런 일이 일어나는 데 필요한 과정이었다는 게 뚜렷이 보이고, 앞으로 펼쳐질 모든 전망이 더없이 명확한 운율과 이유를 띠게 된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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