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학창 시절, 나는 학년 말이면 여름 한 철 읽을 만한 것을 찾으러 예일대학교 협동조합 상점에 가곤 했다. 주머니 사정은 썩 좋지 않았지만, 조합에서 운영하는 서점은 잘 안 팔리는 책들을 말도 안 되는 싼 값에내놓았다. 나는 상자 속에 무더기로 뒤섞여 쌓여 있는 이런 책들을 별생각 없이 훑어보면서 내 흥미를 끌 만한 뭔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로 기묘한 페이퍼백 표지가 내 시선을 끌었다. 그것은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의 작품 일부로, 지면 위로 아득히 떠 있는 초승달 아래 몸통은 없이 다리 두 쌍만이 천상의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붙어 있는 그림이었다. 그 책은 루크레티우스가2,000여 년 전에 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를 산문으로 바꿔 번역한 영어판(On the Nature of Things)이었다. 책값은 10센트에 불과했고, 나는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고백하건대, 물질계에 대한 고대의 설명에 대한 호기심 못지않게 표지에 끌렸던 것이 사실이다. - P7