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가족들도 엄마를 경계했다. 엄마는 남편 식구들에게 친숙한 음식을 요리하는 법을 배우고 초록색 젤리와 보드카믹스까지 갖춘 정통 미국식 추수감사절 잔치까지 열면서 이들의 두려움을 조금씩 떨쳐냈다. 미국인 손님들이 떠난 다음 날 엄마는 남은 칠면조 고기를 된장, 김치와 곁들여 내놓았다.
미국의 새 가족과 어울리며 주변화된 엄마의 경험은 국제결혼을 한 다른 한국 여성들에 비하면 극단적인 것은 아니었다. 역사학자 여지연 교수의 미군과 국제결혼한 한국 여성 구술사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미국 요리를 함으로써, 본인의 문화를 희생해가며 남편의 문화를 부엌에서 재현하도록 기대되었다. 남편과 시댁 가족은 보통 한국 음식을 냄새나는 낯선 음식이라고 여겼으며, 여성들에게도 집에서 이상한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하거나 못 먹게 하기까지 했다. 이 국제결혼 가정의 아이들조차 때로는 한국 음식에 동화되기를 거부했고, 어머니의 문화를 배척했다. 한국 음식을 못 먹게 된 여성들은 김치 대신 미국 피클을 먹었고 빵 꽁다리와 칠리 플레이크를 섞어 고추장을 만들었으며, 진짜 한국식 반찬은 밥 한 공기를 다 먹은 동안 아주 조금씩 덜어 먹었다. - P153

케이와 제이슨이 갑자기 뿌리 뽑힌 채 한국을 떠나, 자기네 언어도 안 통하고 문화도 이해할 수 없는 셔헤일리스에서 새가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은 어떻게도 바꿀 수 없었지만, 엄마는 이 아이들에게 김치만큼은 떨어지지 않게 하겠노라 작심했다. 엄마는 아이들을 보자마자 당신이 먹여야 할 입이라는 걸알아보았고, 잠시나마 그 애들이 잃어버린 한국 엄마가 되어주었다.
나는 엄마가 이 아이들에게 그처럼 살갑게 대하는 모습이 늘 인상 깊었는데, 엄마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되면서, 당신이 겪은 상실을 투영한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았다. 그 안에서 엄마는 아이를 잃은 엄마였을까, 아니면 엄마를 잃은 아이였을까? 두려움과 슬픔에 떠는 아이들의 존재가 고아나 다름없이 전쟁 한복판에서 혼자 버텨내야 했던 시절의 기억을 촉발시킨 걸까? 아니면 미국에서 엄마가 겪은 소외감을 생각나게 했을까?
이후 연구 작업에서 특히 호수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나는아이를 입양 보낸 한국 생모의 전형적인 모습이 1950~1960년대의 기지촌 여성들로, 엄마와 비슷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나는 엄마가 당신이 복용하던 피임약이 효과가 없었다고 불평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 말을 했을 때 엄마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후회 같기도 공포 같기도 했는데, 그것은 엄마가 나나 오빠를 두고는 결코 내보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엄마가 포기한 아이가 또 있었던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건 엄마가 숨긴 비밀 중 가장 입 밖으로 내기 어려웠던 일 아니었을까. 앤더슨네 아이들은 엄마에게 미국 가정 한복판에떨어진 세 번째 아이의 유령을 떠올리게 한 걸까? 엄마를 찾아, 김치 맛을 그리며 우는 아이의 모습을?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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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부재는 역설적으로 그분을 내 삶 속에서 새롭게 현존하게 했다. 너무나 강렬했던 상실의 슬픔은 엄마의 질병 아래, 그리고 10년 가까이 내 연구 주제였던 트라우마로 점철된 역사 밑에 묻혀 오랫동안 잊었던 기억을 되살려냈다. 그것은 전형적인 조현병 환자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매력적이고 유능하며 놀라울만큼 생산적인 첫 번째 엄마에 대한 기억이었다. 이 기억의 전면에는 항상 음식이 있었다. 즐거움의 원천으로, 수입의 원천으로, 아니면 좀더 근본적인 생존의 방식으로 음식을 먹는 장면으로돌아가서 나는 발견했다. 엄마를 망가뜨린 것뿐만 아니라 엄마를 살아 있게 했던 것을.
나는 엄마의 파편을 모아 그분의 생존에 대한 한 편의 이야기를 엮어내고 싶다. 글쓰기로 엄마의 존재를 되살려, 페이지 위에서 그분의 유산을 살아 숨 쉬게 하고, 그 자취를 따라 내 유산을 찾고 싶다. - P23

식구들은 엄마의 작은 주방에 간편하게 물만 붓거나 통조림만 따면 쉽게 먹을 수 있는 즉석식품도 많이 쟁여두었다. 올케는 엄마가 라면과 과일 통조림은 먹어도, 분유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가 굶지 않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영양이 턱없이 부족한 식단이라 그게 신경 쓰였다.
"엄마, 음식 잘 잡고 계세요?" 내가 물었다.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백질은요?"
엄마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코를 킁킁거렸다. "나한테 분유를 주더라."
"아, 그래요?" 나는 놀란 척하며 말했다.
하던 생각이 끊긴 듯, 엄마는 잠시 조용해지더니 환각적 몽상에 깊이 빠져드는 듯했다.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엄마는 말했다. "전쟁 같은 맛이야."
엄마가 묻지도 않았는데 전쟁 얘기를 꺼낸 건 이번이 겨우 두번째였다. 그 말을 듣자 연구 내용이 파편처럼 머릿속에 떠올랐고 나 역시 몽상에 빠져들었다. 죽은 엄마의 시신 옆, 흙길 바닥에 나앉아 있는 아기들, 네이팜탄에 화상을 입고 미라처럼 붕대를 감은 여자들의 모습. 미군기가 공중에서 폭탄을 떨어뜨려 아이를 잃은 노근리 학살 생존자 여성의 말. 그날 미국의 두 얼굴을봤어요! 미국의 식량 원조를 회고하는 전쟁 신부의 말. ‘양키‘가 우리를 구하러 왔다는 말을 들었어요…. 쌀이나 보리를 기다리던 차에, 먹을 게 넉넉히 올 거란 생각에 침을 흘렸죠..... 그랬는데 분유만 끝없이 쏟아졌고, 그걸 타서 마시는 사람마다 며칠씩 설사로 고생을 했어요? - P39

"단일 민족, 단일 국가"라는 일국일민주의 기치를 내걸었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양부인과 혼혈 아동의 존재를 "사회적 위기"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미군 아기 문제의 해결책으로 이 아이들을 초국적 입양 대상자로 만드는 대통령령을 선포했다. 미국 선전물은 이 혼혈 아동들이 가난하고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로 공산주의의 손아귀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취약한 처지에 있다고 묘사하면서, 이들을 구제하는 것이 미국인의 애국적 의무라고 선전했다.
이와 더불어, 사회복지사들은 기지촌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한국이 그들의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아버지의 나라야말로 아이들이 가야 할 곳이라고 설득하는 공격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실제로 한국 법에 따르면 현실이 그러했다. 한국인 어머니와 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공립학교에 다닐 수 없었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등록할 수도 없었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이승만 정부의 정책으로 우리 망명의 조건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 P58

1987년쯤 되자 이민자를 혐오하던 사람 몇몇은 그래도 우리가족에게는 익숙해졌지만, 태평양 연안을 따라 정착하는 아시아인들을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로 보았다. 어떤 순간에는 타자에대한 이들의 공포감이 시나처럼 새로 온 이민자를 향해 파도처럼 솟구쳤고, 다른 순간에는 적개심이 미세한 파문처럼 먼지차별microaggression"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땐 이런 개념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전이었다.
난 칭크랑 잽 싫어. 걔네는 모든 걸 장악하려 들어. 네 얘기 하는 건 아니야! 너는 괜찮아. 너는 그런 사람들하고 다르잖아.
내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 스스로도 미국화된 반 미국인인 나는 이들과 다르다고마음 한구석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한구석으론 이런 말을 들으며 모욕감을 느끼고 괴로워했다. 그것은 내 아메라시안Amerasian 이중 의식이었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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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2021년 1월 5일, 조지아주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백인 우월주의가 오랫동안 정치판을 잠식했던 바로 그 주에서 유권자들은 그들의 첫 번째 아프리카계 미국인 상원 의원 레버런드 라파엘 워녹Reverend Raphael Warnock과 첫 번째 유대계 미국인 상원 의원을 기록적인 수치로 선출했다. 워녹은 재건 시대 이후 미국 남부 지역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공화당 정치인 팀 스콧Tim scott에 이어 두 번째로 선출된 흑인 상원 의원이었다. 그날 밤 워녹은 옛날에 소작농이었던 자신의 어머니에게 지지자들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남들의 면화를 골라내던 여든두 살 어머님 손이 당신의 막내아들을 미국 상원 의원으로 뽑았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 선거 결과를 희망찬 민주주의의 미래를 나타내는 전조라고 봤다. ‘흑인 유권자도 소중하다 Black Voters Matter‘라는 이름의 단체를 공동 설립한 라토샤브라운 LaTosha Brown은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남부가 떠오르고 있다. 더 젊고, 더 다양하고 (…) 그리고 더 포용적인 모습으로." 이는 시민권운동가 세대가 구축하고자 했던 민주주의의 미래였다.
다음 날인 1월 6일, 미국인들은 상상조차 힘든 장면을 목격했다. 그것은 미국 대통령이 나서서 부추긴 폭동이었다. 이로써 4년에 걸친 민주주의 퇴보가 쿠데타 미수로 정점을 찍었다. 그 광경을 지켜봤던 많은 미국인은 다른 나라 국민들이 그들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느꼈던 공포와 혼란, 분노의 감정을 똑같이 느꼈다. 정치적 목적으로 시작된 폭력의 흐름, 선거운동원에 대한 위협, 투표를 더 힘들게 만든 갖가지 시도,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대통령의 획책 등 미국인들이 목격한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민주주의의 퇴보였다. 물론 2016~2021년 사이에 미국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 민주주의가 퇴보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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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책 쓰기는 혁명이다!
책이 중심에 있는 사회

히키타 사토시의 《즐거운 자전거 생활》이라는 책을 행복한 기분으로 읽었다. 방송 프로듀서인 저자는 자신이 자전거 전문가도 레이서도 아니지만 자전거의 즐거움만큼은 남들보다 많이 안다며 이렇게 썼다. "모든 분들이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과 감동을 느끼고, 자전거가 우리 사회에 아주 이롭다는 것을 알아준다면 정말로 좋겠다."
이 책에는 초심자에게 유용한 조언들이 가득하다.
오른쪽 브레이크와 왼쪽 브레이크가 어떻게 다른지, 버스나 스쿠터가 옆에 있으면 어떻게 피하는 게 좋은지,
도난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은 어떤 게 있는지 등등.
그런 팁도 좋았지만 나는 무엇보다 저자의 비전에감탄했다. 히키타는 21세기를 헤쳐나갈 희망은 자전거에 있다고 단언한다. 그는 자전거는 우리의 마지막 교통수단이며, 자전거를 타서 환경을 살리고 인간성을 회복하자고, ‘자전거를 가운데 핵(核)에 둔 어떤 사회‘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 P10

지식의 전파와 의사소통이라는 부문에서도 마찬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사건의 얽히고설킨 배경과 이면을 이해하는 데 에너지를 들이고 싶어 하지않는다. 짧고 명쾌한 설명과 즉각적인 즐거움을 원한다. 책 한권은 고사하고 다소 긴 탐사보도 기사조차 읽기 버거워한다. 그래서 카드뉴스와 인공지능의 기사요약 서비스가 나왔다. 그마저도 동영상으로 넘어가는 추세다. 이제 곧 5분짜리, 아니 50초짜리 핵심 요약 동영상들이 글자를 대체할 것이다. 가만히 놔두면.
그런 ‘스낵 정보들은 여러 사연을 생략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단순화한다. 스낵 정보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횡행하고 음모론과 반지성주의가 퍼지기도 쉽다. 어떤 정보가 궤변인지 아닌지, 그정보를 어느 정도 중요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판단하려면 머릿속에 지식의 구조와 맥락이 먼저 있어야한다. 그런데 제대로 된 지식의 구조는 스낵 정보들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 P13

다시 말해 ‘작가‘가 아니라 ‘저자‘를 목표로 삼으라는 게 내 조언이다. 저자를 목표로 삼으면 무엇을 연습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작업에 대해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글을 쓰는 것이라고, 한 문장을 쓰고 다음 문장을 쓰고 또 다음 문장을 쓰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오해한다. 그것은 다른 훈련 없이 슈팅 연습만 계속했더니 축구선수가 됐다거나, 부품을 하나하나 이어 붙였더니 어느새 비행기가 조립돼 있더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작가의 일에는 주변을 둘러보고 무엇을 쓸지 고민하는 것이 포함된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실용서든 마찬가지다. 이런 기획력 역시 훈련해서 길러야 한다. 반응하는 글(때로 배설하는 글)과 기획하는 글은 다르다. 그차이를 느껴봐야 한다. 에세이 열아홉 편의 글감은 있는데 추가로 써야 하는 한 편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않아 속을 썩이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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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ㅍ1976년 워싱턴주 셔헤일리스

나는 다섯 살, 가족과 메인가를 걷는다. 평소 별일 없이 조용한시내인데 오늘은 풍선과 깃발로 떠들썩하다. 천둥 같은 소리로 행진곡을 연주하며 악대가 지나간다. "오늘은 미국의 이백 번째 생일이란다." 짧은 곱슬머리 노부인이 내게 붉은색, 흰색, 푸른색 성조기 색깔의 아이스바를 건네며 말한다. 나라를 위해 생일 파티를 하다니 우습다는 생각이 들지만, 애국심이 무슨 뜻인지, 미국인이라는 것 혹은 미국에서 아시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슨뜻인지 알기에 나는 너무 어리다. 나는 동남아시아에서 벌어지는 격전들에 대해서도, 휴전 상태인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아시아인들의 이민이 미국 제국주의나 반공주의의 이름으로 700만명의 무고한 사람을 학살하고도 [마치 전쟁으로 인한 사상자가없다는 듯 ‘냉전‘이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불린 국제질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모른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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