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징벌하기 위해, 더러운 자들을 피로 정화하기 위해 죽였습니다. 어쩌면정의를 향한 미치광이 같은 욕망에 쫓긴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인 한, 하느님에 대한 넘치는 사랑이나 지나친 무류에겨워 죄를 짓는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보내셨고, 마지막 날 영광의 승리자로 선택하신, 참 영혼을 가진 대중이었습니다. 우리는 당신네들의 파멸을 앞당기고, 천국에서그 상을 받고자 했습니다. 우리만이 그리스도의 사도였을뿐, 다른 이는 모두 그분을 배반한 이단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게라르도 세가렐리는 신목(神木), <믿음의 뿌리에서 싹튼 신의 식물planta Dei pullulans in radice fidei>이었습니다. 우리 교단은 하느님께서 몸소 세우신 교단입니다. 우리는 하루 빨리 당신네들을 몰살시키기 위해 무고한 자도 죽이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평화와 행복이 모두에게두루 미치는, 보다 나은 새 세상을 바랐습니다. 우리는 당신네들의 탐욕이 불러 일으킨 전쟁을 줄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무고한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당신네들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정의와 행복이 뿌리내리려면 우리 모두가 피를 흘려야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실은...... 사실은 그런데도 최후의 날은 앞당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타벨로에서 카르나스코 강물을 핏빛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우리 피도 섞여 있었습니다. 우리 피와 당신네들의 피가……돌치노의 예언이 실현될 날이 가까워진 듯해서 우리로서는그 징조가 보이는 날을 앞당겨야 했던 것이지요.」레미지오는 부들부들 떨면서 두 손을 법의 자락에다 비볐다. 머리로 상상했던 피를 실제로 닦고 있는 것이었다. - P714
그러나 나는 여기에다 여섯째 조항을 덧붙입니다. 나는정통신앙과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단자들에게 사악한 사상을 불어넣는 서물(物)의 저자까지 이단자무리에 포함시킬 것임을 밝혀 둡니다.」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우베르티노를 노려보았다. 황실측의 소형제회 사절단은 그제서야 베르나르의 뱃속을 들여다본 것이었다. 회담은 완전한 실패로 돌아간 셈이었다. 그 뒤로, 그날 오전에 오고 갔던 이야기를 다시 입에 담는 사람은없었다. 말을 해봐야 어차피 그날의 사건 이야기밖에는 할것이 없는 터에 공연히 이단 혐의만 날아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베르나르가, 양측의 화해 협상을 깨뜨리기 위해 교황이보낸 사람이라면, 베르나르는 임무를 썩 훌륭하게 완수한 셈이었다. - P724
내 사부님이신 로저 베이컨의 지식에 대한 갈망은 탐욕이 아니었다. 그분은 당신의 지식을 쓰시되, 하느님백성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 쓰셨다. 따라서 그 분은 지식 자체를 위한 지식은 구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베노는 제 삶을가꾸는 수단으로서, 제 비천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서, 다른 인간을 믿음의 전사나 이단의 첨병을 만드는 수단으로서의 지식을 구한다. 이것이 탐욕이다. 탐욕이라고 해서꼭 육(肉)의 탐욕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베르나르기는 탐욕스러운 위인이다. 베르나르는 정의에의 탐욕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은 정의에의 탐욕이 아니라 권력에의 탐욕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우리의 신성한, 그러나그래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별로 신성하지 못한 교황은 부(富)에의 탐욕에 사로잡힌 자이다. 식료계 레미지오? 이자는소시적부터 제 몸으로 체험함으로써 저 자신을 변용시키겠다는 탐욕에 사로잡혀 있던 자이다. 그러나 이제는 참회와죽음에의 탐욕에 사로잡혀 있을 게다. 베노는 서책에 대한탐욕에 지나친 집착을 보인다. 제 씨앗을 땅에 흘린 오난의경우가 그러하듯이, 무릇 모든 탐욕이 그러하듯이, 베노의탐욕은 참으로 덧없는 것, 세상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는 아무 인연도 없는 것인 법이다.」 - P735
베노 수도사는 이제 제 손에 들어온 서책의 선을 지킨답시고 그 책을 호기심에 찬 시선으로부터 지킬 터인데 어떻게이것을 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서책의 선은 읽혀지는 데 있다. 서책은 하나의 기호를 밝히는 또 하나의 기호로 되어 있다. 기호는 이렇게 모여서 한사상(事象)의 모습을 증언하는 게다. 이를 읽는 눈이 없으면, 서책은 아무런 개념도 낳지 못하는 기호를 담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런 서책은 벙어리나 다를 바가 없다. 이 장서관은 원래 서책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양이다만 이제는그 서책을 묻어 버리고 있구나. 이 장서관이 부정과 죄악의수채 구멍이 된 것도 다 그 때문이다. 레미지오는 제가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더구나. 베노도 그랬고....... 그런데 베노를 보아라. 베노는 저 자신을 배신하고 있다. 참으로 지긋지긋한 하루였구나. 피가 튀고 이 세상 귀퉁이가 우르르 무너지는 것 같은 하루였다. 이 하루가 어찌 이리도 길었던고. 종과 성무 시간이다. 어서 들렀다가 자리에 들자.」 - P736
나는 이제 와서야 자연 철학의 원리를 근거로 하는 사부님의 예언, 혹은 삼단 논법을 이해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의예언이나 추론이 나에게 하등의 위안거리도 되지 못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여자가 화형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책임을 느꼈다. 여자가 화형을 당하면, 내가 지은 죄까지 사함을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하도 부끄러워 눈물을 떨구며 내 방으로 돌아와 밤새울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 여자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름을 알았더라면, 동료들과 멜크 수도원에서 몰래 돌려 가며 읽던 기사 무훈담의 주인공처럼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밤새 애통해 할 수 있었을 것을...... 이것이 내가 경험한, 처음이자 마지막인 세속적 사랑이다. 그때도 그랬고 그 뒤로도 그랬지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본 바가 없다. - P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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