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섭리를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 뜻이라면 일각수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심려 말아라. 일각수는 이 서책에 존재하고 있지 않으냐?
참 실재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가능한 실재로 존재하니 그것으로 만족하려무나.」「그렇다면 서책을 읽을 때도 우리는 신학적인 미덕인 믿음을 갖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요?
「신학적 미덕에는 믿음 말고도 두 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이고 또 하나는 가능하다고 믿는 인간에 대한 자비이다.」「사부님의 지성은 일각수의 존재를 믿지 않으시는데, 도대체 일각수라는 존재가 사부님께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베난티오의 시신은 돼지 피 항아리로 끌려 들어갔다. 그때 눈 위에 남았던, 베난티오가 끌려간 흔적이 그러하듯이,비록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일각수는 나에게 여전히 유용하다. 서책 속의 일각수는 그 흔적과 같다. 흔적이 있으면 흔적을 남긴 존재도 분명히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일각수와 그 흔적은 다른 것일 것 같습니다만.
「다를 수도 있고 같을 수도 있다. 남기는 것에 따라 흔적의모양은 늘 같지 않고, 또 흔적이라는 것이 꼭 찍혀야 생기는것도 아니다. 때로 인간의 육체가 인간의 마음에다 흔적을남기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관념의 흔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관념은 만물의 기호요, 형상은 기호의 기호, 관념의 기호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육체나 관념이 없어도 이미지로써 이를 재구성한다. - P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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