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FDA는 SSRI 계열 항우울제가 아동의 자살 생각을 촉발시킬 수 있다면서 가장 강력한 경고인 블랙박스[주요 부작용과 주의사항에 검은 사각형 테두리를 둘러 눈에 띄게 하는 조치] 표시를 지시했다. 2007년, 블랙박스 경고 대상은 청소년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그 결과 많은 의사들이 항우울제 처방에 경계심을 갖게 되었고,
이듬해에 아동에 대한 SSRI 처방이 20퍼센트 감소하였으며 청소년 자살이 12퍼센트 증가했다. 1979년에 자료 수집이 시작된 후 그어느 해보다 큰 증가였다. 성인에게는 블랙박스가 해당되지 않았고 성인의 경우 약이 자살을 막아 준다는 명백한 연구 결과가 나왔음에도 성인에 대한 처방도 대폭 감소했다. 심지어 우울증 진단조차 감소했으니, 그 경고가 광범위한 냉각 효과를 발휘한 셈이었다. 이후 SSRI 계열 처방률이 증가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2004년 이전 수준을 밑돌고 있다. 캐나다와 네덜란드에서도 항우울제 사용의 감소와 동시에 청소년 자살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예일대학교의 한 연구는 SSRI 처방의 감소가 청소년 범죄, 학업실패, 약물남용과 인과관계는 다소 약하지만)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 P792

「언론은, 어떤 사람들은 항우울제를 복용한 직후에 자살하거나 자살 기도를 한다는 주장에 주목해 왔다. 그 주장들은 진실처럼 보이지만, 약이 자살의 원인이라는 증거는 없다. 항우울제 처방을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릴 때 항우울제를먹기 시작한다. 이 치료들은 대개 몇 주는 지나야 효과가 나타난다. 자살 기도의 위험성이 가장 큰 시기는 약이 완전한 효과를 나타내기 전, 환자가 가장 심각하고 해결되지 않은 우울증에 시달릴 때다. 실제로 자살 감정은 사람들이 치료를 모색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시애틀 집단건강연구소 그레고리 사이먼은 통계적으로 자살 위험은 우울증 환자들이 약물치료를 시작하기 직전에 가장 높고, 약효가 나타나기 전에도 호전에 대한 기대감이 우울증 중세들을 조금은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어 다소 낮아지며, 그러다 약물치료가 완전한 효과를 보이기 시작하면 꾸준히 낮아진다는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양상은 심리치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자살 위험은 심리치료가 시작되기 직전에 가장 높고, 첫 달에는 얼마간 감소하며, 치료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 상당한 감소세를 보인다. - P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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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를 우리 참고도서 목록에 넣는 건가요?"
" 기억하겠지만," EF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내 목록은 전적으로 선택이에요. 각 수업 과정에서, 바라건대는, 학생들이익숙하지 않지만 읽고 싶을 수도 있는 책을 제시할 거예요."
"하지만 선생님은 지금" 제프가 약간 공격적인 태도로 말했다. "우리한테 히틀러를 읽으라고 제안하는 거잖아요?"
"나는 우리와 반대되는 사람이나 우리가 반대하는 사람과 익숙해지자고 제안하고 있어요. 살아 있는 인물이든 죽은 인물이든, 종교적 반대든 정치적 반대든, 심지어 일간신문이든 주간 잡지든. 네 적을 알아라-단순하고 설득력 있는 규칙이죠- 심지어 죽은 적이라 해도, 그 적이 쉽게 부활할 수도 있으니까. 또 어떤 위대한 작가의 표현대로, ‘이 괴물들이 우리에게 역사를 설명해 준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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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소설가, 시인, 기자는 매일 글을 쓴다. 그 직업을 얻기까지도 매일 썼을 것이고 얻고 나서도 계속 쓸 것이다. 직업인이 되면 원고 청탁이든 기사 할당이든 쓰기의 장이 마련된다. 그럼 글쓰기의 실력이 는다. 신경가소성의 원리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 뇌의 구조가 그에 맞춰 바뀌기 때문에 계속 연습할수록 더 잘하게 된다. 어느 정도까지는.
롤랑 바르트는 좀 다르게 말했다. "숙련성이란 관리된 빈곤화"라고, 이에 따르면 ‘계속하기‘는 활기찬 행동이 아닌 습관적반복의 위험에 노출되는 거다. 기계적인 쓰기는 약인가 독인가. 매일 써서 빈곤해지는 흐름이 있고 매일 써서 풍요해지는 흐름이 있다. 쓰기 전엔 알 수 없다. - P133

나는 영화 『마션』으로 말문을 열었다. 주인공은 화성에서 생존한 식물학자다. 개인의 탁월한 지적 능력과 기지, 포기를 모르는 집념과 도전, 전 지구적 기술을 동원해 고난을 이겨 낸 영웅이다. 자서전 감이다. 하지만 대부분 평범한 사람은 화성은커녕 바다 건너 제주에 가다가도 배가 가라앉아 죽는 운명을 산다. 우리나라에서 오백만 명이 「마션」을 보고 열광하지만 우리들실제 삶은 세월호 희생자 삼백 명에 더 가깝다. 화성까지 갈 것도 없이 지구 변방의 나라에서 살아남기도 얼마나 어려운가.
자서전이란 말은 오염됐다는 것. 금메달을 향한 좌절과 고난을 극복한 질주의 서사도 훌륭하나 지리멸렬한 일상의 반복에서 수치와 모욕을 커피 한 모금처럼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도 가치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공든 탑은 자주 무너지고 뿌린대로 거두지 못하는 삶은 많다. 그런 허망을 알고도 살아가는것은 더 대단한 일이다. 그것을 쓰자고 독려했다. 큰 업적을 이루기보다 작은 성과를 빼앗기며 묵묵히 "파랑 같은 날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기 자신을 설명하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 P141

지옥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부사들로뒤덮여 있다.
- 스티븐 킹 - P170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싸움에 참여한 주민 인터뷰집 「밀양을살다』에서 김영자 어르신이 한 말이 떠오른다. 한평생 농부로산 그는 고된 수작업 모내기를 하면서도 허리가 아프지 않았고밀가루 음식도 거뜬히 소화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옛날에는 내 위장도 미제고 내 허리도 미제인 줄 알았어예. 우리 클때는 미제가 제일 좋았거든요."
자기 몸에 관한 이 얼마나 탁월한 은유인지. 웃기고 뭉클해여운에 잠겼다.  - P173

시인 이성복은 한 인터뷰에서, 문학은 세상에 없는 길을 가는 것이고 거미처럼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며 나쓰메 소세키와 김수영을 들어, 두 사람은 자기 자신을 소처럼 온몸으로밀고 나가는 글쓰기를 했다고 말했다.
눈물겨운 이름 김수영. 닮고 싶은 글쟁이다. 그가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모더니스트이자 참여 시인이라서가 아니다. 자기의 불완전성과 세속의 지긋지긋함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 까발리고 성찰하는 사람이라서 좋다. 매끄러운 정직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우직함이 신뢰를 준다. 그의 시나 산문에서 드러나는 언행은 꽤나 거칠고 고지식한데 그래서인지 투명하다.
오십원짜리 갈비에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는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잘 알려져 있고, 길에서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히고도 현장에 버리고 온 우산을 아까워하는 시「죄와 벌」도 있다. 자기는 시인임에도 시와 반역된 생활을 하고있다며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책한다. 4·19일주기에 쓴 산문에서는 "오늘이라도 늦지 않으니 썩은 자들이여, 함석헌 씨의 잡지의 글을 한번 읽어 보고 얼굴이 뜨거워지지 않는가 시험해 보아라. 그래도 가슴에 뭉클해지는 것이 없거든 죽어 버려라!"라고 일갈한다.
한 사람의 잡스러운 감정, 부끄러운 기억, 파격적인 생각의극단까지 밀고 나가는 시인 김수영이 기준이 되어 버리니 올바름과 위대함만 있는 글은 꼭 가짜 같다. - P201

필력은 체력이다. 머리가 맑지 않으면 단어 하나 떠오르지 않고 사실 관계 확인도 귀찮아지니까 단단한 글이 나올 수 없다. 감정의 건강도 챙겨야 한다. 작가는 쓰는 사람이기 전에 듣는사람이다. 심사가 복잡하면 왜곡해서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듣는 귀도 건강에서 온다.
세상이 갈수록 나빠지고 체력도 급속도로 떨어지는 요즘 나는 고민한다. 고통에 납작하게 눌리거나 눈물에 익사당하지 않고 어떻게 척추와 손가락을 지탱하며 쓸 것인가. 한강의 소설이그랬고,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보면 예전엔 문장과 관점이 보였는데 이젠 작가의 체력과 눈물이 보인다. 위대한 작품 뒤엔 위대한 건강이 있다. - P227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 그건글쓰기를 통해 공유되는 고독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눈앞의 인간관계보다는 깊은어딘가에서 홀로 지내는 것이 아닐까?
- 리베카 솔닛

••••••

이런 영향 관계로 연결된 나는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난다. 지구본 위에 어디쯤 한 점으로 놓여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연결되는 상상을 한다. 서로가 보내는 고독의 신호를 읽어 내는 우정의 공동체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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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바닥인 상태에서 스스로 만든 고치 속에 들어 있으면 우울증은 심해질 뿐이다. 환자 본인도 가능한 혼자 있는 걸 피해야 한다는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내가 우울증 환자의 가족과 친지들에게 해주고 싶은 또 하나의 조언은, 우울증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타인의 두려움은 그것을 유발한 사람에게 끔찍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 우리 우울증 환자들은 그리 무서운 존재들이 아니다. 나는 우울증 환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기분은 성격이 아니다.
우울증 환자를 아는 게 충격적인 일이라면, 우울증 환자를 몰라보는 건 더 충격적인 일일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우울증을 알아보고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우울증은 그것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철저한 비밀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 2009년 10월 17일, 나의 대학 기숙사 룸메이트이자 평생 친구였던 테리 로시 커크가 자살했다. 그 이후 나는 친구를 잃은 슬픔과, 늘 쾌활했던 테리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우울증에 시달릴 수 없다고 여긴 나자신의 순진함에 대한 애석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나는 우울증 전문가를 자처하면서도 테리가 보내는 신호들을 잘못 읽은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을 하면 죄책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애쓴다. 하나의 자살은 천 번쯤 되는 도움의 기회를 모두 놓쳐 버린것,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죽은 이를 구하지 못한 것으로 느껴지기때문이다. - P746

불면증을 해결하면 우울증 치료의 효과가 높아진다는 결과를내놓은 연구들도 있다. 한 소규모 연구에서는, 불면증을 해결한사람들의 87퍼센트가 항우울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이는불면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보다 두 배나 높은 수치였다. 우리는 우울증이기 때문에 잠을 잘 못 자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불면증 때문에 우울한 것이기도 한 것처럼 보인다. 수면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들에서 사람들은 불면증 해결을 위해 인지행동 치료를 받고, 수면 시간과 깨어 있는 시간을 규칙화하는(낮에는 침대를 멀리하고, 침대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지 않고, 낮잠을 자지 않는 등) 법을 배웠다. 이 연구들 다수를 듀크대학교 앤드루 크리스털이 지휘했다. 그는 잠에 대해 "아직 미답 상태의 거대한 정신의학의 변경지대"라고 표현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신체는 복잡한 생물학적 주기를 지니고 있으며, 정신의학에서는 대부분 그 주기를 무시한다. 우리의 치료들은 편의에 쫓긴다. 우리는 낮 동안 치료하고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내려는 노력은 거의 기울이지않는다." - P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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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런 환상은 환상의 대상보다는 환상을 품는 사람을더 규정한다. 그들은 그녀가 찬란한 과거 또는 가상의 현재에서 실제로 살고 있는 삶에 대한 보상을 구한다고 가정하고, 나아가서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현재 어떤 식으로든 결핍과 불만이 있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이것은사실이 아니었다. 우리 앞에 선 엘리자베스 핀치는 완성품이었다. 그녀 스스로 만들어낸 것, 그녀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낸 것, 세상이 제공한 것의 합이었다. 단지 현재 표현된 세상만이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 존재하는 세상이 제공한 것. 점차 우리는 우리의 엉성한 공상이 그녀의 독특함에 대한 초기의 불필요한 반응임을 이해하고 옆으로 밀어놓게 되었다. 그러자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그녀는 우리를 모두 정복했다. 아니, 그건 딱 맞는 말이아니다. 그보다 더 깊은 수준의 변화였다. 그녀는 단지 모범을 보임으로써-우리가 우리 내주에서 진지함의 중심을 구하고 찾게 했다. - P35

세월이 흐른 뒤 나는 점심을 먹으면서 그녀에게 이른바 모차르트 딜레마에 관해 물었다. 삶은 아름답지만 슬픈가요, 아니면 슬프지만 아름다운가요? 오늘의 파스타 두 접시를 사이에 놓고 그녀 맞은편에 앉아 있자니 마치 신탁을 구하고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삶은 필연적인 동시에 불가피하죠." 그녀가 대답했다. 그 유명한 질문은 현혹하는 망상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엘리자베스 핀치만큼 자기 연민이 없는 사람은 안적이 없었다. 그녀는 자기 연민을 천하다 이것은 그녀가 도덕적 의미로만 사용하지 사회적 의미로는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형용사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 자신에 관해 말하자면 자기 연민이 없는 것은 그녀가 삶을 대하는 스토아철학적 태도의 일부였다. 그녀는 로맨스에서의 실망, 외로움, 친구들의 배신, 심지어 공적 망신 주기(이이야기는 앞으로 나올 것이다)를 경험했지만 확실하게 알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런 것들을 차분하고 무관심하게 마주했다. "마주했다"라고 하면 겉모습, 또는 적어도 어떤 전략이 느껴질 수도있지만 그녀의 스토아철학은 그녀 존재의 핵까지 장악하고있었다. EF에게는 그것이 삶에 다가가는 유일한 정신적 그리고 기질적 방식이었다. 그녀는 완강하게 고통을 견디었고 절대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정신적 도움을. 그녀는 우리에게 어떤 말을 받아 적을 수 있는 속도로 인용한적이 있는데 내 학생 시절 공책에 그 말이 적혀 있다. - P40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해볼 수 없다. 우리의 의견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우리의 충동, 욕망, 혐오-간단히 말해서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모든것-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고, 우리의 소유나 평판이나 공적 직책도 마찬가지다. 즉, 우리자신에게서 비롯되지 않는 모든 것이 그렇다.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일들을 하면 그 성격상 자유롭고 방해가 없고 막힘이없다.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을 하면 약해지고 속박되고 방해받는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기억하라. 본성상 속박하는 것이 자유를 준다거나 네 것이 아닌 것이 네 것이라고 생각하면 좌절하고 비참해지고 화가 날 것이며 신과 사람탓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네 것만을 네 것이라 생각하고 네것이 아닌 것은 그냥 있는 그대로 네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도 너에게 강요하지 않고 아무도 너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고, 너는 아무도 탓하지 않고 아무도 비난하지 않고 내키지 않는 일을 단 하나도 하지 않을 것이며, 너는 적이 없고 아무도 너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해치려 해도 너는 전혀 해를 입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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