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를 꿈꾸는 데는 돈키호테 같은 뭔가가 필요하다는 걸 난알아요." 백작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모든 걸 고려해볼 때, 전자가가능성이 훨씬 희박하다 해도 사람이 어떻게 후자의 높은 가능성에 복종할 수 있겠어요? 그건 인간 정신에 위배되는 행동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훔쳐보고 싶은 것은, 혹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다른 사람들의 방식과 비교해보고 싶은 것은, 너무나 근본적인 인간의 욕구죠. 그래서 후자의 힘이 이 도시의 문을 걸어 잠갔을 때조차도 전자의 힘은 갈라진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방법을 찾아낼 거예요." - P552
아빠, 내 무덤에 흙을 덮을 때, 참새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빵 껍질을 부숴서 뿌려주세요. 그러면 참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게 될 테고, 혼자 누워 있는 게 아니니까 기쁠 거예요. 이 인용구를 읽자마자 백작은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분명 너그럽지만 신경질적이기도 했던, 너무나 짧게살다간, 그리고 이 처량한 아이처럼 세상의 모든 불공정함에도 세상을 원망하려 들지 않았던 친구를 위한 울음이었다. 하지만 백작의 울음은 자신을 위한 울음이기도 했다. 마리나와안드레이와 에밀과의 우정에도, 안나에 대한 사랑에도,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 찾아든 특별한 축복인 소피야에도, 미하일 표도로비치민디흐가 죽음으로써 젊었던 시절의 백작을 알던 마지막 사람도 함께 사라진 것이었다. 그렇지만 카테리나가 부탁한 대로, 적어도 그는 살아남아서 기억해주어야 했다. - P589
백작이 얘기를 계속했다. "내겐 너를 자랑스러워할 이유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단다. 그리고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음악원 경연 대회가 열렸던 밤이었어. 하지만 정작 내가 최고의 자부심을 느낀 순간은 안나와 네가 우승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가 아니야. 그것은 바로 그날 저녁, 경연을 몇 시간 앞두고 네가 경연장으로 가기 위해 호텔 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았을 때였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박수갈채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야. 중요한 건 우리가 환호를 받게될 것인지의 여부가 불확실함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이란다." "만약 제가 파리에서 피아노를 연주한다면, "잠시 뒤 소피야가 말했다. "전 아빠가 청중석에 앉아서 제 연주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랄뿐이에요." 백작이 미소를 지었다. "얘야, 난 장담할 수 있어. 네가 달에서 피아노 연주를 한다 하더라도 나는 네가 연주하는 음 하나하나를 모두 다 들을 거야." - P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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