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바로 노엄 촘스키의 생성 언어학 기본 명제가 나온다. 모든 언어의 기저에는 공통된 ‘보편문법‘이 있다는 이론, 새의 뇌에 ‘남쪽으로 날아가라‘라는 명제나 개의 뇌에 ‘생식기를 냄새 맡으라‘라는 명제가 새겨져 있는 것처럼 인간의 뇌에는 보편 문법이 각인된 부위가 있을 것이라 - P225
는 이론이다.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많고, 그중에는 특히 언어학자들과 인지과학자들과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스스로 이뤄낸 발전도 있으며, 전체적으로 신뢰성이 있는 이론이다. 철학적 기술주의자들은 이 이론을 끌어들여, 언어에서 가장 중요한규칙들은 이미 뇌의 신피질에 새겨져 있으므로 가령 현수 분사 금지나 비유 혼합 금지 같은 표준 문어체 영어의 규범들은 궁극적으로 언어의 고래뼈 코르셋이나 샐러드용 짧은 포크에 해당하는 일시적 유행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스티븐 핑커는 이렇게 말한다. "단어를 정렬하여 일상적인 문장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정신적 도구들이 무엇인지를 과학자가 하나하나 따져볼 때, 규범적 규칙은 잘봐줘도 중요하지 않은 장식일 뿐이다." - P226
「이 이야기의 요지는 분명하다. 이것은 스누트들이 무심결에 강화하고, 기술주의자들이 몹시 과소평가하고, 기죽이는 어휘 테이프광고가 이용해먹는 현상과 관계된 이야기다. 그 현상이란, 사람들은정말로 상대가 쓰는 언어에 따라 상대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그야 물론 사람들은 온갖 기준에 따라 서로를 평가하기 마련인데다가-키, 몸무게, 체취, 관상, 억양, 직업, 자동차 메이커"-모두가 엄청나게 복잡한 현상이므로, 제대로 살펴보려면 사회언어학자가 한 트럭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모든 인간 대인간 사이의 의미론적 판단에는 적어도 한 가지 공통된 요소가 있고, 그 요소란 수용이다. 이때 수용이란 무슨 동정적이고 감정적인공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상대의 무리나 공동체나 집단에 자신도 끼워달라고, 동료가 되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을 받아들일까 아니면 거절할까 하는 진짜 수용을 뜻한다. 이 문제에 접근하는 또 다른 방식은, 어법 전쟁에서는 추상적인 말로만 언급되는 사실을 눈여겨보는 것이다. 무엇인가 하면, 현실에 - P233
서 ‘정확한‘ 어법이란 우리가 누구에게 말하는가, 그리고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기를 바라는가-우리의 발화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하는 데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모든 소통 행위는 많은 부분 수사적이다. 즉, 수사학자들이 ‘청중‘ 혹은 ‘담론 공동체‘라고 부르는 것에 달린 문제다. 그리고 현재 미국에는 엄청나게 많고 다양한 담론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 또 우리의언어 사용과 타인의 언어 사용에 대한 해석은 둘 다 수사적 가정들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왜 어법 전쟁이 정치적으로 격앙되어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들이다. - P234
현실적인 문제로는, 어린 자식이 넷 있고 일 년에 1만2,000달러를 버는 사람이 과연 자신을 ‘가난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고 사려 깊게도 ‘경제적으로 불리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사회에서 더 힘이 날지, 착취를 덜 당하는 느낌일지 나는 의문이다. 내가 그라면, 정치적으로 올바른 용어가 오히려 모욕으로 느껴질 것 같다. 그것이 생색내는 표현이어서가 아니다(물론 그런 표현이기도 하다).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표현이라서다. 그리고 자주 생색의 대상이 되어본 사람들에게는 그런 태도를 감지하는 무의식적 안테나가 있는법이다. ‘경제적으로 불리한‘ 사람이나 ‘신체 능력이 다른‘ 사람 같은 완곡어법의 기본적 위선이 무엇인가 하면, 정치적으로 올바른영어 옹호자들은 이런 용어에 깃든 연민과 너그러움으로 혜택을받는 대상이 가난한 사람들과 휠체어에 탄 사람들이라고 믿지만950 - P258
사실 그 믿음에는 누구나 알고 있되 무서운 어휘 테이프 광고 외에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한 가지 현실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현실이란, 우리가 특정 어휘를 사용하는 동기에는 자신에 관한 정보를 소통하려는 욕망이 어느 정도 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많64은 유행어가 그렇듯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어도 사실은 주로 화자의 미덕을 양심적인 평등주의, 모든 사람의 존엄에 대한 관심,언어의 정치적 함의를 아는 세련됨 등을 알리고 칭송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새롭게 명명된 개인이나 집단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 자신의 개인적이익에 더 도움이 된다. - P259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어의 위선과 마찬가지로, 학술 영어의 이런 모호함과 가식은 의미를 전달하는수단으로서의 언어와 글쓴이의 이력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의 언어 사이에 섬세한 수사적 균형이 붕괴된 탓이다. 달리말해, 학자가 허영/불안 때문에 주로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소통하고 강화할 목적으로 글을 쓸 때, 바로 그때 그의언어가 췌언과 허식적 용어 선택(글쓴이의 박식함을 알리는기능이다)과 모호한 추상성(확고하게 단언했다가는 누군가 반박하거나 한심한 소리라고 반론할 수 있으니 아무도 그러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으로 일그러진다. 맨 마지막 특징, 즉 문장이 말하려는 바를 알아내기가 불가능할 지경으로 심각한모호함은 정치계와 기업계의 얼버무리는 말과 너무 비슷하기 때문에("수입강화""다운사이징""선제적 자원 할당 재구조화"), 혹 학술 영어의 진짜 목적은 은폐이고 진짜 동기는 두려움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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