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끔찍한 이유가 본질화(essentialization)하기 때문이거든요. 사람이 가진 특징 중 일부를 들어서 그 사람의 전체를 판단해버리는 것이요. ‘흑인은 이렇다‘, ‘이주노동자는 이렇다‘, ‘연변에서 온 사람들은 이렇다‘는 식의 발언에서 잘 드러나죠. 사실, 해당 집단에 속한 개개인 모두가 너무나 다양해서 한두 가지 특징으로 묶을 수는 없잖습니까. ‘한국인은 이렇다‘는 식의 발언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위험하고 또 비과학적이죠. 조심스럽기는 한데, 공사장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 중에 험한 말을 쓰는 분들이 간혹 있잖아요. 듣고 있으면 ‘무식해‘ 보이죠. 그런데 그 ‘무식하다는 느낌‘을 역사적으로 또 사회문화적으로 해석해내지 않고 지능과 연결시켜버리면 그 사람이 속한 사회경제적인 계층을 ‘지능이 낮은 계층‘으로 본질화해버리는 거죠. 지능이 낮으니 저런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인데, 정말 끔찍한 거예요. 이런 사고방식은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인종주의와도 닿아 있고요. - P55

네. 이처럼 읽을 줄 안다 모른다를 결정하는 힘이야말로 삶을 좌지우지하는 결정적인 권력이 되는 거죠. 문제는, 이때 말과 글이 누구의 말과 글이냐는 것인데요. 관공서 사람들은 우리 어머니의 말을 이해할 필요가 없었죠. 그건 그 사람들한테는말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살아남기 위해서, 속지 않고 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의 말을 이해해야 했던 거예요. 그런데 그게너무 어려워요. 리터러시라는 말은 이미 ‘누군가‘의 말과 글만 말과 글로 상정하고, 그 누군가가 아닌 사람들의 말과 글은 배제하고 출발합니다.
저는 이런 점에서도 리터러시에서 중요한 것이 상호성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네가 말을 못 한다. 네가 글을 못 읽는다‘가 아니라, ‘내가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가 될 때에야 비로소 리터러시가 상호적인 것이 되고 서로가 성찰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귀를 기울이게 하고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힘쓰게 합니다. 그러지 않고, 내가 읽는 방식대로 읽지 않으면 ‘너는 문맹이야, 난독증이야‘라고 하는 것은 관계를 짓는 일이 아니라 상대를 모욕하고 비인간화하는 일이에요. - P64

리터러시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이어떤 윤리적 책무를 가져야 하는가에는 관심이 없고, 이게 얼마나 권력적인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리터러시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사회를 서열화하고 지배와 피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 또는 누군가를 비인간화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거죠.

노회찬 의원이 돌아가셨을 때, 저는 리터러시와 관련해서 우리 사회가 중요한 자산을 잃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국 정치에서 찾아보기 힘든 상징적 자산을 잃었다는 거죠. 저는 정치를 잘 모릅니다만, 한국의 정치인 중에서 메타포를 가장 노련하게 다룬 분이 노회찬 의원이었다고 생각해요. 메타포, 은유라는 게 여러 가지 담화적인 또 사회적인 기능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논의들을 좀 더 구체적인 것과 연결시켜서 이해의 지반을 만드는 것이에요. 정치적인 논의에서 어떤 벽이 있을 때 원론적인 얘기나 단순 정보를 반복하면 정치를 둘러싸고 있는 대중, 정당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들, 혹은 일반 뉴스 소비자들이 바로 이해하기가 무척 힘들죠. 이럴 때 적절한 메타포를 들어주면 대번에 이해가 되는데, 중요한 건 원래 사안의 핵심을 버리지 않고 메타포에 담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빠르게 적절한 메타포를 구사하는 정치인은 굉장히 소중한 자산이에요.  - P67

이렇게 볼 때, 인터넷 커뮤니티 대부분의 의사소통은 동일한 언어들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것에 가까워요. 동일한 언어들이 반복되는 걸 잘 보여주는 단어가 바로 ‘동감합니다‘인데요. 누군가가 쓴 글을 보니, 내가 생각하던 것을 이 사람이 썼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평소 내가 생각하던 것이라 해도 다른 사람이 썼다면 나하고는 다르게쓰거든요. 좀 더 디테일하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좀 더디테일하게. 대신 내가 좀 더 디테일하게 쓸 수 있는 부분은 빠져 있겠죠. 이런 격차, 차이가 존재하는데, 이 차이를 없애버리는 말이 ‘동감합니다‘예요.
생각해보세요. 동의한다, 동감한다는 말은 나도 이미 그걸 알고 있다는 뜻이죠. 나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정도라면 거기에서무슨 배움이 일어나고 도약이 일어나겠어요. 그저 강화만 될 뿐이죠. 그런 면에서, 도약의 반대편에 있는 게 강화라고 생각해요. 제 책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3부에서 제가 강조했던 게, 이런 의사소통의 공간은 서로의 감정의 강도만 강화하는 공간이라는 겁니다(엄기호,2019). 공감이라는 이름으로요. 문제는 이 공간이 전혀 성찰적이지 않다는 사실이죠. 최근에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 <공감의 배신》이라는 책도 출간되었습니다(폴 블룸, 2019).
뭔가 활발하게 가르치는 것 같고 배우는 것 같지만, 사실 강도만 세질 뿐 도약은 일어나지 않는 거죠. 저는 이렇게 도약이 일어나지않는 것 자체를 비문해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터러시를 상태가 아니라 운동이라고 정의한다면, 한 상태에서 계속 강화만 되는 것은 비문해죠. 이런 점에서 보면 확실히 리터러시의 위기가 존재한다고볼 수 있습니다. - P72

텍스트성이 자리 잡은 문화에서는 텍스트 간의 관계, 위계가 중요해져요. 어떤 텍스트가 경전으로서의 가치가 더 큰가, 어떤 텍스트가 더 권위가 있는가, 이런 것이 중요해지죠. 리터러시 연구에 있어 기념비적인 저서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서 월터 옹은 등위접속사에서 종속접속사로 넘어가는 것이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사이의 큰 차이라고 얘기했어요. 쉽게 말하면, 구술문화의 특징은 발화가 and로 연결되는 데 반해 문자문화는 that과 같은 종속절이 주요한 특징이라는 거죠. 구술성의 주요한 특징이 문장이 첨가적으로 이어진다는 건데요. 아이들이 그렇게 말을 많이 해요. "이거했고 그리고 이거했고그리고 이거했어." 이 말 속의 and에는 위계가 없어요. 계속 내용이 첨가되는 거죠. 하지만 문자문화에서는 위계가 생기죠. 영어로 I think that~이라고 하면 that절이 I think의 하위로 들어가죠. Before나 after같은 접속사는 시간적인 순서를 규정하고요. 문자문화가 발달할수록 and로 연결되는 문장보다는 주절과 종속절이 결합된 문장이 많아지는 겁니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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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뛰어난 학생이라는 사실 외에 황후에게 꽃다발을 바치는 여학생으로 선발된 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는 샤선생과 마찬가지로 모든 서식에 있는 민족을 구분하는 난에 언제나 "만주족"이라고 기입했는데, 만주국은 만주족이 스스로 세운 독립국가라고 표방되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만주국 황후에게 꽃다발을 바치는 학생으로 선발되는 데 유리했던 것이다. 푸이는 일본인들에게 매우 유용한 존재였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만주족 황제의통치 아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샤 선생은 자신을 충성스런 신하로 생각했고 외할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통적으로 여인이 자기 남자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모든점에서 그 남자와 견해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외할머니에게는 샤 선생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외할머니는 샤선생에게 매우 만족했기 때문에 추호도 샤 선생과 견해를 달리 할생각이 없었다.
어머니는 학교에서 그녀의 조국이 만주국이라고 배웠다. 이웃 중국에는 두 공화국이 있는데, 하나는 만주국에 적대적인 장제스가 이끄는 공화국이었고 또다른 나라는 왕징웨이가 우두머리인 만주국에 우호적인 나라라고 배웠다(왕징웨이는 당시 중국의 일부를 통치하던 일본의 꼭두각시인 통치자였다). 그녀는 만주가 "중국"의 일부라는 사실은 배우지 않았다. - P102

샤 선생은 오랫동안 황제 푸이는 일본인들이 행하는 이런 나쁜 짓을 모르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황제가 사실상 일본인들의 포로이기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푸이가 일본을 부르는 방식이 "우리의 친절한 이웃 나라"에서 "형님 나라‘로 바뀌고 다시 "부모 나라"로 바뀌자 샤 선생은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치면서 그를 "저 바보같은 겁쟁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아직 샤 선생은 만주인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잔혹행위의 책임을 황제가 어느 정도 져야하느냐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마침내 2건의 충격적인 사건이 샤 선생의 세계를 확 바꾸어놓고 말았다.
1941년 말의 어느 날, 샤 선생이 진료실에 있는데 그가 한번도 본적이 없는 한 남자가 진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누더기를 걸쳤고 야윈 몸은 심하게 구부러져 거의 포개지다시피 되어 있었다. 그사람은 철도 노동자인데 심한 위장병에 시달려왔다고 했다. 그는 1년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부터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무거운 짐을 나른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어떻게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모르겠다고 하면서도 그 일자리를 잃어버리면 자기는 아내와 갓 태어난 아기를 먹여살릴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샤 선생은 그에게 약해진 위가 그가 먹어야 했던 거친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1939년 6월 1일 정부는 이제부터 쌀은 일본인들과 소수의 부역자들을 위해서 남겨두어야 한다고 공포했다. 대다수의 현지인들은 도토리죽과 수수로 연명해야 했다. 이것은 소화가 잘 안 되는 음식이었다. 샤 선생은 그에게 얼마간의 약을 무료로 주고, 외할머니에게 암시장에서 불법으로 사온 쌀을 조금 주라고 했다. - P105

이틀 후 전교생이 샤오링허가 굽이쳐 흐르는 서문 밖 황량한 눈덮인 벌판으로 행진했다. 인근 지역 주민들 역시 촌장들의 인솔로그곳으로 왔다. 아이들은 그들이 "대일본제국에 순종하지 않는 나쁜 사람을 벌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는 문득 친구가 일본군 경비병들에게 끌려 바로 어머니 앞으로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쇠사슬에 묶여 있어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고문을 당한 그 소녀는 얼굴이 잔뜩 부어서 어머니도 잘 알아볼수 없을 지경이었다. 일본군 병사들이 총을 들어 그녀를 겨냥했다. 그 소녀는 무엇인가 말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입에서는 아무 말도나오지 않았다. 총성이 들렸고 소녀는 눈에 선혈을 뿌리며 앞으로푹 고꾸라졌다. 일본인 교장 "당나귀"가 학생들의 동정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어머니는 북받치는 감정을 숨기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머니는 이제 하얀 눈 위에 선명하게 그려진 빨간 핏자국 위에 누워 있는 친구의 시체를 억지로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누군가가 흐느낌을 억누르려고 애쓰는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젊은 일본인 여교사 다나카였다. 어느 틈에 다나카 선생에게로 다가간 "당나귀가 그녀의 뺨을 때리고 발길로 걷어찼다. 땅에 쓰러진 다나카 선생은 몸을 굴려 교장의 발길질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교장은 계속 사정없이 발길질을 해댔다. 교장은그녀가 일본 민족을 배신했다고 으르렁댔다. 마침내 "당나귀"가 발길질을 그치고 학생들을 올려다보며 학교로 향해 행진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는 구부러진 여선생의 몸과 친구의 시체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보고 억지로 증오심을 삼켰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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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지금 여기에서
‘삶을 위한 리터러시‘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김성우

언어와 삶이 맺는 관계는 어떻게 개인과 공동체를 바꿀 수 있을까? 변화의 방향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며 변화의 동력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연대하고 성장하는 말은 어떻게 가능할까?
전통적으로 언어와 삶의 관계는 말이 세계를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묻는 방식으로 탐구되어왔다. 이 틀 안에서 보면 세계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말은 옳지만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는 말은 그릇되다. 참과 거짓, 이 두 가지 범주는 문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내 말이 맞아." 혹은 "네 말이 틀렸어."가 말에 대한 가장 중요한 평가가 되는 셈이다. - P9

최근 동영상매체의 부상은 새로운 시대적 화두를 던지고 있다. 2018년 《뉴욕타임스》가 발행한 특집 기사의 제목은 무려 ‘탈텍스트미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Post-text Future)‘이다. 기사는 "우리가 온라인에서 경험하는 시간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변화는 텍스트의 쇠퇴와 오디오, 비디오의 파급 및 영향력의 폭발적증가에 있다."라는 논쟁적인 선언으로 시작된다. 문자매체가 조만간 사라질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온라인에서만큼은 오디오와 비디오에 주도적인 자리를 내줄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도 초등학생들이 문자매체보다 영상을 통한 정보 접근을 선호한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책이나 백과사전, 심지어 검색엔진도 아닌 유튜브가 지식의 제1원천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동영상 정보채널의 다양화, 스트리밍 서비스의 인기 등은 동영상 중심의 미디어 환경을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교과서와 ‘전과‘를 중심으로 기초교육을 받은 40~50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정보 환경이 도래한 것이다.
이는 단지 매체의 다양화에 그치지 않는다.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는 우리가 시간을 구획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정보채널을 변화시키고, 사용하는 감각의 비율을 변화시킨다. 개인이 음식을 섭취하여몸을 만들어가듯, 우리가 접하는 매체는 사고와 정서의 뼈대를 만든다. 그렇기에 이 시대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세계를 인식하고지식을 구성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관계 맺기의 양상을 구성하는 방식의 거대한 변화다. 읽고 쓰기의 풍경 또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문해력의 추락에 대한 우려가 커져간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도도한 흐름을 이해하고 지혜롭게 항해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듯하다. - P11

먼저 글, 즉 문자언어의 습득입니다. 말의 세계에서 글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 필수라는 뜻이죠. 둘째는 이를 통한 지식 및 정보에의 접근입니다. 글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어떤 정보, 지식, 데이터에 접속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게 되겠죠. 세 번째는 이에 기반한 문제해결 능력입니다. 문서를 이해하고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은 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상황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죠. 간단히 말해 리터러시는 글을 배우고 사용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포함하는데, 이렇게 놓고 보면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사건 같지만 사실은 이들이 모두 엮여서 문식성의 발달을 이루게 됩니다. 예를 들어 문자언어를 전부 습득한 다음에 문제를 해결한다기보다는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관련된 단어나 표현을 찾아보면서 문자언어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동시에 해당 상황을 타개할 수있는 것입니다. - P17

고대에는 ‘문학과 학식‘이, 중세에는 ‘라틴어‘가 근대 이후에는 ‘모국어‘가 리터러시 개념의중핵으로 제시되고 있어요. 여기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역사적, 사회적 맥락마다 리터러시에 대한 태도나 그에 대한 가치 부여 방식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불변하는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적절한 의미가 구성돼온 것이죠. 이처럼 리터러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제도적, 사회문화적 환경을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디지털 환경이 고도화되고 동영상 등의 매체가 급부상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맞는 리터러시의 범위와 구성요소가 무엇인지 검토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라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 P18

하지만 한국 상황에서는 동영상이나 멀티미디어 보조교재를 활용하고 일부 수행평가에 활용한다고 해도, 여전히 시험은 기본적으로텍스트잖아요. 평가체제의 근간이 텍스트라는 거죠. 수능도 마찬가지고요. 10대, 20대는 어찌 보면 불행한 세대예요. 삶에서 늘 접하는미디어가 동영상과 이미지, 소셜미디어인데, 이것과 동떨어진 방식으로 어른들에게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더 비판적으로는 젊은 세대가 삶 속에서 배우고 경험하는 것을 평가할 만한 잣대가 어른들한테 없다는 것을 지적해야겠죠. 여전히 성인들은 자기들이 할 줄 아는 것을 기준으로 새로운 세대를 평가하고 있는 거예요. 배운 대로 가르치고, 평가받았던 대로 평가하고 있는 형국이죠. 하지만 젊은 세대의 삶은 많은 부분 교과서적인 텍스트와 별 관련 없이돌아가고 있죠. 유튜브가 가장 대표적인 예일 테고요.
그러니까 성인들이 10대 전후 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졌다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공부할 시간을 반밖에 주지 않고 평가한 다음에왜 이렇게밖에 못하냐고 비난하는 거랑 비슷하죠. 그건 공정하지 않은 거예요. 공정하지 않은 평가를 하면서 이를 통해 ‘문해력이 떨어졌다‘는 비판이 심화되는 거죠. 소위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같은 경우에는 대개 어렸을 때부터 동영상을 접하거든요. 텍스트를 본격적으로 접하는 건 그다음이에요.  - P32

이런 상황에서 문해력이 탄탄하지 않았던 사람들, 평생 동안 텍스트를 기반으로 지식을 쌓는다든가, 배경의 맥락을 파악하든가, 신문기사나 책을 두루두루 읽어서 사회현상을 파악한 경험이 별로 없었던 사람들한테 전혀 다른 미디어가 주어진 거예요. 쉽게 소식을 접하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데 어려움을 겪던 사람들한테 일종의 신세계가 열린 거죠. 이 세계에 대해 파악할 도구나 무기가 없었는데, 이제는 나에게 최신의 고급 정보가 실시간으로 들어오게 됐어요. 그 통로가 카카오톡이나 유튜브 동영상인 거죠.
이 상황이 전적으로 그분들의 잘못은 아니죠. 사회경제적인 토대가 약했기 때문에 먹고살기 힘들었던 거잖아요. 교육받을 기회 또한 상대적으로 적었고요. 흔히 말하는 비판적인 리터러시를 갖출 만한조건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카카오톡이나 유튜브가 이분들의 세계가 되어버린 거예요. 저는 사회적·교육적 공백이 그런 분들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 사회가 그 세대에게 체계적으로 리터러시를 키워주거나 비판적으로 신문이나 잡지, 책을 소화할 수 있는 토대를 쌓아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새로운 미디어의 거짓 정보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소통과 표현에 대한 욕망이 둑 안에 갇혀 있다가 새로운 채널로 출구를 찾은 거니까요. 그런데 이 상황이 40대나 50대에게는 되게 한심해 보이는 겁니다. " 도대체 노인네들은 왜 저러냐?" - P36

그런데 지금은 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를 일일이 알 필요는없지만, 그것이 주는 정동(affect)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졌어요. 정동은 언어로 의미를 파악하는 게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니까요. 인문사회과학에서 ‘정동적 전회 (情動的 轉回, affective turn)‘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이것이 의미하는 큰 변화가 있습니다. 문자 텍스트 중심의 단일 문해력에서는 이해와 의미 파악이 중요했다면, 지금과 같은 멀티리터러시 상황에서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동이 발동되고 있는가를 알고 공명하는 게 중요해졌다는 것입니다. 케이팝 스타의 유튜브에 전혀 알 수 없는 태국 글자로 댓글이 달려 있고 또 한자가 적혀 있고 하지만, 거기 붙어 있는 이모티콘과 느낌표를 보면 어떤 느낌인지는 아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정동적 독해라고 하는 게의미론적인 독해보다 훨씬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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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주일이 달로 바뀌고 달이 해로 바뀌면서, 장군에 대한 그리움은 무디어졌다. 외할머니는 장군에게는 당신이 한낱 노리개에 불과하다는 것, 언제나 편리할 때 다시 주워들 수 있는 노리갯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외할머니의 불안정한 마음이 초점을 맞출 대상을 잃고 말았다. 그 마음은 꽉 끼는 옷 속에 억지로 눌려 있었다. 그 불안정한 마음이 가끔 사지를 뻗칠 때면, 외할머니는너무 심란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떤 때는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여생 동안 이렇게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증세를 지니고 사셨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외할머니의 "남편"이 잠시 외출하듯이 대문 밖으로 걸어나간 때로부터 6년이 지난 후에 다시 나타났다. 두사람의 만남은 외할머니가 두 사람이 헤어진 직후에 꿈꾸어왔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헤어진 직후에 외할머니는 열정적으로 장군에게달려가 자신을 내던지는 광경을 상상했었다. 그러나 이제 외할머니는 의무감에서 마지못해 그를 맞아들였다. 외할머니는 당신이 하인들가운데 누군가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았을까, 하인들이 장군의 환심을 사고 자신의 일생을 망치기 위해서 엉뚱한 이야기를 꾸며내지는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제 쉰이 넘은 장군은 성질이 많이 누그러진 것 같았고, 전처럼 그렇게 위엄이 넘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외할머니가 예상했던 대로 장군은 자기가 어디에 있었는지, 왜 그렇게 갑자기 떠났었는지, 또 왜 돌아왔는지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외할머니도 묻지 않았다. 따져묻는다고 책망을 듣고 싶지도 않았지만,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 P60

외할머니는 겁이 났다. 첩으로서 외할머니의 장래와, 또 당신이낳은 딸의 장래가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할머니에게는 아무런 권리도 없었다. 만약 장군이 죽는다면, 외할머니는 외할머니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정실부인의 처분에 맡겨질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일은 무슨 짓도 할 수 있었다. 외할머니를 돈많은 남자, 심지어 사창가에 팔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은 흔히 일어났다. 그렇게 되면 외할머니는 자신의 딸을 영영 다시 보지 못할 것이었다. 외할머니는 자신이 딸을 데리고 가능한 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온 외할머니는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 도망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을 하려고 해도 외할머니는 자신의 머리가 피로 가득 차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외할머니의 다리는 너무나 약해서 가구를 붙들지 않고는 걸음도 못 걸을 지경이었다. 낙심한 외할머니는 다시 울었다. 이곳을 빠져나갈 방도가 없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걱정되는 것은 장군이 자기를 이런 덫에 걸리게 해놓고 언제 세상을 뜰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 P66

곧 그는 처음으로 환자의 집으로 왕진을 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그날 저녁 그는 천으로 싼 꾸러미 하나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머니와 외할머니에게 눈을 찡긋해보이면서 두 사람에게 보자기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아맞혀보라고 했다. 어머니는 두 눈을 김이 나는 그 꾸러미에 붙이다시피 했다. 어머니는 "찐 만두!" 하고 외치기가 무섭게 꾸러미를 찢어 열어젖혔다. 어머니는 만두를 게걸스럽게 먹으면서 고개를 들어 반짝이는 샤 선생의 눈에 시선을 맞추었다. 50년이상이 지난 지금도 어머니는 그때의 행복해하던 샤 선생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는 요즘도 그때 먹었던 만두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는 한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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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 치 황금 나리꽃"
군벌 장군의 첩
(1909-1933)

열다섯 살에 외할머니는 군벌 장군의 첩이 되었다. 그 장군은 허약한 중국 정부의 경찰총감이었다. 1924년 당시 중국은 혼돈에 빠져 있었다. 외할머니가 살던 만주를 포함하여 중국의 대부분이 군벌의 통치하에 있었다. 외할머니를 장군의 첩으로 들여보낸 사람은 만리장성에서 북쪽으로 약 160킬로미터, 베이징에서 북동쪽으로 400킬로미터 떨어진 만주 남서부의 지방 도시 이셴의 경찰관이었던 외증조할아버지였다. - P39

하지만 외할머니의 가장 큰 자산은 중국말로 "세 치 황금 나리꽃三寸"이라고 불리던 전족)이었다. 이런 작은 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중국 여성 감식가들의 표현을 빌린다면, 외할머니가 "미풍에 흔들리는 연약한 어린 버드나무 가지처럼" 걷는다는 의미였다. 여인이 전족으로 비틀거리며 걷는 모습이 남자들을 성적으로자극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녀의 무방비성이 보는 사람에게 보호본능을 유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외할머니의 발은 두 살 때 천으로 단단히 묶여졌다. 자신도 전족을 한 외증조할머니가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모든 발가락을 안으로 구부려서 발바닥 밑으로 밀어넣은 채 6미터 정도의 하얀 천으로 발을 감았던 것이다. 그런 다음 아치형 뼈를 부수기 위해서 그 꼭대기에 커다란 돌을 올려놓았다. 외할머니는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어머니(외증조할머니)에게 제발 그만 하라고 애원했다. 외증조할머니는 외할머니가 고함을 지르지 못하도록 외할머니의 입에 천을 물렸다. 외할머니는 고통에 못 이겨 여러 차례 기절했다.
이런 과정은 몇 년 동안 지속되었다. 뼈가 다 부러진 후에도 밤낮없이 발을 두꺼운 천으로 단단히 묶고 있어야 했다. 풀어놓는 순간발이 원상으로 회복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몇 해 동안 외할머니는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살았다. 외할머니가 발을 풀어달라고 애원할라치면 외증조할머니는 울면서 전족을 하지 않은 발이 네 일생을 망칠 거라고, 네 장래 행복을 위해서 이 짓을 하고 있는 거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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