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아줌마는 동물들의 세계가 인간세계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동물들에게는 자연의 법칙이 있기 때문이라나, 특히 암사자의 세계가 그러하단다. 로자 아줌마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암사자를 칭찬했다. 나는 잠들기 전에 이따금 상상 속에서 초인종 소리를 들었다. 문을 열고 나가보면, 거기에는 새끼들을 돌보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오려는 암사자가 한 마리 있었다. 로자 아줌마는 바로 그것이 암사자들의 특성이라고 했다. 암사자들은 새끼를 위해서라면 절대 물러서지 않고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데, 그것이 정글의 법칙이며, 암사자가 새끼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암사자를 신뢰하지 않을 거라고 얘기했다.
나는 거의 매일 밤 나의 암사자를 불러들였다. 암사자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로 뛰어올라 우리들의 얼굴을 핥아주었다.  - P73

하밀 할아버지는 빅토르 위고도 읽었고 그 나이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경험이 많았는데, 내게 웃으며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는 박하차를 가져다주는 드리스 씨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오래 산 경험에서 나온 말이란다." 하밀 할아버지는 위대한 분이었다. 다만, 주변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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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그 사건이 내 감정을 건드렸고, 나는 너무 열이 올랐다. 그런 감정은 내 속에서 치밀어오른 것이었고, 그래서 더욱 위험했다. 발길로 엉덩이를 차인다든가 하는 밖으로부터의 폭력은 도망가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안에서 생기는 폭력은 피할 길이없다. 그럴 때면 나는 무작정 뛰쳐나가 그대로 사라져버리고만 싶어진다. 마치 내 속에 다른 녀석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울부짖고 땅바닥에 뒹굴고 벽에 머리를 찧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그 녀석이 다리를 가지고 있는건 아니니까. 아무도 마음속에 다리 따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까 기분이 좀 나아진다. 그 녀석이 조금은 밖으로 나가버린 기분이다. 여러분은 내 말을 이해하는지?
- P62

그리고 나서 아줌마는 마치 아주 먼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듯 내 머리 위로 시선을 던진 채 중얼거렸다.
"모모야, 그곳은 내 유태인 피난처야."
"알았어요."
"이해하겠니?"
"아뇨. 하지만 상관없어요. 그런 일에 익숙해졌으니까."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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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적 다윈주의의 두드러지는 지적 복잡성이 뭉개지고 만 이유는 뭘까?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두 가지 믿음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는 ‘개념적 획일성이 일반적인 과학적 미덕‘이라는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극소수의 강력하고 광범위하고 두드러진 이론 법칙 틀이 과학 자체의 근본적 목표‘라는 믿음이다. 과학의 획일성은 간혹 큰 성과를 거두기도 하지만, 특별한 현상의 독특하고 새로운 속성들을 감소시키고 제거하고 무시함으로써 실패의 길을 걷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지적 콘텐츠의 상실은, 뭔가 복잡한 것을 적절하게 설명하지 않고 건너뛸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 P86

나는 자연계에서 이 깃털의 환상적인 복잡함에 견줄 만한 디자인을 본 적이 없다.
깃털 하나하나가 얼룩말 한 마리, 표범 한 마리, 열대어 한 마리, 나비 떼, 난초 한 다발의 패턴 복잡성pattern complexity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각각의 날개깃마다 다채로운 점•띠•소용돌이•구역들이 빽빽이 자리 잡고 있어, 날개 하나하나에 대해 모노그래프를 발간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페르시아산 융단의 디자인에 맞먹을 만큼 복잡하고 화려한 문양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 P97

그러나 생물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짝짓기선호가 어떻게 진화했는가‘라는 점이다. 짝짓기선호는 정직하고 실용적인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장식물 때문에 진화할까, 아니면 (비록 기막히게 멋지기는 하지만) 무의미하고 임의적인 유행으로서 공진화할까?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의 생물학자는 첫 번째 가설에 동의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라펜의 개입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적응적 배우자선택은 일어날 수는 있지만 매우 드문 현상인 데 반해, (다윈과 피셔가 상상하고 랜드와 커크패트릭이 모델을 제시한) 배우자선택은 거의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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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적 공변이 genetic covariation 의 결과, 주어진 형질을 보유하는 유전자와 그 형질을 선호하는 유전자는 공진화하게 된다. 암컷이 특정 과시형질(예: 긴 꽁지)을 기준으로 배우자를 선택할 때, 특정한 배우자선택 유전자 역시 간접적으로 선택된다. 왜냐하면 그녀들이 선택한 수컷들의 어머니 역시 같은 스타일의 꽁지를 선호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 결과, 배우자선택이 짝짓기선호의 진화에서 선택 주체로 떠오르는 강력한 양성피드백 고리가 형성된다. 피셔는 이러한 자기 강화적 성선택 메커니즘self-reinforcing sexual selection mechanism을 폭주 과정runaway process, 즉 "특정 과시형질에 대한 선택이 짝짓기선호의 혁명적변화를 초래하고, 짝짓기선호의 혁명적 변화가 과시형질의 진화적변화를 더욱 부채질하는 무한반복 과정"이라고 불렀다. 미적 형태와 그에 대한 욕구는 공진화과정을 통해 서로를 형성한다. 피셔는 이러한 방식으로 ‘과시형질과 짝짓기선호가 함께 진보하는 과정‘에대한 유전적 메커니즘을 명백히 제시했는데, 이는 다원이 청란에 대해 처음으로 상정했던 메커니즘이었다.
- P64

 피셔의 이론에서 영감을 얻은 랜드와 커크패트릭은 서로 다른 수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성선택과 과시형질 간의 공진화역학 coevolutionary dynamics을 탐구한 결과, 매우 비슷한 해답을 얻었다. 그들은 "자손의 성적 매력이라는 이점 하나 때문에 형질과 선호는 공진화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 다음, 한 걸음 더 나아가 "배우자선택 과정은 ‘특정과시형질의 유전자‘와 ‘그 형질에 대한 선호의 유전자‘의 공진화를 추동할 수 있다"라고 증명했다.
또한 랜드- 커크패트릭의 성선택 모델은 "과시형질은 자연선택과 성선택 간의 균형을 통해 진화한다"라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확인했다.  - P69

 만약 격리된 개체군들이 서로 멀리 분기한다면 미적 배우자선택의 과정은 완전히 새로운 종을 탄생시킬 수 있는데, 이것을 종 분화speciation 라고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미적 진화는 회전하는 팽이와 같다. 성선택 행위는 내적인 균형을 창조하여, ‘하나의 개체군 내부에서 성적으로 아름다운 것이 뭔지‘를 결정한다. 그러나 팽이에 무작위적 동요(예: 변이와 같은 내적 힘, 지리적 장벽에 의한 인구고립과 같은 외적 힘)가 일어나면 팽이가 비틀거리며 새로운 균형을 찾기 위해 회전하게 된다.
이 내용을 종합할 때 도출되는 결론은, "성선택이 개체군과 종가운데서 지속적으로 확대• 다양화되는 미적 기준의 진화를 촉진한다"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며, 그 증거는 이 책에등장하는 새들 중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내가 그들을 미적극단주의자 aesthetic extremist라고 부르는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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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말해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칠층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로자 아줌마는 육중한 몸뚱이를오로지 두 다리로 지탱하여 매일 칠층까지 오르내려야 했다. 그녀는 유태인이라서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불평할 처지가 못 되지만, 그래도 칠층을 오르내리는 일만은 정말 힘에 부친다고 하소연하곤 했다. 그녀는 다른 일들로 심신이 괴로운데다가 건강도별로 좋지 않았다. 또하나 미리 말해두고 싶은 것은, 그녀가 엘리베이터 하나쯤은 갖추어진 아파트에서 살 만한 자격이 있는 여자라는 점이다.
- P9

그 무언가를 쉬페르에게 쏟아부었다. 그 녀석이 없었더라면 나는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모른다. 그때는 정말 위기 상황이었다. 녀석이 없었다면 나는 어쩌면 콩밥 먹는 신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녀석을 산책시킬 때면 내가 뭐라도 된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녀석에게는 내가 세상의 전부였으니까. 나는 녀석을 너무 사랑한나머지 남에게 줘버리기까지 했다. 그때 내 나이 벌써 아홉 살쯤이었는데, 그 나이면 행복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사색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법이다. 뭐 누구를 모욕하려는 의도에서 하는말은 아니지만 로자 아줌마의 집은 아무리 익숙해진다 해도 역시 우울한 곳이었다. 그래서 쉬페르가 감정적으로 내게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자, 나는 녀석에게 멋진 삶을 선물해주고 싶어졌다. 가능하다면 나 자신이 살고 싶었던 그런 삶을.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녀석이 보통 개가 아니라 푸들이었다는 점이다.
하루는 어떤 부인이 쉬페르를 보더니, "아이구, 그 개 참 예쁘기도해라!" 라며, 개가 내 것인지, 그리고 자기에게 팔 의향이 없는지 물었다. 내 옷차림이 꾀죄죄하고 생김새도 프랑스 사람 같지 않으니까 그녀는 녀석이 특별한 종자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나는 오백 프랑을 받고 쉬페르를 그녀에게 넘겼는데, 그것은 정말 잘 받은 가격이었다. 처음에는 그 마음씨 좋아 보이는 부인이 정말 돈 많은 집 부인인지 확인해보려고 오백 프랑을 불렀다. 내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그녀에겐 운전기사가 딸린 차까지 있었다. 그녀는 내 부모가 나타나 소란이라도 피울까봐 그러는지 쉬페르를 얼른 차에 태우고 가버렸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안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오백 프랑을 접어서 하수구에 처넣어버렸다. 그러고는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두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송아지처럼 울었다. 하지만 마음만은 행복했다. 로자 아줌마 집은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돈 한푼 없는 늙고 병든 아줌마와함께 사는 우리는 언제 빈민구제소로 끌려가게 될지 모르는 처지였다. 그러니 개에게도 안전하지 못했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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