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주니어 선수들가운데 햇병아리 페더러와 같은 재목이 있는지 없는지는 물론 알수 없다. 천재성은 복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영감은 전염되고, 그것도 여러 형태로 전염된다. 그리고 힘과 공격성이 아름다움 앞에서취약해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영감을 느끼고 (필멸하는 인간의 덧없는 방식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 P407
이 문제가 그저 취향이나 개인적 특징의 문제만은 아니다. 좋•은 소설가는 대부분 지식인이다. 젊은 소설가도 마찬가지다. 대개의 평론가와 교사도 그렇다(놀랄 만큼 많은 편집자도 그렇다). 그리고 텔레비전, 광고, 그것들이 반영하고 정의하는 대중문화는 지식인이 무엇을 자신이 관심을 쏟아도 좋은 대상으로 간주하는가 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TV와 광고가 심리적 범유행병이 되기 전에 정신적 가치를 형성했던 선배들은 요즘도 바버라 터크먼 식으로 뚜렷하게 구분하고 싶어서 안달이다. 그들이 볼 때 한쪽에는 진정한 ‘품질‘을 갖춘 것, 세련된 사람들이 생산하고 요구하는 것이 있다. 반대쪽에는 그저 ‘인기‘와 ‘대중적 매력‘만 있는 것,대중이 요구하는 것, 평등주의적 자본주의 탓에 이른바 민주적 시장에 현혹된 사람들이 기꺼이 제공하는 것이 있다. 이전 세대의 계몽된 심미주의자들, 박식하고 진보적인 사람들, 대충 1940년에서1960년 사이에 젖을 뗀 사람들은 이처럼 진정한 고상함과 진정한 진보주의가 서로 모순을 일으키는 지점에서 아무렇지도않게 잘 활동한다. - P420
모든 사람은 여러 사건과 변화로 구성되고 최소한 시작과 중간이 있어서 남에게 들려줄 수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서 자기 인생을 이해한다. 우리는 시공간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이야기는 인간에게 내재된 속성이다. 그런데 오늘날 C.Y. 작가들의 입장에서, 미국 독자들이 가장 많이 노출되는 이야기 패턴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아무리 너그러운 기준으로 봐줘도 이야기 예술로서 텔레비전은 몹시 저급한 형태다. 텔레비전은 변화시키거나, 계몽시키거나, 확장시키거나, 새로운 방향을 알려주려고 애쓰는 이야기 예술이 아니라 심지어 꼭 ‘즐겁게해주려고‘ 애쓴다고도 할 수 없다-그저 관심을 끌고자 하는 이야기 예술이다. 텔레비전의 유일한 목적은-공공연히 인정되는 목적은-지속적 시청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텔레비전이 전이암처럼 효율적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는 현실은 이야기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취향에 반드시 심각한 영향을, 대가와 함께, 미친다. 어떤이야기 예술이 진정한 예술인가 하는 독자들의 기대 자체에 영향을미친다. - P429
여러분이 1987년 현재 젊은 작가들에 대해서 믿을 수 있는 사실은 하나뿐이다. 우리가 무언가에 기꺼이 인생을 바칠 경우, 여러분은 우리가 그 무언가를 미치도록 좋아한다고 믿어도 된다는 것. 그리고 돈 때문에 글을 쓰는것이 아닌 작가들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 이유란 글쓰기가 예술이고, 예술은 의미이고, 의미는 힘이라는 것이다. 고양이를 색칠하는 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힘, 텅 빈 공허를 발 디딜 바닥으로 바꾸는 힘, 빚을 보물로 바꾸는 힘. ‘새로운 세대의 목소리들‘ 중 가장 뛰어난 이들은 분명 이 사실을 알고 있고, 이 사실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하고 있다. 어쩌면 가장 뛰어난 이들은 아직 한 명도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중 두엇은 심지어 ••• 독학자일 수도 있다. 아무튼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그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정말로 유행과 흐름과 학계가 우유를 묽게 만들고 있다면, 적어도 그 덕분에 크림이 떠오르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나는 그들을 맞을 준비를 하겠다. (1988년) - P449
내가 아는 한, 픽션 작가가 된다는 것에 대하여 가장 훌륭한 비유는 돈 드릴로의 《마오 II》에 나온다. 그 책에서 드릴로는 한창 집필 중인 책을 가리켜 작가를 쫓아다니는 추악한 기형의 아기로 묘사했다. 아기는 늘 작가를 따라 기어 다니는데(이를테면 작가가 식사를 하려고 찾은 식당에서 문득 바닥을 질질 기며 나타나거나, 아침에 침대 발치에서 그날 맨 먼저 보이는 얼굴이라거나), 추악한 기형이고, 뇌수종이 있고, 코가 없고, 팔이 뭉툭하고, 대소변을 못 가리고,지능이 떨어지고, 입에서는 뇌척수액이 질질 흐르고, 작가를 향해늘 앵앵거리고 우물거리고 울어대면서 사랑을 갈구한다. 그 추악함때문에 틀림없이 얻어낼 것이 분명한 무언가를 원한다. 바로 작가의 온전한 관심을. - P453
이 재미는 말하자면 놀이로서의 일이다. 혹은 규율 잡힌 재미가 충동적이거나 방종한 재미보다 더 재미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혹은 모든 역설이 우리를 마비시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한것이다. 재미를 새롭게 다스리게 되었을 때, 픽션 쓰기는 이제 당신자신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당신이 차마 보고 싶지 않은 것, 혹은남들 어느 누구도 보지 말았으면 하는 것을 조명하는 일이 된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런 주제야말로 알고 보면 모든 작가들과 독자들이 공유하고 반응하는 것, 느끼는 것이다. 픽션은 이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수단이 아니고, 남들이 가장 좋아해줄 것이라고 여기는 방식으로 자신을 선보이는 수단도 아니며, 그보다는 이상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진실을 말하는 수단이 된다. 이 과정은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무섭다. 또한 고되다. 그러나 알고보면 최고의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신이 처음에 글쓰기를 통해서 벗어나고 싶었거나 가장하고싶었던 당신의 부분, 바로 그 재미없는 부분을 직면함으로써 이제글쓰기의 재미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역설이다. 그러나 이 역설은 어떤 종류의 구속도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선물이고, 일종의 기적이다. 그리고 이것에 비한다면, 낯선 사람들의 애정이라는 보상은 한낱 먼지에, 보푸라기에 지나지 않는다. (1998년) - P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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