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갈수록 린이푸는 충격 요법을 통한 소련 개혁을 부추겼던 서구의 주류관점에 대해 점점 더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고, 중국이 성장하려면 시장경제와 강력한 정부의 결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확신을 굳혀 갔다. 이전까지 앞다투어 자유 시장을 추진했던 상당수의 동유럽 국가들이 소비에트 붕괴후 10여 년 동안 실업과 불경기, 정치 불안에 직면했고 더불어 충격 요법 방식에 대한 지지도 떨어졌다. 반면 1990년대의 중국 경제는 스펙트럼의 양극단어디에도 들어맞지 않는 혼성체의 모습으로 격동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어떤부분에서는 무제한에 가까운 자본주의를 보였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강력한정부 통제를 보여 주었다. 발전에 집중하는 양상은 예외가 없었다. 공산당은성장과 환경 사이에서 선택에 직면할 때마다 항상 성장을 선택했다. 사회 보장과 성장 사이에서도 성장을 선택했다. 하지만 변화의 대가는 혹독했다. 건강보험기금과 퇴직 기금이 증발했고, 환경 오염이 나라 전체의 풍광을 집어삼켰으며, 도시의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도시의 많은지역을 파괴했다. 대중의 불만이 깊어졌지만 공산당은 번영을 향한 꾸준한 전진과 강압을 통해 불만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그럼에도 수치는 분명한 차이를 보여 주었다. 1949년에 중국의 기대 수명은 36세였고 식자율(識字率)은 20퍼센트였다. 2012년에 들어서는 기대 수명이 75세, 식자율이 90퍼센트 이상이었다. 컬럼비아 대학의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는 <중국이 20세기까지 가장 가난한 나라들 중 하나였다면 21세기 들어서는그들 중 최초로 가난의 고리를 끊은 듯 보인다>라고 썼다. 2008년에 불어닥친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때, 이미 너무나 많은 공항과 고속 도로가 건설 중이었기 때문에 중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그밖에 다른 무엇을 건설해야 할지 선뜻 결정할수 없을 정도였다. - P214

중국이 지금 이 시점에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부패입니다. 빈부의 격차도 바로 부패 때문이죠.
그렇다면 부패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정부가 계속해서 너무나 많은 자원을 통제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왔습니다.
일련의 격렬한 소론과 저서를 통해서 우징롄은 중국의 경제 모델이 한계에 즉 경쟁적인 수요들을 중재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보다 많은 정치적 개방을 허용하지 않고도 가능했던 한계에 봉착했다는 증거로 정실 자본주의와 빈부격차를 제시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중국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채택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가 민족주의자들은 그를 변절자라고 맹비난했다. 어느 시점에 이르자 논쟁은 인신공격으로 번졌다. 예컨대 인민일보」는 우징롄이 미국 스파이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는 인터넷상의 소문을 그대로 보도했다. 도대체가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이었다. 종국에는 중국 내각에서 우징롄을 지지하고 해당 혐의를 반박하는 성명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그처럼 두드러진 공격으로 보건대 그의 비판이 「인민일보」에 줄이 닿는 유력한 사람들을 격분시킨 게 분명했다.
상황이 진정되었는지 묻자 우징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대략 한 달 전쯤에도 내가 벽돌에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졌으며 그럼에도 살아남았다는 글이 웹사이트에 올라왔었어요.」 두말할 것 없이 사실무근이었다. 그에게 그 글을 어떤 의미로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런 악성 루머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힌트를 줍니다.」 기사에는 <중국 변절자 근절협회>라는 서명이 되어 있었다. 그를 모함하려는 노력의 배후가 누구인지 우징롄 자신도 전혀 몰랐지만 다양한 용의자들이 물망에 올랐고 그 범위 또한 확대되고 있었다. 비주류 우익 민족주의 세력일까? 아니면 개혁에 반대하는 유력 인사들일까? - P223

류샤오보의 낙관주의는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그는 중국이 세계와 융합되어 갈수록,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재의 정권도 보다 자신감을 얻을지모른다>고 예상했고 의자에 몸을 깊숙히 묻으면서 자신의 전망에 담긴 여운을 음미했다. 「점점 더 관대해지고 유연해지고 개방적이 되겠죠 그는 계속해서 글을 쓰고 논쟁하는 일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행위가 효과가 있든 없든 나는 계속해서 정부에게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그는 정말로 그렇게 했으며 더욱더 의욕을 불태우는 가운데 몇 개월이 지났다. 그사이에 가을이 겨울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그와 소수의 동료들은 비밀프로젝트- 인권과 정치 개혁을 촉구하는 상세한 선언문-의 완성을 향해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나 명백히 알 수 있는 정치적 현실에 따르면 중국에는 수많은 법률이 존재하지만 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은 있되 입헌정치는 없다. 집권한 엘리트들은 계속해서 독재 권력에 의존하고 정치적 변화를 추구하는 어떠한 움직임도 용납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일반적인 반체제 선언문과 달리 그들은 그들의 선언문을 단일 사건이나 모호한 조항에 국한시키지 않았다. 그 대신 정기적인 선거와 사법 분리, 군대의정치적 이용 금지, 그들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말을 범죄로 간주하는>관행의 종식 등 모두 열아홉 가지의 근본적인 정치 개혁을 촉구했다. 그들은「77헌장」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77헌장」은 당사자들의 표현에 따르자면<우리 나라와 전 세계에서 인권과 시민권 존중을 위해 개별적, 집단적으로 투쟁하려는 의지>로 단결한 바츨라프 하벨과 동료 체코 행동주의자들이 30여년 전에 발표한 선언문이었다. 한편 중국의 류샤오보와 공동 집필자들은 <현행 체제의 쇠퇴는 변화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시점에 도달했다>라고 말하면서 시간이 없다는 충고로 서문을 마무리했다.
내부 논의를 거쳐 그들은 해당 선언문을 그해 겨울 UN의 세계 인권 선언60주년 기념일인 2008년 12월 10일 대중에게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선언문은「08헌장」이라고 명명되었다. 초기 서명자는 총 303명이었지만 누군가는 주된발기인이 될 필요가 있었고 류샤오보가 그 역할을 맡는 데 동의했다. 아마도 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된 발기인으로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것을 불편하게 여겼을 터였다. 중국에서 흔히 하는 이야기로 가장 먼저 고개를 드는 새가 총을 맞는 법이었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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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한국어가 모어가 아닌 이가 건넨 정중한 문장이라 한국의그 어떤 행정 언어나 법률 언어보다 더 정직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던 말. 그제야 지수는 자신이 그동안 누군가로부터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어했는지 깨달았다. 더불어 그 답 또한 얼마나 기다렸는지도. 하지만 대답 따위 아무도 들려주지 않을 테지.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 지수가 절망적인 얼굴로 뭔가 결심한 듯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러자 어디선가 방금 전 낙숫물에섞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 이 집에 일부러 홀리고 간 단어마냥 툭툭. 안 된다고, 그러지 말라고, 부디 살라고 얘기하는 물소리가 지수의 두 뺨 위로 빗방울 같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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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에이미.
수업에 들어오며 로버트는 오늘도 밝은 얼굴로 인사했었다. 쨍한 자줏빛 스웨터에 잿빛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게 뭔지 아는 남자의 옷차림이었다. 나는 로버트가 평소 옷을 잘 갖춰 입는 게 좋았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노동 앞에서 어떤 격식과 약속을 지키는 것 같아서였다. 그건 본인뿐 아니라 상대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몇 년간 그런 존중에 좀 목말라 있었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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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빵도 맛있어. 몇 개 포장했으니까 이따 집에 가서 먹어.
기진이 집에서 미리 챙겨 나온 에코백을 툭툭 건드렸다. 선주가 한번 더 ‘이럴 때 딸이 있어 참 좋다‘고 했다. 선주는 자신이 딸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늘 걱정하면서도 가끔은 딸에게 의존하고 싶어했다. 왜냐하면 ‘방법‘이 없으니까. 주위에 물어볼 곳도, 수단도, 자원도, 지식도 없으니까. 당장 상대와 말만 통해도 혼자 뭔가 해볼 텐데 영어도 국어도 선주에게는 모두 어려웠다. 게다가 점점 몇몇 단어가 머릿속에서 증발되고 있었다. 선주는 자신이 어떻게든 혼자 풀어보려 끙끙댄 문제를 기진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너무 가뿐하게 해결하는 걸보고 종종 어리둥절했다. 그럴 땐 딸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그정도 문제 하나 풀지 못한 스스로가 못마땅해졌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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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드라마 보면 난 늘 이상하고 궁금한 게 있었어요.
희주가 맥주잔을 든 채 잠시 회상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뭐요?
-파자마-파자마 잠옷?
-응. 드라마 속 주인공이 집에서 늘 그렇게 입고 있는 게.
그런 옷이 따로 있는 게 생경하고 이상했어요.
-어? 나도 그런 거 있는데.
-뭐요?
-간식.
-아.....
-영화나 드라마에서 내 또래 아이가 혼자 쓰는 방이랑 그안으로 엄마가 쟁반에 받쳐 갖다주던 간식. 나는 그게 늘 신기하고 낯설었었어요.
-맞아. 근데 걔는 꼭 엄마한테 나가라고 소리치고.
-맞아. 진짜 그랬어.
두 사람은 맞장구를 치며 함께 웃었다. 과한 자기 연민이나엄살이 없는, 깨끗함이 묻어나는 웃음이었다. 그리하여 어느봄, 회식 멤버가 다 떠난 새벽, 해장국집에서 단둘이 3차를 하고 긴 가로수 아래로 도시의 2급수가 흐르는 천변을 걷다. 두사람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 아래서 고전적으로 입맞췄다. 오랫동안 유지해온 ‘적절함‘의 거리를 둘이 힘을 합쳐 구겨버렸다. 스무 살의 다급함이나 허둥거림 없이, 과도한 기대나 실망도 없이 서로의 느낌에 집중하면서. 그러고 한참 뒤 입술을 떼었을 때, 기태가 갑자기 벚나무를 발로 차기 시작했다.
-기태씨, 왜 그래요?
희주의 다급한 목소리에 기태는 문득 발길질을 멈췄다. 그러곤 술에 취해 발그레해진 얼굴로 희주를 빤히 바라보다 누가 들어도 너무 순진하고 무모해 낯뜨거워지는 말을 했다.
-자기 꽃비 맞으라고요. - P151

사다리 마지막 칸에 기적적으로 오른 자신과 달리 ‘요즘‘ 입사한 친구들은 어느 정도 한국의 정교한 계급 필터를 거친 이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자신이 쥐고 태어난 걸 과소평가하는 것 같았다. 계급성은 지우고 나이라는 약자성만 내세운 채 신문에서 읽은 말로 앞 세대에게 자주 적의를 보이는 것 같았다. 물론 뭘 굳이 읽지 않고도 언제든 쉽게 품을 수 있는 게 적의이기도 했다. 기태는 대학 졸업 후 어렵게 은행에 들어온 뒤 세상에는 돈 많은사람이 참 많다는 걸 실감하곤 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기태의 ‘고객‘뿐 아니라 동기나 후배도 여럿 있었다.
-당신들이 첫 세대가 아니라 ‘부모보다 못살거나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은 늘 있었어요. 지금도 있고.
후배들 앞에서 언제나 ‘좋은 선배‘이길 자처하는 박과장이과장되게 웃었다.
-에이, 비율이 다르잖아, 비율이 비용도 다르고.
-그러니까 ‘우리‘ 말고, ‘세대‘ 말고, 내 얘길 하자고, 내얘기를. - P159

그날 집으로 돌아가며 기태는 ‘아! 앞으로 나는 부하 직원들에게 존중받는 은따, 대우받는 꼰대가 되겠구나‘ 자책했다. 그렇지만 그날 기태를 괴롭힌 건 자신이 실언했단 사실이 아니었다. 기태가 진정 후회하는 건 그 순간 자신이 굳이 ‘진심‘을말했다는 거였다. 그날 기태는 이혼한 이래 처음으로 희주가그리웠다. SNS에 가입해 처음으로 희주의 계정을 찾아본 날도 그날이었다. 그저 열심히 살아왔을 뿐인데 존재 자체로 누군가에게 부정과 경멸의 대상이 된 것 같았던 날. 이제 자신이 빼도 박도 못하는 기성세대가 됐음을 자명하게 받아들여야 했던 밤 말이다. - P160

사실 정신을 단속하는 일이라면 조금 자신 있었다. 나이들어도 세상 소식에 귀를 열어두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주변에 크게 폐 끼치는 존재는 되지 않으리라 과신했다. 실제로 기태의 젊은 시절 꿈은 훌륭한 어른은 못 돼도 산뜻한 중년은 되는 거였다. 청결한 옷을 입고, 타인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젊은 세대를 지지하고, 주변에 해가 되지 않는 존재가되는 것. 긴 시간이 지나 기태가 진심으로 놀란 건 자신이 어쩌면 그렇게 자신할 수 있었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기태는 자신을 둘러싼 좌표는 그대로되 ‘나‘라는 점만 이동하리라 착각했었다. 점과 더불어 좌표도 같이 움직이는데다 다른 그래프와 충돌하며 곡선과 직선이 찌그러지고 휠 거라 예상 못한 까닭이었다. 물론 나이들어 좋은 점도 있었다. 젊은 시절 여기저기 빵가루처럼 지저분하게 흘리고 다닌 말과 마음들, 담백하지 못한 처신들. 쉽게 흥분하거나 화를 낸 뒤 엄습한 부끄러움같은 건 이제 많이 줄었으니까. 경험이 많다는 건 ‘경험을 해석했던 경험‘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냄새는 헛구역질이나 트림은 ‘해석‘이나 ‘의지‘로 잘 막아지지가 않았다. 문제는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거였다. 기태는 자신이 늙음에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안다 믿었던 것조차 실은 아는게 아니었음을 새삼 실감했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삶은 또 얼마나 혹독할까?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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