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생들과 카프카를 강독할 때 극심한 좌절을 느끼는것은, 카프카가 웃기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 웃김이 이야기의 힘과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사실을 이해시키기도 어렵습니다. 왜 관련되는가 하면, 물론,위대한 단편과 위대한 농담은 공통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둘 다 소통 이론가들이 종종 엑스포메이션exformation 이라고 부르는 효과에의존하는데, 이것은 소통에서 표면적으로는 지워져 있지만 그 소통을 통해 수신자의 마음속에서 환기됨으로써 특정한 연상 관계가폭발적으로 맺어지도록 만드는 핵심 정보를 뜻합니다. 단편소설과농담이 둘 다 느닷없고 격발적인 효과를 낼 때가 많은 것, 흡사 오래 막혔던 밸브가 뻥 뚫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 건 이 때문일 것입니다. 카프카가 문학을 가리켜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깨뜨리는 도끼"라고 말했던 것은 괜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비평가들이 위대한 단편의 기술적 성취를 종종 압축compression 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압력과 그 배출은 둘 다 이미독자 안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카프카가 거의 모든 다른 작가들보다 더 뛰어났던 것 같은 지점은, 그 압력이 커져가는 과정을 교묘하게 조절함으로써 이윽고 압력이 배출되는 순간에는 독자가 거의 견딜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어놓는 것입니다. - P174
농담의 심리학은 우리가 카프카를 가르칠 때 겪는 문제를 일부 설명해줍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농담을 설명하는 것만큼 농담에 담긴 마법을 더 잘 빼앗는 방법은 없지요. 예를 들어 "루 코스텔로는 고유명사 후who를 의문대명사 누구who로 착각한 거야" 하는식으로 풀어주는 것 말입니다.(미국 배우 코스텔로는 짝꿍 버드 애벗과 함께하는 말장난 코미디로 유명했는데, 특히 한쪽이 ‘Who‘s onFirst? [일루에 누가 있지?"라고 물으면 상대가 "Who [후]"라고 대답하고 그러면 질문자가 다시 "Who? [누구라고?]"라고 물어서 무한 반복되는 말장난이 유명하다. 일루에 있는 사람의 이름이 ‘후‘라서 빚어지는 착각인 것이다.옮긴이) 또한 누구나 알다시피, 이런 설명을 들으면 우리는 이상한 반감을 느낍니다. 따분하다기보다는 기분 나쁜느낌, 꼭 무언가 신성한 것이 모욕을 당한 것 같은 기분입니다. 카프카의 작품을 대학의 표준적인 문학비평 분석에 욱여넣으려고 하는 선생의 기분이 꼭 그렇습니다. 플롯을 표로 정리하고, 상징을 해독하고, 주제를 끌어내고, 뭐 그런 작업 말입니다. 이런 형식의 효율적인 비평 기계는 장미가 왜 향기로운지 알기 위해서 꽃잎을 낱낱이 떼어 으깬 뒤 그 곤죽을 분광계로 분석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 P175
학생들에게 너희가 카프카를 ‘이해하지get‘ 못하는 것은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고 말해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학생들에게 카프카의 모든 이야기를 일종의 문으로 상상해보라고 요구할수는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 문에 다가가서 두드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우리는 점점 더 세게 두드리고 또 두드리는데, 그냥 들어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꼭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정확히 그 절박함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그 문으로 꼭들어가야 한다는 필사적인 절박함을 느끼고 있고 그래서 문을 두드리고 들이받고 찬다고. 그러다 이윽고 문이 열리는데... 문이 바깥쪽으로 열린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내내 그토록 들어가고 싶었던곳에 그동안 내내 들어 있었던 거라고. 다스 이스트 코미시.(이것이웃긴 것이다‘라는 뜻의 독일어 - 옮긴이) - P181
미국 문화가 도피를, 즉 환상이나 아드레날린이나 스펙터클이나 로맨스 등을 주된 기능으로 삼는 예술과 오락에 쉽게 넘어가는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농담은 일종의 예술이고,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예•술이란 사실상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므로-즉, 잠시나마 우리는 쥐가 아니고 벽은 좁혀들지 않고 고양이를 충분히 따돌릴 수 있는 척하는 것이므로-<작은우화>가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별로 안 웃기게 느껴지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작은 우화>는 심지어 죽음 - 세금 유의 울적한 현실을 대표하는 지긋지긋한 사례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에 대한 도피처로서 오히려 ‘진짜‘ 유머가 필요한 이야기라고 말이다. - P180
이것은 로널드 W. 레이건 대통령이 TV 중계되었던 그 유명한 ‘의회의 수장을 넘어서대중에게로‘ 연설에서 완벽하게 구사했던 바로 그 수사, 이후 똑똑한 정치인들이 줄곧모방하는 수사와 같은 종류의 전술이다. 요컨대, 당신이 앞에 둔 청중을 당신의 주장에 대한 지지자로 슬쩍 언급하는 전술이다. "여러분이 그 시행을 당부하며 저를 대통령으로 뽑아주셨던 바로 그 정책들을 이행함에 있어서 우리가 첫발을 내딛었다는 사실을, 오늘 밤 기쁜 심정으로 여러분에게 선언합니다." 이런 식이다. 이 전술이 교묘한것은 (1) 청중에게 아부하는 말이고, (2) 이 자리에서 연설자의 진짜 목적은 청중에게정보를 주거나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을 설득하고 지지를 규합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슬쩍 숨기고, (3) 연설자가 제안하는 정책이 사실은 청중의 이익에 반한다고 지적하는 반대 측의 공격을 미연에 차단하기 때문이다. - P200
이때 ‘윤리적‘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에토스ethos‘ 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의미와 꼭 같지는 않다. 하지만 비슷하기는 하다. 윤리적 호소는 ‘나를 믿으시오‘라는 말을복잡하고 세련되게 하는 것이다. 이 호소는 여러 종류의 수사적 호소들 중에서도 가장 대담하고 야심만만하고 민주적인 호소인데, 왜냐하면 연사가 청중에게 자신의 지적 명민함이나 전문적 유능함뿐아니라 기본적 품위, 공정함, 청중이 품은 희망과 두려움에 대한 감수성까지" 믿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 P202
오늘날 어디서나 자행되는 교묘한 단어의미 조작, 혹은 그저 무언가의 이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끝없는 논쟁을 떠올려보라. ‘약자 우대 정책‘ 대 ‘역차별‘, ‘생명 존중‘ 대 ‘선택존중‘" ‘미등록 노동자‘ 대 ‘불법 체류자‘, ‘위증죄‘ 대 ‘가벼운 말실수‘ 기타 등등. - P209
‘언어 행위‘에 대해서는 여전히그런 실재론적 가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문제다. 왜냐하면 언어 행위란 인간적인 행위인 동시에 근본적으로 규범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려면, 언어란 속성상 공적이라는명제를 사적인 언어란 없다는 사실을"이해하면 된다. - P217
비트겐슈타인의 논증은 대단히 전문적이지만 대충 이렇게 진행된다. (1) 단어는 그것이 실제 사용되는 방식과 떨어져서는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그리고 설령 (2) "내 용법이 남들의 용법과 일치하는가 아닌가 하는 의문은 해결 가망이 없는 문제라서 포기한다"고 해도, 여전히 (3) 단어가 나 자신에게만이라도 유의미하게 사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고, 이때 (4) ‘올바르게‘는 ‘나 자신의 정의와 일관되게‘라는 뜻이다(즉, 내가 한번은 나무를 나무를 뜻하는 단어로 쓰고 다음번에는 마음을 바꿔서 나무를 골프공을 뜻하는 단어로쓰고 또 다음번에는 나무를 특정 브랜드의 고칼로리 완제품 과자를 뜻하는 단어로 쓴다면, 내 작은 유아론적 세상에서조차 나무는 어떤 ‘뜻‘도 갖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5) ‘나 자신의 정의에 맞게 일관되게 사용한다"는 이 기준이 충족되려면, 어느 한 언어 사용자와는 무관하게 (이 경우에는 나와 무관하게) 그 외부에 특정 규칙이 존재해야만 한다. 외부 규칙이 없다면, "나는 나무라는 단어를 나 자신의 정의에 맞게 일관되게 쓰고 있다"라는 진술과 "나는 내가 나무라는 단어를 나 자신의 정의에 맞게 일관되게 쓰고 있다는 인상을 품고 있다"라는 진술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게 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렇다면 내가 [사적으로 정의한] 단어를 일관되게 쓰고 있는지 아닌지는 어떻218 - P218
게 확인할까? 내가 그것을 실제로 일관되게 쓰는 것과 내가 그러는 것처럼 내눈에 보이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을까? 아니면 그 구별마저 사라지는 것일까? ..만약 ‘올바르다‘와 ‘올바른 것처럼 보인다‘를 구별할 수 없다면, ‘올바름‘이라는 개념도 사라진다. 따라서 내 사적 언어의 ‘규칙들‘은 그저 규칙들이 있다는‘인상‘에 불과한 것이 된다. 하지만 내가 규칙을 따른다는 인상이 내게 있다고 해서 내가 실제 규칙을 따른다는 사실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내 인상이 정확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줄 무언가가 따로 있지 않는 한. "그리고 그 무언가가 또 다른인상일 수는 없다. 그것은 누군가 신문에 실린 기사가 참이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키기 위해서 신문을 여러 부 구입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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