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미국은더 이상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었고, 한때 굳건했던 인종적 수직체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백인 미국인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사회적 지위가 위협을 받으면서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소외와 추방, 박탈의 느낌을 받았다. 2015년 PRRI는 설문조사를통해 미국인들에게 1950년대 이후로 미국의 문화와 생활 방식이 "전반적으로 더 나아졌는지", 아니면 "전반적으로 더 나빠졌는지 물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히스패닉계 미국인, 그리고 종교가 없는 미국인들 대부분은 1950년대 이후로 상황이 더 나아졌다고 답한 반면, 백인의 57퍼센트, 그리고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72퍼센트는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들이 보인 반응은 향수를 넘어선 것이었다.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사회적 수직체계가 평평해지면서 많은 백인은 부당하다고 느꼈다. 사회 내에서 보장된 지위와 더불어 성장한 사람은 그러한 지위를 빼앗겼을 때 부당함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많은 백인 미국인은 스스로를 희생자라고 느꼈다.  설문조사 결과는 "백인에 반대하는 편향의 존재에 대한 백인들의 인식이 1960년대부터 꾸준히 증가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21세기 초에 백인 미국인 다수는 백인에 대한 차별이 적어도 흑인에 대한 차별만큼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느낌은 오바마의 당선으로 한층 더 증폭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온건한 인물이었지만, 정치학자 마이클 테슬러Michael Tesler는 연구를 통해 오바마의 당선이 미국인의 정치적 태도를 뚜렷하게 급진화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오바마의 당선으로 모든 미국인은 그들의 나라가 다인종 민주주의의 평원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백악관에서 일하는 모습이 매일 TV 화면에 나오면서 미국인들은 더 이상 인구 통계적으로나 정치적 차원에서 새로운 현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많은 백인 미국인은 그들이 자라난 나라가 그들을 저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했다.
다인종 민주주의에 대한 반발은 주로 백인 기독교 민족주의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회학자 필립 고르스키 Philip Gorse는 이를 "(백인) 기독교인이 미국을 건국했지만 이제 박해받는 (민족적) 소수가 되어가는 위기에 봉착했다"라는 믿음으로 설명했다. "백인 기독교인은 이제 종교 집단이라기보다 민족 집단, 혹은 정치 집단에 더 가깝게 되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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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인물이 주체적인 개인으로 경험하고 행동한다면 개성과 깊이는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고 생각한다.
픽션과 현실 양쪽에 다 해당하는 얘기다. 주체적인 경험과 행동의 중요성에 비하면 그 인물이 푼수 끼가 얼마나 있는지, 어떤 카페인 음료를 좋아하는지는 곁가지에 불과하다. 그런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의외로 많은작가 지망생들이 이 점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기실 이것은 예비작가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흔한 인지 오류 중 하나다.
우리는 모두 주체적으로 경험하고 행동하는 개인들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하거나 묘사할 때에는 그들이 경험 능력과 행동 능력중 한쪽만을 지녔다고 착각하기 쉽다. 사회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는 인간이 부지불식간에 타인을 ‘상처받기쉬운 감수자‘와 ‘사고하는 행위자‘ 둘 중의 하나로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웨그너가 제자인 커트그레이와 함께 집필한 책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에서든 사례를 조금 변형해서 소개해보자면 이렇다.
어린 소녀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어느 기업최고경영자의 얼굴에 케이크를 던져 상대를 망신 주었다고 상상해보자(물론 최고경영자가 딱히 얼굴에 케이크를 맞을 만한 잘못은 저지른 게 없는 상황이라고 가정한다). 아마도 주변 사람들은 당황하고 소녀를 나무라겠지만 심각하게 분노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상황이 코믹하다고 여기고 살짝 웃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반대로 기업 최고경영자가 다른 사람들이보는 앞에서 어린 소녀의 얼굴에 케이크를 던져 망신주는 장면을 그려보자(물론 소녀가 잘못한 게 전혀 없는상황이다). 이제 옆에 있는 사람은 놀라 충격을 받고 최고경영자의 황당한 행동에 격분할 것이다. 사람들이 어린 소녀를 행위 능력이 부족하고 경험 능력이 큰 존재로, 최고경영자는 행위 능력은 크지만 경험 능력은 모자란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에게 케이크를 던지는 소녀의 일화를 소설에 쓴다면 그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소녀의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까다로운 식성, 최고경영자의 괴팍한취향과 묘한 습관을 자세히 서술하면 그들이 보다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질까. 물론 그 방법도 효과가 없지는않다. 거기에 더해 나는 소녀의 행위 능력과 최고경영자의 경험 능력에 공을 들이기를 권한다. 그럴수록 그들은 더 실감나는 존재로 보일 것이다.
소녀는 왜 케이크를 던진 걸까? 그녀는 그 순간 행동한 사람이고 거기엔 자신만의 이유가 있다. 남들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불합리한 이유라도 괜찮다. 사실다른 사람들이 동의하기 힘든 이유일수록 소녀의 개성이 그만큼 도드라진다. 케이크를 맞은 최고경영자는 기분이 어떨까.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이성을 잃고 소녀의 뺨을 한 대 치기 직전일까? 소녀의 아버지를 몇 달뒤에 해고해야겠다고 싸늘히 결심했을까? 아니면 참석하기 싫은 파티를 거절할 명분이 드디어 생겼다며 속으로 안도하는 중일까? 꼭 전지적 작가시점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외면 묘사와 암시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독자가 짐작하게 만드는 게 가능하다. - P156

학생들에게 나는 "인물의 욕망과 두려움이 느껴지게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약자라고 해서 욕망이 없는 게 아니고, 강자라고 두려움이 없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 P158

사실 욕망과 두려움은 분리되지 않는다. 자기 자식과 함께 살고 싶다는 욕망과 그 아이를 잃을 수 있다는두려움은 동전의 양면이다. 어떤 인물의 고통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그의 욕망을 함께 전할 수밖에 없다. 욕망만 있는 인물, 두려움만 있는 인물, 쾌감만 느끼는 인물,
고통만 느끼는 인물, 가해자이기만 한 인물, 피해자이기만 한 인물이 많아질수록 당신의 원고는 문학에서 멀어지고 프로파간다가 되어갈 것이다. 프로파간다로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설득력 없는 인물들이 나오는 글에는 힘이 실리지 않기에.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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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1월 로지 법안에 대한 논의가 마침내 상원 회의에서 시작되었을 때, 소수당인 민주당은 의사 진행을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상원 필리버스터에 주목했다!" 그들은 밤늦게까지 연설을 하고, 불가능한 수정안을 제시하고, 논의를 미루고, 정족수를 막기 위해서 주 회의장 외부를 돌아다니면서 필리버스터를 이어나갔다. 이에 공화당 지도부는 로지 법안을 통과시키기위한 마지막 필사적인 시도로서 다수의 찬성만으로 필리버스터를 끝내고 상원 다수가 로지 법안에 찬성하는 투표를 할 수 있도록 상원 규칙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 제안은 민주당과 함께 화폐 개혁에 찬성했던 서부 지역 "은" 공화당 의원들 연합에 가로막혔다. 153 결국 미국 전역에 공정한 선거를 보장해줄수 있었던 로지 법안은 필리버스터에 의해 사라지고 말았다. - P133

(민주당 하원 의원 61퍼센트의 찬성과 함께)‘ 필리버스터 때문에 시민권법 입법의 무덤으로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상원에서도 마찬가지로 소수당 대표인 일리노이주 공화당 의원 에버릿 덕슨Everett Dirksen이 나서서 시민권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공화당 의원들의 뜻을 모았다. 결국 공화당 상원 의원 80퍼센트 이상이 이들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민주당도 69퍼센트가 찬성했다. 전기 작가에 따르면, 덕슨은 스스로 이를 가장 의미 있는 성과로 생각했다. 또한1965년 투표권법 역시 양당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공화당 상원 의원들은 30대 1로 찬성표를 던졌다. 이처럼 공화당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20세기 중반에 시민권법과 투표권법 개혁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미국이 더욱 민주화된 사회로 나아가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60년 후, 공화당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1965년 투표권법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바로 그 정당이 2021년에는 그 법을 복구하기 위한 연방 차원의 입법 시도를 만장일치로 거부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냉철하게 지적했던 것처럼, 그들은 "민주주의를 저버렸다"
도널드 트럼프가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엎으려는 시도를 감행하기 한 달 전, 공화당 핵심 상원 의원인 마이크 리 Mike Lee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이렇게 의문을 던졌다. "자유와 평화, 번영과는 달리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트위터에다가는 이런 글을 올렸다. "우리는 인류가 살아가는 세상이 더 번영하길 기원한다. 그러나 계급 민주주의가 이를 가로막을것이다."
미국의 공화당은 수십 년간 영국의 보수당이나 캐나다의 보수당, 혹은 독일의 기독민주당처럼 주류 중도 우파 정당이었다. 공화당 지도부는 전반적으로 민주주의를 향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그렇지 않았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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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을 발견하고 키우려면 저지르지 말고 관찰해야 한다. 느끼지 말고 생각해야 한다. 충동은 마음이라는 바다 표면에서 끊임없이 일렁이는 물결과 같다. 또는 동굴 입구에서 부는 바람과 같다. 프로이트나 융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그 동굴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잠수함을 타고 수면 아래로 내려가보자. 횃불을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보자. 심리 상담이나 분석을 받지 않아도 되고, 어려운 심리학 이론을 공부할 필요도 없다. 자문자답이 우리의 잠수함이고 횃불이다. - P116

에세이를 잘 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질이 뭘까. 나는
‘삶을 사랑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사랑하면그 대상을 유심히 헤아리게 된다. 그에 대해 할 말이 많아진다. 좋은 에세이에는 그렇게 삶에 대한 남다른 관찰과 애정이 담긴다.
내게 있어서는 그것이 에세이를 읽는 이유이고, 좋은 에세이를 읽고 나면 저자에게 호감을 품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소설과 다르다. 틀림없이 좋은 소설인데 읽고 나서 저자에 대해 무섭다거나 불쾌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으니까. 훌륭하지만 섬뜩한 소설도 많다. 하지만 그런 에세이는 읽은 기억이 없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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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작가의 꿈을 버렸다. 그러나 그 꿈은 버려지지않았다. 그도, 나도 안다. 앞으로도 그에게 작가의 꿈은 버린 것과 버려지지 않은 것 사이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는 그 상태로 살 것이다.
이런 림보에 사는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여전히 책을 좋아하는 독서가다. 그런데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화가 난다. 어쩌자고 이따위 종이 쓰레기 같은 책을 낸단 말이야? 겨우 이런 글을 인쇄하자고 나무를 베어냈어? 모든 재화가 과잉생산되고 시시한 물건들이 넘쳐나는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그는 유독책, 그것도 신간에 대해 분노한다. 이런 형편없는 책은 펴내면 안 된다고! 이따위 일기장 같은 책은•••••• 이런책은•••••• 나도 쓰겠다! 고백하자면 내가 바로 그랬다. 서점 신간 코너에 가면분노에 휩싸였다. 지인이 책을 냈다고 하면 관심 없는척하면서 내용을 몰래 살폈다. 그 책에 신통한 데가 없으면 그때서야 겨우 안심했다. 결국 나무의 소중함 운운은 그냥 핑곗거리였다. 내가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같아 포기한 작가라는 거룩한 영예를, 다른 녀석이 제값을 치르지 않고 길에서 주웠다고 여겨서 부린 트집잡기였다. 정의감을 닮았지만 실제로는 질투심이다. 그흉한 감정은 내 책이 나온 뒤에야 겨우 사라졌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비슷한 시기심으로 고생하는 분이 있다면, 당장 책을 쓰는 편이 낫다. 최악의 경우에도 전과 다른 차원의 독서가로 거듭날 수 있다. 한권의 책을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어떤 부분이 어떻게 힘든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 작품의 방법론과 기교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피아노를 칠 줄 알면 라흐마니노프가 다르게 들린다. - P54

20대 초중반에 신춘문예 여러 곳에서 낙방했다. 출판사로 응답 없는 원고를 보내기도 했다. 한동안은 책쓰기를 포기하고 지냈다. 초짜 신문기자로 일할 때에는
"많이 보고 들어서, 퇴직하고 나면 그때까지 모은 소재로 소설을 써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2006년 8월21일에 (날짜도 기억하고 있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는데 그냥은 못 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틀에 박힌 기사만 쓰다 보니 너무 공허했다. 그래서 노트북을 펴고 젊은 신문기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환상적인 기분으로 눈을 떴다. 몇 년묵은 변비가 사라진 개운함. 나는 그런 글을, 소설을 써야 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재능이고 뭐고 상관없었다.
그날부터 밤에 한두 시간씩 신문사나 세상을 위한 글이아닌,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썼다. 수면 시간은 조금 줄었지만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졌다. 장편소설 원고를 마치는 데 꼭 3년이 걸렸다. - P56

뛰어난 사업가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사업을 하면안 되는 걸까? 중요한 건 ‘뛰어난 사업가가 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 사업으로 내가 무엇을 얻을까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지난주에 생긴 것이 아니라면, 몇 년 된 것이라면,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써야 하는 사람이다. ‘의미의 우주‘에 한 발을들였고, 그 우주에 자신의 의미를 보태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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