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20대 시절, 피치노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받아 시의 저자를 "우리의 위대한 루크레티우스"라고 부르며 그에 대한 학술적인 논평까지 썼다. 그러나 훗날, 다시 이성을 찾은 말하자면 기독교인으로 돌아온-피치노는 자신이 쓴 논평을 태워 없애버렸다. 자신이 "루크레티아니(루크레티우스파)"라고 부른 루크레티우스 추종자들을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공격했고, 삶의 대부분을 플라톤 철학을 응용하여 기독교를 위한 독창적인 철학적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에 바쳤다. 또다른 반응은 루크레티우스의 시적 스타일을 시가 담고 있는 사상과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이었다. 포조도 이런 방식의 전략을 취했다. 포조는 다른 발견과 마찬가지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발견한 것에도 자부심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절대로 자신을 루크레티우스의 사상과 연계시키거나 공공연히 그 사상을 입에 올려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포조와 니콜리 같은 가까운 동료들은 다양한 이교 문헌에저 우아한 어법이나 문장을 빌려와서 라틴어 문장을 쓸 때 활용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이교 문헌에 담긴 극히 위험한 사상과는 멀찍이 선을 그었다. 실제로 포조는 교황청에서 관료로 일하던 말기에 자신과 날카로운 경쟁관계에 있던 로렌초 발라를 루크레티우스의 스승인 에피쿠로스를추종하는 이단이라며 주저 없이 공격한 적도 있다." 포조는 포도주를 즐기는 것과 그것을 찬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면서 발라는 포도주를 찬양하는 자에 속한다고 썼다.‘ 포조의 주장에 따르면, 발라는 에피쿠로스를 추종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순결을 공격하고 매춘을 찬양하기까지했다면서 "그대의 신성모독적인 발언들이 남긴 얼룩은 결코 말로는 씻어낼 수 없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포조는 한술 더 떠서 불길한 말로 공격을 잇는다. "그 얼룩은 오직 불에 의해서만 씻어낼 수 있으리니, 부디그대가 절대 그 불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어쩌면 발라는 이 엄청난 고발을 받은 대로 돌려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위험한 루크레티우스를 사람들의 품으로 돌려준 자가 바로 포조당신이 아니냐고, 발라가 그렇게 되받아치지 못했다는 것은 포조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재발견의 영향으로부터 신중하게 거리를 두는데에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 P2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