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성의 끈을 꼭 붙든 영웅들

영웅이 으레 그렇듯이,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Stanislay Petrov라는 이름은 유명하지 않다. 아는 사람도 적고 기념비도 없다. 하지만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무명의 러시아인에게 삶을 빚지고 있다. - P8

지금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페트로프 중령의 직감이옳았음을 증명한다. 그의 추론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미국이 미사일 공격을 했다면 총력을 다했어야 한다. 미국이 자신의 적국을 지도에서 지우기로 결심했다면 소비에트연방 미사일 방어 체제를 제압하려 했을 것이다. 러시아가 무력으로 응전하리라는사실을 모를 리 없다. 따라서 만약 미국이 공격했다면 압도적인수의 미사일 세례를 퍼부었을 것이다. 하지만 겨우 다섯 발이라면 이 전략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지상 레이더는 경보를 뒷받침할 증거를 보여주지 않았다. 여러 가능성을 가늠해본 페트로프중령은 미사일 조기 경보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더그럴듯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령의 추론은정확했고, OKO가 본 불길한 미사일은 낮은 구름이 반사한 빛을탐지기가 잘못 해석한 것이었다.
행동하기 전에 사고하는 페트로프 중령의 태도는 전면적 - P10

인 핵전쟁으로 인한 전멸을 막았다. 페트로프 중령은 전 세계의영웅으로 추앙받아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는 위기 당시의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는 명목상의 이유로 오히려 문책받았다. 몇 년 후, 페트로프 중령이 이는 불가능했다고 회상했다. "나는 한 손에는 전화를, 다른 손에는 인터컴을 들고 있었고, 내 손은 두 개뿐이었다." 사실 러시아군 사령부는 최첨단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키자 당황해서 비난을 피하기 바빴다. 희생양이 되었다고 생각한 페트로프 중령은 결국 신경 쇠약에 걸렸다. 중령은이듬해 제대하고 연구소로 옮겨갔다. 소비에트연방 군부의 상급지휘관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 사건을 알지 못했고, 인류가 파멸 직전까지 다가갔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1998년이 되어서야세상은 페트로프 중령을 알아보았다. 그때에도 페트로프 중령은겸손했고, 2017년에 사망할 때까지도 자기 임무를 다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령의 자리에 그보다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해보라. - P11

《베이징 인민일보北京人民日報》는 "모든 인민이 전투에 참전해서 (…) 혁명의 끈기로 굴하지 않고 전진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전투에 참여하라는 호소에 열정적인 호응이 따르면서 베이징에서만 300만 명이 동원되었다. 학생 소총 부대는 참새를 사냥했고, 둥지는 조직적으로 파괴되었으며, 알은 부서지고 새끼는 짓밟혔다. 냄비를 두드려 시끄러운 소리를 내서 참새들이 땅에 내려앉지 못하게 했다. 쉬지 못해 기력이 다한 참새들은 가엽게도하늘에서 떼 지어 떨어져 죽었다. 겁먹은 새들은 숨을 곳을 찾아모여들었으며, 이런 피난처 중에는 폭도들의 진입을 거부한 베이징 주재 폴란드 대사관이 있었다. 그러나 휴식도 잠시였을 뿐,
곧 북을 치는 자원자들이 대사관을 에워쌌다. 북소리가 이틀 동안 계속 이어지자, 폴란드 대사관은 죽은 참새들을 삽으로 떠서치워야 했다. 1년을 넘기기도 전에 참새 약 10억 마리가 죽었고,
실제로 중국에서 참새는 멸종했다.
그러나 이 파괴적인 선동을 지휘한 자들은 참새의 중요성을 미처 몰랐다. 부검 결과, 참새의 주식은 곡물이 아니라 곤충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뜻밖의 일이 아니었는데, 이미 중국조류학계의 권위자인 정줘신이 참새가 해충을 통제하는 중요한 동물이라고 경고했었다. 그러나 이 비판을 들은 마오는 분노했으며, 정줘신은 ‘권위적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사상 재교육 - P22

과 강제노동을 선고받았다. 1959년이 되자 공산당은 결국 진실에 굴복했지만 이미 참사는 돌이킬 수 없었다. 유일한 천적이었던 참새가 사라지자 메뚜기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거칠 것이 없어진 메뚜기 떼가 중국 전역을 휩쓸며 곡물을 먹어 치웠다.
엄청난 재난 앞에서 중국은 급히 정책을 바꾸었으며, 소비에트연방에서 참새를 수입해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꺾여버린 곡물수확량은 이미 회복할 수 없었고, 재난이나 다름없었던 대약진운동의 다른 정책 덕분에 상황은 악화했다. 근시안적인 정책의결과로 1959~1961년에 3년 대기근이 찾아왔고, 1500~4500만명의 무고한 인민이 아사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 P23

소셜미디어에서 공유하는 논문의 59퍼센트가량은 해당 논문을 읽지도 않은 사람들이 전파한다고 추측된다. 논문을 읽으•려면 품이 들지만, 눈에 띄는 제목의 논문을 잘 골라 공유하면 지적인 노력 없이도 소셜미디어에서 명성을 얻을 수 있다. 이 같은 사회적 요소는 주류 미디어보다 온라인에서 더 중요하며, 온라인 공유는 최악의 과잉 사태를 불러온다. 2014년 《사이언스Science》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사람들은 부도덕한 사건을 텔레비전이나 신문으로 볼 때보다 온라인에서 접할 때 더 크게 분노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콘텐츠 크리에이터와 플랫폼이 이윤을얻으려는 목적으로 뉴스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신뢰도 높은 뉴스로 수익을 창출했던 전통 미디어도 매출이 하락하면서 인터넷에 뛰어들어야 했다. 온라인 공유에서 가장 강력한 예측 변수는? 격렬한 감정이다. 2017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 Proceedings of theNational Academy of Sciences, PNAS》에 발표된 논문은 도덕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언어는 소셜미디어에서 정치 콘텐츠의 전파를 크게 늘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대가로 우리는 분노의 기계로 바뀌며, 진실성이나 사회적 가치는 고려하지 않은 채 암암리에 흥미 위주의 콘텐츠를 선택하게 된다. - P28

주장에 일관성이 없더라도 다양한 곳에서 외치는 소리가 같은 결론을 가리키면 확실한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원칙은 우리를 설득하기보다는 상충하는 이야기로 압도해서혼란스럽고 타성에 젖은 몽유병 상태로 빠트리는 것이다. 이 모든 효과가 합쳐지면서 우리의 신념에 불규칙한 영향을 미친다.
현재 우리는 매우 위태로우며, 볼테르는 "불합리한 것을 믿게 하는 사람은 잔혹 행위도 저지르게 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미국 전략첩보국OSS은 거의 200년이 지난 후에야 볼테르의말에 동의했다. 전략첩보국이 제2차 세계대전 중반쯤에 분석한히틀러의 심리 프로파일은 매우 설득력 있다.

히틀러의 주요 원칙은 다음과 같다. 대중이 냉정해지게 놔두지않는다. 잘못이나 실수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적에게 일말의선이 있다고 수긍하지 않는다. 대안을 허용하지 않는다. 비난을인정하지 않는다. 한 번에 하나의 적에 집중해서 모든 나쁜 일의 원인으로 몰아간다.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을 더빨리 믿는다. 충분히 반복하면 조만간 믿게 된다. - P31

 위대한 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Edward O. Wilson이 주장했듯이, 인류의 진짜문제는 우리가 "원시인의 감정과 중세의 제도, 신에 필적하는 기술"을 가졌다는 점이다.
물론 누구나 망상이나 수상한 믿음을 어느 정도는 품고 산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인식을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는깨닫지 못한다. 생각은 외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믿음 역시 진공속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정보는 윌러드 밴콰인 W.V. Quine의 이른바 ‘믿음의 거미줄 (콰인-뒤앙 논제에 나오는 개념으로 인간의 믿음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거미줄처럼 엉켜 있다는 비유. 옮긴이)‘을 구성한다. 인간의 생각은 복잡하게 엉켜 있으며,
미심쩍은 믿음 하나를 수용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개념을 연쇄적으로 바꿀 수 있다.  - P33

합리성을 지성의 부산물 정도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지성과 합리성은 거의 연관이 없다. 지능지수가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합리성 장애dysrationalia (정신 능력이 있는데도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능력이 부족한 상태)로 고통받는다. 그러나 지능지수와 다르게 합리성은 쉽게 향상할 수 있다. 2015년에 발표된 흥미로운 논문은 실험대상자의 일반적인 의사 결정에서의 편향성 민감도를 측정했다. 그 후, 실험대상자는 자신의 논리적 오류를 설명하는 영상을 보거나 편향성을 낮추는 양방향 게임을했다. 몇 달 후 같은 문제에 부딪혔을 때 훈련받은 실험대상자들은 실수를 반복할 확률이 크게 낮아졌으며, 미심쩍은 주장을 인식할 가능성은 매우 커졌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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