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수도사의 말에 수도원장이 나직한 어조로 응수했다.
<책이 없는 수도원은...... 재산이 없는 도시, 군대 없는 성채, 그릇 없는 부엌, 먹을 것 없는 밥상, 풀 없는 뜰, 꽃 없는목장, 잎 없는 나무 같은 것이지요Monasterium sinelibris... est sicut civitas sine opibus, castrum sinenumeris, coquina sine suppellectili, mensa sine cibis,
hortus sine herbis, pratum sine floribus, arbor sine foliis.>그러니 수도사께서도 익히 아시겠지요? 공부와 기도라는 두가지 소명 아래 날로 그 모습을 달리하던 우리 종단은 지금까지 알려진 세계의 빛, 지혜의 보고, 화재와 약탈과 지진의 위협을 받는 고대 학문의 구원이었으며 새로운 저술과 고대필사본 증보의 용광로였습니다. 익히 아시는 대로 지금 우리는 암흑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말씀드리기가 부끄럽습니다만 몇 년 전에 비엔느 총회는, 모든 수도사들에게 평의회의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의무 규정을 재천명해야 했습니다. 2백년 전만 하더라도 위엄과 은혜로 영광을 누리던 수도원.
지금 나태한 자들의 소굴이 되어 있는 수도원이 얼마나 많습니까? 평의회의 명령은 여전히 지엄합니다만 도시의 좀이 우리의 성역에 슬고 있고 하느님 백성은 장사와 전쟁에 침을 흘리고 있습니다. 저 아래, 신성이 머리 둘 곳 없는 속세 사람들은 상스러운 말을 입에 올릴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글로 이를기록하기까지 하니 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성직자들도 예외가 아니라니 대체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필경은 이교도들을 선동할 터인 이러한 서물은 한 책도 우리 수도원으로는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인간의 죄값으로 세계는 지옥의 심연 언저리에서 기우뚱거리니 머지않아 이 심연이 인간의 무리 안에 자리할 것입니다. 호노리우스가 일찍이 내다보았지만 지금의 우리가 고대의 인류보다체구가 작듯이 미래의 인류는 지금의 우리보다 체구가 작을것입니다. <세계는 늙어간다Mundus senescit)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소임을 맡겨 주셨다면 그것은 우리교부(敎父)들이 물려준 지혜의 보고를 관리하고, 거듭해서고구(考)하고, 이를 지킴으로써 심연으로 향하는 인류의앞을 막고 나서는 일일 것입니다. 태초에 동방에 있던 사해동포 정부가 그 뜻이 이루어질 날이 가까워짐에 따라 서진(西進)하는 것은 하느님 뜻입니다. 이는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졌다는 하느님의 경고이기도 합니다. 작금의 사태로 미루어 이미 세계는 종말의 문턱에 와 있습니다. 그러나 지복 천년)이 올 때까지, 가짜 그리스도가 한순간 덧없는승리를 거둘 때까지 하느님께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이르셨고, 교부들이 한 자 한 획도 틀림이 없이 이를 기록했고, 비록 어제 오늘의 학계가 뱀굴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옛 학자들이 주석을 놓아 왔던 하느님의 말씀과 기독교 세계의 보물을 지키는 사명은 우리 머리 위에 머뭅니다. 날이 저물고 있기는 하나 우리는 아직 지평선에 남은 횃불이며 등잔입니다. 이 수도원 장서관의 벽이 성한 한 우리는 하느님 말씀의 수호자일 수 있는 것입니다.」「아멘. 그것은 그렇고, 이것과 장서관 출입 통제와는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 P77

우리는 회중석 중앙을 지나, 들어갔던 문을 통해 밖으로나왔다. 우베르티노의 말은 밖으로 나와서까지 내 귀에서 윙윙거렸다.
「좀 괴짜이신 것 같습니다만•••••• 나는 용기를 내어 이렇게 여쭈어 보았다.
어느 모로 보나 대단한 분이시다. 지금 대단한 분이 아니시라면 전에 대단한 분이셨거나...... 이런 이유에서라면 <괴짜>라는 네 말은 합당하다고 할 수 있지. 반반하고 동그란 위인들은 대개 소인배들인 경우가 많다. 우베르티노는, 자기손으로 화형대로 보낸 이단자들과 똑같은 자가 될 수도 있었고, 신성 로마 교회의 추기경이 될 수도 있었던 사람이다. 이단자의 악덕과 추기경의 악덕 또한 고루 갖춘 사람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나는 우베르티노와 노닥거리면서 지옥이 다른 걱도에서 본 천국이라는 인상을 받았구나.]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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