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고대에도 책은 그리 희귀한 상품은 아니었다. 잘 훈련된 노예가 방을 가득 채운 숙련된 필사가들에게 큰 소리로 원고를 읽어주면, 그들의 손에서 많은 수의 사본이 한꺼번에 생산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수만 권의 책이 제작되고 또 수십만 권의 사본이 만들어져 세상으로 팔려나갔다.
상당히 오랫동안 고대 세계의 주된 문화적 고민거리 중 하나는 이 끝없이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 수많은 책을 대체 어디에 보관할 것인가? 쌓여 있는 책들의 무게로 신음하는 선반 위에 어떻게 이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 수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담을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많은 책들이 오가는 상황에서 이것들이 언젠가는 소실될지도 모른다는 데까지는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번창하던 책 산업이 느닷없이 덜컥 종말을 맞은 것은 아니었다. 이는오랜 시간에 걸쳐 책 산업을 거대한 종말로 이끈 힘이 축적된 결과였다.
결국 한때는 견고해 보였던 것이 사실은 약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영원할 것만 같던 것도 순간의 일이었을 뿐임이 밝혀졌다. 필사가 집단이 이와 같은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챘을 것이다. 그들은 점점 일거리를 구하기가 힘들어졌을 것이다. 필사작업의 대부분이 중단되었다. 간신히 화재를 피한 책들은 구멍 난 썩은 지붕 사이로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에 조금씩 글자가 지워졌다. 그리고 남겨진 책들에는 벌레들이 "시간의 이빨로 조용히 제 할 일을 했다. 그러나 벌레들은 이 거대한 소멸의 물결 속에서 가장 하찮은 일꾼이었을 뿐이다. 책 선반을 통째로 부수면서 한순간에 수많은 책을 한 줌의 먼지와 재로 만든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포조와 동료 책 사냥꾼들이 뭔가 하나라도 찾아낸다면 이는 정말 행운이었다. - P110

히파티아의 죽음은 한 뛰어난 인물의 죽음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포조가 발견한 문헌의 바탕에 깔려있던 지적 전통 전체에 대한 인상적인 조종(弔鐘)이었다.  모든 문헌, 모든 학문, 모든 사상을 집대성하겠다는 꿈을 담았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더 이상 보호를 받는 시민사회의 중심지가 아니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도서관이 사실상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세월이 계속되었다.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던 위대한 고전 문화의 유산도 실질적으로 흔적도 없이사라지게 되었다. 한순간 감쪽같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렇게 중대한 파괴행위가 있었다면, 분명히 어딘가에는 기록이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 ‘그래서 그 많은 책들이 대체 다 어디로 갔다는 말이오?‘ 하고묻는다면, 빠른 속도로 이들을 집어삼켰을 전란의 화마와 오랜 시간에걸쳐 천천히 비밀스럽게 움직였을 책벌레들만을 탓할 수는 없다. 대답은 적어도 상징적인 의미에서는 히파티아의 운명과 같았다. - P118

서로마 제국의 최후는 길고 천천히 고통스럽게 찾아왔다.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조용히 퇴위한 476년, 제국은 마침내 붕괴했다. 속주들을 차례로 탈취한 게르만족에게는 글을 읽고 쓰는 전통이없었다. 공공건물과 귀족의 빌라를 차지한 야만인들이 학문과 지식을 배척하며 잔혹하게 대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물질적 자취를 보존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을 리도 없다. 빌라의 옛 소유주들은 노예 신분으로 전락하여 머나먼 농장으로 보내졌을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짐을 꾸리며 책을 우선순위에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정복자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이었으므로 혹여 그중에 글을 아는 자가 있다고 해도 굳이 이교도가 남긴 고대 문헌에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전쟁과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진 폭력에 비하면, 베수비오 화산은 고대 유산에 훨씬 더 자비로웠던 셈이다. - P119

기독교는 특별히 에피쿠로스 사상을 사악한 위협으로 생각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영혼이 사멸한다는 에피쿠로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기독교적 이념의 기본 구조가 붕괴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인간의 고통에는 항상 끝이 있다. "그[에피쿠로스]는 만약에  고통이 작은 것이라면 당신은 그것을 가볍게 여기면 되고, 만약 고통이 극심한 것이더라도 결코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테르툴리아누스는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곧 고난과 고통의 영원한 지속을 믿는 것이라고 맞섰다. 다른 한 기독교 교부는 이렇게 썼다.
"에피쿠로스는 종교를 완전히 파괴한다." 신의 섭리가 없어지면, "세상은 혼란과 무질서에 빠지고 말 것이다."
기독교의 논객들은 에피쿠로스와 그 신봉자들에 대항하여 조롱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이 경우에 이교 신들의 희화화는 쓸모가 없었다. 그들은 신에게 희생 제의를 바치는 신앙을 철저하게 배하고 모든 고대 신화를 부정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상의 창시자인 에피쿠로스에 대한 이야기를 재정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더 이상합리적인 쾌락을 추구하며 절제하는 삶을 사는 사도의 모습이 아니라 시끌벅적하고 자제라고는 모르는 팔스타프(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등장하는 풍지적인 성격의 인물로 허풍이 심하고 방탕하다/역주) 같은 인물이어야만 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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