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교수의 공적을 수백만 쪽에 달할 도스토옙스키의 초고와 메모와 편지와 일기와 동시대인들의 인물평과 다양한 언어로 쓰인 비평을 소화하여 달여낸 공적을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제대로 알려면, 우리는 우선 전기와 비평에 대한 접근법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가 그것들을 결합하려고애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보통의 문학가 전기는 작가의 개인적 삶에 (특히 이면이나 신경증적인 측면에 집중하고 작가가 몸담았던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은 거의 무시한다. 한편 다른 연구들은-특히 이론적 의제를 품은 연구들은 작가와 작품을 작가가몸담았던 시대의 편견, 힘의 역학, 형이상학적 망상이 빚어낸 단순함수로만 취급한다. 어떤 전기 작가는 대상의 작품을 이해하는 작업은 이미 다 완료되었다고 가정한 뒤, 자신이 생각할 때 논쟁의 여지없이 벌써 다 정해졌다고 보는 그 의미에 맞추어 작가의 개인사를 추적하는 데만 시간을 쏟는다. 반면 우리 시대의 ‘비평 연구‘들은 거꾸로 작품을 밀봉된 상태로 취급할 때가 많다. 비단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 유용할 뿐 아니라 어떻게 그 작품에 특정 작가의인간성, 스타일, 목소리, 시각, 기타 등등에서 나오는 독특한 개인적마법이 깃들어 있는지 설명하는 데도 유용한 작가 개인의 환경과믿음에 관한 사실들은 무시하는 것이다. - P347
도스토옙스키의 인생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가장 결정적이고 큰 변화의 계기였던 사건은 1849년 12월 22일의 가짜 처형이었다는-이 쇠약하고신경증적이고 자기도취적인 젊은 작가가 자신이 딱 죽을 거라고 믿었던 그 짧은 오분 내지 십 분의 시간이었다는것이다. 그때 도스토옙스키 내부에서 벌어졌던 일은 일종의 개종 체험이었으나, 구체적으로는 이야기가 좀더 복잡하다. 왜냐하면 이후 그의 글에 영향을 미친 기독교적 신념은 특정 종파나 전통의 신념은 아니었으며거기에 러시아의 신비주의적 민족주의와 정치적 보수주의가 결합된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요소는 다음 세기에 소련이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적잖이 억압하거나 왜곡한 요인이었다. - P362
하지만 프랭크의 도스토옙스키는 우리에게 이렇게 지적할 것이다(혹은 펄쩍펄쩍 뛰고 주먹을 흔들며 우리에게 날아들어 외칠 것이다). 상황이 정말 그렇다면, 거기에는 우리가 그 영역을 포기한 탓도 있다고. 무자비한 엄격함과 남을 심판하려는 열성으로 보아 자신이 남들에게 적용한다는 이른바 ‘기독교적 가치‘를 사실은 잘 모르는 게 분명한 근본주의자들에게, 우리가 내주었다고. 정부에 대한 편집증이 지나친 나머지 정부를 실제보다 훨씬 더 조직적이고 효율적인 존재로 가정하는 우파민병대들과 음모론자들에게, 우리가 내주었다고. 그리고 학계와 예술계에서는 그 부조리함과 독선이 갈수록 심해지는 정치적 올바름운동에게, 우리가 내주었다고. 발화와 담론의 형식에만 집착하는그들의 태도는 우리가 지닌 최선의 진보적 직관이 이토록 무기력해지고 미학화했다는 사실을, 진정 중요한 것들로부터 이를테면-동기, 감정, 믿음으로부터-이토록 멀어졌다는 사실을 뚜렷이 보여주는데 말이다. - P367
<백치>에서 이폴리트가 읊는 유명한 "필수 설명"중 한 토막을 보자.
"개인의 자선을 비난하는 사람은," 나는 말을 시작했다. "인간본성을 비난하고 개인의 존엄을 경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공적 자선 단체와 개인적 자유는 서로 다른 문제이고, 상호배타적이지 않습니다. 개인의 친절은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입니다. 남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충동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생생한 충동이기 때문입니다∙∙∙. 말해보십시오, 바무토프, 한 인간이 다른 인간과 그렇게 관계 맺는것이 연관된 사람들의 운명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겠습니까?"
우리 시대의 주요한 소설가가 인물에게 이런 말을 시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다른 냉소적인 주인공이 비판할 수 있도록 제시된 위선적인 장광설이 아니라, 인물이 자살할지 말지 고민하면서 늘어놓는 열 쪽짜리 진지한 독백의 일부로)? 우리가 그런 것을 상상할 수 없는이유가 바로 요즘 소설가들이 그런 것을 상상하지 않는 이유다. 우리 시대의 기준에서 그런 소설가는 가식적이고 장식적이고 우스꽝스러워 보일 것이다. 오늘날 진지한 소설에 이런 연설이 직설적으로 나온다면, 그에 대한 반응은 분개나 비난이 아니라 그보다 더나쁜 것, 즉 치켜올린 눈썹과 아주 쿨한 미소일 것이다. 그 소설가가 거물이라면, <뉴요커>에 정색한 비아냥이 실릴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 소설가를 웃음거리로 치부할 것이다(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생각하는 진정한 지옥이다). 그러니 그는 우리는, 우리의 소설가는 진지한 예술을 통해서 어떤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일은 감히 시도하지 않을 못할)것이다." 그런 작업은 메나르의 《돈키호테> 같아 보일 것이다. -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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