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 그렇게 많았으니 한겨울 오후에도 빛이 고루 들어오는 것은 당연했다. 창유리는, 교회의 경우와는 달리 채색 유리가 아닌, 납틀에 박힌 정방형 유리였다. 그래서 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인공으로 변조(變調)된 빛이 아닌 순수한 자연광 그대로였다. 따라서 자연광이 수도원 학승들의 독서와 필사를 밝혀 주고 있는 셈이었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구경한 문서 사자실은 적지 않으나,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방을 밝히는 자연광이 그처럼 현란한 문서 사자실은 본적이 없다. 빛이 연출하는 영적인 원리의 광휘와 아름다움과 학문의 본디 모습은 그 방이 체현하는 조화로운 분위기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방에서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세 가지 현상이 돋보이고 있었다. 첫째는 불완전한 것을 추한 것으로 여기게 하는 완전성 혹은 무류성無謬性), 두 번째는 고유의 조화 혹은 일치, 마지막으로는 특정 색깔을 아름답다고 여기게 하는 청징스러움과 빛 자체의 아름다움이었다. 아름다운 것에는 평화가 깃들어 있는 법••••••.
그리고 우리의 욕심은, 평화로운 것, 아름다운 것, 선한 것 앞에서 차분히 가라앉는 법. 그래서 나는 그 분위기 앞에서 위안을 느끼는 동시에 그런 곳에서 공부하던 사람들이 참으로 부러워 보였던 기억이 새롭다. 내 눈이 그 방의 밝기에 익어 감에 따라 오후의 햇살에 화사해진 그 방은 더할 나위 없는 학문의 전당으로 보였던 것이다. 후일 장크트 갈렌 수도원에서, 장서관과는 분리되어 있는, 비슷한 크기의 문서 사자실을 본 적이 있으나 꾸며진 상태와 간추려진 상태로 보아 그 수도원 문서 사자실과 같지 못했다(장크트갈렌 수도원의경우 수도사들이 장서가 있는 곳에서 공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달랐다). 고문헌 연구가, 사서. 주서사들은 모두 각자의 서안(書案)앞에 앉아 있었는데, 이 서안은 하나씩의 유리창 앞에 면벽(面壁)하고 있었다. 유리창이 40개여서(4주덕(主德)에 10계명을 곱한 듯, 4의 10배수로부터 나온 완벽한숫자) 40명의 수도사가 동시에 공부할 수 있게 되어 있었지만 내가 보았을 당시에는 30여 개의 서안 앞에만 수도사들이 앉아 있었다. 세베리노는, 문서 사자실에서 공부하는 수도사들은 3시, 6시, 9시과의 성무를 면제받고 있어서 낮에는 그곳을 떠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수도사들의 공부가 끝나는 시각은 만과가 시작되는 일몰 즈음이 되는 셈이었다. - P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