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차반이 두고 간 닭들이 계사마다 가득했다. 죄인들은 계사 모서리에 모여서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닭들에겐 이 모든것이 낯설 것이다. 계사 안 가득한 냉기도, 어둠도, 굶주림도, 목마름도. 닭들에게 유일하게 익숙한 존재는 나였을 거다. 매일 아침마다 동료들의 목을 부러뜨리며 돌아다니던 커다란 인간. 이제는 미뤄왔던 일을 끝내야 했다. 먼저 패자부활전이 있었다. 사장이 몸집이 큰 놈들로만 30마리 정도 골라놓으라고 지시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줄 거라고 했다. 나머지는 전부 비활성화시켰다. 무리와 떨어져 있던 놈들은 지난번처럼 빗자루를 들고 뛰어다니며 붙잡아야 했다. 구석에 몰린 닭은 도망가지 못하게 주위에 상자를 쌓아둔 다음 한 마리씩 한 마리씩 목을 부러뜨렸다. 배가 고파선지 얼이 빠져선지 닭들은 바로 옆에서 목이 떨어져 나간 닭이 푸드덕대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감각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10동에서부터 차례대로 작업했는데 얼마나 많은 닭을 죽였는지 모르겠다. 수백 마리는 될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정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손에 ‘투두둑‘ 하고 닭의 명줄이 끊어지는 느낌이 전해져도 정말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릴 때만큼의 감정도 소모하지 않고 닭의 목을 비틀었다. 내 발 주위는 무도병에 걸린 것처럼 사지를 흔들어대는 닭으로 가득했다. 잠깐, 정말 찰나의 100분의 1 정도의 순간 동안 예전의 일기에 적어놓은 그런 감정들, 미안함, 불편함, 찝찝함 같은 것들이 느껴질 것 같았지만 금세 짜증과 피로에 묻혔다. 이런 식이면 사람도 죽일수 있을 것 같았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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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거를 반추하면 할수록 내게 가장 놀라웠던 건 그 시절의 내가 도무지 내가 아닌 듯 무섭고 가엾고 낯설게 여겨진다는 사실이었다. 오래전 기억 속의 자신은 원래 그렇게 생각되는 법인지 모른다. 하지만 원래 그렇더라도 놀라운 건 놀라운 것이다. 내가 손쓸 수 없는 까마득한 시공에서 기이할 정도로 새파랗게 젊은 내가 지금의 나로서는 결코 원한 적 없는 방식으로, 원하기는커녕 가장 두려워해 마지않는 방식으로 살았다는 사실이 내게는 부인할 수도 없지만 믿을 수도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런 게 놀랍지않다면 무엇이 놀라울까. 시간이 내 삶에서 나를 이토록 타인처럼, 무력한 관객처럼 만든다는 게.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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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을 풀 수 있는 곳도 있었다. 가끔씩 2동 작업을 거들 때가 있었다. 2동은 식란이 아니라 종란을 낳는 닭과 수탉이 수용되어 있었다. 종란은 식용이 아니라 병아리를 부화시킬 목적의 알이다. 이곳의 닭을보면 오랫동안 참았던 숨을 내쉬는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멀쩡했다.
깃털도 풍성했고 상처도 찾아볼 수 없었다. 피부를 육지, 깃털을 사람이라고 한다면 식란계는 그린란드의 인구밀도를, 종란계는 중국 해안지대의 인구밀도를 보여줬다.
식란계는 수명이 조금 긴 소모품일 뿐이었고 종란계야말로 농장의 진짜 재산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닭들의 건강 상태에도 특별히 유의해야 했는데 차이를 만들어내는 요소는 하나뿐이었다. ‘케이지 하나에 몇 마리의 닭이 들어가는가? 2동 케이지는 4동의 40% 정도 크기였지만 케이지에 닭을 한 마리씩만 집어넣었다. 케이지가 크고 작은 것은 사소한 문제였다. 종란계라고 해서 약을 주는 것도 아니었고 사료가 더 맛있다거나 계사가 더 따뜻하거나 환풍이 더 잘되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모든 환경이 똑같고 케이지 당 한 마리씩만 닭을 넣은 것이다를 뿐이었다. 2동은 파란도 얼마 되지 않았고 폐사도 없었다. 4동에선 하루에 수십 마리씩 죽어나갔다. 2동과 4동의 닭이 동일한 동물이라는게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 P26

우리는 수평아리가 담긴 상자들을 하차장으로 끌고 갔다. 끔찍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계사나 썩은 알 냄새보다도 더 지독해서 욕지기가 올라올 정도였다. 사람들이 수평아리들을 갈색 마대자루에 담고 있었다. 한 사람이 자루를 벌리면 다른 사람이 병아리를 붓고 쓰레기를 담듯(‘담듯‘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담고 있던 건어찌 됐든 쓰레기였으니까) 발로 꾹꾹 눌러 자루 꼭대기까지 채워 넣었다. 늦가을 즈음 청소부들이 자루에 낙엽을 담는 모습과 똑같았다. 부화장의 낙엽들은 몸부림치고 소리를 지르고 피를 흘린다는 점만 빼면, 다 채운 마대자루 수십여 개가 문 앞에 놓여 있었다. 악취는 이 자루들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내용물이 심하게 부패했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할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냄새였다. 자루에서는 음식 쓰레기 봉지마냥 끈적거리는 갈색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모든 자루에서 삐약대는 소리가 끊임없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자루를 들어 알 껍질이 담겨 있던 트럭에 실었다. 자루는 세사람이 함께 들어야 할 만큼 무거웠는데 표면이 미끄러워서 자주 놓쳤다. ‘쿵‘ 하고 자루가 떨어질 때마다 삐약소리가 줄어들었다. - P32

내게는 그 모든 것이 반가우면서도 어색했다. 차로 20분 거리에 악몽 같은 삶(물론 닭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런 표백제 같은 평온함 속에는 사람의 기를 꺾는 무언가가 있다. 나쁜 소식을 전한 전령을 교수대로 보내는왕과 같은 무언가가 사람들에 섞여 거리를 걷고 식당에 앉아 밥을 먹기 위해서는 먼저 양계장에서 내가 놀라고 두려워하고 당혹스러워했던 모든 일들이 의미 없는 호들갑일 뿐이었다고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계속 거기 머물렀다면 정말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대신 나는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과거에는 비위 약한 사람은 농장에서 절대 일 못하겠다고 친구들이 말하면 나는 정말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지금은 아니다. 양계장에서 일하기에 가장 부적합한 사람은 업보를 믿는 사람이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이 어떤 형태로든 자신에게 되돌아올 거라고 믿는 사람들 말이다. 업보를 믿는 사람은 양계장에 발도 들이지 말 일이다. - P39

계급이란 것은 옷차림이나 대학 졸업장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 이빨로 드러나는 모양이었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있는데 복 부장이 대뜸내게 물었다.
"야, 너 그거니 이빨이야?"
적당하게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지금 그게 내 피부냐고 물은 것처럼. 그는 내 이빨을 임플란트 틀니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들의 눈길이 모두 내 이빨로 향했다.
"히야, 승태 이빨 잘생겼네. 가지런하니. 얼굴보다 이빨이 낫다."
이빨이 잘생긴 남자가 이상형인 여성이 몇이나 될까 추측하는 동안 아저씨들은 자신들의 치아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씹을 때크든 작든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어금니에 문제가 있어서 아주 약하게 씹거나 앞니로 씹었다. 나와 비교적 같은 세대라고 할 수 있는 마흔의 장 대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치과에서 일하는 친척을 둔 덕분에 어릴 때부터 싼 가격으로 꾸준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매번 제일 먼저 식사를 마치는이유가 단순히 먹성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저씨들은 이빨에 생긴문제는 참을 수 있을 만한 불치병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서 좀처럼 병원에 가려고 하질 않았다.
그날 이후부터 밥을 먹을 때면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아저씨들이 음식을 씹을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며, 들릴 듯 말 듯 신음 소리를 내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처럼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우적우적 씹어대다가 주위를 둘러보면 머쓱해졌다. 내 자신이 사지절단 환자가 가득한 야전병원 한가운데서 덤블링을 해대는 철부지 같았다. - P58

내가 씁쓸했던 건 그들이 독재자를 옹호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같이 너무나 성실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화장뿐 아니라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마주친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었다. 아저씨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고용주나 직원이나 마찬가지였다. 휴식 시간도 상관없이 일하고 퇴근 시간도 없다시피 일하고 일주일에 하루쯤 쉴 만한데 놀면 뭐하냐며 일했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보기엔) 일한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보상을 받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그리 대단할 것 없는 풍요가 다른 누군가의 덕택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폭력적인 역사가 사람들에게 남긴 가장 큰 해악은 우리 삶의 변화가 한두 사람의 지도자 덕분이라고 믿게끔 만든 데 있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의 성공을 두 손으로 일군 당사자들은 역사의 들러리로 물러나 버렸다. 하지만 지난 겨울의 경험은 역사의 공을 몇 안 되는 정치가들이 독차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지 깨닫게 했다. 좋은 리더십의 중요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우리 사회가 풍족한 것은 결국 우리가 그만큼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것이 너무 건방진 생각이라면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또 그들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또 그들의 이웃과 동료들이 열심히 일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메마른 강을 다시 흐르게 하는 것은 소나기가 아니라 길고 지루한 장마다. 바짝 말라붙었던 한강 역시, 한 줌의 ‘위인들‘이 뿌린 소나기가 아니라 이름 없이 살다간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모이고 쌓여 다시 흐르게 됐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 P66

처음에는 병아리들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오는 모습이 그렇게 기이해 보일 수가 없다. 에스컬레이터에서 장난치는 꼬맹이마냥 벨트 위에서 방향을 거슬러 뒤뚱뒤뚱 뛰어다니는 동물이 자동차 부품이나 드라이버처럼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누군가 아주 비싼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다. 도무지 이 광경이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익숙해지고 아니고가 중요한게 아니었다. 이것이 컨베이어 벨트 작업의 가장 파괴적인 영향력이 아닐까 싶은데,
일을 하다 보면 그냥 아무 느낌이 없어진다. 내 손으로 하는 행동인데 어떠한 실재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수백 마리일 때는 병아리들이 지나가는거지만 수천 마리일 때는 뼉뼉대는 인형들이 지나가는 거고 수만마리일 때는 노란 털 뭉치들이 지나갈 뿐이다. 컨베이어 벨트에는 어떤 감정이건 그것이 얼마나 강렬했건 순식간에 무뎌지게 만드는 힘이있었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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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 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무서운 강요와 칼같은 차단이 숨어 있었다.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 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 - P29

베르타는 비웃듯이 입가를 비틀었다. 조금 전 성당 안뜰에서 그들은 당장 내일이라도 빅토르의 병원에 달려가 봉사할 듯이, 앞다투어 소피아의 입양을 주선할 듯이 떠들어댔지만 내일이 되면 그들 중 누구도 마리아의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조금도 믿지 않으면서 무엇을 위해 그런 허튼소리들을 내뱉은 것일까.
베르타는 가을 저녁의 찬 기운에 오싹함을 느꼈다. 자신이 왜 그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왔는지가 분명히 이해되었다. 참 고귀하지를 않다. 전혀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 베르타는 카디건 앞섶을 여미고 종종걸음을 쳤다.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였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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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이십 주기 추모 모임 단체 대화방에 나는 부영과 경애를 초청했다. 둘 다 들어와서 인사도 하지 않고 메시지를 올리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의 메시지를 읽는 것 같지도 않더니 잠시 뒤 경애가 대화방을 나갔다는 알림이 떴다. 그럴 줄 알았지만 그럴 줄 모르기도 했다. 나는 부영이 먼저 나갈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부영은 계속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게 대화방을 나가지 않겠다는 의지처럼 생각되지는 않았다. 나가는 최소한의 행위도 하지 않는 방치나 무시, 또는 자신이 초청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완전한 망각 같았다. 그렇게 부영은 끝까지 메시지를 읽지 않은 ‘1‘의 숫자로 남아 있었다. 올해에도 정원의 추모 모임에 간 사람은 나 혼자였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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