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당신만의 연례행사가 생기기를

제철을 챙기는 마음은 언제 싹터서 이만큼 자라났을까.
하루에 버스가 몇 대 다니지 않는 시골 마을에서 자랄 때에는 그저 더 넓은 곳으로 가는 게 소원이었다. 내가 사는 곳이 좁다 여겼을 뿐 문밖의 자연이 크고 너른 줄은 몰랐던 시절. 열아홉에 서울로 올라와 낡고 좁은 방들을 전전하며 20대를 보낼 적엔 이 도시에서 내 자리 한 칸을 마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늘 고단했으므로 어디든 무엇이든 ‘마음 붙일‘ 곳이 필요했다. 모든 것이 낯선 도시에서 유일하게 익숙한건 해마다 돌아오는 계절뿐이었다. - P4

24절기란?
실제로는 지구가 1년 동안 태양 둘레를 공전하지만, 지구의 관측자에게는 상대적으로 태양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천구상에서 태양이 1년에 걸쳐 이동하는 경로‘를 ‘황도‘라 부른다. 황도 한 바퀴인360도를 15도 간격으로 나누어 계절을 세밀하게 구분한 것이 24절기. 해가 만들어내는 1년간의 계절 변화를 스물네 개의 이름으로 표현한 셈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에 여섯 절기가 속하며, 한 절기의 길이는 약 15일로 한 달에 두 번 들어 있다.

절기 알기
음력이 아니라 양력 
절기는 천문현상을 관찰해 계절의 변화를 헤아리려 한 과학적인 역법, 태양의 겉보기운동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으며,종종 음력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지만 양력(태양력)에 따른 것이다.
하루가 아니라 보름 남짓 
"오늘은 절기상 입춘입니다" 보통 우리는절기를 하루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황도상에서 15도 간격으로 나눈 각 지점을 태양의 정중앙이 통과할 때가 24절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며, 다음 절기까지의 기간을 한 절기로 본다. 달력에 적힌 일자는입기일入氣日 (절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 P11

입춘이라 해도 2월은 아직 겨울 추위의 기세가 남아 있을 때라 누군가는 이게 무슨 봄이냐 투덜대고 누군가는 절기를 엉터리라 여기기도 한다. 잘못한 것도 없이 눈총 받아 서러울 입춘을 대신해 말하자면, 이런 차이는 24절기 명칭이 중국주나라 때 화북 지방, 지금의 황하 유역 기후를 바탕으로 한것이라 한반도 기후와 다소 다른 데서 발생한다. 하지만 도리어 그 차이에서 빚어지는 의미도 있다.
내게 입기는 늘 ‘배웅‘과 ‘마‘의 시간이다. 입춘은 떠나는 겨울을 시간 들여 배웅하고, 다가오는 봄을 마중 나갈때라고 알려준다. 미루다 놓친 겨울의 즐거움이 있다면 이참에 챙겨두라고 눈을 내려주기도 하고, 이른 꽃 소식을 통해봄엔 어떤 즐거움들을 통과하고 싶은지 묻기도 하면서.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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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도 소리를 질러 대서 스테파노는 사무실 문을 닫지않을 수 없었다.
「넌 나한테 거짓말을 했어, 개자식아! 너희의 그 개 같은 수용소에서 그 여자를 내보내!
그는 진정하라고 명령하더니 자신은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다고 단언했는데, 그건 사실이었다. 악의 아름다움은바로 악이 아무런 노력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기에 그 누구도결코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저 악이 지나가는 것을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 P528

그리고 제 연설은 오르시니 가문과 그리고 물론 저 자신의 전언이기도 한 친구의 말을 빌려서 매듭을 짓고자 합니다. <Ikh darf ayer medalye af kapores....... in ayertatnstatnarayn!> 발음은 봐주십시오, 이디시어랍니다. 글자그대로 옮기면, 이 메달, 그것을 당신 아버지의 아버지 안에집어넣어라> 혹은 덜 시적이고 보다 현대적인 이탈리아어로옮기면 <당신의 메달을 받아서 똥구멍에 처박아라>」대경실색으로 인한 침묵이 청중 위로 내려앉았다. 그 충격 - P538

파가 어찌나 거센지 지구가 축에서 살짝 벗어났던 것 같다.그러고는 형언할 수 없는 항의와 야유의 천둥이 터져 나왔다.평온한 표정의 마치스테는 팔짱을 낀 채 놀라 나를 응시했다.
「미모 비탈리아니와 오르시니 가문은 여러분에게 경의를표합니다. 사랑하는 친구들! 나는 시끄러운 소리를 누르기위해 고함을 질렀다. 「우리는 이 암살자들의 정권을 위해 결코 다시는 일하지 않을 겁니다!」나는 문지방을 넘기도 전에 체포되었다. 곁눈으로 보니 두명의 남자가 깜짝 놀란 스테파노를 양옆에서 에워싼 채 출구로 끌고 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얻어맞지 않았지만, 그 뒤로는 모든 것이 암흑이 되어 버렸다. 아마도 아주 오랜만에 처음으로, 바로 직전 순간에 내가 환한 빛을 발했기 때문이 아닐까. - P539

「트라몬타나, 시로코, 리베치오, 포넨테, 미스트랄, 어쨌든그렇게 어렵지는 않잖아!」 비올라가 역정을 냈다. 「이곳에 부는 바람은 다섯 개뿐이라고.」「트라몬타나, 시로코, 리베치오...... 포넨테, 그리고 미스트랄.」「한번더.」「트라몬타나, 시로코, 리베치오, 포넨테, 미스트랄.」불행히도 그만 「바람이 부네」라고 말하는 바람에 이 사달이 났다. 짜증이 난 비올라는 내 어깨를 한 대 때렸었다.
「말에는 의미가 있어, 미모, 명칭을 불러 주는 건 그걸 이해한다는 거야. <바람이 부네>, 그건 아무 의미도 없다고. 죽음을 몰고 오는 바람인가? 파종의 바람인가? 수확하기도 전에식물을 얼려 죽이거나 태워 죽이는 바람인가? 만약 말들에의미가 없다면 내가 어떤 의원 노릇을 할까? 다른 의원들과다를 게 하나도 없겠지.」「됐어 됐다고 이해했어.
「그러면 한 번 더 말해 봐.」「트라몬타나, 시로코, 리베치오, 포넨테, 미스트랄.」 - P566

 그날 저녁 잠자리에 들면서 나는 그 뒤로 벗어나지 못할 습관을, 아마도 미신적일 버릇을 하나 들였는데, 어둠과망각으로 빠져들기 전에 트라몬타나, 시로코, 리베치오, 포넨테,
미스트랄을 외우는 거였다. - P568

정오가 되기 전에 가장 먼저 비올라를 발견했다. 비올라의침실은 토사 더미에 파묻히지 않은 쪽 마지막 층에 있었다.나는 붙잡는 손들을 뿌리치고서 외침을 듣자마자 뛰어갔다.
공병 한 명이 폐허 더미 약간 아래쪽에 있던 또 다른 공병에게 비올라를 넘겼다. 그 두 번째 공병이 두 팔에 비올라를 받아 안고서 바닥에 눕히려고 막 쭈그려 앉은 참이었다. 비올라는 벌거벗었고 먼지로 뒤덮였다. 나는 그녀 곁에 무릎을 꿇고서 그녀의 얼굴을 만졌고 그곳에 굴러다니던 찢어진 커튼을끌어다가 몸을 가려 줬다. 오르시니 가문은 죽음과 이상한 협약을 맺었다. 그들을 훼손하지 않고서 데려간다는 협약, 비올라는 산산조각이 난 기차 옆에서 발견된 오빠 비르질리오처럼 말끔했다. 몇 군데 긁힌 상처와, 하늘을 난 지 30년이 지난지금까지도 다리와 팔과 상반신에 남아 있는, 나는 결코 본적 없는 엄청난 흉터를 제외한다면, 나는 무수한 봉합 자국을보고 나서야 비올라가 견뎌야만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비로소가늠하게 됐다. 오른쪽 다리가 무릎 아래에서 살짝 어긋나있었다. - P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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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의 이야기에 이런 빈 구멍들을 만들어 냈다고 비올라를 원망했다. 티끌 한 톨 지나갈 틈 없을 정도로 우리 사이가 가까웠는데, 나를 밀쳐내고 멀리 보내 버렸다고. 나는그녀를 원망했고, 그렇다는 것을 그녀에게 이해시키는 가장좋은 방법으로 떠나는 것 말고 다른 수단을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 쪽에 잘못이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비올라를 그런 식으로 취급하다니, 나는 비올라가 나의 우정을 누릴 자격이 없는 만큼이나 그녀의 우정을 누릴 자격이 없었다. 비올라는 나의 그림자가 되었다. 나는 비올라에게 욕하고 격노했고, 그 애도 그곳에서, 겨울의 차갑고 짙은 안개가밀려들면 오렌지에 서리가 내리는 그녀의 고원에서 똑같이그러고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똑같은 격분한 몸짓, 똑같은쓸데없는 비난. 우리는 둘 다 옳았고, 우리는 누가 누구의 거울인지 더는 알지 못했다. 스스로를 탓할수록 내가 스스로를탓하게끔 만든 비올라를 더더욱 원망했다. 그 애가 사과하지않는 한 다시 보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다. 착실한 그림자로서, 그 애도 그쪽에서 나만큼 그러고 있을 터였고, 우리는 그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서로의 삶에서 빠져나왔다. 이 끔찍한악순환, 이 희비극적 우로보로스가 그 뒤로 이어진 여러 해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P330

프란체스코에게서는 누이에게 있는 무언가가, 가령 상대방에게 말을 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독특한방식이라든가 갑자기 멍해지는 눈길 등이 보였다. 프란체스코가 몽상가가 아니라는 사실에 눈감는다면, 스물세 살 청년답게 몽상에 잠긴 태도라고 믿을 법했다. 하지만 그건 전나무꼭대기에서 생쥐 열 마리의 공포에 질린 달음박질을 동시에쫓아가며, 그들이 그릴 궤적을 예측하고 열 수 앞서 자신의먹잇감을 고르는 독수리의 자세였다. 그는 목소리에 그 시퍼런 날을, 고통 없이 목숨을 앗아 가는 그 예리한 날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조를 높이는 법 없이 위기의 뇌관을 뽑아 버렸다. 나는 거친 짐승 같은 작자들이 그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나를 대등하게 대했다. 그리고 오늘날 허풍 없이 말하건대, 나는 실제로 대등했다.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이 지성과 야망에 있어서 우리를 고갯짓과 어깻짓으로 지배했지만 우리는 절대 그 사람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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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려오면 우리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남자들은 노래를 불렀는데, 해야 할 말이 있어서였고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지 알수 없어서였다. 그런 밤이면, 바닥이 끈적이고 해적판 카루소의 노래에 취한 그 장소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대였다.
그곳의 팔리아치오들은 진정 미치광이들이었고 돈 조반니들은 말할 것도 없었으니, 노래하는 사람들 전부가 쉼 없이 사랑하고 살인을 저질렀으니까. 그해 여름 세상을 떠날 카루소에맞먹을 인물인데도, 방금 시칠리아에서 태어나면서 첫 발성연습을 한 디 스테파노에 버금갈 인물인데도, 이런 싸구려술집에서 좌초한 운명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한 걸음 잘못 내디뎠다가 시선을 잘못 돌렸다가, 스칼라 극장이 아니라 술주정뱅이들과 상이군인들과 피로와 지겨운 나날로 멍청이가 된사람들 앞에서 노래했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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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비올라는 이번에는 내 손을 잡더니 숲으로 이끌었다. 보다단련이 된 나의 눈에, 쓰러진 관목들과 부러진 가지들이 들어왔다. 땅바닥이 급경사를 이루며 내려가다가 단번에 올라가더니 소나무가 빽빽하게 둘러싼 동굴 입구로 이어졌다. 그중몇 그루는 쓰러진 모습이 통나무 장작을 쌓아 올린 것 같았다. 강렬한 사향내가 엄습했다. 동굴 입구에 찢어진 드레스를걸친 곰이 앉아서 몸을 긁적이고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자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금 뒷발로 일어섰다. 비올라는 내 손을 놓고 곰을 향해 뛰어가더니 그 배에 얼굴을 묻었다. 곰이 하늘을 향해 주둥이를 치켜들며 포효했다. 내 발이 딛고 선 땅이흔들렸다. - P195

「지붕에 누가 있어요!」다음번 폭죽이 터지면서 어떤 형체가 드러났다. 내가 가장좋아하는 형체, 비올라가 용마루 기와보다 조금 아래쪽에, 사람들이 결코 본 적 없을 가장 괴상한 야회복을 휘감고 서 있었는데, 녹색 계열의 색으로 범벅된 그 야회복의 거대한 꼬리는 하늘에서 계속 폭죽이 터짐에 따라 군데군데 어른거리며반짝거렸다. 그 애의 날개였다. 언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전날일 텐데, 헛간에 가서 찾아 둔 날개였다. 그것이 거기 모인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더 나은 존재임을 보여 주고, 그들에게 자신이 비범한 운명을 타고났음을 알려 줄 수 있는그 애의 유일한 기회, 마지막 기회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손님들이 서로 돌아봤다. 불안과 화약이 - P219

뒤섞인 고약한 냄새가 그 광경을 엄습했다. 후작의 목소리가울려 퍼졌고, 뒷부분의 말은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폭발음에끊겨 버렸다.
「비올라, 당장 내려오너라, 어・・・・・・・비올라는 알아들을 수 없는 무슨 말인가를 외치고는 지붕을 내달렸다. 줄들이 팽팽해졌고, 그 애의 뒤쪽에서 캐노피가기와 위를 미끄러졌다. 그 날개는 그렇게 낮은 높이, 건물 앞대지의 원래 경사도를 감안해도 기껏해야 15미터, 어쩌면20미터 정도의 높이에 맞게 고안된 게 아니었지만, 아침부터조용히 불던 미스트랄이 이 용감한 선각자에게 경의를 표하려는 듯 갑자기 거세게 불었다. 캐노피의 천이 팽팽하게 부풀었다. 비올라가 함석 홈통에 한 발을 내딛더니 허공으로 몸을내던졌다. - P220

가그 첫 주에 나는 우표를 하나 얻어 낼 수 있었다. 나는 별항에게 (치오가 내 편지를 가로채리라는 건 쉽게 짐작이 가서 그애의 어머니네로) 편지를 썼고, 같은 편지 속에 비올라에게가는 편지를 집어넣었다. 매일 아침, 불안으로 뱃속이 똘똘뭉친 채 여전히 나의 제일 친한 친구를 품고 있는지 알 길 없는 세상을 향해 눈을 떴다. 나는 점술가가 되어, 필요에 따라서 만들어 낸 수많은 전조를 하루 속에서 찾았다. 이 굴뚝 위에까마귀 세 마리가 앉아 있으면 비올라의 상태가 악화된다. 내가 숨을 쉬지 않고 이 계단의 층계참까지 단숨에 올라간다면 그 애는 - P241

살아난다. 저녁이 되면 식사를 마친 뒤 개흙 내와 차가운 공기에 취하고 조토의 종탑에 부서지는 달빛에 매료된 채, 진흙으로 덮인 아르노강 주변을 거닐었다. 단 한 번도 강을 건너지는 않았는데, 그렇게 지극한 아름다움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느껴서였고, 비올라와 함께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을 봐야 하는데 어쩌다가 그의 작품과 맞닥뜨리게 되는 일이 벌어지길 원치 않아서였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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