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님?" 다시 그 대장이었다. "부군께서는 언제 오십니까? 이렇게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니 부군을 위해 잔을 들어야 하겠는데요."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 남편은 없다." 그는 마주 미소를 지었다. "그러시겠죠." 그가 말했다. "결혼을 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니. 그럼 아버님께 감사를 드려야겠군요." 밖에는 완벽하게 어둠이 깔렸고 따뜻하고 환한 불빛이 방안을 밝혔다. "아버지는 멀리 사신다." 내가 말했고 그들이 내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어주길 기다렸다. 점등원이라고 답하면 훌륭한 농담이 되겠지. 나는 혼자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른 분이 계시겠죠? 삼촌이나 오빠나." "집주인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거든 나한테 하면 된다." 내가말했다. "여긴 내 집이니까." 그 말에 방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나는 포도주 단지를 집었다. "비었구나." 내가 말했다. "내가 가서더 들고 오마." 몸을 돌리는데 내 숨소리가 들렸다. 뒤에서 공간을 채우고 있는 스무 명의 몸집이 느껴졌다. 부엌에 가서 물약에 손을 얹었다. 주책을 떠는구만, 나는 생각했다. 여자 혼자 산다고 하니까 놀라서 그런 거야, 그뿐이야. - P241
선장이 뒤로 물러나 바닥에 침을 뱉었다. 젤리 같은 덩어리가 돌위에서 흔들거렸다. 땀방울이 끈적끈적한 홈을 남기며 계속 흘러내렸다. 마당에서 암퇘지 한 마리가 꽥 소리를 질렀다. 나는 발작적으로 침을 삼켰다. 목에서 딸깍 소리가 났다. 안에서 공간이 생기는 게느껴졌다. 내가 외우려고 했던 잠재우는 주문은 말라서 날아가버렸기에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주문을 쓰고 싶지않았다. 내 시선이 우툴두툴한 그의 얼굴로 향했다. 그 약초에는 효능이 한 가지 더 있었고 나는 그게 뭔지 알았다. 나는 숨을 마시고 주문을 외웠다. 그의 눈은 흐리멍덩했고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다. "뭐하는 - P244
그는 말문을 맺지 못했다. 갈비뼈가 쩍 하고 갈라지며 불룩해지기시작했다. 살이 철퍼덕 하고 찢어지는 소리, 뼈가 딱 하고 부러지는소리가 들렸다. 그의 코가 풍선처럼 부풀어올랐고 다리가 거미에게삼켜진 파리처럼 오그라들었다. 그는 네 발로 기는 자세로 쓰러졌다. 비명을 질렀고 부하들도 덩달아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가 한참 동안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날 저녁에 돼지를 잡긴 잡은 셈이었다. - P245
나는 그들이 미간을 찌푸리며 어째서 내가 무서워하지 않는지 파악하려고 하는 이 순간이 제일 좋았다. 그들의 몸속에서 연주를 기다리는 현처럼 대기중인 내 약초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이 느끼는 혼란과 점점 고개를 드는 공포를 만끽했다. 그런 다음 그 현을 뜯었다. 그들은 등이 휘어서 네 발 자세로 엎드릴 수밖에 없었고 얼굴은익사체처럼 부풀어올랐다. 그들의 몸부림 때문에 의자가 뒤집히고포도주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비명소리가 꽥꽥거리는 소리로 바뀌어갔다. 아픈 모양이었다. 대장은 맨 마지막까지 남겨두었다. 그 광경을 지켜볼 수 있도록. 그는 벽에 대고 몸을 움츠렸다. 제발. 저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럼 안 되지, 나는 말했다. 절대 안 되지. 남은 건 그들을 우리로 내쫓는 일이었다. 내가 물푸레나무 지팡이를 들면 그들은 달려갔다. 등뒤에서 문이 닫히면 기둥을 엉덩이로 밀쳤고, 돼지로 변한 눈은 마지막까지 남은 인간의 눈물로 촉촉했다. 님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가끔 문 틈새로 구경하는 눈치였다. "키르케 마님, 배가 또 오는데요. 저희는 방에 들어가 있을까요?" ‘그래, 가기 전에 포도주 좀 꺼내주고." 나는 옷감을 짜고 작업을 하고 돼지를 먹이고 섬을 가로질렀다가다시 가로지르며 하나씩 순서대로 해나갔다. - P251
그들은 잘 먹었다. 술은 더 잘 마셨다. 여기저기 군살이 있었지만그 아래에 있는 근육은 나무처럼 단단했다. 흉터는 칼에 베였는지 길고 불룩했다. 한철 잘 지내다 여기서 그들의 도둑질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을 만났다. 그들이 해적인 것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내 보물을 세느라 눈을 쉴새없이 움직였고 계산이 나오자 씩 웃었다. 나는 이제 그들이 일어나서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지팡이를 들어 주문을 외웠다. 그들은 남들처럼 울며 우리로 달려갔다. 님프들이 나를 도와서 쓰러진 의자를 세우고 흘린 포도주를 닦고있었을 때 그중 한 명이 창밖을 흘끗 내다보고는 말했다. "마님, 한명이 더 오는데요." 안 그래도 정식 함선에 승선한 선원치고는 숫자가 너무 적다 싶었다. 몇 명이 바닷가에서 기다리다가 정찰 삼아 한 명을 보낸 모양이었다. 님프들이 포도주를 새로 꺼내놓고 슬그머니 사라졌다. 남자가 문을 두드리자 나는 문을 열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그를 비추자 깔끔하게 자른 수염에 섞인 빨간색과 머리칼에 섞인 희미한 은색이 도드라져 보였다. 허리춤에 청동검을 차고 있었다. 이전의몇몇 남자들처럼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뼈마디가 잘 단련된 듯 강건해 보였다. "존귀하신 여인이여." 그가 말했다. "저희 선원들이 이 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도 신세를 좀 져도 되겠습니까?" - P255
"들어보자" 내가 말했다. "허리춤에 단단히 차고 있는 그 주머니에는 뭐가 들어 있느냐?" "제가 찾은 약초가 들어 있습니다." "뿌리는 검은색이고, 나는 말했다. "꽃은 하얀색일 테지." "그렇습니다." "인간은 몰리를 캐지 못하는데." "네." 그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못하죠." "누구였느냐? 아니다. 됐다. 알겠으니." 헤르메스가 약초를 캐는나를 지켜보며 주문에 대해 캐물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몰리를 들고 있으면서 왜 술을 마시지 않았느냐? 내가 어떤 주문을 외워도 너에게는 효과가 없을 거라고 그에게서 들었을 텐데." "듣기는 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저의 기벽이라서요. 사기꾼의 신이 베풀어주신모든 은혜에 감사하지만 그가 믿음직한 것으로 유명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저를 돼지로 변신시키도록 당신을 돕는 것이야말로 그가 딱좋아할 만한 장난이고요." "늘 그렇게 의심이 많다고?" "어쩌겠습니까?" 그는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세상은 추악한 곳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고요." "너는 오디세우스로구나." 내가 말했다. "똑같이 사기꾼의 핏줄을타고난." 그는 나의 예리한 판단에 흠칫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신이라면이골이 난 자였다. 그리고 당신은 태양의 딸, 키르케 여신이고요" - P262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영광을 마다할 자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바보가 아닌 이상 좋다고 하지도 못할 테고요. 저는 인간입니다. 제가 몰리를 내려놓고 당신의 침소에 든 순간 당신이주문을 외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는 말을 하다 말고 멈추었다. "물론 망자의 강에 대고 저를 해치지 않겠노라고 맹세를 하시면 얘기가 달라지겠습니다만." 스틱스 강에 대고 한 맹세는 제우스라도 깰 수가 없었다. "신중한성격이로구나." 내가 말했다. "피장파장인 것 같습니다만." 아니지,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신중하지 않았다. 무모하고성급했다. 그 역시 칼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종류는 달랐어도 칼은 칼이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게 그 칼을달라. 피를 흘릴 만한 가치가 있는 일도 있으니. "맹세하마" 내가 말했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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