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의 설명에 따르면, 원자들은 부단히 움직이며 서로 충돌하고 특정한 상황에서는 서로 결합하여 더 큰 물체를 이루기도 한다. 관찰할 수 있는 가장 큰 물체는 해와 달인데, 인간이나 물가의 날벌레, 모래알과 마찬가지로 모두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물질에는 상위 범주도 없으며 원자 간의 위계질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천체(天體)도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신성한 존재가 아니며 진공(眞空, void)을 가로지르는 그들의 움직임도 신의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니다. 천체는 단순히 자연질서의 한 부분이며, 원자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조물로서, 천체를 구성하는 원자 역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창조와 파괴의 원리를 따른다. 설령 자연의 질서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복잡하다고 하더라도 그 기본적인 구성요소와 보편적인 법칙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실제로 그런 이해야말로 인간의 삶에서 추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쾌락의 하나이다. - P95

 "쾌락이야말로 최고의 선이라고 했을 때 에피쿠로스는 살아남은 얼마 되지 않는 편지글 중 하나에서 이렇게 언급한다. "우리가 의미하는 것은 방탕하고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자는 것이 아니라네." "생각 없이 흥청망청 술판을 벌이면서……육욕적인 사랑에 탐닉하고…… 산해진미로 풍성한 호화로운 식탁을 즐기는것" 같은 욕망을 채우려는 과열된 시도는 쾌락을 지속시키는 열쇠인 마음의 평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욕망 때문에 너무나 끔찍한 악덕으로고통 받고 있다."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견된 책 중 하나에서 신봉자인 필로데모스는 이렇게 썼다. 그러면서 "그들은 정작 가장 필수적인 욕망들은 마치 본성에서 벗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무시하곤 한다." 쾌락으로 이끄는 가장 필수적인 이 욕구들은 대체 무엇인가? 필로데모스는 계속한다. "신중하고 공정하고 정의롭게 살지 않고는, 용감하고 온화하고 관대하게 살지 않고는, 벗을 사귀고 인류를 사랑하지 않고는" 쾌락을 누리며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 P99

아무리 쾌락이 가장 절제되고 사려 깊은 언어로 정의되었다고 하더라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쾌락이라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적인 주장은 충격을 던져주었다. 여타 이교도나 그들의 대척점에 있던 유대인은 물론이고 후일의 기독교인 모두 에피쿠로스의 사상에 충격을 받았다. 쾌락이 최고의 선이라고? 신과 조상들에 대한 경배는 어쩌고? 가족과 도시, 나아가서는 국가에 대한 봉사는? 성실하게 법과 명령을 따르는 것은? 덕이나 신을 따르는 것은? 에피쿠로스의 사상에 대립하는 주장들은 하나같이 금욕적인 자기부정, 자기희생, 심지어 자기혐오의 형태를 수반했다. 그리고 이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쾌락의 추구를 최고의 선으로 보는 에피쿠로스 사상과는 양립할 수 없었다. 에피쿠로스가 직접 자신의 사상을 가르쳤던 때로부터 2,00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의 사상이 던진 충격은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 존슨의 작품과 같은 졸렬한 모조품 안에서 비틀린 에너지를 발산하며 살아남았다.
이런 모조품의 뒤에는 반쯤 숨겨진 공포가 자리한다. 쾌락을 극대화하고 고통을 피하는 것이 사실은 호소력 있는 목표이며 충분히 인간의 삶을 합리적으로 조직하는 원칙으로 성립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만약 에피쿠로스의 사상이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에성공한다면, 사회를 지탱하는 희생, 야망, 사회적 지위, 규율, 신성함 등으로 대표되는 유서 깊은 다른 원칙들 전체가 그 원칙들이 봉사해온 사회기관들과 함께 거센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쾌락의 추구라는 에피쿠로스 사상의 핵심을 괴이하고 관능적인 방종으로 몰고 갔던 것은―성,
권력, 돈, 때로는 존슨의 예에서처럼) 얼토당토않게 값비싼 음식을 즐기는 사치스러운 미식 같은 것에만 목을 맨다고 묘사되었던 것은 바로 그런 도전을 막기 위함이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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