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최고 목표는 쾌락의 증진과 고통의 경감이다. 
인생은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자신과 벗의 행복이라는 이 목적을 이루려는 것 이상으로 더 고귀한 윤리적 목적은 없다. 국가에의 충성, 신 또는 지배자의 영광, 자기희생을 통한 고된 덕의 수행 같은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여타의 주장은 모두 부차적인 것을 가장 중요하다고 착각한 것이거나 기만인 것이다. 루크레티우스가 보기에 자신이 누리던 문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군사주의 성향과 폭력적인 스포츠의 인기는 근본적으로 비뚤어지고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인간의 자연적 욕구는사실 단순하다. 쾌락을 증진하고 고통을 경감하는 것. 이처럼 단순한 욕구의 한계를 부인해보아야 인간이라는 존재는 덧없고 헛된 허우적거림만을 계속하게 될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열광하는 부(富)라는 것이 많은 경우에서 무의미하며 더 행복한 인생을 만드는 것과는 거의, 어쩌면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다. "멋지게 장식한 불타는 듯한 주홍빛 옷을 입고 뒹군다고 해도 평범한 옷을 입고 몸져누워 있는 것보다하는 듯한 열병이 더 빨리 가라앉지 않으리니."(2.34-36) 그러나 신과 사후세계에 대한 공포에 저항하기 힘든 것처럼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열정적으로 물욕과 정복욕을 발휘하여 안전을 더욱 공고히하겠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기도 힘들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들은 결국 행복의 가능성을 줄이고 모두를 파멸의 위험 속으로 밀어넣을 뿐이다.
루크레티우스는 읽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로 유명한 한 문단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짓거리로부터 벗어나서 안전한 위치에서 지켜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만 한다.

바람이 거대한 바닷물을 내리칠 때 다른 사람이 겪는 가혹한 시련을 육지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것은 안심이 된다. 누군가의 곤경이 즐길 만한 쾌락거리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괴롭히는 것을 바라봄으로써 당신이 거기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위안을 받는 것이다. 평원에서 싸우는 전사들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광경을, 그 위험과는 완전히 무관한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 또한 위안이 된다. 그러나 현자의 가르침으로 충분히 방비된 안전한 고지를 점하는 것보다 더 축복인 것은 없다. 그 고요한 성역에서 다른 사람들이 삶의 방향을 찾아 정처 없이 떠돌며 지적인 탁월함과 지위를 놓고 다투며 밤낮 없이 으뜸가는 부를 차지하고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무던히 애쓰는 것을 내려다보는 것 이상의 축복은 없다.
(2:1-13)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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