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소설가, 시인, 기자는 매일 글을 쓴다. 그 직업을 얻기까지도 매일 썼을 것이고 얻고 나서도 계속 쓸 것이다. 직업인이 되면 원고 청탁이든 기사 할당이든 쓰기의 장이 마련된다. 그럼 글쓰기의 실력이 는다. 신경가소성의 원리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 뇌의 구조가 그에 맞춰 바뀌기 때문에 계속 연습할수록 더 잘하게 된다. 어느 정도까지는. 롤랑 바르트는 좀 다르게 말했다. "숙련성이란 관리된 빈곤화"라고, 이에 따르면 ‘계속하기‘는 활기찬 행동이 아닌 습관적반복의 위험에 노출되는 거다. 기계적인 쓰기는 약인가 독인가. 매일 써서 빈곤해지는 흐름이 있고 매일 써서 풍요해지는 흐름이 있다. 쓰기 전엔 알 수 없다. - P133
나는 영화 『마션』으로 말문을 열었다. 주인공은 화성에서 생존한 식물학자다. 개인의 탁월한 지적 능력과 기지, 포기를 모르는 집념과 도전, 전 지구적 기술을 동원해 고난을 이겨 낸 영웅이다. 자서전 감이다. 하지만 대부분 평범한 사람은 화성은커녕 바다 건너 제주에 가다가도 배가 가라앉아 죽는 운명을 산다. 우리나라에서 오백만 명이 「마션」을 보고 열광하지만 우리들실제 삶은 세월호 희생자 삼백 명에 더 가깝다. 화성까지 갈 것도 없이 지구 변방의 나라에서 살아남기도 얼마나 어려운가. 자서전이란 말은 오염됐다는 것. 금메달을 향한 좌절과 고난을 극복한 질주의 서사도 훌륭하나 지리멸렬한 일상의 반복에서 수치와 모욕을 커피 한 모금처럼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도 가치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공든 탑은 자주 무너지고 뿌린대로 거두지 못하는 삶은 많다. 그런 허망을 알고도 살아가는것은 더 대단한 일이다. 그것을 쓰자고 독려했다. 큰 업적을 이루기보다 작은 성과를 빼앗기며 묵묵히 "파랑 같은 날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기 자신을 설명하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 P141
지옥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부사들로뒤덮여 있다. - 스티븐 킹 - P170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싸움에 참여한 주민 인터뷰집 「밀양을살다』에서 김영자 어르신이 한 말이 떠오른다. 한평생 농부로산 그는 고된 수작업 모내기를 하면서도 허리가 아프지 않았고밀가루 음식도 거뜬히 소화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옛날에는 내 위장도 미제고 내 허리도 미제인 줄 알았어예. 우리 클때는 미제가 제일 좋았거든요." 자기 몸에 관한 이 얼마나 탁월한 은유인지. 웃기고 뭉클해여운에 잠겼다. - P173
시인 이성복은 한 인터뷰에서, 문학은 세상에 없는 길을 가는 것이고 거미처럼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며 나쓰메 소세키와 김수영을 들어, 두 사람은 자기 자신을 소처럼 온몸으로밀고 나가는 글쓰기를 했다고 말했다. 눈물겨운 이름 김수영. 닮고 싶은 글쟁이다. 그가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모더니스트이자 참여 시인이라서가 아니다. 자기의 불완전성과 세속의 지긋지긋함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 까발리고 성찰하는 사람이라서 좋다. 매끄러운 정직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우직함이 신뢰를 준다. 그의 시나 산문에서 드러나는 언행은 꽤나 거칠고 고지식한데 그래서인지 투명하다. 오십원짜리 갈비에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는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잘 알려져 있고, 길에서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히고도 현장에 버리고 온 우산을 아까워하는 시「죄와 벌」도 있다. 자기는 시인임에도 시와 반역된 생활을 하고있다며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책한다. 4·19일주기에 쓴 산문에서는 "오늘이라도 늦지 않으니 썩은 자들이여, 함석헌 씨의 잡지의 글을 한번 읽어 보고 얼굴이 뜨거워지지 않는가 시험해 보아라. 그래도 가슴에 뭉클해지는 것이 없거든 죽어 버려라!"라고 일갈한다. 한 사람의 잡스러운 감정, 부끄러운 기억, 파격적인 생각의극단까지 밀고 나가는 시인 김수영이 기준이 되어 버리니 올바름과 위대함만 있는 글은 꼭 가짜 같다. - P201
필력은 체력이다. 머리가 맑지 않으면 단어 하나 떠오르지 않고 사실 관계 확인도 귀찮아지니까 단단한 글이 나올 수 없다. 감정의 건강도 챙겨야 한다. 작가는 쓰는 사람이기 전에 듣는사람이다. 심사가 복잡하면 왜곡해서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듣는 귀도 건강에서 온다. 세상이 갈수록 나빠지고 체력도 급속도로 떨어지는 요즘 나는 고민한다. 고통에 납작하게 눌리거나 눈물에 익사당하지 않고 어떻게 척추와 손가락을 지탱하며 쓸 것인가. 한강의 소설이그랬고,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보면 예전엔 문장과 관점이 보였는데 이젠 작가의 체력과 눈물이 보인다. 위대한 작품 뒤엔 위대한 건강이 있다. - P227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 그건글쓰기를 통해 공유되는 고독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눈앞의 인간관계보다는 깊은어딘가에서 홀로 지내는 것이 아닐까? - 리베카 솔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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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향 관계로 연결된 나는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난다. 지구본 위에 어디쯤 한 점으로 놓여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연결되는 상상을 한다. 서로가 보내는 고독의 신호를 읽어 내는 우정의 공동체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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