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마니, 생명수 얻은 거는 빠쳤다.
오오 기래, 할마니가 깜박했다. 생명수 약수를 달랬더니 그놈에 장승이가 말허는 거라. 우리 늘 밥해 먹구 빨래허구 하던 그 물이 약수다.
기럼 공주님이 헛고생한거라?
바리야, 기건 아니란다. 생명수를 알아보는 마음을 얻었지비.
거 무슨 말이?
이담에 좀더 살아보문 다 알게 된다. 떠온 생명수를 뿌레주니까 부모님도 살아나고 병든 세상도 다 살아났다. 그담부턴 바리 큰할미는 우리 속에 살아 계신다. 내 속에 네 속에두 있댄 하지.
나는 할머니와 나란히 누워 그 얘기를 어둠속에서 몇번이나들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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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지던 때에 나는 겨우 열두살이었다.
어려서는 청진에 살았다. 우리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바지의 단독주택에 살았다. 봄이면 마을 빈터의 마른 잡초들사이에서 한무리의 진달래들이 이 묶음 저 묶음 다투어 피어나 아침저녁 노을에 더욱 붉게 타오르고 드높은 동편 하늘가에 아직도 눈을 하얗게 얹은 관모산이 아랫도리를 안개 속에감추고 떠 있었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크고 둔해 보이는 철선들이 정박해 있었고 그 주위로 작은 고깃배가 아련하게 통탕대는 발동소리를 내면서 느릿느릿 헤엄쳐다녔다. 그리고 갈매기들이 생선비늘처럼 반짝이는 바다물결 위의 햇빛을 사방으로 흐트러뜨리며 역광 속으로 힘차게 날아갔다. 나는 항구의 사무실에서 돌아올 아버지를 기다리거나 장에 간 어머니를기다렸다. 길을 벗어나 제법 가파른 언덕의 끝까지 나아가 쪼그려앉아 있던 것은 두 사람을 기다릴 겸하여 그냥 바다를 내다보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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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돌고 지나간다.
이렇게 생각하며 엽서를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는 숀은 문득 질문이 우습게 느껴진다.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써 내려가고 있냐니? 우리는 아무것도 써 내려가지 않는다. 오히려 써 내려지고 있다. 우리는 바람에 나부끼는 잎사귀다. 바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냥 잎사귀다. 참 이상하지 않은가. 인간으로서 하는 모든 행동이 도리어 우리를 확실히 동물로 만든다는 것이.
영원히 스스로를 응시하며 무엇이 우리를 다르게 만드는지 알아내려 애쓰는 걸 보면 우리는 얼마나 불안정한 종족인지. 우리는 위대하고 독창적이고 호기심 많은존재로서 우주를 개척하고 미래를 바꾸지만, 사실 다른동물은 못 하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불을 피우는 것뿐이다. 그게 유일한 듯 보인다. 물론 그것이모든 것을 바꿔 놓았지만 그뿐이다. 우리는 다른 존재들보다 부싯돌 몇 번 부딪친 것만큼 앞서 있을 뿐이다.
침팬지들도 우리를 지켜보며 학습한다면 불을 피울 수있을 것이다. 어느새 그들도 모닥불 주위로 모여들고좀 더 추운 지방으로도 이주하고 스스로 음식을 요리하고 당신이 할 줄 아는 그런 일들을 하게 될 것이다. - P186

우주 물체들이 빛을 발산하면 전자기 진동이 진공에 파문을 일으킨다. 이 진동을 소리로 변환한다면 행성은 저마다의 음악을, 빛의 소리를 갖게 된다. 자기장과 전리충의 소리, 태양풍의 소리, 행성과 대기권 사이에 갇힌 전자파의 소리.
해왕성 소리는 액체처럼 쏟아진다. 울부짖는 태풍에밀려 뭍을 덮치는 파도의 소리다. 토성 소리는 제트기에서 나는 음속 폭음이다. 발에서부터 올라와 뼈마디를울린다. 토성의 고리는 또 다르다. 버려진 건물을 쓸고가는 강풍 소리지만 느리고 뒤틀렸다. 천왕성은 정신나간 것처럼 끽끽 소리를 쏘아 댄다. 목성의 위성인 이오는 금속 조음기가 힘차게 흥얼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지구의 소리는 오케스트라처럼 복잡하다. 조율하지 않은 채 활을 켜고 목관 악기를 부는 밴드 연습소리, 전속력으로 질주하며 뒤틀리는 엔진의 광활한 소리, 은하계 부족들이 빛의 속도로 벌이는 전쟁 소리, 습한 열대 우림 아침에 반사되어 퍼지는 새들의 지저귐, 일렉트로닉 트랜스 음악의 도입부, 그리고 배경으로는 울림소리가, 빈 목구멍에 모이는 소리가 깔린다. 화음이 어설프게 형체를 잡아 간다. 아주 멀리 떨어진 목소리들이 합쳐진다. 천상의 지속음이 잡음을 뚫고 길게펼쳐진다. 아주 신중하게 시작되는 합창 소리처럼 노래가 터져 나올 것 같다고, 당신은 생각한다. 그리고 윤이나는 구슬 행성은 잠깐이지만 아주 달콤한 노래를 부른다. 지구의 빛이 합창한다. 그 빛은 1조 개 물체들의 앙상블이다. 짧은 순간에 모여 하나가 되고는, 거칠고 경쾌한 세상의 잡음 은하계 목관 악기 열대 우림 트랜스음악으로 요란하게 뒤죽박죽 다시 흩어진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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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은 2020년에 백신 공동 구매와 포스트 코로나 경제 활성화 대책을 통해 오히려 유럽의 연대정신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2022년 2월에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지난 세기 "유럽은 위기 속에서 만들어지고 위기에 대한 해결책의 총합이 될것"이라고 예견한 프랑스 경제학자 장 모네의말이 옳았음을 또 한 번 입증하는 계기가 됐다.
유럽의 여러 기관들과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경제적, 인도주의적, 군사적 원조 등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요청에 화답했다. 유럽연합의 국경지대에서 또 다시 전쟁이 발발하고 우크라이나의 대의에 여론이 동조하면서 유럽연합은 하나로 뭉쳤고 유럽 대륙을 분열시키려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기대 또한 꺾었다. 하지만 만약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앞으로의 세력 균형은또 어떻게 변하게 될까? - P12

이제 폴란드는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나토의 무기들이 통과하는 관문이 되었다. 그 결과 2022년 3월 전쟁중인 이웃 국가에 군사적 및 인도적 지원 물품을 제공하기 위해 폴란드 활주로 중 한 곳에 매일 18대의 대형수송기들이 도착했다. 한편 2022년 3월 13일 러시아군대는 폴란드 국경에서 겨우 20킬로미터 떨어진 우크라이나 서부 야보리우 군사기지를 폭격했다.
폴란드는 사실상 러시아를 상대로 최전선에 놓이게되었다. 폴란드는 자국 역사를 통해 지도에서 지워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 또한 공산주의 모델에서 자유주의 경제 모델로 전환한 이후에도 여전히자신들만의 정체성을 확실히 찾지 못하는 등 국민들의일상은 혼란스럽다. 여기에 더해 인플레이션과 러시아산 탄화수소 및 독일 산업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함께 폴란드에 동화되는 데에 진통을 겪는 우크라이나 난민유입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이미 악화될 대로 악화된 폴란드 경제를 더욱더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 P38

사실상 모든 유럽인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여파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즉 우크라이나 난민수용, 유럽 대륙의 강력한 재무장, 러시아산 탄화수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새로운 에너지 교역 정책, 흑해 항구에 봉쇄된 채 수출되지 못하고 있는 곡물로 인한 식량 가격 상승, 악화된 경제의 영향(인플레이션, 구매력 감소) 등이 바로 그것이다.
유럽통합주의자들과 범대서양주의자들 간의 관계는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라는 ‘공동의 위협‘ 앞에서공고해졌다. 이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그의 친러시아 성향에는 안된 일이다.
코로나19부터 이번 전쟁에 이르기까지 유럽연합은그 어느 때보다도 ‘위기 속에서 발전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증명해 보이고 있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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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스가 촬영한 사진 속 달 착륙선에는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타 있다. 착륙선 바로 뒤에 달이 있고 25만 마일 위에는 푸른 반구 모양의 지구가 인류를 품고서 깜깜한 암흑 속에 떠 있다. 사진에서 빠진 인간은 마이클콜린스가 유일하다고 전해진다. 그게 이 사진이 그토록 매혹적인 이유였다. 인류가 아는 한 현존하는 모든 인간이 빠짐없이 들어 있는 사진에 정작 그걸 촬영한 사람만이 빠져 있다는 것이.
안톤은 그런 주장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적어도 그에게는 매혹적이지 않았다. 카메라에 잡히지 않은 지구 반대편 사람들, 그리고 밤이라서 우주의 어둠에 집어삼켜진 남반구 사람들은 어쩌고? 그들도 찍혔다고 할 수 있나? 사실 사진 속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달 착륙선에 타 있는 암스트롱과 올드린, 이 위치에서 보면 무인 행성일 수밖에 없는 지구의 인류 모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다. 사진에서 가장 강력하며 확실히 추론할 수 있는 생명의 증거는 사진을 찍은 사람이다.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는 눈,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의 온기. 그런 의미에서 콜린스의 사진이 더욱 매혹적인 이유는 사진을 촬영하는 순간 그 안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인간이 바로 콜린스이기 때문이다. - P77

그러면 지금 넬이 보고 있는 표정은 무엇인가? 이 태풍은 90분 전보다 더 커지고 대담해져 육지에 점점 더가까이 접근하고 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그것은 분노가 아니다. 이곳에서 보면 분노 같은 것은 보이지않는다. 도리어 반항이고 힘과 활기에 더 가깝다. 하카춤을 추는 마오리 전사처럼 눈을 부릅뜨고 혀를 내민표정.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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