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막하게 대답하면,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발견되어 다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결과, 원자론이라는 생각을 여타 위험한 주장들과 연결하는 궁극의 중심 가교가 생겼다는 것이다. 아무런 앞뒤문맥 없이, 사물이 무수한 보이지 않는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체는 그다지 혼란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쨌거나 세상은 무엇인가로 구성되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루크레티우스의 시는그 원자들에 잃어버렸던 문맥을 돌려주었고, 그 영향은 도덕적, 정치적, 윤리적, 신학적, 어느 면으로나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 P315

이렇게 루크레티우스가 근대 사상의 주류에 완전히 흡수되기 전, 루크레티우스를 중요한 지침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과학적 사고를 할 줄 아는 날카롭고 냉소적인 지식인인 버지니아 출신의 부유한 농장주 토머스 제퍼슨도 있었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그가 가장 좋아하던 책들 중 한 권이었으며, 그는 이 책의 라틴어 판본만 최소5종을 가지고 있었고,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번역본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루크레티우스의 시를 통해서 세상은 오직 물질로 구성되어있는 자연일 뿐이라는 신념을 확고히 했으며, 특히 무지와 공포가 인간존재의 필수불가결한 구성요소가 아니라는 확신을 품는 데에 도움을 받았다.
사실 제퍼슨은 시의 저자인 루크레티우스가 기대했을 법한 방식이 아니라 16세기 초의 토머스 모어가 꿈꿨을 만한 방식으로 이 고대 유산을 받아들였다. 알다시피 제퍼슨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공적 생활로 인한 격렬한 경쟁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대신에그는 새로운 공화국의 초석이 되는 중대한 정치적 문서를 작성하는 데에 참여했다. 그런데 그 문서의 내용은 루크레티우스의 시가 만든 또 하나의 뜻밖의 전환이었다. 이 문서로 탄생하는 정부의 사명은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복의 추구"에 봉사하는 것이었다. 루크레티우스를 이루던 원자들은 이렇게 미국 독립선언서에도 그 자취를 남겼다.
1820년 8월 15일, 일흔일곱 살의 전직 대통령 제퍼슨은 또다른 전직대통령인 여든다섯 살의 존 애덤스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썼다. 두 노인은 인생의 끝이 가까워졌다고 느낄 때마다 종종 편지로 삶의 의미에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결국에는 언제나 내 습관적인 진통제로 돌
아가야만 한답니다."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나는 느낀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물들을 느낄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다른 존재도 있는 것이지요. 나는 그것들을 ‘물질(matter)‘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나는 그것들이 장소를 바꾸며 음직이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이것이 ‘운동(motion)‘이지요. 그리고 그런 물질이 없는 곳은 ‘진공(void)‘, ‘무(nothing)‘ 또는 ‘비물질적 공간(imma-terial space)‘이라고 부릅니다. 물질과 운동으로부터 받는 감각에 기초해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고 필요로 하는 모든 확실성들의 기초를 세우는 것이겠지요.

이것이야말로 루크레티우스가 독자들에게 가장 심어주고자 했던 감정이다. 한번은 한 서신 상대가 제퍼슨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했다. 제퍼슨은 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에피쿠로스주의자입니다."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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