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먼저 온미래

2016년 3월 10일 아침에 신문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국의 프로기사 이세돌 9단이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바둑 AI 프로그램 알파고에게 진 다음 날이었다. 나는 식당에서 국밥을 먹으며TV로 그 대국 일부를 보았다.
이세돌 9단 대 알파고의 1국을 식당에서 대충 본 이유가 있었다. 이 9단이 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식당 문을 나설 때까지 당연히 이 9단이 이길 것이고 그 경기는 그저 흥미로운 일회성 이벤트가 되겠거니 생각했다. 그렇게 역사의 한 장면을 놓쳤다. 그런데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예상이 그랬다. 한국네티즌 대상 설문조사에서 95퍼센트가 이 9단이 승리할 거라고응답했다. - P11

인긴 작가는 도무지 엄두도 못 낼 어마어마한 걸작을 잉공지능을 통해 접한다면 그 무력감이 상쇄될까? 비록 내가 쓰지는 못하더라도 정말 위대한 문학작품을 만나게 된다면 ‘이걸로 됐다‘하는 기분이 들까? 제자 혹은 라이벌 작가가 압도적인 걸작을 쓰고, 상대가 나를 훨씬 뛰어넘은 경지에 있음을 깨닫는다면 나도‘이걸로 됐다‘ 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훌륭한 작품을 보여준 제자 혹은 라이벌 작가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제자 혹은 라이벌 작가가 그런 작품을 발표하고난 직후 23시간 55분 동안 그와 비슷한 수준의 어마어마한 작품들을 287편 더 쓴다면 어떨까? 그때도 나는 그 제자 혹은 라이벌작가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낄까? 위대한 무언가가 나왔으니 그걸로 충분할까?
이 사고실험에는 괴이하고 거의 부적절하게 다가오는 대목이있다. 단순히 ‘위대한 작품을 쓴 주체가 인간이 아니다‘라는 점이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위대한 작품이 24시간 동안 288편 나왔다‘라는 상황이 문제다. 자동차나 휴대전화는 24시간 동안 288대가 생산되어도 괜찮지만, 위대한 작품은 그렇게 나오면 안 될 것같다.
‘위대함‘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소성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한작품이 독자에게 너무나 큰 감명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비슷한 작품이 매일 288편씩 쏟아진다면 위대함이 사라진다는 말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루에 288번씩 감동할수 없다. 매일 여덟 번씩 감동하는 것조차 과한 일이다. - P15

2019년 말 이세돌 9단이 프로바둑계에서 은퇴했다. 그는 뉴스프로그램에서 은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바둑을 예술로 배웠는데 인공지능이 나오면서 사실 이게 예술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일종의 게임이 된거 같다. 그런 점이 굉장히 아쉽다."
TV 토크쇼에 출연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어린 시절, 바둑은 예술과 같은 것으로 배웠다. 바둑은 둘이만드는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인공지능과의 대결이)무슨 작품이 되겠나. 제가 배웠던 예술 그 자체가 무너져 버렸다.
‘더 이상은 하기 쉽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 P21

테크노 낙관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축복이라고 진보라고. 인공지능 덕분에 모든 사람이 손쉽게 뛰어난소설을 쓸 수 있는 시대가 열리는 거라고.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될 수 있는 거라고. 그런데 나는 그때 예술이나 예술가 둘 중 한 단어, 어쩌면 두 단어 모두 지금과 의미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소설 쓰는 인공지능이 플롯도 대신 짜주고, 인물 대사도 대신써주고, 배경 묘사도 대신 해주고, 표현도 바꿔준다면,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주인공의 눈동자 색이나 해피엔딩 여부를 결정하는 정도가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렇게 만든 작품에서 플롯이다소 다르고 인물 대사가 다소 다르고 배경 묘사가 다소 다르고표현도 다소 다른 287가지 버전을 금방 얻을 수 있게 된다면? 전자책 서재, 완독률, 별점 평가를 분석해 독자들이 가장 선호할 버전을 맞춤형으로 보내게 된다면? ‘인간 저자‘는 그 버전들 간의 차이를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플롯과 인물 대사와 배경 묘사와 표현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학습한 인공지능이라면 인간이 쓴 플롯과 인물 대사와 배경 - P24

묘사와 표현이 각각 얼마나 개선이 필요한지 점수를 매길 수도 있을까? 그러면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문장과 가장 가까운 문장을쓰는 사람이 뛰어난 문장가가 되는 걸까? 그때 인간 소설가들은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타자기와 워드프로세서를 받아들였듯이소설 쓰는 인공지능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작업 생산성을 높여야하는 걸까? 그 전까지 해온 방식은 버리고? 아니면 ‘나는 문학을예술로 배웠는데 인공지능이 나오면서 이게 예술이라고 말을 할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 P25

그러면 이제 우리는 곤란한 질문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창의성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닌가? 기계도 창의적일 수 있는가? 인공지능이 창의적인 바둑을 둘 수 있다면 언젠가는 기계가 수학의 난제도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창의적인 예술작품도 만들 수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바둑에서의 창의성, 수학에서의 창의성, 예술에서의 창의성은 각각 다른 것일까? 창의성은 대체 무엇인가?
창의성은 정의하기도, 측정하기도 곤란한 개념이다. 다중지능이론의 창시자인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창의성에 대해 "특정영역에서 새로운 결과물을 내고, 그것이 그 영역에 소속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그 영역이 오래전부터 존재했든 새로 등장했든, 독창성 혹은 창의성에 관한 판단은 그 영역에 정통한 사람만이 내릴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바둑에서의창의성은 프로기사들이 평가해야 한다는 얘기다.
박병규 9단은 알파고의 바둑이 창의적이냐는 질문에 대해"아주 많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라고 대답했다. 그는 심지어 알파고 수법이 퍼지면서 인간 프로기사가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가 줄었다고 말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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