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지위가 높은 태국인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드러낸 반감은 쫓겨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작가 마크사세르 Marc Saxer는 21세기 첫 십 년에 이르기까지 태국 민주주의규범의 수호자였던 도시 중산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머지않아 자신이 (…) 소수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똑똑한 정치 사업가들이 집결시킨 주변부 지역이 모든 선거에서 손쉽게 승리를 거뒀다. 사회·정치적 삶에서 온전한 참여를 요구한 시골 지역 중산층의 성장을 눈치채지 못한 중심부 중산층은 평등한 권리와 공공의 이익에 대한 요구를 "가난한 자들이 탐욕스러워졌다"라는 식으로 치부해버렸다"

이러한 인식은 2013~2014년에 걸친 시위를 자극했던 정서였다. 정치학자 던컨 맥카고Duncan McCargo 에 따르면, 기존 엘리트 집단의 주된 목적은 "여전히 지배 네트워크와 그 지지자들이 사회를 장악[가능]했던, 지방 유권자를 배제 [가능]했던 상상 속 탁신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1990년대에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많은 중산층 구성원들이 이제 시위 결과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2014년 잉락총리가 시위의 위험을 막고자 새로운 선거를 선언했을 때, 민주당은 이를 거부하고 선거를 보이콧하기까지 했다. 시위자들과 그들의 민주당 동맹이 무엇보다 두려워한 것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였다. 그래서 한때 쿠데타와 왕족의 절대 권력에 격렬하게 저항했던 민주당은 2014년 쿠데타를 암묵적으로 지지했고, 이후에군부가 이끄는 행정부에 합류했다." 민주주의가 방콕 엘리트의사회·문화·정치 권력에 도전하기 시작했을 때, 민주당은 민주주의에 등을 돌려버렸던 것이다.
두려움은 때로 사회를 독재로 되돌리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정치권력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더 중요하게는 기존의 지배적인 사회적 지위를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바로 그러한 힘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주류 정당이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민주주의로부터 등을 돌리게 된다면, 정확하게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무엇이 태국의 민주주의를 공격했는지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태국 역사에서는 군부가 열두 번에 걸쳐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유서깊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런 방식을 보기도 더 힘들고, 막기도 더 어렵다. - P51

민주주의에ㅠ헌신적인 정치인들, 혹은 정치학자 후안 린츠Juan Linz가 충직한 민주주의자 loyal democrat라고 부른 사람들은 언제나 세가지 기본적인 행동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첫째, 승패를 떠나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의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 이 말은 패배를일관적이고 명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민주주의자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혹은 폭력을 쓰겠다는 위협)을 사용하는 전략을 분명히 거부해야 한다. 군사 쿠데타를 지지하고, 폭동을 조직하고, 반란을 조장하고, 폭탄 투척 및 암살 등 다양한 테러 행위를 계획하고, 정적을 물리치거나 유권자를 위협하기 위해 군대나 폭력배를 동원하는 정치인은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위 두 가지 기본 원칙‘을 어기는 모든 정당과 정치인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야 한다.
충직한 민주주의자에게 요구되는 또 하나의 미묘한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반민주주의 세력과 확실하게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것이다. 민주주의 암살자에게는 언제나 공범이 있다. 그 공범은민주주의 규칙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그 규칙을 공격하는 정치 내부자들이다. 린츠는 이들을 가리켜 "표면적으로 충직한 semi-Hoyal" 민주주의자라고 불렀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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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과 학대,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들은 질병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 가난하게 태어나거나,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은 질병에걸릴 확률이 더 높다. 백인 동네에 사는 유색인들은 질병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 (...) 곤경과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정신병에 걸릴 위험이 더 높다!

조현병 발생schizophrenogenesis =조현병schizophrenic+발생genesis: 조현병을 발생시킴. 때로는 조현병 발병을 나타내며, 때로는 그 원인을 지칭함. 정신이 분열되는 이야기. 권력의 눈 밖에 나기에 관한 이야기. - P201

사람들이 본능적인 직감을 누르려고 그럴 때가 있듯, 나는 우선 ‘논리적 설명‘을 찾았다. 아버지는 엄마의 불안정한 행동을 갱년기 탓으로 돌렸는데, 아마도 ‘인생의 전환기‘와 관련된 ‘광기‘란-극심한 고통을 유발하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광기가아닌 여성 질환이라는 케케묵은 시각을 고수했을 것이다.
몇십 년이 지난 후에야 연구자들은 완경에 수반되는 에스트로겐 호르몬 감소가 실제로 조현병 촉발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고, 에스트로겐 요법이 이에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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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은 삶에 위기가 닥치거나, 심각하고 비극적인 불행이찾아왔을 때 촉발될 수 있다. (...) 발병 초기에는 보통 처음에 경미해 보였던 증상으로 시작해 서서히 진행되는데, 이것이 나중에는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 P221

"미안하지만, 우리가 어머니를 위해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그 전문가가 내게 한 말에 따르면, 엄마 인생은 이미 망가졌고 구하려 들 가치도 없었다. 정신건강 시스템을 처음 경험해보았던 내게는 그가 해준 조언을 평가할 참조 사례가 없었고, 그 상담사가 엄마의 상황을 오해했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상담사가 남자들이 흔히 그러듯-엄마도 20대에 조현병이 발병했으리라고 가정했을지 모른다는 걸 나로선 알 도리가없었다. 정신의학에서는 치료가 지연될수록 예후가 좋지 않다고보았기에, 상담사는 엄마의 증상이 20년 넘게 치료받지 못한 상태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조현병에 대한 통념은 그때나 지금이나 남성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남성의 조현병 발병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최고조에달하지만, 여성은 25세 이상에서 발병이 많다! 또한 여성은 45세부터 완경기 즈음에 두 번째로 발병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시기가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은 1993년에야 연구에 의해 밝혀졌고, 그나마도 주류 의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청년기는 100여 년 동안 진단 기준 가운데 하나였다. 편람에서도 조현병의 진단에 때때로 연령 제한이 포함되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40세 이상이면 조현병 진단을 붙일 수 없었다. 2020년 현재도 WebMD [미국의 건강 정보 포털] 같은 인기 웹페이지에서 "조현병은 12세 미만, 40세 이후 연령대에서는 드물게 발병한다"라는 문장을 발견할 수 있다. 조현병에 대한 통념은 45세 여성에게 조현병이 처음 발병할 수 있다는 현실에 반하는 것이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나는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이 순간을 내 한의 시발점으로 여기게 된다. 한이란 "불의에 대한 풀리지않는 억울함"이자 "맺혀서 풀어지지 않는(...) 멍울" "응어리진 비통함"을 가리키는 번역 불가능한 한국어다." 한은 지속되는 트라우마에 대한 의식, 그것이 풀리지 않는 상태를 지칭할 뿐 아니라, 그 풀이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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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가족들도 엄마를 경계했다. 엄마는 남편 식구들에게 친숙한 음식을 요리하는 법을 배우고 초록색 젤리와 보드카믹스까지 갖춘 정통 미국식 추수감사절 잔치까지 열면서 이들의 두려움을 조금씩 떨쳐냈다. 미국인 손님들이 떠난 다음 날 엄마는 남은 칠면조 고기를 된장, 김치와 곁들여 내놓았다.
미국의 새 가족과 어울리며 주변화된 엄마의 경험은 국제결혼을 한 다른 한국 여성들에 비하면 극단적인 것은 아니었다. 역사학자 여지연 교수의 미군과 국제결혼한 한국 여성 구술사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미국 요리를 함으로써, 본인의 문화를 희생해가며 남편의 문화를 부엌에서 재현하도록 기대되었다. 남편과 시댁 가족은 보통 한국 음식을 냄새나는 낯선 음식이라고 여겼으며, 여성들에게도 집에서 이상한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하거나 못 먹게 하기까지 했다. 이 국제결혼 가정의 아이들조차 때로는 한국 음식에 동화되기를 거부했고, 어머니의 문화를 배척했다. 한국 음식을 못 먹게 된 여성들은 김치 대신 미국 피클을 먹었고 빵 꽁다리와 칠리 플레이크를 섞어 고추장을 만들었으며, 진짜 한국식 반찬은 밥 한 공기를 다 먹은 동안 아주 조금씩 덜어 먹었다. - P153

케이와 제이슨이 갑자기 뿌리 뽑힌 채 한국을 떠나, 자기네 언어도 안 통하고 문화도 이해할 수 없는 셔헤일리스에서 새가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은 어떻게도 바꿀 수 없었지만, 엄마는 이 아이들에게 김치만큼은 떨어지지 않게 하겠노라 작심했다. 엄마는 아이들을 보자마자 당신이 먹여야 할 입이라는 걸알아보았고, 잠시나마 그 애들이 잃어버린 한국 엄마가 되어주었다.
나는 엄마가 이 아이들에게 그처럼 살갑게 대하는 모습이 늘 인상 깊었는데, 엄마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되면서, 당신이 겪은 상실을 투영한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았다. 그 안에서 엄마는 아이를 잃은 엄마였을까, 아니면 엄마를 잃은 아이였을까? 두려움과 슬픔에 떠는 아이들의 존재가 고아나 다름없이 전쟁 한복판에서 혼자 버텨내야 했던 시절의 기억을 촉발시킨 걸까? 아니면 미국에서 엄마가 겪은 소외감을 생각나게 했을까?
이후 연구 작업에서 특히 호수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나는아이를 입양 보낸 한국 생모의 전형적인 모습이 1950~1960년대의 기지촌 여성들로, 엄마와 비슷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나는 엄마가 당신이 복용하던 피임약이 효과가 없었다고 불평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 말을 했을 때 엄마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후회 같기도 공포 같기도 했는데, 그것은 엄마가 나나 오빠를 두고는 결코 내보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엄마가 포기한 아이가 또 있었던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건 엄마가 숨긴 비밀 중 가장 입 밖으로 내기 어려웠던 일 아니었을까. 앤더슨네 아이들은 엄마에게 미국 가정 한복판에떨어진 세 번째 아이의 유령을 떠올리게 한 걸까? 엄마를 찾아, 김치 맛을 그리며 우는 아이의 모습을?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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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부재는 역설적으로 그분을 내 삶 속에서 새롭게 현존하게 했다. 너무나 강렬했던 상실의 슬픔은 엄마의 질병 아래, 그리고 10년 가까이 내 연구 주제였던 트라우마로 점철된 역사 밑에 묻혀 오랫동안 잊었던 기억을 되살려냈다. 그것은 전형적인 조현병 환자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매력적이고 유능하며 놀라울만큼 생산적인 첫 번째 엄마에 대한 기억이었다. 이 기억의 전면에는 항상 음식이 있었다. 즐거움의 원천으로, 수입의 원천으로, 아니면 좀더 근본적인 생존의 방식으로 음식을 먹는 장면으로돌아가서 나는 발견했다. 엄마를 망가뜨린 것뿐만 아니라 엄마를 살아 있게 했던 것을.
나는 엄마의 파편을 모아 그분의 생존에 대한 한 편의 이야기를 엮어내고 싶다. 글쓰기로 엄마의 존재를 되살려, 페이지 위에서 그분의 유산을 살아 숨 쉬게 하고, 그 자취를 따라 내 유산을 찾고 싶다. - P23

식구들은 엄마의 작은 주방에 간편하게 물만 붓거나 통조림만 따면 쉽게 먹을 수 있는 즉석식품도 많이 쟁여두었다. 올케는 엄마가 라면과 과일 통조림은 먹어도, 분유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가 굶지 않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영양이 턱없이 부족한 식단이라 그게 신경 쓰였다.
"엄마, 음식 잘 잡고 계세요?" 내가 물었다.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백질은요?"
엄마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코를 킁킁거렸다. "나한테 분유를 주더라."
"아, 그래요?" 나는 놀란 척하며 말했다.
하던 생각이 끊긴 듯, 엄마는 잠시 조용해지더니 환각적 몽상에 깊이 빠져드는 듯했다.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엄마는 말했다. "전쟁 같은 맛이야."
엄마가 묻지도 않았는데 전쟁 얘기를 꺼낸 건 이번이 겨우 두번째였다. 그 말을 듣자 연구 내용이 파편처럼 머릿속에 떠올랐고 나 역시 몽상에 빠져들었다. 죽은 엄마의 시신 옆, 흙길 바닥에 나앉아 있는 아기들, 네이팜탄에 화상을 입고 미라처럼 붕대를 감은 여자들의 모습. 미군기가 공중에서 폭탄을 떨어뜨려 아이를 잃은 노근리 학살 생존자 여성의 말. 그날 미국의 두 얼굴을봤어요! 미국의 식량 원조를 회고하는 전쟁 신부의 말. ‘양키‘가 우리를 구하러 왔다는 말을 들었어요…. 쌀이나 보리를 기다리던 차에, 먹을 게 넉넉히 올 거란 생각에 침을 흘렸죠..... 그랬는데 분유만 끝없이 쏟아졌고, 그걸 타서 마시는 사람마다 며칠씩 설사로 고생을 했어요? - P39

"단일 민족, 단일 국가"라는 일국일민주의 기치를 내걸었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양부인과 혼혈 아동의 존재를 "사회적 위기"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미군 아기 문제의 해결책으로 이 아이들을 초국적 입양 대상자로 만드는 대통령령을 선포했다. 미국 선전물은 이 혼혈 아동들이 가난하고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로 공산주의의 손아귀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취약한 처지에 있다고 묘사하면서, 이들을 구제하는 것이 미국인의 애국적 의무라고 선전했다.
이와 더불어, 사회복지사들은 기지촌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한국이 그들의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아버지의 나라야말로 아이들이 가야 할 곳이라고 설득하는 공격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실제로 한국 법에 따르면 현실이 그러했다. 한국인 어머니와 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공립학교에 다닐 수 없었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등록할 수도 없었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이승만 정부의 정책으로 우리 망명의 조건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 P58

1987년쯤 되자 이민자를 혐오하던 사람 몇몇은 그래도 우리가족에게는 익숙해졌지만, 태평양 연안을 따라 정착하는 아시아인들을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로 보았다. 어떤 순간에는 타자에대한 이들의 공포감이 시나처럼 새로 온 이민자를 향해 파도처럼 솟구쳤고, 다른 순간에는 적개심이 미세한 파문처럼 먼지차별microaggression"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땐 이런 개념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전이었다.
난 칭크랑 잽 싫어. 걔네는 모든 걸 장악하려 들어. 네 얘기 하는 건 아니야! 너는 괜찮아. 너는 그런 사람들하고 다르잖아.
내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 스스로도 미국화된 반 미국인인 나는 이들과 다르다고마음 한구석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한구석으론 이런 말을 들으며 모욕감을 느끼고 괴로워했다. 그것은 내 아메라시안Amerasian 이중 의식이었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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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2021년 1월 5일, 조지아주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백인 우월주의가 오랫동안 정치판을 잠식했던 바로 그 주에서 유권자들은 그들의 첫 번째 아프리카계 미국인 상원 의원 레버런드 라파엘 워녹Reverend Raphael Warnock과 첫 번째 유대계 미국인 상원 의원을 기록적인 수치로 선출했다. 워녹은 재건 시대 이후 미국 남부 지역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공화당 정치인 팀 스콧Tim scott에 이어 두 번째로 선출된 흑인 상원 의원이었다. 그날 밤 워녹은 옛날에 소작농이었던 자신의 어머니에게 지지자들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남들의 면화를 골라내던 여든두 살 어머님 손이 당신의 막내아들을 미국 상원 의원으로 뽑았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 선거 결과를 희망찬 민주주의의 미래를 나타내는 전조라고 봤다. ‘흑인 유권자도 소중하다 Black Voters Matter‘라는 이름의 단체를 공동 설립한 라토샤브라운 LaTosha Brown은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남부가 떠오르고 있다. 더 젊고, 더 다양하고 (…) 그리고 더 포용적인 모습으로." 이는 시민권운동가 세대가 구축하고자 했던 민주주의의 미래였다.
다음 날인 1월 6일, 미국인들은 상상조차 힘든 장면을 목격했다. 그것은 미국 대통령이 나서서 부추긴 폭동이었다. 이로써 4년에 걸친 민주주의 퇴보가 쿠데타 미수로 정점을 찍었다. 그 광경을 지켜봤던 많은 미국인은 다른 나라 국민들이 그들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느꼈던 공포와 혼란, 분노의 감정을 똑같이 느꼈다. 정치적 목적으로 시작된 폭력의 흐름, 선거운동원에 대한 위협, 투표를 더 힘들게 만든 갖가지 시도,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대통령의 획책 등 미국인들이 목격한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민주주의의 퇴보였다. 물론 2016~2021년 사이에 미국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 민주주의가 퇴보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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